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191화 (191/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91화>

물론 진유성이 정말로 문수혁이나 차정명의 각성 등급을 내릴 수 있냐면, 그건 아니다.

아예 비각성자로 만드는 건 가능하다.

캘리포니아에서 실험해 봤듯이, 진유성은 각성자와 시스템 간의 연결 고리를 베어 버릴 수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수혁과 차정명은 진유성의 말에 감히 의문을 품지 못했다.

SS급을 SSS급으로 올리는 데 걸리는 시간이 단 20분 정도였다.

그러니 SSS급을 SS급으로 내리는 것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근데 진짜 SSS급이 됐다고?’

‘그렇다는데?’

‘믿을 수 있어요?’

‘확인해 봐야지.’

문수혁과 차정명이 시선을 교환하자 진유성이 버럭 화를 냈다.

“야! 집중 안 해?”

“그…….”

“먹방의 민족들이 드벡이보다는 잘해야 할 거 아니야? 어?”

“드벡이요? 아놀드 벡?”

진유성이 독도 게이트에서 아놀드 벡의 검을 빌려 가며 ‘드벡이와 친하다.’라고 말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거짓말이라고 확신했다.

정말로 친했으면 아놀드 벡이 언노운 엠페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할 이유가 없다.

친했으면 전화번호라도 알겠지.

“뭐야? 못 믿냐?”

“음, 아닙니다.”

“못 믿네?”

진유성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리모컨을 조작했다.

그러자 좌측 벽면에 걸려있는 커다란 TV에서 누군가의 먹방 영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누군가는 아놀드 벡이었다.

-처음으로 A급 게이트에 들어갔을 때가 떠오르는군요.

-그때 저는 죽음을 각오했습니다. 인류가 계속해서 A급 게이트를 기피한다면 언젠간 재앙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들어간 것이지요.

-힘든 싸움이었습니다.

-그렇게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밖으로 나와서 남부식 스테이크를 먹었습니다.

-평범한 가게였죠. 그러나 놀랍도록 맛있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제 평생 가장 맛있는 스테이크였죠. 한데…….

아놀드 벡이 카메라를 응시하며 말한다.

-이 고기가 더 맛있군요.

가식적이다.

지극히 가식적이다.

문수혁과 차정명은 아놀드 벡이 억지로, 억지로 칭찬을 쥐어 짜냈다는 걸 눈치 챘다.

음식이 맛이 없다는 게 아니다.

진유성이 만들어 준 음식은 아주 맛있었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과 맛에 대한 표현은 엄연히 다르다.

‘이 남자…….’

‘강하다……!’

대체 얼마나 강하면 아놀드 벡에게 이런 가식적인 멘트를 요구할 수가 있을까?

문수혁과 차정명은 진유성의 강함을 다시 한번 실감하며 입을 열었다.

“아놀드 벡과 친분이 있으십니까?”

“내가 말했잖아. 친하다니까?”

“하지만 아놀드 벡은 당신을 찾아 한국으로 왔었습니다. 그렇다는 건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게 아닙니까?”

“그때 만나서 친해졌어.”

“그렇다면 독도 게이트에서 친하다고 말했던 건 거짓말 아닙니까?”

논리적인 차정명의 반박에 진유성이 탕 소리 나게 프라이팬을 내려놓았다.

보급형 상림1과 보급형 상림2가 아직 교육이 덜 된 것 같다.

주방 쪽에 서있던 진유성이 손을 쭉 뻗은 자세로 물었다.

“야.”

“예?”

“지금 내 팔이 너희한테 닿냐?”

“팔이요? 안 닿죠.”

당연히 안 닿는다.

문수혁, 차정명이 앉아 있는 테이블과 진유성이 서 있는 주방 간의 거리는 4m 정도 되니까.

“그래?”

그 순간, 진유성이 손이 잔상을 만들어 내며 흔들렸다.

빡! 빡!

이윽고 진유성의 손이 문수혁과 차정명의 뒤통수를 때렸다.

놀라운 일이었다.

아무리 진유성이 두 사람보다 강하다지만, 강한 것과 알 수 없는 건 다르다.

그들도 한국의 랭킹 1위와 2위의 각성자일 텐데, 도대체 어떻게 진유성이 그들의 뒤통수를 때렸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전투 중에 발생하는 속도의 차이는 실제로 엄청난 속도 차이가 나는 건 아니다.

그저 의식의 사각을 찔렀기 때문에 훨씬 빠르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아니다.

문수혁과 차정명은 진유성의 양어깨를 명확히 보고 있었다.

양쪽 어깨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는 건, 사각지대가 없다는 뜻이다.

문수혁과 차정명이 황당해하자 진유성이 물었다.

“이렇게 되면 네가 거짓말을 한 거냐?”

“그건 아닌데…….”

“그치? 아니지? 넌 진실을 말한 거지?”

“……예.”

“그러니까 나도 거짓이 아니라 진실을 말한 거야.”

차정명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말도 안 되는 논리에 반박하고 싶지만, 차마 반박을 못하겠다.

또 뒤통수를 맞을 것 같다.

오리지널 상림은 뒤통수를 맞을 걸 알면서도 할 말을 다 하는 경지에 이르렀지만, 보급형들은 아니었다.

“자,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집중해.”

잠깐의 휴식 뒤로 촬영이 재개되었다.

진유성이 만족할 만한 수준의 결과물을 뽑아내는 데는 무려 2시간이나 걸렸다.

두 명이라서 그런지 평소보다 두 배는 걸린 셈이었다.

촬영이 끝나자 문수혁이 입을 열었다.

“근데 그 영상은 어디다 쓰실 겁니까?”

“유투브에 올릴 건데?”

“유투브요?”

“어.”

“아놀드 벡의 영상도 유투브에 올라갔습니까?”

“아니.”

본래 진유성은 아놀드 벡의 영상을 유투브에 올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영상을 찍자마자, 멕시코의 SSS급 각성자 엔리케 카를로가 전 세계의 각성자에게 초대장을 던진 것이었다.

미국 국민들은 아놀드 벡에게 멕시코로 가서 엔리케 카를로와 싸울 것을 요구했다.

그들이 믿고 따르는 히어로가 이 사태를 처리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

혹은 단순히 SSS급의 싸움을 구경하고 싶은 마음.

이 두 가지가 얽힌 여론이었다.

그러나 아놀드 벡은 움직이지 않았다.

진유성의 말처럼 엔리케 카를로의 등 뒤에 마도사들이 있다면, 아놀드 벡은 움직이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아놀드 벡은 인간 세계의 절대적인 강자지만, 진유성을 본 이후로 알게 되었다.

신화적인 영역의 싸움에서 그의 힘은 하잘것없다는 것을.

문제는 아놀드 벡이 움직이지 않자, 대중들 중에는 아놀드 벡을 겁쟁이라고 비난하는 이들이 생겨났다는 것이었다.

쉬운 게이트만 클리어하고, SSS급 각성자와의 싸움은 회피한다는 이유로.

이는 그동안 아놀드 벡이 걸어온 길을 안다면 할 수 없는 말이었다.

아놀드 벡은 인류 최초로 A급 게이트에 도전했던 인물이며, 그 이후로도 용기를 가지고 수많은 게이트에 도전했다.

SG가 가지고 있는 기록을 살펴보면, BB 이상급 게이트의 최초 클리어 도전자는 거의 다 아놀드 벡이었다.

게이트 세계의 개척자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었다.

유일하게 아놀드 벡이 참여하지 못한 게이트가 독도 S급 게이트였고.

그러니 아놀드 벡을 겁쟁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대중들 중에는 유명인을 모욕해서 감정을 배설하는 이들도 분명 존재했다.

그리고 그 배설에 선동되는 이들도 존재했고.

상황이 이렇게 되자 진유성은 아놀드 벡의 영상을 유투브에 올릴 수가 없었다.

엔리케 카를로의 도발을 무시한 아놀드 벡이 한국의 인터넷 방송에 참여했다?

아놀드 벡을 물어뜯을 빌미를 주는 셈이었다.

그래서 아놀드 벡의 영상은 유투브에 올라가지 않았고, 멕시코 사태가 확실히 정리되기 전에는 올릴 생각이 없었다.

진유성은 마음대로 사는 것 같아도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꿩 대신 닭이라고, 너희가 출연하는 거야.”

문수혁과 차정명은 진유성이 생각보다 아놀드 벡과 친하다는 것을 느꼈다.

어느 정도 상대의 입장을 배려하기도 한다.

시선을 교환한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들은 언노운 엠페러에게 궁금한 것이 아주 많았다.

왜 그들을 SSS급으로 올려주었는지.

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지.

왜 정체를 숨기고 있는지.

대체 목적이 무엇인지.

먹방을 찍어야 된다고 밀어붙이는 진유성의 추진력 때문에 입을 닫고 있었을 뿐이었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차정명이었다.

“아놀드 벡의 검은 돌려주셨습니까?”

“어, 돌려줬지. 아놀드 벡이 품고 있어.”

아놀드 벡의 위장으로 흡수가 되었으니, 품고 있다는 말도 거짓은 아니다.

“대체 당신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내가 설명하는 것보다 아놀드 벡이 설명하는 게 더 편할걸?”

“그 말은 아놀드 벡과 당신의 목적이 일치한다는 겁니까?”

“어.”

최종 도착지가 다르긴 하다.

진유성은 게이트 사태를 끝내려 한다기보다는 마도사들을 소멸시키려는 것이다.

그들은 지구를 좀먹으니까.

그에 반해 아놀드 벡은 게이트 사태를 끝내려다 보니 마도사들과 싸우게 된 것이다.

최종점이 다르긴 하지만, 어쨌든 방향과 목적이 완전히 일치한다.

진유성이 두 사람에게 게이트 사태의 끝에 대해 말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혼란스러울 테니까.

또는, 거부감을 느낄 테니까.

사실 아놀드 벡이 이상한 것이다.

보통의 고위 각성자들은 부와 명예를 누리게 해 주는 게이트 사태가 끝나지 않길 원한다.

게이트가 없어지면, 그들은 아무런 직업 기술도 갖지 못한 백수에 불과하다.

모아 놓은 돈이야 있겠지만, 이제 와서 새로운 뭔가를 배우기도 힘들다.

그러나 이런 진유성의 생각에는 약간의 착각이 들어 있었다.

모든 각성자가 게이트 사태가 영원하길 바라는 건 아니다.

나이가 든 각성자들은 게이트 사태가 끝이 나길 바란다.

처음 게이트가 열렸던 20년 전부터 각성자로 활동하던 이들 중에는 60살을 넘긴 이들도 있다.

각성자라고 노화가 중지되는 건 아니다.

그들도 늙고, 병에 걸리고, 아프다.

당연히 나이가 들면 몸이 예전 같지 않고, 전투력도 떨어진다.

각성자가 인간이란 컴퓨터에 외장 기계를 연결한 셈이라면, 컴퓨터 자체에 녹이 슨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헌팅을 나서야한다.

오랫동안 경험치를 얻지 않으면 고통이 느껴지니까.

마정석으로 고통을 피할 수는 있다지만,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다.

그저 고통을 피할 수 있게 해 주는 진통제 같은 거다.

완벽히 늙어버리면 마정석으로 고통을 피하는 수밖에 없겠지만, 돈이 아주 많이 드는 일이다.

그래서 1세대 각성 선배들의 고충을 지켜본 각성자들은 약간의 두려움을 품고 있었다.

자신들도 저렇게 될 수 있으니까.

물론 이런 두려움을 품은 이들이 벌 만큼 번 고위 각성자라는 게 아이러니한 일이기도 했다.

하위 각성자들은 미래를 보기보다는 현재를 넘기는 데 급급하니까.

“드벡이가 곧 한국에 오니까, 그건 그때 들어라.”

“그럼 왜 고등학교에 다니시는지 여쭤도 됩니까?”

“신분을 얻었는데 고등학생이라서.”

“그 말씀은, 실제 나이가 고등학생은 아니라는 거지요?”

“당연하지. 내가 너희보다 나이가 많아.”

문수혁과 차정명이 고개를 끄덕인다.

외모만 보면 믿기지 않지만, 진유성의 힘을 생각하면 차라리 믿기 쉬운 일이다.

그 뒤로 몇 가지 질문을 던졌던 두 사람은 마침내 가장 중요한 질문에 도달했다.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신 이유가 뭡니까?”

“또한, 저희를 SSS급으로 만든 이유가 무엇입니까?”

엄밀히 따지면 진유성이 모습을 드러냈다기보다는 문수혁이 느낀 것이다.

그러나 진유성이 딱 잡아뗄 수도 있는 일이긴 했다.

아니라고 우긴다면 방법이 없으니까.

그러나 진유성은 문수혁과 차정명을 보자마자 기세를 보여 주었고, 두 사람을 SSS급으로 올려 주었다.

이는 아무런 목적 없이 할 일이 아니었다.

실제로 진유성에게는 아주 중요한 목적이 있었다.

“우산도 애들은 잘 지내고?”

“잘 지냅니다. 조언을 해주신 덕분에 다들 강해졌고요.”

“그럼 나한테 고마움을 느끼고 있겠네?”

“그렇습니다. 목숨의 빚도 졌으니까요.”

진유성이 물었다.

“드벡이 말로는 언젠간 SG가 없어질 거라는데, 알고 있지?”

“알고 있습니다. 시대의 흐름이니까요.”

“SG가 사라질 걸 대비해서 각성 마켓을 만드는 것도 알고 있고?”

“네. JC 그룹과 우산도가 손을 잡았죠.”

고개를 주억거린 진유성이 말했다.

“그 힘을 써 줄 곳이 있다.”

“……그게 어딥니까?”

문수혁과 차정명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들의 귀에는 진유성이 한국 각성 사회의 역량을 개인적으로 사용하겠다고 들렀기 때문이었다.

이는 아주 심각한 일이다.

팀 우산도는 진유성에게 크나큰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지만, 각성 사회를 사유화하려 한다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

한국에 제2의 엔리케 카를로가 탄생해서는 안 될 일이니까.

그러나 이어진 진유성의 말은 그들의 상상과는 아주 달랐다.

“질서.”

“네?”

“부와 명예가 아닌, 질서를 위해서 싸울 수 있냐?”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