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97화>
의외로 진유성과 상소윤의 아르바이트 첫날은 아무런 트러블 없이 진행되었다.
큰 문제를 일으킨 손님도 없었다.
물론 진유성의 입장에서는 평소 같았으면 혼내 줬을 놈들이 몇 명 있긴 했다.
카드나 돈을 툭툭 던진다든지, 초면에 반말을 찍찍 내뱉는다든지.
진유성이 ‘서비스 직종 모드’가 아니었다면 다들 뒤통수를 얻어맞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진유성은 참았다.
이는 상림의 혜안이 빛을 발한 부분이 있었다.
“내기하시죠. 얼마 걸까요?”
진유성은 상림과 내기를 했다.
사실 그깟 내기, 져도 아무 상관없다.
이기면 돈을 받고, 지면 돈을 주지 않을 거니까.
어디 교도가 무엄하게 교주의 돈을 탐낸단 말인가?
그리고 돈을 주면 상림이 죄를 짓는 셈이었다.
아마 천마신교 교리 어딘가에는 교주의 소유물을 탐내면 안 된다는 조항이 있을 거니까.
하지만 돈이나 내기의 승패와는 별개로 진유성은 오기가 발동했다.
중원에서는 살아남기 위해 수많은 굴욕을 감당했고, 동료들을 위해 자존심을 굽혔던 진유성이었다.
‘그런 내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못할 리가 없다!’
안 하는 거랑 못하는 건 다르니까.
진유성은 그런 오기 때문에 손이 나가려는 걸 몇 번이나 참았다.
물론, 그렇다고 진유성이 건방지게 군 놈들을 전부 곱게 보내 준 건 아니었다.
툭.
“어……?”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고 버스에 타려던 남자가 지갑을 꺼내는 순간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지갑이 정확히 반으로 잘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그 안에 들어있던 카드, 신분증, 지폐들도 반으로 잘려 있다.
돈이야 테이프로 붙인다고 쳐도, 신분증이나 카드를 재발급 받으려면 꽤 귀찮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귀찮을 걸 떠나서.
‘이게 왜 잘렸지?’
다들 간담이 서늘해졌다.
뭔가에 지갑과 내용물이 이렇게 완벽히 잘려 있다는 건, 조금만 재수 없었으면 엉덩이가 잘렸을 거란 뜻이니까.
진유성은 이렇게 건방지게 군 놈들의 지갑을 전부 반으로 쪼개 버리는 정도로 복수를 마무리했다.
그래도 극도로 쪼잔한 진유성이 이 정도로 마무리했다는 건, 엄청난 진상은 없었다는 걸 뜻했다.
진유성과 상소윤이 일하는 시간은 오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
퇴근 시간이라 다들 바쁘기도 하고, 술에 취한 손님이 올 정도의 시간은 아니었다.
게다가 카운터에는 상소윤이 있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보통 예쁜 여자가 있으면 점잖은 척을 하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무난히 첫날 아르바이트가 끝날 때쯤, 어딘가로 사라졌던 편의점주가 나타났다.
야간 알바와 인수인계하는 법을 알려준 점주가 진유성과 상소윤을 슬쩍 쳐다보더니 물었다.
“그럼 두 사람은 계속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나?”
“네. 그럴 거 같아요.”
“나는 한 사람의 알바비만 주면 된다고 들었는데…….”
“네. 돈은 괜찮아요.”
어차피 상소윤은 진유성이 버는 돈과 똑같은 금액을 유혜연에게 받기로 했었다.
그러니 돈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다.
상소윤의 대답이 어떻게 들렸는지, 편의점주가 애매한 표정을 짓다가 물었다.
“그, 둘이 사귀는 건가?”
야간 알바들 중에는 밤새 심심하니까 친구나 여자 친구를 불러서 노는 경우가 많았다.
편의점주의 물음에 상소윤이 기겁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닌데요!”
“아니야?”
“네. 아닌데요!”
편의점주가 상소윤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 고생했어. 오늘은 야간 좀 늦게 온다고 했으니까, 가 봐.”
그렇게 첫날의 아르바이트가 끝이 났다.
진유성과 상소윤은 편의점에서 나와서 압구정 밤거리로 향했다.
그들이 일하는 편의점에서 집까지는 걸어서 20분이면 도착할 거리였다.
“근데 여름 되면 찝찝해서 걸어 다닐 수 있으려나?”
“여름까지 할 생각이냐?”
“엉?”
“분명 외숙모에게 한 달만 하고 그만둘 거라고 선언하지 않았느냐?”
진유성의 말처럼 상소윤은 유혜연에게 딱 한 달만 할 거라고 못을 박아 둔 상태였다.
한데, 상소윤의 반응이 이상했다.
진유성을 힐끔 보더니 말을 얼버무렸다.
“아니, 뭐. 해 보니까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그러하냐?”
“어, 그리고 뭐……. 내가 무슨 일을 해도 서비스 직종일 거니까 미리 경험한다고 치는 것도…….”
“상, 외삼촌의 회사에서 일하는 게 아니라?”
“에이, 내가 무슨 건설업이야. 그건 하마가 물려받겠지.”
“이상하군. 본래 그 상황이라면 상속 전쟁이 벌어져야 하는 거 아닌가? 회사를 갖기 위한 치열한 싸움.”
인생을 영화와 드라마에서 배운 진유성의 물음에 상소윤은 어깨만 으쓱했다.
사실 대정고 학생들 중에는 상속의 문제로 다투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상소윤은 정말로 아빠의 회사에 관심도 없었고, 제대로 운영할 자신도 없었다.
제대로 가질 수도 없는 것에 욕심을 내서 뭐한단 말인가?
상소윤은 역시 공부 머리는 없어도 현명한 구석이 있는 사람이었다.
“아, 몰라. 어쩌면 서비스직종이 내 적성인 게 아닐까?”
“고작 하루를 해 놓고선 적성을 논하다니. 머리까지 박색하구나.”
“박색?”
상소윤이 피식 웃더니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 인기를 봐 놓고선 그런 말이 나와?”
의기양양의 근거는 그녀가 고작 4시간 만에 전화번호를 물어보는 이를 다섯 명이나 만났다는 것이었다.
아마 옆에 진유성이 없었으면 횟수가 훨씬 많았을 것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연예 기획사가 많은 강남 쪽이라서 그런지, 명함을 주고 가는 이들도 있었다.
“보이스 피싱을 위한 번호 습득이었을 거다. 일종의 범죄 활동이지.”
“웃기고 있네. 부정해 봤자 증거가 명확한데.”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구나…….”
“야, 진유성. 너 경국지색 알아?”
“당연히 안다. 난 대정고의 전교 1등이다.”
“그럼 난 편국지색이야. 편의점을 기울게 하는 미모.”
진유성이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자 상소윤이 다시 한번 어깨를 으쓱했다.
“왜? 또 부정하게?”
“기울 경, 나라 국.”
“뭐?”
“나라 대신 편의점을 넣고 싶으면 편국지색이 아니라 경편지색이겠지.”
“…….”
“무식하도다.”
“……닥쳐.”
“뇌세포가 지나치게 박색하도다.”
“닥치라고!”
부끄러움을 느꼈는지 상소윤이 후다닥 걸음 속도를 높였다.
하지만 진유성은 보법의 고수.
상소윤이 뛰는 것보다 진유성이 걷는 게 더 빠르다.
진유성은 상소윤과 속도 맞춰 걸으며 입을 멈추지 않았다.
“미(美)는 십 년 동안 향기롭고, 지(知)는 백 년 동안 향기롭고, 선(善)은 천 년 동안 향기롭다는 말이 있다.”
“…….”
“아름다움은 깨우침을 이길 수 없고, 깨우침은 선함을 이길 수 없다는…….”
“으아아아!”
상소윤의 주먹이 진유성의 얼굴로 날아왔지만, 어림도 없었다.
진유성은 상소윤의 주먹을 요리조리 피하며 끊임없이 혓바닥을 놀렸다.
* * *
일본의 S급 각성자 요시미츠는 정부 관료와 함께 회의실로 들어갔다.
일본에는 S급 각성자만 9명이 있을 뿐, SS급 각성자가 없다.
즉, 요시미츠는 일본에서 각성 등급이 가장 높은 이들 중 한 명이었다.
이런 그가 관료들과 함께 회의실에 들어온 것은 KPM을 평가해 달라는 부탁 때문이었다.
KPM.
Korea Player Market.
한국 각성 마켓의 탄생은 아시아 국가들에게 위기 의식을 주었다.
SG가 힘을 잃어 가는 현 시점에도 여전히 SG는 각성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이는 각성 마켓의 힘이었다.
게이트 사태 초창기부터 SG가 꾸려온 각성 마켓은 각성자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것이 되었다.
그러니 각성 사회의 새로운 질서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SG의 각성 마켓에서 독립해야 한다.
한데, 아시아의 첫 번째 각성 마켓을 한국에서 열어 버린 것이었다.
이는 일본에 있어서 굉장히 위협적인 일이었다.
각성 물품은 공장에서 찍어 내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무조건 시장을 선도하는 쪽이 유리하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아시아의 각성 경제를 한국이 지배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각성 마켓은 그리 쉽게 만들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제대로 된 마켓일 리 없습니다.”
“한국에서 두 번의 S급 게이트가 있지 않았습니까? 그 물건들이 풀렸다면요?”
관료의 질문에 요시미츠가 고개를 저었다.
“각성 마켓은 고등급의 아이템이 있고, 없고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S급, SS급, SSS급 아이템이 있으면 보기 좋죠. 하지만 보기 좋을 뿐입니다. 그런 물품들의 거래는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S급 이상의 물품이 마켓 경매에 올라가면, SG는 그 물건의 경매 시작가를 정한다.
예를 들자면, <큐피트의 활줄>이라는 SS급 아이템의 거래 시작가는 100만 달러(약 한화 12억)였다.
이 물건이 인기가 많아서 바로 팔리면 좋겠지만, S급 이상의 아이템은 잘 팔리지 않는다.
너무 비싸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2년 동안 거래가 일어나지 않으면, SG는 20% 할인한 금액으로 다시 경매 시작가를 선정한다.
큐피트의 활줄은 2년 뒤 80만 달러로 재경매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큐피트의 활줄을 구매하겠다는 이가 없었다.
고위 각성자 중에 궁수가 적은 이유도 있었고, 설령 궁수가 있다고 하더라도 활줄에 100만 달러나 투자하는 이는 없었다.
아무리 큐피트의 활줄에 ‘파괴 불가’와 ‘활 발사 시 추적 기능’이 있어도 말이었다.
다시 1년이 흐르면 SG는 각성자에게 첫 경매 시작가로 제품을 구매하겠다는 의사를 밝힌다.
100만 달러에 큐피트의 활줄을 구매하는 것이었다.
물론 강제적인 건 아니었다.
판매자가 원하지 않으면 팔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80만 달러에도 팔리지 않는 걸, 100만 달러에 사 준다면 거절할 사람이 거의 없다.
이미 3년간 거래가 없는 셈이니까.
그렇게 SG는 100만 달러에 큐피트의 활줄을 사고, 150만 달러에 거래소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기다리는 것이었다.
언젠간 이 물품이 팔리길.
실제로 큐피트의 활줄은 2년 전에 150만 달러에 팔렸다.
궁수가 아니라, 격투가에게.
주먹에 큐피트의 활줄을 감아 놓으면 주먹에 파괴 불가 효과가 발동하고, 파괴적인 인챈트 스킬을 걸 수 있다는 걸 알아차린 이에게.
SG의 각성 마켓은 이런 식으로 고등급의 아이템을 팔아치우고, 돈을 벌었다.
하지만 이 말은 반대로 말하자면 고등급의 아이템의 거래량이 극히 드물다는 것이었다.
“사실상 S급부터는 특별한 효능이 밝혀지지 않으면 거의 거래가 되지 않습니다. 아이템을 파밍하는 편이죠.”
“그 말은 KPM에 고등급 아이템이 많아도 상관없다는 뜻인가요?”
“네. 빛 좋은 개살구죠. 중요한 것은 C등급부터 A등급까지의 아이템입니다. 이 아이템들은 적당히 비싸며, 적당히 실용성이 있고, 가장 많은 거래가 일어납니다.”
“흠…….”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마정석입니다.”
관료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각성 경제 사회에 마정석이 중요하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의외로 각성자들에게는 마정석이 별로 필요가 없다.
마정석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석유와 비슷한 에너지원이기 때문이다.
요시미츠는 어리둥절한 관료들을 보며 쓴 웃음을 지었다.
이게 문제다.
정치를 하는 이들은 각성 사회를 제대로 모르고, 각성 사회를 제대로 아는 이들은 정치를 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은 운이 좋다.
한지후 소장이 있으니까.
“각성 마켓에 마정석은 무제한으로 존재해야 합니다.”
“네? 어째서죠?”
“그렇지 않으면 마켓의 신뢰도가 현저히 낮아집니다. 각성자들이 마켓을 농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물건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이 만나며 형성된다.
하지만 때론 공급을 조절해서 가격을 농락할 수도 있다.
만약 KPM에 마정석이 거의 없다면, 각성자들은 KPM에 마정석을 팔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공급이 거의 없기 때문에 마정석의 가격이 올라간다.
마정석의 가격이 올라가면, 아이템의 가격은 내려간다.
마켓에서 수수료를 인하하면서 매출을 발생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럼 각성자들은 아이템을 싼 값에 구매하고, 마정석을 비싼 값에 판다.
그렇게 시세 차익은 남긴 다음에 다시 마정석의 공급을 멈춘다.
이런 일을 반복하면?
각성 마켓은 망한다.
실제로도 야심차게 발족한 민간 각성 마켓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망했다.
각성 마켓을 공식적으로 오픈하기 위해서는 매년 일정량의 마정석을 세계 발전을 위해 기부해야 한다는 국제 조항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는 신뢰도 없는 각성 마켓이 무분별하게 탄생하는 것을 막기 위한 SG의 초창기 정책이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악법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악법이 여전히 살아 있는 이유는, 이 악법으로 이득을 보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지금 각성 마켓을 오픈할 수 있는 건 캘리포니아 자유지대처럼 막대한 금액을 짊어지고 있거나.
멕시코처럼 엄청난 수의 각성자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도 아니면 CSG처럼 UN의 국제 조항을 개무시하거나.
그러나 KPM은 셋 중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다.
“아마 마정석을 꽤 많이 모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게 마켓을 떠받칠 정도인줄은 모르겠군요.”
요시미츠가 그런 말을 하는 순간.
마침내 9시가 되었다.
전 세계에 KPM 각성 마켓이 처음으로 선을 보이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말도 안 돼!”
요시미츠가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KPM 거래소의 첫 페이지에 나오는 보유 마정석량 때문이었다.
1682kg.
SG 각성 마켓의 마정석 보유량을 훌쩍 뛰어넘는 양.
마정석이 그램 단위로 거래된다는 걸 생각하며,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이럴 수가? 어떻게 이렇게 많은……?”
요시미츠의 추측은 대부분이 맞았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미친 듯이 마정석을 독식한 편의점 알바의 역량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