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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195화 (195/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95화>

물론 진유성에게 논리는 있었다.

정새롬은 학교에서 만난 친구이고, 상소윤은 사촌 누이다.

전자는 손위와 손아래의 구분이 크게 중요하지 않지만, 후자는 족보가 중요하다.

하지만 이 논리가 말도 안 되는 것은 진유성과 상소윤이 실제로 사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아니지. 실제로 따지면 모두가 내 손아랫사람이지. 난 얘들보다 백 년도 더 살았으니까.’

잠깐의 고민 끝에 다시 당당해진 진유성이 거만하게 고개를 들었다.

“세상엔 너희들이 모르는 것이 있다. 애송이들.”

진유성이 자리에 가서 앉자, 상소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젯밤에 이상한 드라마를 본 게 분명하다.

그렇게 삼삼오오 모여 정새롬의 생일 이야기를 하던 학생들은, 문이 열리고 연기훈이 들어오자 자리로 돌아갔다.

연기훈은 반으로 들어오자마자 진유성을 지목했다.

“진유성.”

“네?”

“SG에서 별일 없었고?”

“별일 없었습니다.”

“진짜 각성자 아니래?”

“아니래요.”

“왜 아니지?”

“네?”

“어, 아니다.”

뭔가 아쉬운 표정을 짓던 연기훈이 평소와 다름없는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침 조회 시간마다 있는 일이라서 모두가 연기훈의 말에 관심이 없었다.

한참 일장연설을 늘어놓던 연기훈이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점심에 MK 엔터테인먼트에서 피자 보내 줄 거다. 피자 먹을 사람은 먹고, 급식 먹을 사람은 먹어.”

보통의 고등학교는 이런 상황에 피자를 먹겠지만, 대정고는 좀 다르다.

조리사가 아닌 요리사가 준비하는 대정고의 급식은 메뉴만 마음에 들면 상당히 맛있는 축에 속하기 때문이었다.

“웬 피자요?”

“우리 반 체육 시간이 뮤직비디오에 나온다더라. 확인해보니까 엄청 쪼그맣게 나오긴 하는데, 그래도 나오긴 하니까 성의를 보인 거지.”

“얼굴도 나와요?”

“엄청 작다니까? 누가 누군지 보이지도 않아.”

“돈 많나 보네.”

학생들이 대수롭지 않은 반응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아침 조회가 끝나자 심도훈이 진유성에게 물었다.

“야, 너 그때 명함 받지 않았냐?”

“받았다.”

“너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던데? 관심 없음?”

“없다.”

홍대에서 뮤지컬을 보면서 지구의 음악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진유성이지만, 여전히 가요는 별로였다.

자고로 가락이란 구성진 맛이 있어야 하는 법인데, 요즘 노래들은 정신만 사납다.

“하긴, 진유성은 노래 못 부르지.”

“그치. 노래방에서 봤잖아.”

진유성이 노래방에서 ‘한오백년’을 부르는 것을 보았던 이들이 고개를 주억거리자, 진유성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진유성은 음공을 배웠다.

멸마대에서는 음공 쓰는 마교의 고수들을 죽이기 위해서 배웠고, 시간이 흐르고는 심심해서 제대로 배웠다.

음공의 고수가 되기 위한 가장 기초는 음악이다.

최고의 음공이란 죽음에 이르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듣고 싶은 소리이기 때문이었다.

“무슨 헛소리냐. 난 음악을 전문적으로 배운 사람이다.”

그러나 진유성의 말을 믿는 사람은 없었다.

심도훈이 피식 웃더니 말했다.

“야, 진유성.”

“왜 그러느냐?”

“네가 롤 하면 ST-1 정도는 그냥 입단하겠지? 샤이나크도 미드에서 바르고?”

“물론이다.”

“바둑을 두면 알파고도 발라 버리겠지?”

“물론이다.”

“축구하면 메시도 껌이지?”

“그 친구와는 붙어 본 적이 없지만, 어렵진 않을 것 같다.”

“가만 보면 진유성도 입만 열면 구라라니까.”

“구라라니! 모두 가능한 일이다!”

“아이고, 그러십니까.”

진유성은 심도훈의 마혈과 아혈을 짚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수학여행을 가는 비행기에서 열받아서 심도훈의 마혈을 짚었던 전적이 있어서 참을 수 있었다.

남학생들이 아웅다웅하는 사이, 정새롬이 상소윤에게 물었다.

“너는 명함 어쨌어?”

“집에 있어.”

“뭐야, 이번엔 안 버렸어?”

“일단은.”

“웬일이야? 평소엔 연예인은 죽어도 안 할 거라면서.”

“뭐…….”

상소윤이 공부 머리는 없지만, 그래도 현명한 구석은 있었다.

그녀는 연예인이 열정이나 노력 없이 얼굴로만 될 리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애초에 도전할 생각도 없었다.

한데, 요즘엔 잘 모르겠다.

고3이라 그런 것 같다.

“한 번 가 보기라도 하던가. 어차피 MK 엔터가 너 돈 많은 걸 알 텐데.”

“아, 몰라.”

“모르겠으면 일단 내 생일 선물을 고민하는 건 어때?”

“그건 이미 골랐는데?”

“뭔데?”

“머리끈. 특별히 3가지 색 정도로 골라 볼게. 아, 엄마가 사치하지 말랬는데.”

“뒤질?”

“안 뒤질.”

정새롬이 상소윤을 협박하는 사이, 1교시 과목의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왔다.

수업이 시작되었다.

* * *

각성 국력을 평가하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국가가 보유한 모든 각성자의 힘을 합연산하는 것.

쉽게 말하자면 각성자의 등급과 특성에 따라 점수를 부여하고, 국가가 보유한 모든 각성자의 점수를 더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국가 간의 경쟁을 상정한 국력 평가라고 봐야 했다.

두 개의 국가가 각성자로만 전쟁이 붙는다고 가정했을 때, 어느 쪽이 더 강할 것인가에 대한 지표니까.

물론 실제로 전쟁이 각성자의 힘으로만 승패가 결정되진 않을 것이었다.

각성자는 미사일을 쏘는 이를 죽일 수는 있지만, 날아오는 미사일을 막을 수는 없다.

한쪽에선 전면전이 벌어지고, 한쪽에서는 각성자 부대의 암살전이 벌어지는 것.

이것이 예상 가능한 현대 전쟁의 시나리오였다.

일각에서는 각성자의 등급과 특성에 따른 점수표가 무의미하다고도 말하기도 했다.

각성자는 인간이 아닌 몬스터와의 싸움에 익숙한 이들이며, 대인전의 승패는 등급과 정비례하지 않았다.

스킬술사가 몬스터를 상대로 압도적인 힘을 발휘하지만, 인간을 상대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처럼.

하지만 그럼에도 각성 국력을 측정하지 않을 수는 없기에. 이런 방식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합연산으로 산정하는 각성 국력은 각성자의 수가 많을수록 점수가 높았다.

1위는 인도, 2위는 멕시코, 3위는 중국, 4위는 미국이었다.

멕시코가 인구에 비해 3위에 위치하고 있는 것은, 지금은 죽은 엔리케 카를로가 미친 듯이 각성자를 생성해 냈기 때문이었다.

각성 국력을 평가하는 두 번째 방법은 국토 면적당 각성자의 무력 수치였다.

각성 점수가 100점이지만, 국토 면적이 1000인 것.

각성 점수가 90점이지만, 국토 면적이 100인 것.

당연히 후자가 점수가 더 높을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평가 방법은 국가 내부의 평화 정도를 측정하는 것이었다.

국토 면적 대비 각성자의 무력 수치가 높으면 높을수록 안전한 국가였다.

이 분야에서 1위는 바티칸이었고, 2위는 멕시코, 3위는 한국, 4위는 헝가리였다.

그리고…….

SG의 체제 붕괴의 시발점이 바로 헝가리였다.

“왜 우리가 EU로 묶여서 자국을 지키지 못하는가!”

“우리는 헝가리의 각성 독립을 바란다!”

27개의 회원국을 두고 있는 EU는 협정을 통해 각성 사태의 위험을 공유하고 있다.

즉, EU 소속 국가의 각성자들은 게이트 최우선 순위를 공유했다.

헝가리 각성자들도 자국의 B급 게이트보다 이탈리아의 A급 게이트를 우선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EU와 SG의 협약에 의해 이루어지는 일이기도 했다.

지금까지는 이런 제도에 큰 불만이 없었다.

그러나 문제가 생긴 것은 지난 주.

스페인에 A급 게이트가 발생하면서 헝가리의 고위 각성자들이 차출되면서 시작되었다.

고위 각성자들 대다수가 스페인 A급 게이트에 들어간 순간, 헝가리의 수도에 AA급 게이트가 나타난 것이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헝가리의 AA급 게이트는 폭주했다.

게이트가 폭주하며 수도의 건물들이 먼지가 되었고, 그 안에 들어간 각성자들은 사망했다.

그에 반해 스페인의 게이트는 아주 멀쩡히 클리어 되었다.

이는 헝가리 국민들의 마음을 자극했다.

헝가리는 국토 대비 각성 국력이 4번째인 나라였다.

빌어먹을 EU와 SG가 고위 각성자들을 차출하지 않았다면, 수도가 쑥대밭이 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헝가리의 민심은 뜨겁게 불타올랐다.

그리고, 헝가리의 정치가들은 이러한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캘리포니아와 멕시코를 통해 그들은 자유 각성 지대의 생산성을 알게 되었다.

헝가리 정도의 각성 국력이라면 나라가 한 단계 진화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3일 뒤, 헝가리 총리가 EU의 각성 쿼터를 탈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경제 부문을 탈퇴하는 것은 아니라고 못을 박긴 했지만, 어디 각성 영역과 경제 영역이 완벽히 분리될 수 있겠는가.

이는 헝가리 EU 탈퇴의 시발점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또한 헝가리 총리는 올해 안으로 헝가리를 자유 각성 국가로 변모시킬 것을 천명했다.

헝가리의 움직임에 각성 국력에 자신 있는 EU 국가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SG EU 본부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사이, 한국은 헝가리를 주시했다.

“자유 각성 국가가 어떤 장단점이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멕시코야 워낙 특수한 경우고…….”

“헝가리가 좋은 롤 모델이 될 것입니다.”

헝가리는 국가 면적도 그렇고, 각성 국력도 그렇고, 한국과 꽤 비슷한 부분이 있다.

헝가리가 자유 각성 국가로 완벽하게 발돋움한다면.

그건 한국이 뒤따를 길이 될 것이었다.

진유성과도 무관하지 않은 일이었다.

* * *

대정고에서 멀지 않은 레스토랑의 룸에서 정새롬의 생일 파티가 벌어졌다.

생일 축하 파티가 벌어지는 장소 자체는 어지간한 성인들도 부담스러운 곳이었지만, 그 외에는 평범한 생일 파티였다.

친구들끼리 모여서 밥을 먹고, 수다를 떨며, 선물을 주고받았다.

선물도 특별한 것은 없었다.

그저 평범한 고등학생이 주고받을 만한 물건이었다.

물론 물건의 종류 자체는 평범해도 대부분이 명품이었다.

머리끈을 주겠다고 노래를 부르던 상소윤이 준비한 것은, 정새롬이 사고 싶어 했던 투피스였다.

“야, 이건 좀…….”

정새롬은 이 옷이 얼마나 비싼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깜짝 놀랐지만, 상소윤이 고개를 저었다.

“진유성이랑 반띵.”

“아, 그래?”

“나 혼자 이걸 어떻게 사냐?”

“땡큐. 진유성, 너도 땡큐.”

“고마워할 것 없다. 오다 주웠으니까.”

“절반은 소윤이가 샀으니까, 절반만 주워서 붙인 거냐?”

“그래서 투피스다.”

“헛소리 그만하고, 암튼 땡큐.”

상소윤과 진유성이 합동 선물을 샀다는 것에 슬퍼진 지종수가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근데 오다 주웠다 하니까 그 역도부 특기생 생각나네.”

“아, 맞아. 진유성이 오다 주웠다면 닭꼬치 가져다주고 그랬는데.”

“그때는 완전 미친놈인 줄 알았는데.”

“지금은?”

“완전 미친놈.”

“변함이 없네.”

“진유성이야 한결같지.”

친구들의 말을 들으며 진유성이 턱을 쓰다듬었다.

당시에는 드라마나 인터넷 소설이 진실된 세계인 줄 알고, 열심히 따라 할 때였다.

창작물에서 개그 포인트로 쓰이는 부분들까지 현실인 줄 알기도 했고.

진유성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요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수많은 주제에 대해 떠들면서 요리를 즐기기 시작했다.

나름 즐거운 시간이었다.

아니, 아주 즐거운 시간이었다.

별것도 아닌 대화들이었는데 말이었다.

진유성은 문득 생각보다 훨씬 이곳이 좋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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