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81화>
Quest 32. 결심한 천마님
신주청이 베이징의 최고급 아파트로 들어섰다.
건조한 집안의 풍경이 그를 반긴다.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지만 뭔가 묘한 감상을 준다.
‘아마도…….’
진유성을 만났기 때문일 것이었다.
이 집을 나서기 전까지만 해도 전 세계의 SSS급 각성자는 세 명이었고, 그는 월성이란 이름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SSS급 각성자는 두 명이 되었고, 월성은 신주청이 되었다.
사실 엄밀히 따지면 신주청도 각성자라곤 볼 순 없었다.
그의 힘은 각성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무공에서 기인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를 완전한 중원 무인으로 볼 수 있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신주청은 진유성처럼 온전한 육신을 가진 채 지구로 건너온 것이 아니었다.
그는 분명 중원에서 죽었다.
진유성이 직접 시신을 수습했고, 장례를 치러 주었다.
하지만 신주청의 영혼은 죽지 않았다.
진유성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신주청 역시 고금제일을 다툴 수 있는 고수였다.
그런 그에게 간절함이 있었다.
[내가 죽으면…….]
[수백 년을 홀로…….]
[이대로 죽어서는, 죽어서는 결코 안 되는데…….]
신주청은 막대한 의념과 간절함으로 영혼체를 유지했다.
뚜렷한 자아가 있는 건 아니었다.
어쩌면 사자(死者)의 망집(妄執)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신주청은 그 상태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살아생전에 실패했던 벽을 넘은 것이었다.
그때, 신주청의 앞에 로스차일드가 나타났다.
[실로 믿기지 않는군.]
[영혼을 연단하여 연금하면 신격을 이룰 수 있다던 말이…….]
[완연한 신격은 아니지만, 그에 버금가는 힘을 지니고 있다니.]
로스차일드는 신주청을 보며 감탄했다.
영혼을 끝없이 단련하고, 높은 깨달음을 얻어, 생사의 굴레를 초월하는 마도연금술의 비의.
이론적으로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이자와 함께라면…….]
당시의 로스차일드는 세쌍둥이 마도사들 중에 가장 먼저 중원에 방문했다.
마도사들은 게이트를 만드는 중에 하위 차원을 통해 고향 행성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이걸 가장 먼저 알아차린 것은 첫째가 아니라, 로스차일드였다.
로스차일드가 홀로 중원을 찾아온 이유는 간단했다.
영혼이 품은 마도술의 격이 오르며, 스스로의 근원을 깨닫게 된 것이었다.
‘난 첫째가 빚어낸 피조물이다. 그의 영혼에서 탄생했기 때문에, 첫째의 영혼에 귀속되는 존재이다.’
록펠러는 죽을 때까지 알지 못했던 사실이지만, 로스차일드는 그 사실을 꽤 일찍 알아차렸다.
아마 첫째는 원하는 순간 그의 마도 코어를 거둬들일 수 있을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첫째가 그들을 방목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결국은 첫째에게 귀속될 존재이니까.
이 사실을 깨달은 로스차일드는 절망했고, 이를 악물었다.
로스차일드가 중원을 찾은 것은 그들의 고향에 ‘격’을 달리할 방법이 있을까 싶어서였다.
첫째의 피조물에서 벗어나 오롯이 독립된 존재가 되고 싶은 것이었다.
로스차일드는 중원이라 불리는 동방에 인간과 격을 달리하는 존재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천마신교주 진유성.
아마 그자가 게이트를 열어 낸 인물일 것이었다.
본래 로스차일드는 진유성을 만나려고 중원을 방문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이목을 사로잡은 것은 우연히 조우한 신주청이었다.
스스로의 힘으로 격상한 존재.
이는 우연이지만, 또한 우연이 아니었다.
진유성이란 존재로 인해 생겨난 필연이자, 인연이었다.
[망자와 신격의 경계에 선 자여. 이름이 무엇인가.]
[그대는 살고 싶은가? 약동하는 생명을 얻어 들숨과 날숨을 오가며, 꿈을 펼치고 싶은가?]
신주청은 로스차일드의 말을 명확히 이해하진 못했다.
하지만 꿈을 펼친다는 말에 반응했다.
신주청은 이대로 죽을 수 없었다.
이대로 죽는다면 진유성은 오랜 세월동안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홀로 대명제국을 지켜 나갈 것이었다.
신주청은 로스차일드의 말에 긍정했다.
[그렇다면 그대의 격과 나의 격을 합치고 나누는 건 어떤가?]
첫째의 피조물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로스차일드의 도박이 시작된 것이었다.
* * *
로스차일드는 육신을 잃은 영혼체의 상태였고, 신주청 역시 육신을 잃은 영혼체의 상태였다.
인류 최악의 마도사였던 로스차일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무인이었던 신주청.
두 사람은 격을 섞었다.
인류가 탄생한 이래로 한 번도 실행된 적이 없는 비술.
모험은 성공적이었다.
로스차일드는 첫째의 피조물이란 굴레를 벗어났고, 신주청은 윤회의 고리를 벗어났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주청은 중원에서는 죽어 있는 상태였다.
신주청이 육신을 얻기 위해서는 윤회를 받아들여 환생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고리를 벗어났다고는 하나, 여전히 중원 차원의 윤회 안에 포함된 존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회는 영혼의 격과 기억이 백지로 변함을 의미했다.
[그렇다면 난 자아를 가진 유령일 수밖에 없는가?]
[다른 차원에서 육신을 얻고, 이곳으로 돌아오는 방법이 있다.]
신주청은 지구의 윤회에 속한 존재가 아니었다.
즉, 그가 영혼체의 상태로 지구에 도착한다면 기억과 격을 지닌 채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었다.
이는 세쌍둥이 마도사들이 육신을 얻기 위해 지난 수백 년간 연구한 일이었다.
마도사들은 윤회의 고리보다 상위의 존재인 위상(位相)의 수호자에게 육신을 빼앗겨 소용이 없었지만.
[꼭 돌아오겠습니다. 교주님.]
신주청은 로스차일드가 제시한 유일한 방법을 수락했다.
그가 수상쩍은 마도사의 말에 따른 이유는 딱 한 가지밖에 없었다.
다시 한번 진유성과 꿈을 펼치기 위해.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신주청은 영혼체의 상태로 천신궁 게이트로 향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주청이의…… 기척이 느껴지는군.”
입신의 경지에 오른 진유성이 신주청의 존재를 감지한 것이었다.
“혹시 거기 있냐? 죽으면 지상을 돌아볼 시간이 주어지냐? 근데 왜 이렇게 늦게 왔냐? 죽은 지 한참 됐는데.”
대답을 바란 것은 아니었던 듯, 진유성이 부드러운 미소로 말했다.
“그렇다면 편히 가라. 우리가 꿈꿨던 대명제국은 내가 꼭 지켜 내도록 하마.”
신주청은 진유성에게 큰절을 올리고는 천신궁의 게이트로 들어섰다.
그곳에서…….
관리자, 혹은 위상의 수호자를 만났다.
[이곳은 상실의 공간.]
[그대를 구성하는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야만 통과할 수 있다.]
위상의 수호자를 응시하던 신주청이 물었다.
[나를 구성하는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오?]
[말해 줄 수 없다.]
[기억은 아니겠지?]
[말해 줄 수 없다.]
신주청은 위상의 수호자와 싸웠다.
둘은 격렬한 싸움을 벌였지만, 신주청은 위상의 수호자를 이기지 못했다.
그렇게 신주청은 자신을 구성하는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다.
죽음의 굴레조차 벗어날 수 있게 해줬던 신념.
진유성은 존경하고, 경애하고, 우정하던 그 모든 마음.
그것을 표현하는 한 단어.
사랑.
그는 더 이상 진유성을 사랑하지 않게 된 것이었다.
지구에 도착한 신주청은 베이징 뒷골목의 허름한 판자촌에서 정신을 차렸다.
마약 중독자인 부모가 방치해 죽은, 태어난 지 100일도 지나지 않은 갓난아이로.
[영혼체로 차원을 넘으면 이런 식이군.]
그런 신주청의 앞에 로스차일드가 나타났다.
두 사람은 격을 공유했기 때문에 서로의 위치를 손쉽게 찾을 수가 있었다.
또한 둘 중 한 명이 소멸한다면 막대한 타격을 받는 관계였다.
“결과를 모르고서 날 보냈다는 건가?”
신생아가 정확한 발음으로 말을 하는 모습은 기이했다.
하지만 신주청은 혀를 이용하는 게 아니라 기를 이용해 소리를 만들어 냈다.
최상급의 전음입밀.
그 모습에 로스차일드는 적잖이 놀랐다.
신주청은 분명 신생아의 몸에 들어가 있고, 한 줌의 마력도 지니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의념을 이용해서 자연의 기를 움직이고 있었다.
전지의 존재가 내려앉아 기운이 척박한 지구에서 말이었다.
[아니, 난 완전히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날 줄 알았다. 죽은 이의 몸으로 들어갈 줄은 몰랐던 거지.]
“그런가?”
[기분이 어떻지? 날숨과 들숨을 이어 가는 육신의 속에서.]
“나쁘지 않군.”
로스차일드가 눈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격상한 무인이여. 그대는 상실의 공간에서 무엇을 잃었는가?]
“당신도 상실의 공간을 통과했나?”
[그래서 이 꼴이 됐지.]
육신을 잃었음을 암시하는 로스차일드의 말에 신주청이 입을 다물었다.
긴 침묵 끝에 신주청이 물었다.
“상실의 공간은 무엇이지?”
[신은 본래 하나였던 차원을 분리하며 위상을 나눴다. 위상이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그대의 가장 소중한 것을 내놓아야 했고.]
“그렇다면 왜 그자는 내 기억을 가져가지 않았지?”
신주청은 혼란스러웠다.
그에겐 기억이 있었다.
진유성과 함께 이룩했던 것들에 대한 수많은 기억들.
하지만…….
그것이 전혀 공감되지 않는다.
진유성에 대한 마음을 없애려면 이런 기억까지 가져가야하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로스차일드가 대답했다.
[상실의 공간은 사전적인 의미의 상실과 다르다. 차원 위상적으로의 상실을 의미하지.]
“그게 무슨 뜻이지?”
[기억을 잃는 것이 완전한 상실이라면 기억도 함께 상실한다. 하지만 때론 기억을 온전히 보존하는 게 완전한 상실일 때가 있지.]
세쌍둥이 마도사는 육체를 잃었다.
그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육체를 기반으로 한 원초적인 쾌락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만약, 그들이 육체를 가졌던 기억조차 잃어버렸다면 어땠을까?
이는 차원 위상적으로 상실을 의미하지 않는다.
위상(位相)은 요소의 연속 상태이자, 존재와 존재가 관계 속에서 가지는 위치이다.
육체를 가졌던 기억이 있어야지만 위상(位相)적으로 완벽히 상실하는 셈이었다.
만약, 상실의 공간에서 잃어버리는 것이 특정 기억이라면?
그렇다면 그 기억을 지녔었다는 인식조차 사라진다.
기억의 성격상, 위상적인 상실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억이 없어졌다.’라는 인식조차 없어져야 하기 때문이었다.
“잃어버리는 것의 성격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는 것이군.”
[그렇다.]
“완벽히 이해하기는 힘들군.”
[마도연금술에서 위상의 개념을 명확히 이해하지 않는다면 깨닫기는 힘들다.]
로스차일드가 다시 한번 물었다.
[그래서, 넌 뭘 잃어버렸지?]
“미혹.”
[미혹?]
“그래. 길고 긴 미혹에서 깨어난 기분이다.”
한 소년이 피아노에 매료되었다.
소년은 평생 동안 피아니스트란 꿈을 꾸었다.
피아노를 치지 않았다면 할 수 있는 모든 즐거움을 외면한 채, 그는 우직하게 피아노를 쳤다.
손톱이 깨지고, 지문이 닳고, 손목에 무리가 와도 피아노를 치는 순간만큼은 즐거웠다.
하지만 그는 피아니스트란 꿈을 완전히 이루진 못했고, 피아노를 치다가 생을 마감했다.
누군가에겐 허무한 삶일 수 있지만, 소년에게는 아니었다.
자신의 뒤를 이은 누군가 자신의 악보를 계속해 줄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갑자기 신이 변덕을 부려 소년의 마음속에 있는 피아노에 대한 사랑을 없애 버렸다.
그러자 소년은 의문이 들었다.
나는 왜 평생 동안 이 쓸모없는 것을 두드린 것일까.
더 즐거운 생을 살 수 있었고,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왜 수많은 고통을 감내하며 피아노를 친 것일까.
알 수 없는 허상에 매료되어서 인생을 허비할 때.
우리는 그것을 미혹이라고 부르니까.
그 순간, 소년은 피아노가 증오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지금의…….
신주청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