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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189화 (189/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89화>

* * *

각성 검사가 끝이 나고, 대정고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진유성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제법이군.’

몇 달 만에 본 얼굴이 진유성에게 꽤 기꺼운 기분을 느끼게 했기 때문이었다.

바로, 문수혁이었다.

진유성은 독도의 S급 게이트에서 99명의 각성자를 만났다.

그 중 가장 강한 이는 SS급 각성자인 문수혁과 차정명이었는데, 진유성이 보기엔 둘 다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전 세계에 100명도 없는 SS급 각성자라면서 하는 짓을 보면 일류 무인 수준인 것이었다.

물론 실제로 일류 무인과 문수혁이 싸우면 문수혁이 이길 것이었다.

이는 문수혁의 위력이 일류 무인의 위력을 압살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동일한 내공으로 일류 무인과 문수혁이 싸운다면 어떻게 될까?

싸움의 양상이 팽팽할 것이다.

어쩌면 일류 무인이 이길 수도 있다.

그만큼 각성자란 놈들은 기운을 다루는 데 미숙했다.

후일 들은 아놀드 벡의 말에 따르면, 대부분의 각성자들이 시스템이 정해 놓은 방식에서 벗어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고 했다.

마력을 주입하면 스킬이 나온다.

이 과정을 절대적인 진리로 받아들이고, 가장 효율적인 것으로 착각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세상에 그 어떤 무인도 획일화된 방법으로 기를 운용하진 않는다.

때론 극세(極細)의 내공을 이용해 사소한 차이를 만들어 내고, 때론 광대(廣大)의 내공을 투자해 속도 차이를 빚어낸다.

같은 초식이라도 어떤 방식으로 기를 운용하느냐에 따라서 천차만별의 다름을 만들어낸다.

괜히 무공(武功)이 아니었다.

그래서 진유성은 우산도의 각성자들에게 몇 가지 가르침을 주었다.

가르침 중에는 기의 운용에 대한 것도 있었는데, 수준이 낮은 각성자들은 진유성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나마 S급 언저리를 넘어선 이들만 어렴풋이 이해하는 눈치였다.

시간이 있었다면 자세히 알려 줬겠지만, 독도의 S급 게이트 안에서는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적당히 개념만 알려 주고 말았는데…….

‘아주 제법이야.’

문수혁이 개념을 완벽히 이해한 것 같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문수혁은 자신을 보는 순간 행공(行功)을 일으켰다.

아니, 무공을 배우지 않았으니 행공이란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문수혁의 신체가 전투 상황에 돌입했다고 표현하는 게 옳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진유성이 언제든지 문수혁을 죽일 수 있다는 걸, 그의 신체가 인식한 것이었다.

다만 문수혁은 오랫동안 시스템의 스킬에 익숙한지라, 심기체가 조화를 이룬 상태는 아니었다.

기(氣)와 체(體)는 반응했지만, 심(心)은 반응하지 않았다.

아마 문수혁이 심기체의 조화를 이루는 순간, 세상은 그를 SSS급이라고 부를 것이었다.

진유성은 각성자 랭크의 명확한 기준을 알진 못했지만, 문수혁이 심기체를 이루면 영국에서 만난 아놀드 벡과 비슷한 수준이 된다.

그리고 그때의 아놀드 벡은 SSS급이었다.

물론 지금의 아놀드 벡이 그때의 아놀드 벡보다 훨씬 강하지만.

아무튼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진유성은 우산도 멤버들에게 꽤 좋은 인상을 받았다.

그들은 사회에서 큰 명예와 부를 누리는 고위 각성자들이었지만, 독도 게이트의 클리어를 위해 목숨을 도외시했다.

진유성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들은 분명히 죽었다.

개개인의 삶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면 분명 모두 흠결이 있을 것이다.

나쁜 짓도 좀 했을 거고, 양심에 찔리는 짓도 좀 했을 거다.

사람은 모두들 그렇게 사니까.

하지만 진유성은 우산도 멤버들이 가슴 깊은 곳에 연민을 품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연민을 아는 이들은 악에 완전히 물들지 않는다.

진유성이 백 년이 넘도록 살아오면서 알게 된 사실 중 하나였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택시 기사가 입을 열었다.

“학생, 정문에 세워 줄까? 아니면 더 들어가?”

“정문이요.”

계산을 하고 택시에서 내린 진유성은 대정고 입구를 통과했다.

입구를 따라 쭉 올라가면 손님들의 주차 공간과 체육 시설이 있고, 거기서 더 올라가면 교직원 주차 공간과 교무 시설이 있다.

그 다음에 있는 곳이 3학년 본관이었다.

교무 시설을 제외하면 정문과 가장 가까운 곳에 3학년 본관이 있는 셈이었다.

이러한 구조는 일분일초가 아까운 수험생들을 위한 나름의 배려였다.

물론 그럼에도 3학년 본관까지 정문에서 10분은 걸어야 한다는 게 어이없지만.

3학년 본관에 당도했을 때쯤, 진유성은 수업이 끝나는 소리를 들었다.

‘그냥 집에 갈 걸 그랬나?’

방금 끝난 수업이 마지막 수업이고, 이제 하교 시간이다.

진유성은 일단 가방을 챙기기 위해서 3학년 1반으로 향했다.

게다가 생각해 보니까 SG에서 준 각성 검사 결과지를 담임한테 제출해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며 3학년 1반에 들어서니 학생들의 시선이 진유성에게 쏠렸다.

대정고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종례 없이 바로 하교했기에 다들 나갈 준비를 하던 참이었다.

그 순간, 상소윤이 진유성에게 후다닥 뛰어왔다.

“야! 왜 폰을 안 보냐?!”

“폰?”

잊어먹고 있던 스마트폰을 주머니에서 꺼내니 비행기 모드 상태다.

생각해 보니, SG의 보안 정책 때문에 검사가 끝날 때까지 비행기 모드 상태로 스마트폰을 맡겼었다.

SG에서 나와서는 문수혁에 대해 생각하느라 깜빡했고.

“깜빡했다.”

“깜빡? 아주 숨 쉬는 것도 깜빡하지 그래?”

“박색함을 깜빡하는 게 더 급한 듯 하구나.”

“아, 뒤질래?”

“SG의 보안 정책 때문에 비행기 모드 상태였다.”

“뭐래? SG에서는?”

상소윤은 살짝 초조해 보였다.

일반 대중들 중에는 각성자를 동경하는 이들도 있지만, 대정고 학생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돈 많은 부모 덕분에 보통의 대중들보다 더 많은 정보를 접하곤 한다.

철없는 자녀들이 홧김에 게이트에 들어갈까 봐 일부러 알려 주는 부모도 있었고.

아무튼 대정고 학생들은 각성자가 그리 낭만 있는 직업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각성하는 순간 그 사람의 평범한 인생은 끝이 난다.

진유성이 북한에서 건너왔다고 믿고 있는 상소윤은 진유성이 각성하지 않기를 원했다.

경직된 시스템에서 도망쳤더니, 다시 각성 시스템에 갇히는 건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얼핏 상소윤의 마음을 읽은 진유성이 피식 웃으며 종이를 내밀었다.

“봐라.”

“뭐야?”

“SG에서 준 것이다.”

“아, 서류 공포증 있는데…….”

상소윤이 그렇게 말하면서도 서류를 꼼꼼히 읽기 시작했다.

서류는 꽤 직설적인 언어로 작성됐기에 상소윤이 이해하는데도 어려움은 없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피검사자 진유성은 99.99%의 확률로 각성자가 아님을 SG에서 보증한다.>

서류를 이해한 상소윤의 표정이 확 밝아지자, 친구들이 끼어들었다.

“뭐야, 아니네?”

“왠지 진유성이라면 각성할 거 같았는데.”

“그니까.”

“에이, 뭐야. 지종수. 그럼 축구 진 것도 그냥 실력인 거잖아?”

“아까는 진유성이 각성자라서 졌다며?”

“내가 언제!”

“내심 진유성이 각성하길 바라는 것 같던데?”

“그런 말 한 적 없거든!”

지종수, 심도훈, 고인수, 정새롬.

네 사람이 시끌벅적 떠들기 시작하자, 나머지 3학년 1반의 학생들도 툭툭 몇 마디를 보탰다.

다들 진유성이 각성하지 않은 걸 축하해 주는 분위기였다.

진유성은 그러한 친구들을 보며 묘한 감상에 젖었다.

중원과 지구는 확실히 다르다.

중원에서는 어떠한 위험을 품더라도 일단 강해지는 것이 중요했다.

강해야 살 수 있고, 강해야 소리칠 수 있다.

그러나 지구는 아니다.

이곳에서는 개개인의 미래를 더 중시한다.

물론 지구는 아름답고, 중원은 척박하다는 건 아니다.

지구도 어두운 부분이 있다.

제 아무리 품은 꿈과 미래가 아름답더라도 돈이 없으면 결국은 펼칠 수 없으니까.

그러니까 진유성이 감상을 느낀 부분은 정확히 말하자면 두 세계의 차이가 아니었다.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의 차이였다.

“야, 우리 두부나 먹으러 갈까?”

“두부? 갑자기 웬 두부?”

“진유성 출소했잖아.”

“아, 그러네. 생각해 보니까 두부 먹어야겠네.”

심도훈과 고인수의 대화로 사건이 마무리가 되고, 3학년 1반 학생들이 진짜로 하교를 하려는 순간.

거칠게 문이 열렸다.

“유성아!”

그리고 뛰어 들어온 것은 대다수의 학생들에게는 낯선, 그러나 몇몇 사람들에게는 낯익은 얼굴이었다.

바로, 유혜연이었다.

유혜연이 만삭에 가까운 몸을 하고는 교실로 들어온 것이었다.

“엄마?”

상소윤이 눈을 깜빡였다.

엄마의 등장이 너무 갑작스러웠다.

그러나 유혜연은 상소윤에게는 관심도 없었다.

진유성에게 후다닥 달려오더니 손을 붙잡았다.

“유성아. SG에서 뭐래? 각성했대?”

“아뇨.”

“아니래?”

“네. 아니래요.”

“어떤 자식이 쓸데없이 신고한 거야!”

유혜연이 고개를 돌리다가 지종수와 눈이 마주쳤다.

지종수가 찔끔했다.

분명 신고를 안했는데도 유혜연의 눈빛에는 사람을 겁먹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때, 옆에서 진유성이 말을 보탰다.

“쟤 맞아요.”

“뭐?”

“아무래도 지종수가 신고한 거 같아요. 축구에서 지고.”

“뭐?! 나, 나 아니야!”

“아니라고 하기엔 시기가 너무 공교롭다.”

“아니라니까!”

억울해진 지종수가 핸드폰 통화 목록을 내밀었다.

당연히 거기엔 SG의 신고 번호가 없었지만, 진유성과 유혜연은 의심의 눈을 거두지 않았다.

뭔가 도둑이 제 발 저려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지종수가 꽤 의심받기 좋게 생기기도 했다.

미래의 장모님(?)에게 미움을 받은 지종수가 울상을 짓다가 번뜩 놀랐다.

“아니, 근데 소윤이 어머니가 진유성은 왜……?”

그 순간, 유혜연이 당황했다.

진유성이 SG에 잡혀 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신없이 달려오긴 했는데, 생각해 보면 이상한 그림이다.

상소윤과 진유성이 같이 산다는 건 비밀이었고, 사촌이라는 것도 비밀이었다.

아니, 엄밀히 따지면 비밀이라고 할 수도 없다.

법적으로 그들은 완전히 남남이니까.

사촌이라는 건 그저 대정고 입학을 위한 거짓말일 뿐이었다.

“그러게요. 외…….”

‘외숙모는 왜 여깄냐’고 물어보려던 진유성이 말을 돌렸다.

유혜연이 눈빛으로 미친 듯이 신호를 보냈기 때문이었다.

진유성이 호칭을 바꿨다.

“어머니는 왜 여기 있으세요?”

“아니, 음, 교감 선생님 전화를 받고…….”

“교감 선생님 전화가 어머니한테 갔다고요?”

옆에서 지종수가 믿을 수 없단 표정으로 반문한다.

상소윤과 진유성이 친할 순 있다.

어렸을 때부터 가족끼리 친구처럼 지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교감 선생이 전화를 하는 건 다른 문제이다.

즉, 교감 선생은 진유성의 ‘보호자’를 상소윤의 어머니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

이는.

‘정혼자……!’

약혼밖에 답이 없다.

지종수의 머릿속에 복잡한 망상들이 떠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친했던 상소윤과 진유성의 가족.

하지만 진유성의 부모님이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시고, 홀로 남은 진유성.

그런 진유성을 품어 준 상소윤의 가족은 마침내 그를 사위로 받아들이기로 결심을 하는데…….

“안 돼!”

“서, 설마. 이미 약혼을……?”

“어머, 얘는 뭐라는 거니?”

유혜연이 말도 안 된다는 듯 말을 흘렸지만, 어딘지 조금 어색해 보였다.

유혜연이 그리고 있는 큰 그림 속에는 진유성을 사위로 받아들인다는 플랜이 있기 때문이었다.

지종수가 상소윤-진유성과 관련된 망상을 펼치는 건, 늘 있는 일이었다.

구박을 받는 것도 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구박 대신 공감을 받았다.

모두들 지종수와 비슷한 상상을 떠올린 것이었다.

그때였다.

함께 교감실에 있던 3학년 교감이 뒤늦게 교실에 도착한 것이었다.

사실 유혜연이 대정고에 도착한지는 좀 됐다.

상소윤의 수업에 방해될까 봐 교감실에 앉아 있던 것이었다.

그러다가 진유성이 정문을 통과했다는 경비실의 연락을 받고 3학년 1반으로 뛰어온 것이고.

교감을 버려놓고.

헐레벌떡 따라오느라 지친 교감이 헐떡이며 말했다.

“유성이 어머니…….”

상소윤의 얼굴을 본 교감은 자신이 말실수를 했다는 걸 깨닫고, 정정했다.

“아니, 진유성 학생 보호자…….”

뭔가 병원에서 쓸 법한 호칭인 것 같아서 멈칫했다.

교감은 결국은 포용력이 넓은 호칭으로 정정했다.

“어머님. 그렇게 막 가시면 어떡합니까? 홀몸도 아니시면서.”

교감은 몰랐다.

자신이 지종수의 이글거리는 눈빛에 기름을 부었다는 걸.

그는 별 생각 없이 말실수를 정정한 것이지만, 3학년 1반 학생들이 듣기엔 아니었다.

지종수의 망상으로 여겨지던 진유성-상소윤의 태중 언약설이 주류 의견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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