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87화>
* * *
SG는 명목상 UN 산하의 평화 유지 기구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애매한 포지션의 단체다.
일단 SG의 덩치가 UN의 덩치보다 더 크다.
UN이 없어진다고 세계가 위험에 빠지진 않지만, SG가 없어지면 세계가 위험에 빠지기 때문이었다.
물론 최근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SG의 지배력이 현저히 줄어들고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SG가 중요한 단체라는 건 틀림없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SG는 그저 UN의 예산으로 굴러가는 기구가 아니다.
UN의 예산은 그들이 운용하는 돈의 10% 남짓이었다.
SG는 각성 마켓을 비롯한 자체적인 사업을 진행하고, 막대한 돈을 벌어들인다.
이는 각성자를 통제할 수 있는 두 가지 수단이 무력과 금력이기 때문이었다.
무력은 비축할 수 없는 것이지만, 금력은 비축할 수 있다.
SG가 돈을 벌어들이는 데 혈안이 되는 것도, 월 스트리트와 더 시티의 큰손인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이런 관계의 복잡성은 SG란 이름을 국가 옆에 둘 때 극대화되었다.
SG와 대한민국 정부 중 어느 쪽이 더 힘이 강할까?
답하기가 굉장히 애매한 문제였다.
한국 내에서라면 정부가 더 강하겠지만, 세계적인 입지로는 SG가 더 강할 수도 있다.
SG의 미인가 각성자 검사 팀이 사전 통보 없이 대정고로 파견된 것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었다.
물론 그들은 평소 같으면 곧장 3학년 1반에 뛰어들었을 것이었다.
각성 검사 팀이 학년 교감에게 방문해 사안에 대해 설명한 것 자체가 대정고의 파워를 증명하는 일이긴 했다.
“진유성 학생 말입니까?”
“네.”
“그 친구가 각성자라고요?”
“아뇨. 각성자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자세한 건 검사를 해 봐야 합니다.”
“흐음. 뭐, 그럴 수도 있겠네요.”
교감도 진유성이 벌이는 기행들을 알고 있다.
아직도 선생님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스승의 날 이벤트를 듣고는 마시던 차를 뿜을 뻔했으니까.
그 정도로 일반적인 감성과 괴리됐다는 건 각성자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솔직히 교장은 진유성이 각성자든, 각성자가 아니든 상관없었다.
그저 그는 자신이 할 일을 할 뿐이었다.
“친절하게 대해 주세요. 진유성 학생이든, 대정고의 다른 학생이든.”
교감의 말에 미인가 각성 검사 팀의 팀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SG란 단체가 힘이 강하다고 해도, 구성원 개개인은 한국인이다.
재벌들에게 밉보여서 좋을 게 없다.
“갑작스런 방문을 양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모님에게 통보해도 되죠?”
“물론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경험상 검사 결과가 나온 이후에 통보하는 게 늘 좋았습니다.”
“왜죠?”
“각성이 되길 바라는 부모님, 혹은 각성이 되지 않길 바라는 부모님 중에는 이런 저런 문제를 야기하거든요.”
이런 저런 문제란 아마 ‘진상’이란 단어를 점잖게 표현한 것일 것이었다.
3학년 교감이 고개를 갸웃했다.
각성이 되지 않길 바라는 부모는 충분히 많을 것이다.
각성이 되는 순간 그 학생은 모든 꿈과 미래를 인류 평화라는 명분에 저당 잡힌다.
그나마 그 꿈이 학문과 관련된 경우라면 연결할 수 있긴 하다.
실제로 과학자들 중에 각성한 이들은 각성 과학으로 빠지기도 하니까.
하지만 예체능의 재능은 정말 답이 없다.
대한민국 최고의 축구 재능을 가지고 있던 유소년이 다시는 축구를 할 수 없다.
각성자가 축구를 한다는 것 자체가 불합리하니까.
한데 각성이 되길 바라는 부모가 있다고?
“왜 각성이 되길 바랍니까? 학생의 미래가 저당 잡히는 꼴인데.”
교감의 질문에 미인가 각성자 검사 팀장은 최선을 다해 표정을 관리했다.
한심한 표정을 지었다가는 눈앞에 있는 교감이 어디까지 힘을 발휘하는지 알게 될 수도 있다.
‘정말 세상 물정 모르는군. 상류 세계에 속했다는 건가?’
팀장이 억지로 관리한 표정으로 말했다.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가 각성일 수 있죠.”
“아. 그럴 수도 있겠군요.”
약간 민망한 침묵이 흘렀다.
검사 팀장은 그 뒤로 적당히 대화를 나누다가 3학년 교감실을 빠져나왔다.
교감실 문을 열고 나오자 실탄, 고무탄, 마취총으로 무장한 3명의 팀원들이 보인다.
미인가 각성 검사 중에는 종종 위험한 일이 발생한다.
자신이 각성했다는 것을 숨긴 채 범죄를 저지른 이들이 우발적으로 반항하기 때문이었다.
“다들 긴장 풀어. 오늘은 괜찮을 거 같으니까.”
“네?”
“실탄 빼고, 고무탄으로 가자.”
“왜요? 각성자가 아닐 것 같습니까?”
“그건 모르겠는데, 우발적으로 반항할 일이 없을 것 같아.”
대정고에 재학 중이라는 건 부모가 부자라는 것이고, 부모가 부자라는 것은 어지간한 죄를 저질러도 겁을 먹지 않게 만드는 요인이다.
설령 각성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돈으로 무마할 수 있을 거다.
성인도 아니니까 더 쉽겠지.
그렇게 판단한 팀장은 팀원들과 함께 3학년 1반으로 향했다.
그리고 3학년 1반의 문을 여는 순간.
“인수 분해!”
손날을 이용해 친구 옷의 단추를 후드득 털어 버리는 학생과 마주했다.
참 해맑은 학생이었다.
그들의 손에 고무탄이 장착된 총이 들려 있고, 방탄조끼에 SG 마크가 있는 걸 봐도 별다른 반응이 없다.
친절하게 대해 달라는 교감의 말을 상기하며 검사 팀장이 입을 열었다.
“혹시 여기 진유성 학생이 누굽니까?”
팀장의 말에 학생들의 시선이 해맑은 학생에게 쏟아졌다.
“전데요?”
그동안 여러 번 미인가 각성자들을 검사해 온 팀장은, 눈앞의 소년이 각성자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인가 각성자들이 SG란 마크를 보는 순간 보일 법한 반응이 아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일은 일인데.
“미인가 각성 검사 팀에서 나왔습니다. 각성 검사를 위해 SG 서울 지부로 동행을 요청 드립니다.”
소년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죠.”
* * *
SG 로고가 박힌 차에서 내린 진유성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광화문 외곽에 있는 SG 서울 지부는 게이트가 폭주했던 지역이다.
그래서인지 재건한 티가 나는 건물들이 큼직큼직하고, 간격이 넓다.
다만 압구정처럼 동 전체가 초토화됐던 건 아닌 듯, SG 서울 지부의 일대만 그러했다.
“여기서부터는 걸어가겠습니다.”
검사 팀장의 말에 진유성은 별다른 반응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진유성은 몇 개의 검색대를 통과하면서 생각에 빠졌다.
‘확 정체를 드러낼까?’
제일 처음 진유성이 각성자 세계에 발도 담그려하지 않았던 것은, 그들의 이권 싸움에 개입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이권은 욕심을 낳고, 욕심은 관계를 낳고, 관계는 은원을 낳고, 은원을 역사를 낳는다.
이게 중원 무림의 역사였다.
무림인들은 한 성의 패자가 되고 싶어서 끝없는 싸움을 벌이는 이들이다.
사실 한국의 무협 소설은 중원의 크기를 실감하지 못한다.
8할 이상의 무인들은 그들이 태어난 성을 벗어나지 않는다.
호북성에서 태어나 호북성의 패권을 다투다가 호북성에서 죽는다.
호북성이 대한민국의 면적보다 크니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아무튼 진유성은 각성자들의 이권 싸움에 개입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각성자라고 해 봐야 애들이나 다름이 없다.
그나마 무인이라고 봐 줄 만한 이는 드벡이 정도.
이런 애들 놀음에 진유성이 개입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모든 이권이 진유성을 중심으로 개편이 될 것이고, 진유성은 다시 한번 중원과 비슷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살짝 마음이 바뀌기도 했다.
전면으로 나설 필요는 없지만, 믿을 만한 아군이 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
‘쌍둥이 마도사들이 자본주의와 각성 세계에 깊이 개입해있는 것 같은데…….’
나중에 마도사들이 코너에 몰렸을 때, 에라 모르겠다며 개판을 칠 수도 있다.
진유성의 몸은 하나다.
신과 싸우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진유성이지만, 그도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사건을 모두 처리할 수는 없다.
“흐음.”
또 하나 신경 쓰이는 것은 신주청이었다.
진유성은 신주청과 생사결을 다툰다면 반드시 이길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신주청도 벽을 넘은 존재이다.
그저 경시할 수는 없다.
사실 진유성은 록펠러나 로스차일드, 아직 이름을 모르는 첫째보다 신주청이 더 까다로웠다.
‘주청이는 각성자로 활동하고 있을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확신할 수 없다.
각성자라고 하더라도 F급으로 힘을 숨기고 있다면 찾을 방법이 없다.
‘혹, 중국의 SSS급이란 놈이 신주청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진유성은 아직 월성이 신주청이란 걸 아직 모르고 있었다.
월성은 공식 석상에서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기에, 외모를 확인할 수도 없었다.
진유성은 그 뒤로도 한참을 고민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이는 꽤 드문 일이었다.
진유성은 결단이 빠른 사람이고, 그걸 밀어붙이는 게 강한 사람이니까.
진유성의 마음을 결정하지 못한 것에는 한 가지 욕심 때문이었다.
‘적어도 고등학교 시절은 지금처럼 보내고 싶다.’
진유성에겐 평범이 특별한 것이었다.
그는 백 년이 넘게 살아왔지만 단 한 번도 평범한 삶을 살아 보지 못했다.
5월이 끝나가는 지금. 그의 남은 고등학교 시절은 1년도 남지 않았다.
수능이 끝나면 사실상 고3이 끝나는 것이니 반년이 남았다고 봐도 무방했다.
진유성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몇 개의 섹터를 통과한 검사 팀장이 진유성을 하나의 방으로 인도했다.
“각성 검사를 진행하겠습니다. 우선 인벤토리 공유를 외쳐 주시겠습니까?”
공항에서 몇 번이나 통과했던 것이었다.
진유성이 양의심공을 이용해 인벤토리 공유를 외쳤다.
그 뒤로도 몇 가지 검사가 이어졌지만, 진유성의 능력을 간파할 수는 없었다.
검사를 하던 중 지겨워진 진유성이 입을 열었다.
“근데 왜 제가 신고된 거죠?”
“신고자의 신분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아니, 신분 말고 이유.”
“음…….”
팀장이 잠깐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신고자의 신분을 추론할 수 있는 이유가 아니니 말해줘도 될 것 같다.
“축구를 너무 잘해서 신고했다더군요.”
“축구?”
“저는 그렇게 전달받았습니다.”
진유성의 머릿속에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종수?”
지종수가 분명하다.
이 비겁한 자식이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못한 것이다.
진유성은 그 뒤로 20분 정도 시간을 더 할애해서 모든 검사를 끝냈다.
“비각성자로 판명 났습니다.”
실시간 검사였던지라 검사 결과를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비각성자 증명서 드릴 테니, 학교와 부모님께 제출하시면 됩니다.”
진유성은 그렇게 서류 몇 장을 들고는 검사실을 나왔다.
* * *
한국의 SS급 각성자이자, 팀 우산도를 이끄는 문수혁은 오랜만에 서울 지부를 방문했다.
그는 최근에 꽤 바빴다.
자유 각성 국가로 선포된 멕시코의 현황을 알기 위해 출장을 다녀왔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혼자 다녀와서 좀 심심했다.
또 다른 SS급 각성자인 차정명은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한국에 남았으니까.
‘귀국하자마자 일이라니.’
문수혁이 그런 생각을 하며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는데, 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문 안에는 두 명의 남자가 있었다.
한 명은 익히 알고 있는 얼굴인 각성 검사 팀장이었고, 또 한 명은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이었다.
“어, 문수혁 씨.”
“안녕하세요.”
“출장 다녀오시는 길이에요?”
“네.”
문수혁이 팀장과 인사를 나누는 사이, 고등학생이 문수혁을 잠깐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팀장이 뒤따라 내리려니 고등학생이 고개를 젓는다.
“안 나와도 돼요.”
“그래도 정문까지는…….”
“괜찮다고.”
고등학생이 손을 휘휘 흔들더니 정문으로 향한다.
“돈이 많아서 그런가 애가 싸가지가 좀…….”
팀장이 중얼거림에 문수혁이 피식 웃었다.
“돈 많은 친구에요?”
“네. 압구정 대정고에서 픽업해 왔거든요. 대정고 아시죠?”
“알죠. 검사 결과는 어떻게 됐어요?”
“각성자가 아니에요.”
“그래요? 왜 신고당했대요?”
“축구를 너무 잘해서요.”
“진짜요?”
“네. 어이없죠?”
문수혁은 피식 웃으며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최상층인 12층을 누르려다가 문득 놀랐다.
‘땀이……?’
손바닥이 축축하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승모근이 뻣뻣하고, 온 몸의 근육이 긴장한 상태이다.
“이 무슨……?”
갑작스런 신체의 변화에 문수혁은 당황했지만,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번뜩 드는 생각은 식스센스였다.
혹시 주변에 큰 게이트가 예정되어 있는데, 자신이 감지한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팀장님, 혹시 한국에 고위 게이트 예정된 거 있습니까?”
“아뇨? 이번 달은 완전 F급 파티던데요?”
“음…….”
“왜 그러세요?”
“아닙니다.”
문수혁은 그 뒤로 입을 다물었고, 팀장도 굳이 말을 꺼내진 않았다.
그때 팀장이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교감님. 검사 팀장입니다. 네, 방금 검사 끝났고, 비각성자로 판별 났습니다. 네, 네.”
고개를 주억거리던 팀장이 말을 잇는다.
“진유성 학생에게 관련 서류들을 인계했습니다.”
때마침 목적지 10층에 도착한 팀장이 문수혁에게 눈인사를 건네고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데.
탁.
갑자기 문수혁이 그의 팔목을 잡았다.
“방금 이름이 뭐라고 했죠?”
“네? 아, 잠깐 전화 좀…….”
“이름이 뭐냐고요.”
문수혁의 기세에 당황한 팀장이 입을 열었다.
“진유성이라고…….”
문수혁의 머릿속으로 독도의 S급 게이트가 스쳐 지나갔다.
거기서 만났던 정체불명의 각성자.
그리고…….
“내 이름은 진유성이다.”
그의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