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82화>
* * *
콜 헨드릭의 귀화 소식이 전 세계를 강타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다.
지금이야 아놀드 벡의 이름에 가려져 SS급 각성자 중 한 명이 되었지만, 그래도 콜 헨드릭이다.
각성 사회 초창기에 미국과 SG를 대표하던 각성자며, 아놀드 벡의 뒤를 이어 SSS급에 오를 것이란 기대를 받던 각성자.
유쾌한 성정 때문에 TV에도 곧잘 출연했으며, 영화에도 카메오 형식으로 몇 번 등장했다.
콜 헨드릭은 여러모로 대중들과 친근한 각성자였다.
그런 그가 엔리케 카를로와 멕시코시티의 궁전에서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 공개되자, 파장은 컸다.
└조작된 사진이 분명해.
└멍청한 멕시코 놈들은 저딴 조작이 가능할 거라고 믿는 건가?
└글쎄. 지능 수준이 처참해서 그럴 수도 있지. 곧 콜 헨드릭이 인스타 라이브라도 켜지 않겠어?
물론 사진의 진위 여부를 의심하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 시각 SG는 콜 헨드릭이 귀화한 게 사실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휴대 전화 위치를 추적하니, 그가 멕시코에 있었던 것이었다.
또한 계좌를 추적하니, 그의 모든 자산들이 현금화되어서 스위스의 비밀 은행에 잠들어 있었다.
이는 콜 헨드릭이 귀화를 준비했다는 물적 증거였다.
“콜 헨드릭이 사고 친 것들을 싹 끄집어내!”
“하지만 그러면 그동안 콜 헨드릭을 비호한 SG에 대한 비난 여론이 쏠릴 겁니다.”
“최근에 사고를 친 걸로 자료들을 조작하면 되잖아! 각성 감옥이 두려워서 멕시코로 넘어갔다고 선전해!”
대부분의 각성자들은 크고 작은 사고를 친다.
개중에는 사소한 사고들도 있지만, 세상에 밝혀지면 치명적인 사고들도 많다.
SG는 의도적인 중범죄를 저지른 각성 범죄자들을 각성 감옥에 넣는다.
하지만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사고라면 각성자의 등급을 고려한다.
전 세계에 100명도 되지 않는 SS급 각성자라면, 어지간한 사고를 쳐도 SG에서 비호해 줄 수밖에 없었다.
SG는 그러한 자료들을 전부 끄집어 와서 콜 헨드릭이 감옥에 가는 게 두려워 멕시코에 숨었다고 선전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보, 본부장님!”
“왜! 콜 헨드릭과 연락이라도 됐어?”
“엔리케 카를로가 죽었답니다!”
“뭐? 그게 무슨 개소리야!”
“엔리케 카를로가! 시신으로 발견되었습니다!”
1시간도 지나지 않아, 전 세계에 3명뿐인 SSS급 각성자의 사망 소식이 전 세계를 강타했다.
* * *
충격적인 일이 전 세계를 술렁거리게 만들었다.
멕시코에 귀화한 SS급 각성자 콜 헨드릭.
인류의 정점에 서 있는 SSS급 각성자 엔리케 카를로.
두 사람은 한날한시에 멕시코시티에서 사망한 것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음모론이 들끓었다.
콜 헨드릭이 멕시코시티에 잠입해 엔리케 카를로와 함께 죽었다거나.
귀화 의사를 밝힌 콜 헨드릭을 실수로 죽인 엔리케 카를로가 당황해 사망을 연기한다거나.
제3의 각성자가 두 사람을 죽였다거나.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튀어나와서 둘을 죽였다거나.
이 모든 게 SG의 조작이라거나.
수많은 음모론이 만들어지고,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대중들은 SG에 진상을 밝힐 것을 요구하고 있었지만, 이는 SG도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SG조차 두 사람이 왜 죽었는지 모르니까.
다만 사망 당시의 사진을 통해 콜 헨드릭은 심장을 관통당해 죽었고, 엔리케 카를로는 목이 베어져서 죽었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즉, 각성자의 소행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었다.
SG는 혹시 아놀드 벡이 멕시코시티에 잠입했던 게 아닌가 의심하고 있었지만, 그 의심은 곧 사라졌다.
두 사람이 죽을 당시 아놀드 벡이 미국에 있었다는 증거가 너무 많았다.
“언노운 엠페러의 소행이 아닐까요?”
“한국의 비밀 병기?”
“그렇습니다.”
“그자가 어떤 동기로?”
“그거야 모르죠. 그들 간의 원한 관계가 있었을 수도 있고, 국가 간의 이슈가 있었을 수도 있죠.”
“흐음…….”
언노운 엠페러는 한국의 각성자들과 함께 독도의 S급 게이트를 클리어했다.
하지만 보고에 따르면 거의 혼자서 클리어한 것과 다름이 없다.
이는 아놀드 벡조차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언노운 엠페러가 SSS급의 벽을 넘지 않았냐는 추측도 많았다.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확신할 순 없군.”
“그리고 멕시코에 있는 요원에게서 들어온 정보가 있습니다.”
“뭔데?”
“엔리케 카를로의 현금 자산이 전부 사라졌다고 합니다.”
현금 자산이라고 하면 금괴나 달러 같이 추적할 수 없는 돈을 뜻했다.
“두 각성자를 죽인 인물이 가져갔을 확률이 높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금액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5억 달러 이상, 10억 달러 미만으로 추측됩니다.”
“……많이도 모았군. 돼지 같은 자식.”
멕시코의 황제를 자처했으니 재산이 많은 건 당연하지만, 현금 자산이 5억 달러가 넘는 건 지나치다.
그럼 채권이나 계좌에는 얼마나 많은 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일까?
거기까지 생각한 SG의 본부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엔리케 카를로의 죽음이나 그의 자산은 이제는 중요한 일이 아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멕시코가 무주공산이 되었다는 것이다.
엔리케 카를로는 권력을 나누는 형태의 지배자가 아니었다.
2인자조차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죽은 현재는 멕시코를 경영하는 이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성자가 너무 많아서 게이트 피해는 없다.
국가 전체가 자유 각성 지대의 형태로 변모한 것이었다.
‘이 경우에는 자유보다는 방임이란 단어가 어울리겠군.’
어쩌면 멕시코는 폭력의 시대를 지나 야만의 시대에 도래한 것 같다.
정부가 없는 각성자들의 약육강식 시대.
하지만 그렇게 되면 멕시코는 잠재적인 시한 폭탄이다.
야만의 끝에는 보통 정복 전쟁이 기다리고 있을 거니까.
무정부 각성자들이 주변 국가에 어떤 피해를 끼칠지도 모르고.
“기업들에게 컨소시엄을 요구해서 각성 마켓을 오픈해야해.”
“멕시코에 말입니까?”
“그래. 각성자들의 생활 수준이 떨어지면 침략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어.”
본부장은 선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인륜을 저버리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는 이 같은 결정이 자유 각성 시대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캘리포니아가 자유 각성 지대가 된 것과, 멕시코 국가 전체가 자유 각성 지대가 되는 것은 무게감이 다르다.
하지만 멕시코를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무수한 국가와 국민들이 피해를 본다.
Safe Gate.
게이트에게서 안전을.
SG는 그들의 존재 이유를 위해서 스스로에게 총구를 당겼다.
자유 각성 시대의 시발점이었다.
* * *
합천에 도착한 진유성은 상림에게 전화를 걸었다.
게이트를 통해 이동했기 때문에 멕시코에서 한국으로 순식간에 돌아올 수 있었다.
멕시코에서 한국으로 오는 시간보다, 서울에서 합천으로 내려가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으니 말이었다.
잠시 통화 신호가 들리더니 전화가 연결된다.
그리곤 상림의 호들갑이 들린다.
-교주님! 교주님이 엔리케 카를로를 죽이신 겁니까?
“그래.”
-왜 죽이셨어요? 걔가 반말했어요?
“야, 내가 반말 좀 한다고 사람 죽이냐?”
-음, 그럼 놈이 나쁜 놈이었나 보네요.
“나쁜 놈이었지.”
진유성은 상림의 호들갑에 대충 반응하고는 숙소의 위치를 물었다.
합천에는 호텔이 없어서, 상림은 해인사 인근의 펜션에서 머물고 있었다.
잠시 뒤, 진유성은 상림의 숙소에 도착했다.
펜션 마당에서 커피를 마시며 건축 설계도를 들여다보고 있던 상림이 기척을 읽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오셨어요?”
“그래.”
“밥은 드셨어요?”
“아니.”
진유성은 조금 복잡한 마음으로 상림을 쳐다보았다.
상림과 진유성 사이에는 언제나 신주청이란 이름이 있었다.
천마신교의 1인자가 진유성이라면, 2인자는 신주청이고, 3인자는 상림이었다.
그들은 멸마대에서도, 생존대에서도, 천마신교에서도 함께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왜 그렇게 보세요?”
딱!
“아! 왜 때리세요!”
“생각해 보니까 괘씸해서.”
“뭐가요?”
“상실의 공간에서 제일 소중한 걸 잃어버리는 거 알지?”
“알죠.”
“너한테 제일 소중한 게 무공과 관련된 거였냐? 교주님에 대한 존경이 아니라.”
“에이, 어떻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게 존경이 됩니까. 솔직히 그건 말도 안 되지.”
“그래?”
“그렇죠.”
“정말 말도 안 되지?”
“그렇지 않을까요?”
상림의 말에 진유성이 피식 웃었다.
상림은 원래 적당한 자기만족과 행복을 위해 살아가는 놈이었다.
대의를 따르긴 하나, 그 안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아간다는 말이었다.
그래, 차라리 이게 낫다.
진유성이 상림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자, 상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아무래도 진유성이 풍성한 그의 모발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 같다.
“죄, 죄송합니다. 교주님.”
“뭐가?”
“머리만은 제발…….”
진유성이 피식 웃으며 상림의 어깨를 툭 쳤다.
“가자. 밥 먹으러.”
진유성의 반응에 상림이 고개를 갸웃했다.
평소의 같았으면 오른손으로 머리카락을, 왼손으로는 대물(?)을 움켜쥐고 협박해야 하는데 말이었다.
대머리와 고자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고.
‘기분이 별로이신 것 같은데?’
오랫동안 진유성의 눈치를 봐온 상림은 진유성의 기분이 썩 좋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말을 못했다.
사실 자신은 밥을 먹었다는 걸.
“근데 멕시코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그냥, 엔리케 카를로가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더라고. 그래서 죽였어.”
“콜 헨드릭은요?”
“같이 있더라고. 여자들을 납치해서 파티를 벌일 계획을 꾸미면서.”
“개자식이네요.”
“개자식이었지.”
“SG에서 콜 헨드릭이 사고를 친 것들을 공개했는데, 완전 쓰레기던데요?”
“그래?”
“네. 근데 교주님. 혹시 멕시코에서 돈 훔쳐 오셨습니까? 현금 자산이 다 없어졌다는 소문이 있던데.”
“어. 엄청 많더라.”
“그건 왜 가져오셨어요?”
“놔두면 멕시코에서 가장 힘이 센 놈이 가져갈 것 같아서.”
진유성은 엔리케 카를로의 재산을 가질 생각은 없었다.
이것을 김정철의 JC 그룹을 통해서 멕시코의 국민들에게 뿌릴 생각이었다.
진유성은 놀라운 통찰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멕시코에 각성 마켓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국가의 상태를 보아하니 외부 자본이 개입되지 않으면 야만족처럼 변질될 확률이 높았다.
그 선두 그룹으로 JC 그룹의 각성 마켓이 나서도록 할 생각이었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상림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근데 교주님,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기분이 별로 안 좋아 보시네요.”
“흠.”
진유성은 잠시 고민했지만, 신주청에 대한 이야기는 함구하기로 했다.
신주청을 좋아하는 상림이 알아 봤자 좋을 게 없었다.
“그냥, 멕시코가 천마신교 이전의 중원이랑 비슷하더라고. 그래서 옛날 생각이 났다.”
“그 정도였어요?”
“그래.”
“잘 죽이셨네요.”
진유성과 상림은 그 뒤로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때마침 유혜연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유혜연과 통화를 하던 상림이 진유성에게 핸드폰을 넘겨주었다.
-유성아, 어디 불편한 데는 없지?
“네, 없어요.”
-오늘 밤에 올라오는 거니?
“그럴 것 같아요.”
설정상 진유성은 상림의 출장을 따라온 상태였다.
그때 유혜연의 옆에서 상소윤의 목소리가 들린다.
-진유성! 또라이!
다짜고짜 진유성을 놀린 상소윤이 멀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진유성은 피식 웃었다.
말만한 계집이 아직 철이 들려면 멀었다.
-어휴, 소윤이는 대체 언제 철이 들려나 모르겠다.
“그러니까요.”
-그나저나 유성이가 없으니까 집이 휑한 것 같네.
“금방 갈게요.”
옆에서 통화를 엿듣고 있던 상림이 투덜거린다.
유혜연이 자신보다 진유성을 더 생각하는 것 같아서 불만인 것 같았다.
그렇게 전화가 끝나자, 진유성은 마음이 편해짐을 느꼈다.
사실 평소의 진유성 같았으면 멕시코시티에서 로스차일드와 끝을 봤어야 했다.
그러지 못한 것은 신주청을 죽일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로스차일드와 신주청을 보내 주었다.
하지만…….
정말 신주청이 마도사들과 함께 전 인류의 영성을 착취하고자 한다면?
좌시할 수 없다.
전 인류란 단어 안에는 상림과, 유혜연, 상소윤이 포함되어 있을 거니까.
‘대정고의 친구들도 있고.’
진유성은 깨어졌던 무심이 다시 한번 단단하게 이어지는 걸 느꼈다.
억지로 무심을 회복했던 것과 다르다.
다시 한번 무심지경(無心之境)을 완성한 것이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미안하다. 주청아.’
다음에 만나면 끝을 보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