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85화>
진유성에게 가장 먼저 주목한 사람은 뮤직비디오 촬영을 따라온 MK 엔터테인먼트의 팀장이었다.
팀장급이 뮤직비디오 촬영에 따라오는 경우는 드물지만, 오늘은 예외였다.
대정고에는 돈이 너무 많아서 위험한 인물들이 많다.
촬영 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현장 매니저나 뮤직비디오 촬영 팀에게 맡기는 건 불안하다.
평소 행인들을 통제하는 것처럼 대정고 학생들을 통제했다가는 사달이 날 수도 있었다.
이런 생각으로 MK 엔터테인먼트의 팀장이 따라 나선 것이었다.
‘역시 대정고네.’
여성 4인조 아이돌인 퍼스널 컬러는 현 시점에서 가장 인기 있는 걸 그룹이었다.
음악 방송 1위도 차지했고, 인기 예능들에도 쉴 틈 없이 출연하고 있다.
이런 퍼스널 컬러가 보통의 고등학교에서 뮤직 비디오 찍었다면, 그 학교는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러나 대정고는 조용했다.
그들의 촬영을 지켜보는 학생들은 서른 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그나마도 사진을 찍는다거나 시끄럽게 굴지 않았다.
그냥 쓱 와서 구경하고는 쓱 사라졌다.
엄한 가정 교육을 받은 이들이라 촬영에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것인지, 정말 관심이 없는지 모를 정도였다.
“날 이렇게 대한 학교는 네가 처음이야.”
“우리가 학교에 온 적이나 있냐?”
“왜 없어. 저번에 찍은 예능도 학교에 등교하는 형식이었는데.”
“근데 진짜 조용하다. 혹시 우리 인기가 식어 버렸나?”
퍼스널 컬러 멤버들도 정적인 촬영 현장에 조금 놀란 모습이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팀장은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딱히 구경꾼들을 통제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그 여유는 주변을 돌아보는 것으로 이어졌고, 팀장은 이내 누군가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뭐야? 저 친구?’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는 학생 중 한 명이었다.
말도 안 되는 드리블로 수비수들을 농락하고 골대에 골을 넣는 모습.
무슨 스포츠 소년 만화에 나올 것 같은 장면이다.
물론 MK 엔터의 팀장이 그저 학생의 축구 실력에 시선을 빼앗긴 것은 아니었다.
그는 축구 매니저가 아니라 연예인 매니저니까.
그가 주목하는 것은 저 학생의 스타성이었다.
거리가 좀 있어서 얼굴이 제대로 보이진 않지만, 연예계 경력 20년이 신호를 보낸다.
얼핏 보이는 저런 식의 이목구비는 절대 못생길 수가 없다고.
아마 가까이서 보면 생각보다 더 근사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얼굴보다 중요한 건 움직이는 모습이다.
수많은 연예인 지망생들이 카메라 테스트를 하고 놀라는 건, 내 모습이 생각보다 근사하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보편적인 것은 불균형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체에 불균형이 있다.
걸을 때 왼쪽에 좀 더 무게 중심을 둔다든지, 몸 전체의 균형이 오른쪽에 살짝 쏠렸다든지, 거북목이라든지, 등이 좀 휘었다든지.
신체의 불균형은 없을 수가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불균형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 카메라 앞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불균형은 멋의 문제로 이어진다.
여배우 중에 늘 ‘연기가 괜히 어색하다.’라는 평가를 받는 이가 있었다.
현재는 톱스타의 반열에 오른 이였는데, 그녀가 톱스타에 오르게 된 계기는 아주 간단했다.
자세를 교정했다.
1년에 걸쳐서 모델처럼 움직일 수 있도록 자세를 교정했다.
움직이는 방법을 교정한 것만으로도 그녀는 ‘연기가 늘었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연기를 할 때마다 어딘지 어색해 보였던 이유가 자세에 있었던 것이었다.
모델과 운동선수 출신들이 쉽게 연예인이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모델과 운동선수는 신체의 불균형을 최소화한 이들이다.
MK 엔터의 팀장이 축구를 하는 학생에게 시선을 빼앗긴 것도 이 때문이었다.
‘아름답다.’
움직이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다.
성큼성큼 걸어 나가는 모습도 멋지고, 수비를 위해 잔발을 치는 모습도 멋지다.
자세를 낮춰도 허리는 늘 쭉 펴져 있고, 전력 질주를 해도 어디 하나 균형이 무너지는 곳이 없다.
‘저 남자. 갖고 싶다.’
팀장은 이름 모를 학생을 구경하면 할수록 욕심이 샘솟는 걸 느꼈다.
캐스팅을 하고 싶다.
회사로 데려가서 계약서를 쓰고 싶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이곳이 대정고라는 것.
‘체육 특기생이겠지?’
저 정도 축구 실력이라면 아마 대정고의 체육 특기생일 것이다.
한국 체육의 헤게모니를 거머쥐겠다는 대정고의 야심은 널리 알려져 있다.
오죽하면 U-17에 출전하는 청소년 대표팀의 3분의 1이 대정고의 학생들이겠는가.
대정고는 체육 특기생들에게 엄청난 지원을 하고, 엄청난 편의를 봐준다.
뿐만 아니라 올림픽 국대나 좋은 팀에 들어갈 기회가 생기면 명예 졸업장을 줘 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정고 출신의 체육 특기생을 연예계로 꼬시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지금 말을 안 걸어보면 너무 후회할 것 같은데.’
팀장이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였다.
멀지 않은 곳의 남학생 둘이 떠드는 것이 귀에 들어왔다.
“진유성, 쟤는 축구하는 거 보면 신기하지 않냐?”
“알고 보면 쟤가 메시나 호날두 급의 재능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어.”
“내가 저 정도로 축구 했으면 선수 했겠다. 아니면 체육 특기생으로 들어가거나.”
“에이, 그럼 부모님이 가만히 있겠냐.”
“진유성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재단만 있다던데?”
“진짜? 무슨 재단?”
“그것까진 모르겠는데. 아무튼 부모님은 돌아가셨댔어.”
“아, 그래서 진유성이 지 맘대로 사는 거구나?”
“그치. 근데 뭐 또 막상 공부는 잘하잖아. 애가 또라이라 그렇지.”
팀장은 학생들의 대화를 귀담아 들으며 가능성을 점쳤다.
어쩌면 연예계로 꼬시는 게 가능할지도 모르겠다고.
또라이라고는 하지만, 연예계에서 또라이는 칭찬에 가깝다.
일반적인 감성과 괴리된 또라이들이 이 바닥에서는 성공하는 법이니까.
잠시 고민하던 팀장이 퍼스널 컬러 멤버들에게 다가갔다.
“얘들아. 저기, 축구장에서 공 차는 사람들 보이지?”
“네. 왜요?”
“아니 저 친구들은 풀샷으로 뮤직 비디오에 나올 확률이 있거든. 그러니까 음료수라도 좀 가져다주는 게 낫지 않을까?”
“어, 저는 찬성요.”
손을 번쩍 든 막내가 팀장에게 소곤거렸다.
“여기 전부 재벌 2세라면서요. 교정이 너무 예뻐서 약간 드라마 속으로 들어온 느낌이에요.”
“그래? 드라마 같아?”
“네.”
“정말로?”
“네. 왜요?”
“그러면…….”
팀장이 팀의 막내에게 뭔가를 소곤거렸다.
* * *
MK 엔터테인먼트의 식구들이 뭔가를 계획하고 있을 때, 운동장을 쳐다보는 또 다른 사람이 있었다.
“역시 이상해…….”
그는 대정고의 보건 선생인 정윤찬이었다.
정윤찬이 대정고에 부임하고 처음으로 한 활동은 하이난으로 수학여행을 따라 간 것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정윤찬은 보았다.
농구를 하는 진유성의 모습을.
세포 과학적으로 인간과 전혀 다르지 않은 각성자들이 어떻게 인외(人外)의 힘을 내는가?
이것은 현대 의학이 아직까지 풀지 못한 숙제였고, 주기적으로 연구되는 주제였다.
정윤찬은 수련의 시절에 이러한 연구에 보조로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때 각성자들의 움직임을 담은 의학 자료들을 많이 보았다.
진유성의 움직임은 그것과 꼭 닮아 있었다.
당시의 정윤찬은 이런 진유성을 SG에 미인가 각성자로 신고해야하나 고민했었다.
그가 신고하지 않은 이유는 NBA 선수들의 영상을 찾아봤기 때문이었다.
전설로 분류되는 선수들의 움직임을 보면, 진유성의 그것과 흡사하다.
중력을 거스르는 듯이 점프를 하고, 남들보다 체공 시간이 길다.
그러니 진유성의 움직임 하나만 두고 신고를 하는 건 좀 애매하다 싶은 것이었다.
진유성에게 세계 최고의 재능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오늘.
마음이 바뀌었다.
‘한 사람이 농구와 축구 둘 다에 재능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꽤 괜찮은 수준의 재능이라면 그러려니 할 수 있다.
운동 신경이라는 게 특정 종목에만 통용되는 건 아니니까.
그러나 최고 수준의 재능이라면 문제가 된다.
정윤찬은 영국 여행을 가서 프리미어리그를 본 적이 있다.
그때 그는 세계 최고의 선수들을 보았고, 그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진유성의 움직임이 그들보다 더 뛰어나다.
아무리 상대가 고등학생들이라고 해도 말이었다.
분명 이상한 일이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군.’
정윤찬은 진유성을 SG에 신고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이는 그가 진유성을 싫어하거나, 나쁜 마음으로 행하는 행동이 아니었다.
미인가 각성자를 SG에 신고하는 건 각성자를 위함이었다.
각성자는 오랫동안 경험치를 얻지 못하면 고통을 느끼니까.
마정석을 갈아 먹으면 각성 고통을 벗어날 수 있다지만, 이는 임시 방편일 뿐이다.
진유성이 각성자라면 SG에 정식으로 등록을 하고 헌팅을 해야 했다.
정윤찬이 핸드폰을 들었다.
[SG 신고 서비스 센터입니다. 신고 대상이 게이트면 1번, 각성범죄면 2번, 아이템 불법…….]
안내 문자가 이어지고, 정윤찬은 6번을 눌렀다.
6번이 미인가 각성자에 대한 신고였다.
잠시 뒤 상담원이 연결되었다.
상담원의 목소리는 좀 피곤해 보였다.
2차 각성자가 탄생한 이후로 미인가 각성자를 신고하는 전화가 많아졌다.
하지만 그 중 95% 정도는 헛소리였고, 5%만 진실이었다.
-반갑습니다. 신고자님. 우선 신고하고자 하는 대상과 신고 이유를 녹취하겠습니다.
정윤찬이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저는 압구정 대정고등학교의 보건 선생입니다. 신고 대상은 대정고에 재학 중인 진유성이란 학생입니다.”
정윤찬의 정중한 말투에 상담원의 태도가 살짝 바뀌었다.
대정고라면 유명한 학교였고, 그곳의 보건 선생이라면 적어도 장난 전화를 하진 않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물론 대정고의 보건 선생이라는 말 자체가 거짓일 수는 있겠지만, 목소리의 정중함을 생각해 보면 아닐 것 같다.
-신고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움직임이 이상합니다. 일반적인 사람의 움직임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어떤 움직임 말씀이시죠?
“그게…….”
고민하던 정윤찬이 말했다.
“축구와 농구를 너무 잘합니다.”
-……축구와 농구요?
“네.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는 건 알지만, 세계 최고의 선수들처럼 축구와 농구를 합니다. 고등학생이요.”
잠시 침묵하던 상담원이 입을 열었다.
-대정고 홈페이지에 보건실의 전화번호가 있는데, 그 번호로 전화를 드려도 되겠습니까?
신고자가 정말 대정고의 선생인지를 확인해 보겠다는 소리였다.
정윤찬은 흔쾌히 수락했고, 잠시 뒤 보건실로 전화가 걸려 왔다.
-확인되었습니다. 신고자의 신분은 철저히 익명으로 보장됩니다.
정말로 대정고등학교의 양호 선생이라는 게 확인되자, 뒷일은 일사천리였다.
-지금 바로 미인가 각성자 검사팀을 파견하겠습니다. 거리 상 가장 가까운 서울지부에서 파견됩니다.
“만약 각성자로 판별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학생에게 피해는 없겠죠?”
-범죄 행위에 가담한 사실이 없다면 별다른 문제없이 서울지부의 한지후 소장님에게 인계될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 * *
진유성은 복수 겸 축구 경기가 끝나고 기분이 굉장히 좋았다.
감히 자신을 놀린 건방진 지종수에게 천벌을 내려 줬기 때문이었다.
그때 실내 체육관에서 탁구를 쳤던 정새롬과 상소윤이 다가왔다.
“야, 진유성. 너 지종수 괴롭혔다며?”
“괴롭힌 적 없다.”
“계속 따라다니면서 괴롭혔다던데?”
“괴롭힌 게 아니라 천벌을 내려 준 것이다.”
“그게 그거 아니야?”
“아니다. 괴롭힘은 부당한 것이고, 천벌은 마땅한 것이다.”
상소윤이 진유성과 대화를 나눌 때였다.
학생들이 조금 시끌시끌해졌다.
그들에게 MK 엔터테인먼트의 퍼스널 컬러가 음료수를 들고 다가왔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