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192화 (192/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92화>

Quest 34. 갈구는 천마님

진유성은 전쟁의 무서움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전쟁이 시작되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 지휘관도 아니고, 군대도 아니고, 패배한 세력도 아니다.

전쟁에 휘말린 민초들이다.

처음 명나라로 건너왔을 때, 중원은 전쟁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었다.

전쟁을 시작한 세력은 마교.

마교와 싸우는 세력은 정파와 사파.

후일 진유성은 마교의 잔당을 흡수해 천마신교를 세우지만, 천마신교와 마교는 엄연히 다르다.

마교의 본래 이름은 일월신교로, 해와 달을 상징하는 두 신을 모시는 교단이었다.

과격한 면은 있었으나 사악한 교단은 아니었다.

마교가 정말로 사악한 집단이었다면 진유성이 그들의 잔당을 흡수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전 중원에 침략 전쟁을 벌인 것은 교리에 대한 해석 때문이었다.

일월(日月).

해와 달.

교리에 따르면 해는 광명(光明)을 뜻했고, 달은 태평(太平)을 뜻했다.

당시의 마교는 개교 이래 200년 만의 태평성대를 구축하던 중이었다.

마교주는 강했고, 젊었고, 영리했으며, 지도력이 있었고, 존경을 받았다.

마교의 상단들은 상행 중에 큰돈을 벌었고, 마교의 무사들은 깨달음을 얻었으며, 마교가 지배하는 곳에서 주기적으로 영약이 발견되었다.

이러한 일들의 대부분은 우연이 겹치며 생겨난 것이었지만, 마교주의 생각은 달랐다.

달이 꽉 찼으니, 해를 노려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광명(光明)과 광명(光名).

일월신교의 이름을 전 중원에 떨치기 위한 정복 전쟁이 시작된 것이었다.

무림인들은 본래 황실과 관을 예우해 시비가 붙으면 한 발 물러서곤 했다.

무림인들이야 황실을 적으로 돌려도 살아갈 수 있지만, 무림인들의 가족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전쟁이 벌어지자 관아는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무림인들의 싸움에 수확만 기다리던 논밭이 불타고, 마을이 부서지고, 백성들이 죽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무림 세력들은 보호세라는 명목하에 민가에서 돈을 걷었다.

문제는 그 무림 세력들이 빈번히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마교가 점령한 마을을 정파가 빼앗고, 정파의 것을 마교가 다시 빼앗고, 그것을 다시 사파가 빼앗고.

그때마다 민초들은 새로운 보호세를 내야 했다.

진유성은 이 같은 전쟁이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명나라에 도착했다.

그리고 충격을 받았다.

끔찍한 현실에 충격을 받은 게 아니다.

무림인들이 그들의 행위를 ‘정의’라고 믿고 있는 것에 충격을 받은 것이었다.

정파는 민초들을 위해서라도 전쟁을 이겨야 한다고 했고, 마교는 일원신교의 교리로 민초들을 구원해야 한다고 믿었다.

“정의로운 믿음과 신앙의 믿음 사이에서 어찌하여 고통이 탄생하는가.”

어렸던 진유성은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사람은 사람을 위할 때만 진실된다.

사람이 가치 위할 때 하는 행동의 대부분은 위선이거나 위악이다.

정의, 종교, 부, 명예 등등의 가치를 쫓는 이들의 행동은 정의로운 척하는 악행이었다.

중요한 건 사람이었다.

죽어 가는 적군을 연민 때문에 치료해 준 병사들의 이야기는 종종 들리는 것이다.

이는 피아의 구분을 떠나서 사람이 사람을 위했기 때문에 진실된 행동이었다.

진유성은 이 깨달음을 늘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구체적인 목표로 바뀐 것은 화전민 모녀가 생존대를 위해 죽었을 때였다.

그래서 문수혁과 차정명에게 이렇게 물어본 것이었다.

“부와 명예가 아닌, 질서를 위해서 싸울 수 있냐?”

머지않은 미래에 진유성은 마도사들과 싸우게 될 것이다.

진유성에게는 전지의 화신인 타트바와 아놀드 벡을 비롯한 결사대가 있다.

마도사들에게는 그들 형제와 신주청과 오랜 세월 암약하며 쌓아온 돈과 인맥이 있다.

이 전쟁은 마교의 전쟁보다 크면 컸지, 작지 않다.

전쟁에 참여한 수는 적겠지만, 신화적인 영역의 싸움이 될 수도 있다.

진유성은 그때도 질서가 유지되길 바랐다.

그래서 문수혁과 차정명에게 힘을 준 것이었다.

본래는 고등학교 생활이 완전히 끝이 나면 팀 우산도에 접촉하려고 했지만, 어쩌다보니 기회가 닿은 것이고.

* * *

“질서…….”

진유성의 말이 어떻게 들렸는지, 문수혁과 차정명은 한참 동안이나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문수혁이 물었다.

“저희는 이미 질서를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부와 명예를 얻었지만, 본질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 부와 명예를 누가 줬는데?”

“글쎄요. SG와 정부와 국민? 복합적이지 않을까요?”

“그러면 네가 옳은 일을 하려는데, SG와 정부와 국민들이 잘못된 일이라고 밀어붙이면 어쩔래?”

“그런 일이 있겠습니까? 저희가 하는 일은 게이트 클리어인데, 그걸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있을 거다.”

게이트는 마도사들이 영성을 착취하는 수단이며, 각성자를 양성하는 수단이다.

그리고 각성자는 아카식 레코드를 오염시키는 수단이다.

지금이야 마도사들이 이종의 기운을 마음껏 쓰지 못하지만, 아카식 레코드가 완전히 오염됐다는 확신이 들면 다를 거다.

분명 게이트는 어떤 식으로든 변화한다.

지금처럼 친절하고, 사회에 주는 피해가 적으며, 감당 가능한 수준은 절대 아니다.

그때가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떠들 것이다.

재벌들은 자신들만 지켜 주길 바랄 수도 있고, 국민들은 각성자들이 죽어서라도 자신들을 지켜 주길 바랄 수도 있다.

그러니 각성자들은 기준을 세워야 한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

그들이 할 수 없는 일.

그사이에서 질서의 기준.

진유성은 거기까지 생각했지만, 자신의 생각을 두 사람에게 구구절절 풀어놓진 않았다.

신념은 강요하는 게 아니다.

신념을 발휘할 순간에 당면했을 때, 자신의 말이 한 번이라도 떠오르면 그걸로 됐다.

더 이상 말하는 건 강요라서 역효과가 난다.

그래도 약간의 믿음은 있었다.

‘죽음을 각오하고 게이트에 들어갔던 놈들이니까.’

생각해보면 인간과 인간 사이의 신뢰란 참으로 부실하다.

하지만 그 부실함에 기대어 문명을 이룩하는 것이 인간이기도 했다.

그때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차정명이 입을 열었다.

“한지후 소장을 아십니까?”

“몰라. 그게 누군데.”

“각성자들의 편에 선 몇 안 되는 정치가입니다. 저희가 S급에서 SS급으로 올라서는 데 결정적인 조언을 하기도 했고요.”

“근데 왜?”

진유성은 더 복잡한 설명이 나오면 ‘그게 뭔데, 씹덕아.’를 날릴 준비를 했지만, 더 이상의 설명은 없었다.

“한지후 소장은 늘 그런 말을 했습니다. 게이트는 인위적이다. 자연의 일부로 따지기는 너무 친절하고 체계적이라고.”

“오…….”

“누군가 게이트를 만들었을 거라고 꾸준히 주장하고 있기도 하죠. 물론 아무도 안 믿지만. 하지만 저희는 믿습니다.”

차정명이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언노운 엠페러께서는 게이트를 만든 존재를 알고 있습니까?”

“어.”

“그게 누굽니까?”

“한 200년? 300년? 그 정도 살아온 마도사들.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인외의 힘을 얻었고, 신이 되려는 놈들.”

진유성의 말에 문수혁과 차정명은 말을 잃었다.

믿기 힘든 일이다.

사실 진유성은 게이트나 마도사, 전지의 존재와 관련된 것들은 아놀드 벡이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말하면 신빙성이 떨어진다.

믿기 힘든 이야기인데, 정체불명의 각성자가 말하면 와닿겠는가.

그에 반해 아놀드 벡은 역사와 함께해 온 각성자다.

말의 무게가 다르다.

그래서 더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한동안 말이 없던 문수혁이 간신히 입을 열었다.

“사악한 존재들입니까?”

“어.”

“게이트도 그런 이유에서 만들어진 것이고요?”

“그치.”

두 사람이 시선을 교환했다.

그들은 일단은 진유성의 말을 믿기로 결정했다.

몰래카메라 같은 것일 리는 없다.

진유성이 그들의 눈앞에서 보여 준 힘을 생각해 보면 말이었다.

“100년 넘게 살아온 괴물이라니…….”

“순리를 거슬렀겠죠?”

“그치. 사람이 어떻게 100년이 넘도록 살겠어. 괴물이지.”

“대체 무슨 욕심으로 100년이 넘도록…….”

“끝이 없는 탐욕을 지녔겠지.”

문수혁과 차정명의 말을 듣고 있던 진유성이 볼을 씰룩거렸다.

이상하다.

기분이 나쁘다.

마도사들을 욕하고 있는데, 광역 데미지가 들어오는 것 같았다.

큼큼, 헛기침을 한 진유성이 말했다.

“100년이 아니라 200년이라니까.”

“어쨌든 긴 세월이죠.”

“아니지. 장수하는 사람들 중에는 100년 넘도록 사는 이들도 있잖아? 2, 300년과는 다르다고.”

“물론 장수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언노운 엠페러가 말하는 괴물들은 노화하지 않는 존재 아닙니까?”

“……그렇긴 해.”

“100년이 넘도록 노화하지 않는 괴물이라니…….”

“징그럽군요.”

“끔찍하군.”

기분이 나쁘다.

“야! 오래 산 게 중요한 게 아니라니까? 그 삶을 선으로 채웠느냐, 악으로 채웠느냐가 중요한 거야.”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태어나서 늙고 죽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걸 거부했다는 건 의도가 있다는 것이죠.”

“아마도 사악한.”

“…….”

아마 오리지널 상림이었다면, 진유성의 기분이 상했다는 걸 눈치 챘을 것이었다.

그리고는 자신이 한 말 중에 뭔가 기분 나쁜 게 있었다는 걸 알아차리고, 급히 대화의 화제를 돌렸을 것이었다.

그러나 보급형 상림1, 보급형 상림2는 아니었다.

그들은 대한민국에서 1, 2위로 꼽히는 각성자들.

누군가의 눈치를 볼 일이 없었다.

그 순간, 진유성의 서슬 퍼런 기운이 상가 건물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100년 넘게 살면 징그럽다?”

“예?”

“끔찍하다?”

“어…….”

살벌한 기운을 느낀 그들은 뒤늦게 한 가지 가정을 떠올렸다.

설마 눈앞에 있는 언노운 엠페러가 100년을 넘게 살아왔나?

그러나 그들의 눈치는 너무 느렸다.

진유성은 이미 단단히 삐졌다.

간장 종지보다 작은 그릇에 삐짐이 가득 찼다.

“징그럽고 끔찍한 걸 이기려면 강해야겠네? 근데 니들은 너무 약하지?”

상가 건물을 가득 채운 기운이 유형의 힘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문수혁과 차정명은 피부를 콕콕 찌르는 기운을 보며 경악했다.

독도의 S급 게이트에 들어갔을 때 느꼈던 압박과 비교도 안 됐다.

“훈련을 해야겠네?”

허공에 떠있던 기운이 거대한 검을 만들어 냈다.

검은 눈에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문수혁과 차정명은 목 위에 칼날이 올라온 것 같은 끔찍함을 느꼈다.

“자, 잠깐만요!”

“뒤져라!”

쐐애애애액-!

무형의 검이 두 사람을 향해 날아들었다.

문수혁이 기겁을 하며 몸을 날렸고, 차정명이 깜짝 놀라서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컥!”

검풍의 영향권에 휩쓸린 두 사람이 형편없이 나가떨어졌다.

일수를 교환했을 뿐인데 온몸이 만신창이였다.

“왜 이러십니까!”

시끄러워진 진유성이 탄지공을 날려서 두 사람의 아혈을 짚었다.

“읍읍!”

“읍읍!”

말을 못하게 된 두 사람이 몸부림을 쳤지만, 이미 늦었다.

진유성은 무형의 검을 무형의 봉으로 바꾸었다.

검으로 잘못 때리면 죽을 수도 있지만, 봉으로는 잘못 때려도 안 죽는다.

그리곤 봉을 휘둘렀다.

대한민국 1, 2위의 각성자답게 반항을 했지만, 그건 잠깐이었다.

진유성이 풍기는 거력의 기운 때문에 숨도 제대로 쉬기 힘들었다.

“뭐? 징그러워? 끔찍해?”

퍽퍽!

“이 자식들이 오냐오냐해 줬더니.”

퍼퍼퍽!

“그래! 나 백 살 넘었다!”

진유성의 훈련을 빙자한 구타가 멈춘 것은 상가 건물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오면서였다.

“교주…… 어? 차정명이랑 문수혁?”

상림이었다.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던 상림은 진유성의 연락을 받고, 곧장 압구정으로 날아왔다.

상림은 아혈이 짚인 채 무차별적으로 얻어맞는 두 사람을 보며 문득 옛날 생각을 떠올렸다.

“날 보고 도망쳤다 이거지?”

퍼퍼퍽!

“교주가 독을 먹었다면 먹은 줄 알아야지. 날 무시해?”

퍼퍼퍼퍽!

“뭐? 백 살 넘은 노괴?”

상림은 문수혁과 차정명이 왜 진유성에게 갈굼을 먹고 있는지 몰랐다.

하지만 이럴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는 잘 알았다.

“가르침을 내리시는 중인가 보네요?”

“어, 왔냐.”

“직접 가르침을 내려 주신다니, 저 친구들도 몹시 기뻐할 겁니다.”

일단 진유성의 편에 붙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간장 종지보다 작은 그릇에 가득 찬 삐짐이 자신에게 흘러넘칠 수도 있었다.

상림은 두 사람을 외면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신교의↗ 궁궐에→ 당도한↘ 것을↗ 환영하오→ 낯선이여↘.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