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94화>
약골이라는 진유성의 말에 장내에 묘한 분위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문수혁과 차정명은 진유성의 이해할 수 없는 강함을 목도했다.
진유성의 강함은 인외의 것이다.
만약 아놀드 벡이 그들에게 약하다고 했으면 호승심과 열정을 불태웠을 것이었다.
아놀드 벡은 그들보다 우위에 있고, 그 간격은 좁혀지지 않을 것이지만…….
문수혁과 차정명은 아놀드 벡을 보며 희망을 품을 수 있다.
언젠간 따라잡을 수 있다는 상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진유성은 아니었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고, 따라잡겠다는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러니 전투에 관한한 진유성의 말은 진실일 확률이 높았다.
그러나…….
‘저자가 우리를 가르친다고?’
그들이 상림을 힐끔 쳐다보자, 눈치를 살피던 상림이 입을 열었다.
“제가 이 두 분을 가르칠 수 있습니까?”
“기술적인 면에서는 네가 낫지. 생사결에서는 모르겠지만.”
진유성이 문수혁과 차정명을 처음 봤던 건 서울역 2차 S급 게이트에서였다.
게이트를 찢고 들어가기 위해서 차정명의 검을 빌렸고, 게이트 안에서 문수혁의 방패를 부쉈다.
그때 진유성은 문수혁과 차정명이 나름 괜찮은 무인이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다른 각성자들은 무인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했다.
그들은 강함을 추구하나 무를 추구하진 않는다.
그저 레벨업을 하고, 스탯을 분배하고, 좋은 스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이 어찌 무인이겠는가.
그때의 문수혁과 차정명은 분명 상림보다 강했다.
하지만 상림은 과거의 무공 수준을 대부분 회복했다.
진유성 앞에선 한없이 작아지지만, 상림은 천마신교의 3인자이자 중원에 적수가 드문 고수.
문수혁과 차정명을 가르칠 자격이 충분했다.
아마 기술적인 부분만 놓고 보면 상림이 아놀드 벡보다 뛰어날 것이었다.
다만 의념을 다루는 건 재능이 필요해서, 아놀드 벡이 상림보다 뛰어났다.
하지만…….
‘생사결이라면 상림이 지겠지.’
아놀드 벡에게 지는 것은 물론이고 문수혁과 차정명도 장담할 수 없다.
상림은 상실의 공간에서 가슴 속의 검을 잃어버렸으니까.
진유성이 그런 생각을 하며 상림에게 손을 까딱거렸다.
“야, 대머리고자.”
“네?! 아닌데요?”
“이리 와 봐.”
“아니, 제가 왜 그토록 흉측한 별명으로 불려야 합니까? 이분들이 오해하잖아요!”
“네 입으로 이유를 말했네. 별명이라고.”
“아니, 별명도 근거가……!”
“조용.”
이야기를 듣던 문수혁과 차정명은 상림의 머리를 보고는 가발이라고 생각했다.
어쩐지 대머리가 잘 어울릴 인상이었다.
“얘네한테 기초 좀 가르쳐라. 다들 할 줄은 알 거야. 이론을 모를 뿐이지.”
진유성의 말에 상림이 문수혁과 차정명에게 다가갔다.
세 사람은 한국인답게 우선 민증을 까고는 호칭을 정리했다.
나이로는 상림이 가장 형, 그 다음은 문수혁, 그 다음이 차정명이었다.
“둘은 무기 뭐 써?”
“저는 검이고, 이 친구는 도입니다.”
“혹시 검이랑 도 남는 거 없어?”
문수혁과 차정명이 고개를 갸웃했다.
검과 도는 필드 드롭이 가장 많이 되는 아이템이다.
그들과 비슷한 수준의 각성자라면 인벤토리에 여분의 무기가 없을 리가 없다.
F급의 검이나 도는 각성 마켓에서 팔리지도 않아서 버릴 때도 많았으니까.
그러고 보니 좀 이상하다.
상림이 정말로 그렇게 강하다면 이 좁은 한국에서 한 번도 마주치지 못했을 리가 없다.
상림이 두 사람의 의문을 짐작한다는 듯 말했다.
“나 각성자 아닌데.”
“그럼요?”
“설명은 나중에 듣기로 했다며? 일단 줘 봐.”
문수혁이 상림에게 F급의 검과 도를 건넸다.
이윽고 상림이 자세를 잡았다.
“어디까지 아는지 모르니까, 일단 기초부터.”
상림이 검을 잡는 순간, 문수혁과 차정명이 깜짝 놀랐다.
상림에게서 범상치 않은 기세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진유성은 그런 상림의 모습을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과거의 상림은 멸마대원들과의 첫 만남에서 다짜고짜 주먹을 휘두르던 놈이었다.
이유는 딱 하나.
대장을 하겠다고.
그러다가 신주청에게 쥐어 터지고, 몇 달 뒤에는 진유성에게도 쥐어 터졌지만 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호승심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었다.
각성자와 무림인의 차이가 궁금해 실력을 견주어 볼 만도 한데 말이었다.
진유성은 잠시 아쉬움을 느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이대로의 상림도 나쁘지 않았다.
어쩌면 생존대원들이 그토록 원했던 평범한 삶에 가장 근접한 것이 상림일 수도 있었다.
‘싸움은 내가 하면 되지, 뭐.’
진유성은 그런 생각을 하며 세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았다.
역시 상림이 짬이 있어서 그런지 제법 잘 가르친다.
가만히 보고 있다 보니 심심해진 진유성이 금과옥조와도 같은 지적을 덧붙이기 시작했다.
“야, 너 신체 균형은 신경 안 쓰냐? 그렇게 해서 힘이 모이겠어?”
뻣뻣한 문수혁에게는 몸을 쓰는 법을.
“넌 검이 어디에 있는지를 눈으로 보고 찾네. 아주 팔 쓸 때도 팔 위치가 어디 있는지 보고 쓰지 그러냐?”
손의 감각이 부족한 차정명에게는 검을 느끼는 법을.
“대체 왜 그러는 것이냐?”
“교주님이야말로 저한테 왜 그러세요?”
“문제가 있다는 걸 알면 고치려고 노력을 해야지!”
“이걸 고치려면 병원에 가야 해요…….”
상림에게는 얼굴을.
* * *
다음 날.
진유성은 평소와 다름없이 상소윤과 함께 택시를 타고 대정고로 향했다.
처음에는 유혜연이 학교까지 데려다줬었는데, 요즘에는 아니다.
몸이 많이 무거워진 탓이었다.
출산 예정일까지 아직도 4달이나 남았지만, 유혜연의 몸 상태는 만삭에 가까웠다.
병원에서도 한두 달 안에 아이가 태어날 확률이 높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산부인과에서는 꽤 당황하고 있었다.
보통 출산 예정일보다 이르게 태어나는 아이를 칠삭둥이라고 부르는데, 칠삭둥이는 몸이 약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유혜연의 뱃속에 있는 하마는 아주아주 건강했다.
진유성이 직접 손을 썼기 때문이었다.
하마는 이르게 태어나는 게 아니라, 더 이상 자랄 필요가 없어서 나오려는 것이었다.
아무튼 이런 이유로 유혜연은 더는 두 사람을 데려다주지 않았다.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그녀가 진유성을 믿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유혜연이 심성이 곱다고는 해도 본 지 얼마 되지 않은 진유성을 100% 신뢰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진유성을 완전히 믿기에, 등굣길에 별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기도 했다.
그렇게 도착한 대정고.
평소와 다름없는 교정이었지만, 학생들은 평소와 약간 달랐다.
등굣길을 공유하는 이들이 진유성과 상소윤을 보며 수군거리는 것이었다.
“저 형이지? 진유성?”
“엉.”
대정고는 한 학년에 100명이 넘는 경우가 거의 없고, 전교생의 수가 가장 많을 때도 400명을 넘지 못했다.
학생 수가 적은 만큼 소문도 빨랐다.
진유성이 스승의 날에 연기훈에게 밀가루와 먹물을 직접 뿌려 준 게 하루 만에 소문이 났듯이 말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SG의 각성 검사팀이 신고를 받아 출동했고, 진유성을 SG로 데려갔다는 건 전교생이 아는 일이었다.
또한 진유성이 각성자가 아니라는 것도.
“난 SG가 저 오빠 데려갔다길래 역시 각성자구나 했는데.”
“나도.”
“엥? 난 그런 생각 안 해 봤는데. 이유가 뭔데?”
“저 형 축구하는 거 보면 무슨 만화야.”
“농구할 때도 그러던데. 키가 엄청 큰 것도 아닌데 그냥 붕 날아서 덩크 꽂더라.”
덕분에 등굣길에서 이토록 많은 시선을 받고 있는 것이었다.
주변이 수군거리는 것을 느낀 상소윤은 진유성을 힐끔 보았다.
사실 상소윤은 이런 시선에 익숙했다.
진유성을 매일 같이 자신에게 박색하다고 하지만, 그녀는 눈에 띄게 아름다운 외모의 소유자였다.
‘익숙해 보이네.’
한데, 진유성도 남들의 시선이 굉장히 익숙한 것 같다.
‘북한에서 많이 받던 대우라서 그런가?’
진유성이 김씨 일가인지, 군인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돈 많은 지배층이었던 건 분명하다.
그러니 이런 시선이 익숙할 수도 있다.
“야, 진유성.”
“왜 그러느냐.”
“사람들이 다 너 쳐다본다.”
“늦은 감이 있군. 이제야 내게 존경과 흠모의 눈빛을 보내다니.”
어쩌면 또라이짓으로 남의 눈총을 많이 받아서일 수도 있고.
“너 어제 몇 시에 들어왔냐?”
“11시쯤 들어왔다.”
“아니, 왜 엄마는 너는 늦는 걸로 뭐라고 안 하면서, 나한테만 뭐라고 하지?”
“신뢰의 문제가 아니겠느냐?”
“웃기고 있네. 엄마가 뭘 보고 널 신뢰하냐?”
“뛰어난 학업 성적?”
“…….”
“타고난 운동 신경?”
“…….”
“강인함을 가두어 둔 근육질의 육체?”
“너 어제 무슨 드라마 봤냐?”
“안 봤다.”
“구라 치고 있네.”
“진짜다.”
사실이었다.
진유성은 어젯밤 상림, 문수혁, 차정명과 함께 꽤 늦은 시간까지 있었다.
유혜연이 걱정할까 봐 중간에 집에 들어왔다가 다시 몰래 나갔을 뿐이었다.
그리고 문수혁과 차정명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진유성의 이야기는 아놀드 벡이 있을 때 정리하기로 했지만, 진유성이 그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을 이유는 없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진유성과 상림은 알게 되었다.
그들이 모르는 사이, 한국에서 우산도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천마신교가 싹트고 있었다는 것을.
독도의 S급 게이트에서 목숨을 구원받은 이들은 아직 단 한 번도 ‘진유성’이란 이름을 입에 담지도 않았다는 것을.
진유성이란 이름을 발설하고, 발설하지 않고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는 신뢰와 내부 결속력을 뜻했다.
진유성의 생각보다 팀 우산도는 단단한 집단이었다.
그렇기에 진유성은 머지않은 시점에 팀 우산도와 만나볼 생각이었다.
그전에 아놀드 벡이 한국에 와야겠지만.
‘결국은 이렇게 되는군.’
진유성에게는 10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얻은 경험이 있다.
그는 언젠간 자신의 정체가 밝혀질 것을 알고 있었다.
중원과 한국의 속담은 대체로 비슷하지만, 무공과 관련된 것들은 전무하다.
이 세계에 무공이 없는 탓이었다.
중원의 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대오(大悟)는 눈빛에서 흐르고, 대성(大成)은 초식에서 흐르고, 대기(大氣)는 몸에서 흐른다.
이는 큰 깨달음은 눈빛에 묻어나고, 큰 완성은 초식에 묻어나고, 큰 기운은 몸에 묻어난다는 것이었다.
한국 속담으로 하자면 송곳이 주머니를 뚫고 나오는 낭중지추와 비슷했다.
진유성의 강함은 너무나 거대해서 완전히 숨길 수 없다.
사람 한 명 한 명의 이목을 피할 수는 있겠지만, 거대한 흐름에서 피할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하긴, 내가 그릇이 좀 크긴 하지.’
커다란 그릇이 텅 비어 있으면 눈에 띄는 법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대정고 3학년 1반의 문을 여는 순간, 정새롬이 진유성과 상소윤에게 다가왔다.
“딱 왔네?”
“왜? 우리 얘기 하고 있었어?”
상소윤이 가방을 내려놓으며 묻자, 정새롬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 금요일에 뭐 해?”
그러자 이번엔 지종수가 발끈한다.
“왜 둘을 자연스럽게 묶어?”
“당연한 거 아니야? 소윤이의 어머니가 그토록 아끼는 사윗감인데.”
“……!”
“……!”
지종수와 상소윤이 화들짝 놀랐지만, 막상 진유성은 큰 반응이 없었다.
“금요일은 왜 그러느냐?”
“아니 내 생일 파티 하려고.”
“생일이 다가 왔느냐?”
“어, 정확히는 목요일이긴 한데, 목요일에는 마음껏 못 노니까.”
진유성이 어깨를 으쓱했다.
“마음대로 하거라.”
그때였다.
상소윤이 문득 드는 생각에 입을 열었다.
“야, 진유성. 너 생일 언제지?”
“9월 4일이다.”
“내 생일은 언제지?”
“9월 14일이다.”
“열흘 차이가 나네?”
“그렇다. 하늘과 땅 차이지. 내 누누이 말하지 않았느냐. 오라버니라고 부르라고.”
그러나 진유성은 자신의 말에 어마어마한 모순이 숨어있다는 걸 깨닫지 못했다.
“그럼 너도 새롬이를 누나라고 불러야겠네? 종수한테는 형이라고 부르고?”
“……!”
모처럼 당황한 진유성이 입을 열었다.
“그건, 음, 말이 안 된다.”
“왜?”
“아무튼 말이 안 된다.”
“아니, 그러니까 논리적으로 뭐가 말이 안 되는데?”
“세상엔 논리보다 중요한 것들이 많다.”
넓은 그릇의 소유자인 진유성이 막무가내로 우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