<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99화>
* * *
물론 술 취한 진상이 기절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진유성이 탄지공으로 해낸 일이었다.
탄지(彈指).
손톱이나 손가락 따위를 튕김.
탄지공은 단어 그대로 손가락을 튕겨서 사용하는 무공이었다.
하지만 탄지란 단어에는 시간적인 의미도 있는데, 이는 순식(瞬息)의 십분의 일을 뜻했다.
흔히 순식간이라고 사용하는 순식의 10분의 1이 ‘탄지’였고, 탄지의 10분의 1이 ‘찰나(刹那)’였다.
그래서 무림인들은 탄지공을 대성하면 탄지의 시간에 상대를 공격할 수 있다고들 말했다.
그러나 진유성의 탄지공은 탄지의 개념을 넘어 찰나의 시간 속에 구현된다.
그렇기 때문에 중원인들이 진유성의 탄지공을 탄지신공이라고 불렀던 것이었다.
이런 탄지신공으로 진상들의 수혈을 짚으니, 지종수나 심도훈이 눈치 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진유성은 편의점의 평화를 지키는 탄지신공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 주었다.
지건이었다.
감명 깊게 본 만화에서 나온 기술인데, 손가락으로 적을 쿡 찔러서 공격하는 기술이다.
물론 엄밀한 의미로 따지면 탄지공은 만화 속 지건과 차이가 있었다.
탄지공은 타격 범위를 일점으로 극대화시킨 격공장이다.
상대와 신체를 마주하고 직접 타격하는 게 아니라, 허공을 격해 공격한다는 소리였다.
탄지공으로 직접 공격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그냥 점혈법으로 보는 게 맞았다.
하지만 뭐 어떤가.
아무도 모를 텐데.
그래서 진유성은 편의점의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지건을 남발했다.
“야! 너 내가 누군지……!”
물건을 맡아달라고 억지를 부리는 중년 남자에게 한 방.
“나중에 돈 준다고!”
막무가내로 소주를 가져가려는 술 취한 노숙자에게 한 방.
“몇 살이야? 응? 오빠가 요 앞에서 일하는데.”
상소윤에게 끊임없이 추파를 던지는 기생오라비에게 한 방.
“담임 미친 거 아니냐?”
“아, 지건 마렵다.”
풀썩.
“미, 민수야!”
실수로 한 방.
“…….”
덕분에 편의점은 평화로웠다.
물론 지건을 남발한 탓에 인근 지구대에서 의심을 품긴 했다.
어제는 CCTV 기록을 가져가기도 했다.
그러나 CCTV를 백날 돌려 봤자 경찰들은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다.
진유성의 탄지신공은 무림인들조차 언제 기운이 발출됐는지 감지하기 힘들다.
그러나 속도보다 무서운 것이 동작이 없다는 것이다.
보통의 탄지공은 팔과 손가락을 곧게 뻗어서 발경의 압력을 높인다던지, 손가락으로 상대를 가리켜 정확도를 높여야 했다.
그러나 진유성은 아니다.
그의 탄지공에는 아무런 사전 준비가 필요 없고, 조준이 필요 없다.
그러니 경찰들이 알 방법이 없었다.
각성자로 의심을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진유성은 얼마 전에 SG에서 공식적으로 비 각성자 판명을 받았다.
그러니 그의 지건은 완전범죄였다.
‘아니, 범죄가 아니지.’
진유성의 지건을 맞은 것은 전부 진상들이다.
남에게 거리낌 없이 피해를 주는 놈들은 좀 혼나야 된다.
뭔가를 눈치 챘지만, 증거가 없는 건 경찰들뿐만이 아니었다.
상소윤도 진유성이 뭔가를 하고 있다는 걸 눈치 챈 상태였다.
진상의 기운만 느껴지면 손님들이 풀썩풀썩 쓰러지는데 모르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다.
상소윤은 진유성의 시계에 주목했다.
“야, 그 시계 언제 샀냐?”
“이거?”
“그거 비싼 거 아니냐?”
상소윤이 쳐다보는 시계는 상림이 사 준 것.
교주를 존경하는 상림이 자발적으로 우러난 마음에서 스승의 날과 어버이날에 선물한 시계 중 하나였다.
상림이 혹시 선물을 고민하느라 심력을 소모할까 봐 진유성이 대신 골라 주기도 했던 것이고.
“그냥 샀다.”
“음……. 예쁘네.”
“갑자기 왜 그러느냐?”
“아니야.”
처음엔 진유성은 상소윤이 왜 시계에 주목하는지 몰랐다.
그러나 진상이 쓰러질 때마다 시계를 쳐다보는 걸 보고 깨달았다.
코난이란 만화에 나오는 마취총이 발사되는 시계를 떠올리고 있다는 걸.
약간의 오해는 있었지만, 그렇게 상소윤과 진유성은 편의점 알바에 적응하고 있었다.
* * *
함께 편의점 카운터에 앉아 있던 상소윤이 노트에 뭔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상소윤이 꽤 오랫동안 집중하는 모습을 본 진유성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가 아는 상소윤은 집중력이 1분 이상 가는 법이 없다.
멀더의 술법을 미친 듯이 쓰면서까지 공부를 가르쳐 보고 깨달았다.
그러니 지금의 모습은 꽤 신기했다.
“뭐 하느냐?”
“응? 그림 그려.”
“갑자기 웬 그림?”
“아, 이건 그림이 아니라 옷인가?”
상소윤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진유성 앞에서 핑그르르 한 바퀴 돌았다.
“야, 나 어때?”
“비읍시옷하다.”
“뭐?”
“입이 아파서 초성으로 부르기로 했다.”
“비읍시옷은 네 글자고, 박색은 두 글잔데?”
상소윤의 말에 진유성이 깜짝 놀랐다.
“제법 영리해졌구나?”
“아, 진짜 뒤질래? 내 옷 어떠냐고.”
상소윤의 말에 진유성이 고개를 갸웃했다.
“옷이야 늘 아름답다.”
지구의 옷은 색감도 좋고, 재질도 좋아서 화려하면서 아름답다.
대명제국 황실에도 화려한 복식이 많았지만, 지구의 옷과 비교하면 부족했다.
이제 와서 생각하는 것이지만 전지의 존재가 내려앉은 지구와, 전능의 존재가 내려앉은 중원은 많은 것이 달랐다.
전반적으로 역사가 가는 흐름은 비슷할지언정, 세부적인 발전 정도가 차이가 났다.
당장 면직(綿織 : 옷을 짜다) 기술만 해도 같은 명나라임에도 지구가 월등했던 것 같다.
이는 전능의 영향권에 있던 중원인들이 ‘힘’을 최고로 치는 무의식을 공유했기 때문인 듯했다.
기술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영감이 모여야 하는데, 중원에서는 그 영감이 전부 무(武)로 모여들었으니까.
그리고 그 무(武)의 발전에 정점을 찍은 것이 진유성이고.
“그치? 생각해보면 내가 옷을 좀 잘 입거든?”
“근데?”
“남의 옷을 입혀 준 적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편의점 손님들에게 어울리는 옷을 그리고 있었어.”
상소윤이 내민 노트에는 진유성이 알아보기 힘든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상소윤은 충분히 알아볼 수 있는지 뭔가를 열심히 수정한다.
진유성이 턱을 쓰다듬었다.
그는 현대의 패션에 대해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었다.
그러니 진유성이 입는 옷은 대부분 단색이거나 유혜연이 위아래 세트로 사 준 옷이었다.
진유성은 이해하기 힘들지만, 상소윤은 꽤 즐거워 보였다.
그때였다.
짤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편의점 문이 열리며 두 명의 젊은 남자가 들어왔다.
진유성은 문득 두 손님의 낯이 익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디서 봤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누구지?’
그때 손님들이 음료가 들어있는 냉장고 쪽으로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아, 차라리 고등학교 때가 나았는데.”
“그니까. 씨바, 대학교 가니까 별 좆밥들이 과대니 회장이니 나대 가지고.”
“고딩 때 만났으면 눈도 못 마주치고 빵셔틀 했을 놈들이.”
목소리를 듣는 순간, 진유성은 자신이 두 놈들을 어디서 봤는지를 깨달았다.
게이트를 넘어 한국에 온 지 며칠 안 됐을 때.
“Where is the 강호의 도리!”
“저 새끼 뭐야? 미친놈이야?”
“……아이언맨?”
진유성은 우연히 무뢰배들의 폭력을 목격했고, 그들의 팔을 전부 부러트렸다.
평생 큰 힘을 쓰긴 힘들지만, 밥 먹는 데는 무리가 없을 정도로.
그리고는 괴롭힘을 당하던 아이를 도와주었다.
“떨지 마라.”
내공으로 무뢰배들에게 공포의 암시를 건 것이었다.
암시가 발동되는 기폭제는 피해자의 얼굴이었기에 놈들은 다시는 피해자와 눈도 마주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때 만났던 무뢰배 무리들 중 두 명이 진유성의 눈앞에 있었다.
진유성은 그들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팔이 멀쩡하군.’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진유성은 놈들의 팔꿈치를 부러트리며 후유증이 남게끔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이곳은 지구다.
중원과 달리 외과 수술이 극도로 발달했으며, 산산 조각난 뼛조각을 맞추고 인공 관절도 삽입할 수 있다.
당시에는 이러한 사실을 몰랐지만, 한국에 적응하면서 그때 그 놈들이 병원에서 팔을 고쳤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흐음.’
진유성이 이번에는 진짜로 팔을 잘라야 하나 고민하는데, 두 사람의 대화가 들리기 시작했다.
“야, 나 오경태 그 새끼 만났다.”
“뭐? 진짜? 어디서?”
“연합 동아리 같은 데서. 그 새끼 학교 자퇴하더니 대학교는 갔더라?”
기억이 떠오른다.
오경태라면 그때 무뢰배들의 폭력을 받아 내고 있던 피해자였다.
무뢰배들이 두들겨 패면서 입에 담았던 이름이었다.
“아, 나는 그 새끼 좀 꺼림칙하더라.”
“뭐가?”
“싸이코 각성자 새끼한테 팔 부러질 때 오경태도 있었잖아.”
“어.”
“그 뒤로 그 새끼 얼굴만 보면 꺼림칙하던데. 자꾸 그날이 떠올라서.”
“병신이냐? 그거랑 그거랑 무슨 상관인데?”
“그냥 뭐……. 암튼 뭐 며칠 뒤에 전학 가기도 했고.”
“야, 씨발. 오경태 불러 볼까? 이 새끼 오줌 지리겠지?”
“번호도 바꾸고 잠수 탄 새끼를 어떻게 불러?”
“회장한테 동창이라고 하고 번호 알아 왔거든.”
남자 중 한 명이 킬킬 거리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나머지 한 명은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다.
이윽고 두 사람의 대화는 오경태를 불러 보자는 쪽으로 전개되었다.
꺼림칙해하던 쪽도 이야기가 거듭될수록 꺼림칙함을 벗어던지는 거 같았다.
“전화해 보자.”
“다른 애들도 불러 볼까?”
그 순간이었다.
진유성이 뿜어낸 기운이 핸드폰 내부를 부숴 버렸다.
“왜 신호가…… 뭐야? 왜 이래?”
“뭐가?”
“화면이 안 뜨는데?”
“고장 난 거 아니야?”
“갑자기?”
두 사람은 핸드폰을 붙잡고 한참을 떠들더니, 이내 음료수를 들고는 카운터로 다가왔다.
“3,400원입니다.”
계산을 끝낸 그들이 편의점을 빠져나가는 사이, 진유성은 적잖이 놀라고 있었다.
‘암시가 풀렸다고?’
분명 진유성은 무뢰배들에게 내공으로 암시를 걸어 놓았다.
진유성은 무림의 사술을 배운 적은 없지만, 당한 적은 많다.
웃기게도 진유성에게 더 많은 사술을 쓴 쪽은 사파나 마교가 아니라, 정파였다.
아무튼 진유성은 수많은 사술을 경험하고 극복하면서 그것들이 어떤 원리로 발동하는지를 깨달았다.
그리고는 그것들을 따라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한다는 표현을 썼지만, 진유성은 본래의 사술들보다 훨씬 강한 효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사술의 원리는 기운을 주입해 상대를 망쳐 놓는 행위인데, 진유성은 기운에 대한 압도적인 구속력을 타고났기 때문이었다.
진유성이 무뢰배들에게 걸었던 암시가 이러한 사술에서 기인한 방법이었다.
헌데, 그것이 풀렸다.
성정이 유약한 쪽은 꺼림칙함을 느끼고 있지만, 진유성이 의도한 건 꺼림칙함 정도가 아니었다.
피해자의 얼굴을 쳐다볼 수 없을 정도의 두려움이었다.
게다가 성정이 강해 보이는 쪽은 암시에 별 다른 영향도 받지 않은 것 같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미묘한 꺼림칙함을 느끼지만, 그걸 부정하기 위해 되레 강경해지는 느낌이었다.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진유성이 마음먹고 암시를 건다면 중원의 그 어떤 고수도 피할 수 없다.
신주청 정도가 저항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실제로 암시를 이용해 상림에게 장난을 친 적도 많았다.
“상소윤, 잠깐 카운터 좀 보고 있어라.”
“왜? 어디 가게?”
“화장실.”
그렇게 말한 진유성이 편의점을 빠져나와 두 남자의 뒤를 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