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84화>
Quest 33. 복수하는 천마님
보통의 고등학교에서 체육 시간에 축구를 하면 어떤 식일까?
학교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아마 운동장에 모여서 적당히 공을 찰 것이었다.
경기의 정식 인원 수인 22명을 맞추는 경우가 드물고, 경기 시간을 정해 두지도 않는다.
그냥 체육 시간이 끝나면 경기도 끝이 난다.
뿐만 아니라 심판을 보는 이도 없다.
심판이 없으니 반칙이 일어나도 대충 여론으로 결정한다.
너무 심한 반칙인 것 같으니 프리킥을 주고, 적당한 몸 싸움 같으니 그냥 진행하는 식으로.
아마 축구부원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고등학생들은 이런 식으로 축구를 할 것이었다.
하지만 대정고는 아니었다.
“전후반 30분, 휴식 시간 5분으로 진행하겠습니다.”
놀랍게도 대정고는 체육시간에 정식 심판을 두고 축구를 한다.
경기에 투입되는 심판들은 대한 축구 협회에서 공인한 3급 이상의 심판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는 이들이었다.
심판 자격증 3급이 엄청난 전문 자격증은 아니다.
일반인도 노력을 기울이면 취득이 가능한 자격증이다.
하지만 고등학교 체육 시간에 심판을 맡을 수준의 자격증은 절대 아니었다.
중등부 선수 대회에서는 주심까지 가능하고, 고등부 선수 대회에서는 부심까지 가능한 자격증이니까 말이었다.
심판을 두는 건 축구뿐만이 아니었다.
농구나 야구에도 심판을 두었다.
남들이 들으면 대정고가 돈이 많아서 돈지랄을 하는 거라고 생각할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생각보다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대정고가 설립된 초창기에 벌어진 사건 사고들 때문이었다.
학생들끼리는 운동을 하다가 감정이 격해져 주먹다짐을 할 수도 있다.
피 끓는 10대의 청소년들이 학교를 다니다 보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런 감정적인 충돌이 부모님 선까지 올라가면 대정고 입장에서도 골치가 아파졌다.
오랜 시간 함께한 파트너십 기업들의 사이가 고작 축구로 인해 틀어지는 건 어이없는 일이니까.
물론 두 기업에 쌓여 온 불만이 없었다면 일이 그렇게까지 진행되진 않았을 것이긴 했다.
그러나 어찌 됐든 불만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 일이 대정고에서 벌어진 셈이었다.
기업이 파트너십을 해제하는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더라도 소소한 문제들이 꾸준히 발생하자, 대정고는 결단을 내렸다.
공인 자격증이 있는 심판들을 계약직으로 잔뜩 고용하기로.
때마침 엘리트 체육의 헤게모니를 거머쥐겠다는 목표를 세웠을 때라서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대정고의 결단은 성공적이었다.
심판이 이성적으로 경기를 판단하니, 학생들의 감정적인 충돌이 확 줄었다.
학생들끼리 반칙이다, 아니다로 싸울 이유가 없어진 셈이었다.
지금이야 주심 한 명만 심판을 보지만, 순수 재벌가의 자제들만 다니던 대정고 초창기에는 부심까지 두고 경기를 뛰었었다.
이처럼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게 대정고의 체육 심판이었다.
오늘 1학년 3반과 3학년 1반 축구 경기의 심판을 맡은 3급 심판 도창수가 동전을 던졌다.
붉은색 조끼를 입은 3학년 1반의 선축으로 경기가 시작되었다.
‘진유성이네.’
도창수는 붉은 조끼를 입은 진유성을 보며 눈을 빛냈다.
심판들은 학생들과 소통할 일이 없기 때문에 이름을 아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경기를 하다보면 자기들끼리 이름을 부르지만, 억지로 기억하지 않는 이상 잊어버리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진유성은 예외였다.
진유성은 심판들에게 아주아주 유명한 학생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축구를 너무 잘하니까.
오죽하면 심판들이 진유성의 영상을 찍어서 프로 팀에 보낼 생각을 했을까.
돈이 차고 넘치는 대정고 학생만 아니었다면 실현에 옮겼을 계획이었다.
그만큼 진유성의 플레이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심판들 중에는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조기 축구회의 경기를 맡는 이들도 있는데, 거기에는 종종 선수 출신의 조기 축구 회원들이 있다.
선수 출신이 공을 다루는 솜씨는 일반인과 차원이 다르다.
한데, 진유성이 공을 다루는 솜씨는 그런 선수 출신조차 아득히 넘어선다.
‘저 친구는 대한민국 축구 선수가 되어야 할 인재인데…….’
도창수가 아쉬움에 혀를 찼다.
돈이 너무 많은 게 문제다.
그사이 경기는 진행되었다.
“여기! 나!”
지종수가 소리를 지르며 전방으로 달려간다.
심판들 사이에서 축친놈으로 불리는 지종수도 나름 유명 인사였다.
진유성처럼 이름까진 알진 못하지만 제법 공을 잘 차는 친구라는 인식이 있었다.
워낙 축구를 좋아해서 경기만 있으면 어떻게든 용병으로 뛰려고도 하고.
지종수가 앞으로 나서자 애매한 곳에서 공을 잡고 있던 고인수가 에라 모르겠다며 공을 뻥 찼다.
우연이었다.
고인수가 찬 공이 수비수의 축구화에 걸려서 역회전을 받은 건.
역회전을 받은 공이 아주 아름다운 각도로 지종수의 발로 날아든 건.
지종수를 마크하려던 수비수가 넘어진 건.
공간이 뻥 뚫린 건.
모든 게 우연이었다.
그리고 지종수는 우연히 열린 공간으로 침투해 골을 넣을 수 있는 실력자였다.
‘선취점이다!’
지종수가 희열에 찬 눈으로 아름다운 각도로 날아오는 공을 바라보며, 자신의 발로 기록할 선취점을 예상했다.
원터치로 툭 받아서 차 놓고 달리면 끝이었다.
너무 세게 차서 골키퍼한테 안겨 주는 실수만 범하지 않으면 된다.
그 순간이었다.
누군가가 엄청난 속도로 지종수에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수비수인 줄 알았다.
하지만 얼핏 보니 붉은 조끼를 입고 있었다.
1학년은 파란색 조끼를 입고 있으니, 붉은 조끼를 입은 건 우리 팀이다.
달려오는 사람은…….
‘진유성?’
진유성이었다.
진유성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지종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수비수들의 시선을 분산시키려는 것 같았다.
진유성이 이대로 쭉 달려가서 좌측면으로 파고들면, 패스를 한다는 선택지도 생긴다.
수비수들이 우왕좌왕할 모습이 벌써부터 보였다.
절호의 찬스가 완벽한 찬스로 바뀌는 셈이었다.
‘쩐다.’
지종수는 진유성의 플레이에 감탄했다.
그야 말로 완벽한 축구 지능!
이제 볼을 잡고, 진유성에게 패스하는 것처럼 시선을 한 번 주고, 치고 달리면…….
“컥!”
지종수의 상상은 실현되지 못했다.
진유성이 공중 볼을 따내기 위해 지종수에게 어깨를 들이민 것이었다.
분명 공은 지종수가 받기 더 좋은 위치였지만, 진유성의 몸싸움 실력은 굉장했다.
균형을 잃고 손쓸 틈도 없이 나가떨어졌다.
심지어 반칙도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야, 이 미친놈아!”
두 사람이 같은 팀이라는 것이었다.
지종수가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진유성은 관심도 없었다.
볼을 그대로 몰고 가서 골대에 골을 넣었다.
최종 수비수는 속도 경합이 안 될 거라고 판단했는지 달려들지 않았고, 골키퍼는 막을 엄두도 못 냈다.
선취점이었다.
골을 넣고 돌아오는 진유성을 향해 지종수가 우다다다 달려갔다.
“뭐하는 거야!”
그러나 진유성이 훗 하고 웃었다.
“볼 터치조차 못하게 만들어 주지.”
“뭐?”
“벽을 느껴라.”
“아니, 미친놈아 우리 같은 팀이라고!”
“공없찐.”
지종수를 비웃은 진유성이 하프 라인으로 돌아갔다.
지종수는 그 순간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을 깨달았다.
아침에 면허 없다고 놀린 것에 대한 복수인 셈이었다.
* * *
도창수가 선수들과 함께 달려가며 공에 집중하는데.
촤악-!
소름끼치게 아름다운 태클이 공을 빼앗는다.
그야말로 완벽한 태클이다.
옆에서 들어갔지만 반칙이라고 판단할 근거는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
아름답게 공을 빼내고 무릎 탄력을 이용해 몸을 일으키고 그대로 달려 나간다.
문제는…….
“미친놈아!”
아군이 아군한테 뺏겼다는 것이었다.
도창수는 혼란에 빠져 있었다.
분명 뭔가 잘못되었다.
진유성은 축친놈에게 연결되는 모든 공을 빼앗고 있었다.
패스를 커트하기도 하고, 볼터치를 하는 순간 몸싸움을 걸어 루즈 볼을 만들며, 공중 볼 경합이 치열하다.
박지성이 피를로에게 보여 줬던 전담 마크 수준이었다.
근데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같은 팀이잖아.
축구에는 테크니컬 파울(스포츠맨십에 어긋난다고 판단되는 행위) 규정이 없다.
물론 도를 지나치는 행위를 하면 파울을 불긴 하지만, 이건 심판의 자의적인 판단이다.
하지만 진유성의 플레이는 어떤가.
고의성이 보이긴 하지만 경기를 방해하진 않는다.
축친놈에게 연결되는 공을 빼앗은 다음에 아름다운 공격으로 전개한다.
그러니까 경기 자체를 방해하는 것도 아니었다.
아군이 아군에게 몸싸움을 거는 것도 파울은 아니다.
이건 프로 리그에서 수비수 둘이 공격수 하나를 마크하다 보면 벌어지는 일인데.
공격수를 마크하려다가 아군 수비수들끼리 충돌하는 경우가 그렇다.
하지만 거기서 휘슬을 불 순 없다.
파울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양 팀 선수를 기준으로 신체적인 위협을 가했는가이기 때문이었다.
즉.
도창수는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으아아아아!”
열이 받은 지종수가 공을 잡은 진유성을 향해 백태클을 시도했다.
위험한 태클이었다.
하지만 진유성은 가볍게 공을 빼내고는 태클을 뛰어넘었다.
적에게 했다면 파울임이 분명했지만, 인플레이 상황이다.
휘슬을 못 불겠다.
‘어, 어떻게 해야 하지?’
도창수가 혼란에 빠진 사이 진유성은 해트트릭을 완성했다.
골을 넣은 것이었다.
“공없찐.”
진유성은 세리머니로 지종수를 농락했다.
한편, 1학년 3반의 학생들은 패닉에 빠져 있었다.
진유성이 축구를 잘한다는 사실은 익히 들었다.
청소년 국가 대표팀 선수들을 상대로도 압도적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전부 믿진 않았다.
돈 많은 고등학생들은 기본적으로 허세 기능을 장착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1학년들은 진유성이 경기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이제 입학한 지 2달밖에 안 됐으니까 말이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는 경계하되, 어느 정도는 방심하고 있었다.
한데, 눈앞에서 벌어진 일은 어떤가.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진유성은 너무 빠르고, 너무 단단하고, 너무 부드러웠다.
무슨 프로 선수 같다.
아니, 프로 선수가 와도 이 정도는 아닐 것 같았다.
“막을 수 있을까……?”
“4골은 안 줘야지. 열 받잖아.”
“저 형만 막자.”
“그래. 다른 사람한테는 골 좀 먹혀도, 저 형만 막아 보자.”
1학년 3반의 학생들이 각오를 다지는 사이, 누군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내가 전담 마크를 할게.”
“네?”
“나머지는 지역 마크를 해서 돌파할 공간을 막아 봐.”
“네?”
“반드시 막는다고는 못하겠지만, 집요하게 따라다니겠어.”
“네?”
1학년 3반의 학생들은 말을 하는 사람을 미친놈처럼 쳐다보았다.
붉은색 조끼를 입고 있는 지종수가 진유성을 막겠다고 다짐하고 있으니까.
그사이 고인수가 진유성에게 볼을 차 주며 킥오프되었다.
진유성을 공을 잡자마자 달려 나갔다.
촤악-!
한 명을 제치고 두 명을 제쳤다.
엉거주춤 서 있는 놈의 다리 사이로 넛 메그(알까기)를 먹이고, 프리플랩으로 제치고, 굴욕적인 2연 사포로 상대를 농락했다.
“으아아아아!”
처음으로 제쳐진 놈이 후다다닥 달려오더니 어깨 싸움을 걸었다.
하지만 진유성은 상체를 가볍게 터는 것으로 무게 중심을 무너트리고 달려 나갔다.
마르세유 턴, 팬텀 드리블, 넛 메그, 다시 마르세유 턴.
마지막으로 골키퍼를 제치니 텅 빈 골대가 보인다.
혼자서 무려 12명-지종수 포함-을 제친 것이었다.
툭.
진유성은 가볍게 골을 만들고는 지종수에게 말했다.
“공없찐.”
“으아아아아아!”
전후반 60분이 끝나 가는 동안 볼을 30초 이상 만지지 못한 지종수가 비명을 질렀다.
이렇게 재미없는 축구는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 * *
진유성이 지종수를 농락하는 사이, 그들의 축구 경기를 지켜보는 시선이 제법 있었다.
뮤직비디오 촬영을 나온 촬영 팀과 그 촬영 팀을 구경 나온 대정고의 구성원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