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98화>
Quest 35. 돈 버는 천마님
마정석은 국제법상 석유와 비슷한 취급을 받는다.
누군가 외국에서 운 좋게 석유가 나오는 땅을 찾았다고 하더라도, 그걸 마음대로 채굴할 수는 없다.
채굴권이란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마정석도 마찬가지였다.
석유가 나오는 땅이 게이트고, 게이트 클리어 권한이 채굴권이고, 마정석이 석유다.
그러니 한때 중동이 세계 실물 경제에 석유로 막대한 영향을 끼쳤던 것처럼, 마정석으로도 각성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의 국가들은 이 같은 방식으로 KPM을 무너트릴 생각이었다.
그들은 아직 아시아를 지배하는 각성 마켓의 출연을 반기지 않았으니까.
1,682kg이라는 어마어마한 마정석의 양이 공개되기 전까지는.
“의심스럽습니다.”
“하지만 마정석의 양을 속일 수는 없어.”
“아뇨. 있습니다. 보고 시점의 문제입니다.”
만약 한국의 각성자들이 S그룹의 각성 중공업에 마정석 100kg을 팔 예정이라고 치자.
그러나 그들은 S그룹에 다이렉트로 마정석을 팔 수 없다.
SG 소속의 각성자들은 무조건 마켓을 이용해서 각성 물품을 팔아야 한다.
이때 마켓은 각성자들에게 마정석을 구입하고, S그룹에게 마정석을 판다.
이 과정에서 보고 시점을 이용하면 ‘곧 없어질’ 마정석을 보유량으로 보고할 수 있다.
“또는 지급 기간을 미뤄 놓았을 수도 있죠. 마정석을 연말에 넘기기로 약속하고 일단 KPM의 오픈을 위해서 홀딩해 놓는 겁니다.”
“흠…….”
“한국 기업과 정부는 꽤 끈끈한 부분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의심스럽습니다.”
“자네 말은 마정석을 구매해서 KPM을 공격해 보자는 소리인가?”
“네.”
“하지만 지금 마정석 가격은 엄청나게 뻥튀기되어 있잖아? 시점이 좋지 않아.”
마정석이, 각성자가 장기간 경험치를 회득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고통의 치료제라는 사실이 알려진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당연히 지금은 마정석의 가격이 고점이다.
지금 섣불리 KPM을 공격했다가 아무런 이득도 보지 못한다면?
막대한 손해를 본다.
“그렇다면 한국이 아시아 각성 경제를 주무르는 걸 용인하실 생각입니까?”
“…….”
“독도 게이트 이후 저희는 각성 사회에서 위상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한국이 메인스트림으로 올라선다면 그 위상은 절대 회복할 수 없습니다.”
“…….”
결정권자는 말을 아낀다.
혹시나 모를 책임 소재를 피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니 실무자가 가려운 곳을 긁어 줄 수밖에 없었다.
“후생연금(일본의 국민연금)을 이용하고, 타국과 연대를 결성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설령 1,682kg의 마정석이 있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타국?”
“예. 한국이 메인스트림에 올라서는 걸 경계하는 게 일본 뿐만은 아니니까요.”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마정석을 전량 구매하겠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고점에서 사서 저점에서 팔 수도 있네. 알지?”
“금액적인 손실은 분명 발생합니다. 가치를 어디에 두냐의 문제입니다. 돈을 잃고 KPM을 망하게 하느냐, 아무것도 하지 않아 KPM을 흥하게 하느냐.”
결정권자와 실무자는 마지막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결정권자는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문제가 발생하면 고개를 끄덕인 적이 없다고 발뺌할 정도로 미미하게.
그렇게 KPM의 보유 마정석에 대한 공격이 준비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그들의 행동이 진유성에게 돈을 주려고 발버둥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왜냐면.
“자네, 남은 마정석이 얼마나 되나?”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진유성의 반응에 회장실에 앉아 있던 김정철 회장이 예민하게 반응했다.
“설마 없나? 있다며? 좀 더 가지고 있다며?”
-그게 아니라, 마정석이 얼마나 남았는지 내가 어떻게 아냐고요.
“그게 무슨 소리인가? 자네가 보유한 마정석량을 자네가 알지, 누가 알아?”
-아, 그 소리였어?
김정철 회장이 수화기에 좀 더 귀를 대는 사이, 진유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난 또 지구에 남은 마정석량이 얼만지 묻는지 알았지.
김정철 회장은 처음엔 진유성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진유성에게 마정석은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얻어 오는 게 아니었다.
그냥 게이트에서 주워 오는 것이었다.
그러니 진유성의 마정석 보유량은 지구에 남은 마정석 보유량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진유성의 몸은 하나이니 정말 그 양이 같진 않겠지만…….
‘광오하다.’
놀랄 만큼 오만한 발언이었다.
그러나 신뢰가 갔다.
김정철 회장은 진유성의 말을 듣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일본 쪽에서 공매도를 치는 걸 보고 긴장하고 있었는데, 든든하다.
진유성이 KPM에 존재하는 한 그들의 보유 마정석량은 무한하니까.
그때 수화기 너머의 진유성이 말했다.
-나 바쁘니까 끊을게요.
“많이 바쁜가? 이야기할 게 더 있는데.”
-일 끝나면 해요.
“일? 자네 설마 헌팅 중인가? 아니, 게이트에서는 전화가 안 되는데?”
-출근 중인데. 편의점으로.
“…….”
김정철은 77년을 살며 인간사 대부분에 대해 알게 됐다고 생각했지만, 언노운 엠페러는 도무지 모르겠다.
* * *
진유성이 뚱한 표정으로 손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편의점에 들어온 손님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손님은 비타민C가 함유됐다는 제품을 가지고 따지고 있었다.
“아니, 알바생님. 이게 비타민C 함유 음료입니까, 아니면 설탕 함유 음료입니까?”
“…….”
“칼로리가, 어우, 왜 이렇게 많아?”
“…….”
“설탕물이네!”
손님의 진상은 계속되었지만, 진유성은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이번엔 다른 손님이 시비를 건다.
“야, 맥주 파냐?”
“안 된다.”
“왜?”
“미성년자는 술을 구매할 수 없다.”
“그니까 왜? 미성년자는 왜 술을 마시면 안 되지?”
“안 그래도 노란 싹수에 알콜까지 부으면 썩으니까?”
“와, 말 너무 심해.”
“알바생이 왜 이렇게 불친절해?”
“경찰에 신고하자.”
진유성은 인내심을 발휘하는 게 아니었다.
손님, 아니 손님들이 아는 사람이라서 무시하는 것이었다.
그랬다.
편의점에 와서 진상을 떠는 것은 지종수, 심도훈, 고인수, 정새롬의 4인방이었다.
상소윤은 진유성에게 신신당부하면서 친구들에게 아르바이트하는 편의점의 위치를 숨겼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 자체를 숨길 수는 없지만, 어느 가게인지 알려주지 않은 것이었다.
와서 진상을 떨 걸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상소윤의 이런 노력은 3일 만에 헛수고로 돌아갔다.
상소윤이 편의점 카운터에서 찍은 셀카를 SNS에 올렸고, 그 셀카가 SNS에 ‘압구정 편의점 존예녀’ 따위의 제목으로 퍼져 나가면서.
당연히 편의점 위치도 알려졌다.
한 마디로, 본인이 알리지 말라 해 놓고선 본인이 광고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 결과 이렇게 친구들이 찾아온 것이었다.
다만 오늘은 편의점에 상소윤이 없었다.
유혜연이 산부인과로 야간 VIP 검진 가는 걸 따라갔다.
즉, 편의점 위치는 상소윤이 알려 놓고 친구들의 진상력은 진유성이 도맡는 상황이었다.
“야, 진유성.”
“왜 그러느냐.”
“설마 이 좁은 카운터에서 소윤이랑 둘이 있는 건 아니지? 넌 밖에 서 있지?”
“보통 상소윤이 밖에 서 있다.”
“뭐? 왜?”
“편의점에서 과자를 주워 먹고 운동한다고 매장을 돌아다닌다. 그야말로 조삼모사의 극치지.”
“으음.”
지종수의 머릿속에 과자를 먹고 편의점을 종종거리며 돌아다니는 상소윤이 떠올랐다.
‘귀, 귀여워.’
귀엽다.
하지만 그 귀여운 모습을 진유성이 직관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때가 됐다고 생각한 지종수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야, 진유성.”
“왜 자꾸 부르느냐.”
“소개팅 할래?”
지종수가 내민 핸드폰에는 예쁜 여학생의 사진이 있었다.
그러나 사진을 힐끗 본 진유성이 고개를 저었다.
“박색하구나.”
“뭐? 얘가?”
“그러하다.”
“그럼 얘는?”
“흠. 첫인상은 박색하고, 자세히 보니 두 배로 박색하군. 박썎하도다.”
“그럼 얘는?”
“뺚색하군. 첫인상이 별로다.”
“…….”
지종수가 눈을 가늘게 뜨고 진유성을 쳐다보니, 꽤 진심인 것 같았다.
문득 드는 생각에 지종수가 유투브를 켰다.
그리고는 ‘여자 3대 300 도전.’이라는 여자 헬스 유투버를 들이밀었다.
“이 사람은?”
“호오?”
진유성이 영상을 보더니 감탄사를 내뱉었다.
“내 취향은 아니나 객관적으로 아름답구나. 대단한 미모로다.”
“……님 헬창?”
“뭐?”
“아니, 아니야.”
힌트를 잡은 지종수가 고개를 저었다.
이제 진유성에게 어떤 사람을 소개해야 하는지 알겠다.
‘아니, 그러면 소윤이는 진유성의 취향에서 아득히 벗어난 거잖아?’
지종수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얼큰하게 취한 것 같은 50대 중반의 남자가 휘청거리며 카운터로 향했다.
가까이 가지 않아도 나는 술 냄새에 학생들이 인상을 찌푸리는데, 남자가 진유성에게 다가가더니 담뱃갑을 툭 하고 던졌다.
“야, 환불.”
진유성이 담뱃갑을 보니 절반 정도 핀 상태다.
진유성이 반쯤 비어 있는 담뱃갑을 보고 있자, 남자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처음 살 때부터 이랬어! 여기서 샀는데!”
진상의 등장에 친구들이 반쯤은 걱정으로, 반쯤은 호기심으로 진유성을 쳐다보았다.
남자가 말도 안 되는 진상을 부리면 친구들은 경찰이나 수행 비서 아저씨를 부를 것이지만, 궁금하긴 했다.
그들이 아는 진유성은 또라이다.
하지만 사회가 괜히 사회겠는가.
또라이 짓을 참아야지 사회다.
과연 진유성이 어떻게 행동할까?
그때였다.
“어으음?”
술에 취한 남자가 이상한 소리를 내더니 크게 비틀거렸다.
그리고는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깜짝 놀란 심도훈이 달려가니, 남자가 잠에 빠져 있었다.
“뭐야? 잠든 거야?”
“만취였나 본데?”
그사이 진유성이 능숙한 태도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잠시 뒤, 편의점과 가까운 지구대에서 경찰들이 출동해서 잠에 빠진 남자를 부축했다.
“아니, 여기 무슨 수면가스 뿌려요?”
“네?”
“왜 주취자들이 여기만 오면 나자빠지는 거야? 벌써 몇 명째야?”
“그래도 조용히 자는 게 어딥니까?”
“그건 그래.”
지구대원들이 투덜거리더니 잠든 남자를 데리고 사라졌다.
경찰과 술 취한 남자가 사라지고 평온을 되찾은 편의점에서 심도훈은 문득 드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하이난으로 수학여행을 가는 비행기 안에서.
“그 자식 인성이 쓰레기야.”
“뭐?”
“그거 자기 실력도 아니야. 핵 프로그램 쓰는 거라고.”
심도훈은 진유성과 말다툼을 벌였다.
자신의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다가 진유성이 갑자기 지존천마를 칭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심도훈은 지존천마가 해커라는 걸 알고 있기에 그를 비난했다.
싸움은 격렬해졌고.
“아니다! 입 조심해라!”
“너 뭐야? 지존천마 빠돌이냐?”
“그는 충분히 존경할 만한 위인이다.”
“웃기고 있네. 사기꾼인데.”
그 다음으로는 기억이 없다.
갑자기 잠에 들었고, 눈을 뜨니 하이난에 도착한 상황이었다.
심도훈은 문득 소름이 돋았다.
설마 진유성한테 수면 스프레이 같은 게 있나?
심도훈은 진유성에게 천천히 다가가서 입을 열었다.
“진유성. 너 설마…….”
“뭐?”
“네가 기절시킨 거야? 수학여행 갈 때도?”
“갑자기 무슨 소리냐. 난 손도 안 댔는데.”
심도훈이 지종수를 쳐다보았다.
진유성과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지종수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냥 자기 혼자 픽 쓰러지던데?”
“아, 그래?”
“수학여행은 뭐야?”
“어, 아냐. 잠깐 딴 생각하다가.”
심도훈은 자신이 쓸데없는 망상을 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순간, 진유성이 심도훈을 스쳐 지나가며 속삭였다.
“이래서 감이 좋은 꼬맹이는 싫다니까.”
“……!”
“장난이다. 뭘 그렇게 놀라고 그러느냐.”
“아, 장난이지?”
진유성이 피식 웃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곤 다시 속삭였다.
“장난 같냐?”
“……!”
심도훈이 지존천마를 모욕하던 걸 아직도 속에 담아 두고 있던 진유성의 소소한 복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