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79화>
* * *
록펠러, 로스차일드.
이들의 이름은 세계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다루지 않을 수 없는 이름이었다.
부를 독식한 가문명과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이들이 아주 오랫동안 지구의 역사에 관여해왔다는 것을 뜻했다.
진유성은 문득 호기심이 들었다.
록펠러를 만났을 때만해도 록펠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몰랐다.
그러나 이제는 알고 있었다.
록펠러를 소멸시킨 이후 록펠러 가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찾아본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 다큐멘터리에는 로스차일드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고.
“그건 원래 네 이름인가?”
진유성의 질문에 엔리케 카를로의 몸을 뒤집어쓴 로스차일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마녀를 죽이고 그녀의 성을 계승했지.”
마녀 릴리스를 죽이며 태어난 세쌍둥이는 스스로의 성을 룬어 ‘LR’로 정의했다.
지구의 영문법으로는 Rockefeller와 Rothschild지만, 실제 이름은 LRockefeller와 LRothschild였다.
“그럼 첫째의 이름은 뭐지?”
“글쎄. 내가 그걸 대답해 줄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곧 죽을 텐데, 뭐라도 말하고 죽어야 하지 않을까?”
진유성의 말에 로스차일드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가?”
그 순간, 로스차일드의 시선이 한쪽에 주저앉아 있는 콜 헨드릭에게 향했다.
콜 헨드릭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간신히 숨만 쉬고 있었다.
그가 자의적으로 입을 다문 건 아니었다.
로스차일드의 몸에서 풀풀 뿜어지는 악의의 영기와 진유성의 몸에서 뿜어지는 압도적인 압박감.
두 가지 기세를 견디느라 주저앉은 채로 숨만 쉬고 있는 것이었다.
로스차일드의 시선이 콜 헨드릭에게 향하는 순간.
푸욱!
잘린 오른팔의 단면에서 새까만 영기가 창처럼 튀어나와 콜 헨드릭의 심장을 찔렀다.
한 때 아놀드 벡 못지않게 유명했던 SS급 각성자의 최후치고는 참으로 초라했다.
진유성은 콜 헨드릭의 죽음을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막진 않았다.
죄 없는 여자들을 납치해 파티를 벌이자는 엔리케 카를로의 말에 기뻐하는 놈이다.
살려 둘 가치가 없었다.
“조용해졌군.”
로스차일드가 콜 헨드릭의 심장을 찌른 영기의 창을 손 모양으로 바꾸었다.
잘린 팔을 새까만 영기가 대신했다.
진유성이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까만 고무장갑 같네.”
로스차일드는 아무런 긴장감이 없는 진유성을 보며 눈을 빛냈다.
보통의 인간은 그들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만으로 겁에 질린다.
이것은 힘의 문제가 아니라, 태생의 문제이다.
설령 마도사들과 근접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중원의 절대자는 아니었다.
억지로 태연한 척하는 것도 아니고, 싸워 이기겠다는 결의를 다지는 것도 아니었다.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는 진유성이 그들의 존재를 인식했음에도 존재에서 오는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는 걸 뜻했다.
‘과연 셋째를 죽일 만하군. 하지만 어떻게?’
로스차일드가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진유성이 손에 들린 입멸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검풍이 일어나며 콜 헨드릭의 시신이 집무실 한쪽에 있는 거대한 침대 위로 날아갔다.
집무실에 침대가 있는 것만 봐도 엔리케 카를로가 평소에 어떻게 생활했는지가 보인다.
망자에 대한 마지막 예의를 갖춘 진유성이 입을 열었다.
“가짜 입멸검으로 날 초대한 게 너냐?”
“그래.”
“이유가 뭐지?”
“널 우리의 계획에 포섭하기 위해서.”
“너희들의 계획에 날 포섭한다고?”
“그렇다.”
“어째서?”
“내가 묻고 싶은 이야기군. 우리가 굳이 싸울 이유가 있나?”
로스차일드의 말은 교묘했다.
그가 진심을 말한 건 맞았다.
로스차일드는 처음부터 진유성을 포섭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진심을 말함과 동시에 정보를 떠보고 있었다.
진유성이 그들의 계획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 안다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행동 동기는 무엇인지.
포섭, 계획, 이유라는 단어를 던지며 진유성의 정보량을 가늠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진유성은 이 정도 수작질에 놀아날 사람이 아니다.
피식 웃은 진유성이 질문을 던졌다.
“근데 넌 뭘 믿고 까부는 거냐? 록펠러가 나한테 소멸당한 걸 벌써 잊었냐?”
록펠러의 말에 따르면 세쌍둥이 마도사는 비슷한 실력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로스차일드는 록펠러를 소멸시킨 자신을 두려워해야 한다.
게다가 록펠러와 싸울 때는 진유성의 심검이 온전치 않았다.
심검은 마음의 검이고, 마음은 생을 원할 때 바로 선다.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그 어느 때보다 뚜렷해진 지금, 진유성의 심검은 온전해졌다.
이번엔 로스차일드가 웃었다.
“설마 내가 록펠러와 같다고 생각하는 건가?”
“록펠러가 그러던데? 너희 셋은 거의 비슷하다고.”
“록펠러의 착각일 뿐이다.”
“흐음.”
“록펠러는 아무것도 몰랐다.”
로스차일드는 록펠러와 달리 그들의 근원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그들은 첫째의 손에 의해 빚어진 존재이다.
너무나 많은 힘을 품었기 때문에 태아의 상태로 힘을 발휘할 수 없었던 첫째.
그가 힘을 분배하기 위해 인공적으로 빚어 낸 존재였다.
마도사들은 자신의 근원에 접근할수록 강해지는 존재들이다.
로스차일드가 록펠러보다 고강하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로스차일드는 자신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첫째를 이길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게 때문에 수많은 방법들을 연구하며…….
그 순간, 로스차일드가 인상을 구겼다.
어이없다는 듯이 웃고 있는 진유성 때문이었다.
진유성의 웃음이 꾸며 낸 것이었다면 로스차일드는 반응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진유성은 실제로 웃고 있었다.
그게 로스차일드의 신경을 건드렸다.
“왜 웃는 거지?”
“너야말로 아무것도 모르네.”
“뭐?”
“중원을 통일하고 교주의 직에 오른 이후, 내가 몇 명의 무인을 만났을 거 같냐?”
수십만,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었다.
모든 무인들의 꿈이 진유성을 한 번만이라도 만나 보는 것이었으니까.
“그들 중 단 한 명이라도 나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착각하는 이가 있었을 것 같냐?”
“…….”
“착각이라고? 착각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랑 록펠러랑 별 차이가 없다는 증거야, 이 자식아.”
진유성의 말에 로스차일드의 표정이 바뀌었다.
“감히 하찮은 인간 무인과 우리를 비교하는 거냐?”
“육체도 없는 하찮은 유령보단 인간이 낫지 않냐?”
“난 분명 대화를 원한다고 말했다.”
“나도 싸움을 원하진 않아. 너랑 나랑 싸울 이유가 없긴 하지.”
진유성이 입멸검의 복제품을 들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내가 너와 할 건 싸움이 아니라, 일방적인 학살이다.”
진유성의 말이 끝나는 순간.
고오오오오오-
로스차일드의 몸에서 농밀한 악의의 기운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분노한 것이었다.
록펠러도 그렇고, 로스차일드도 그렇고, 어수룩하기 짝이 없다.
이놈들은 태어날 때부터 강한 힘을 쥐고 태어났다.
약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자신보다 강한 존재와 싸우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른다.
수백 년을 살았다고?
신이 되겠다고?
멍청한 소리다.
차라리 신주청이 이놈들만큼의 힘을 쥐고 있었다면 훨씬 무서운 존재였을 것이었다.
로스차일드를 비웃은 진유성이 전면으로 뛰어들었다.
록펠러는 마도술을 사용하는 걸 즐기던 이였고, 진유성은 록펠러와 싸울 때 근접전을 벌인 적이 없었다.
당연히 이번에도 비슷한 전투 양상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공간에서 거대한 낫을 꺼내든 로스차일드가 진유성을 향해 낫을 휘둘렀다.
진유성이 낫을 상대해 본 건 처음이 아니었다.
중원에도 겸(鎌 : 낫)을 주무기로 삼은 이들이 있다.
겸은 제대로 다루기 힘든 무기지만, 제대로 다룰 수만 있다면 까다롭기 짝이 없다.
진유성은 자신의 손목을 자르기 위해 날아오는 낫에다가 검을 들이밀었다.
크그극!
두 무기의 운동 방향이 반대였기 때문에 손목에 시큰한 충격이 느껴진다.
낫과 검이 얽힌 상황에서 초수의 교환이 끝이 난다면 진유성이 손해를 보는 셈.
그러나 진유성의 노림수는 방어가 아니었다.
프스스스스!
진유성의 검에서 줄기줄기 흘러나온 검기가 기묘한 곡선을 그리며 로스차일드의 목을 노리고 날아갔다.
로스차일드도 가만 있지 않았다.
일순간 그가 쥐고 있던 낫의 날이 새까맣게 변했다.
그리고는.
콰앙!
낫의 날이 폭탄처럼 터지며 새까만 영기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로스차일드는 엔리케 카를로의 육체를 입고 있는 상태였다.
당연히 엔리케 카를로의 목이 베어진다고 해서, 자신에게는 손해가 없다.
쓸만하게 멕시코를 이끌던 엔리케 카를로가 죽는 건 좀 아쉽지만, 중원의 절대자를 짓누를 수 있다면 상관없다.
로스차일드는 진유성의 공격을 막는 대신 역공을 선택했다.
잘못된 판단이었다.
[컥!]
엔리케 카를로의 목이 잘리는 순간, 로스차일드는 영혼체의 상태로 돌아왔다.
그리곤 목을 부여잡았다.
진유성의 검기가 스쳐 지나간 곳에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놀랍게도 진유성의 공격이 적중한 곳에는 영기가 모여들지 않았다.
억지로 모아놔도 흩어진다.
‘놈은?’
로스차일드는 영혼체를 진정시키며 진유성을 찾았다.
셋째 록펠러의 전투 방식은 전형적인 마도사였다.
근접을 허용하지 않고 원거리에서 다양한 술법으로 조져 버리는.
그러나 로스차일드는 근접 전투를 선호했다.
근접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기사들을 검술로 누를 때의 쾌감이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거리가 없을 때의 마도술은 훨씬 위력적이다.
초근접 거리에서 크리투라스의 낫을 폭발시키는 것은 로스차일드의 필승 패턴이었다.
제 아무리 중원의 절대자라고 해도 그 정도 거리에서 크리투라스의 낫을 맞았으면 멀쩡할 수가 없었다.
로스차일드는 폭발로 피어오른 먼지 너머를 꿰뚫어보았다.
진유성이 서 있다.
진유성이 움직인다.
진유성이 달려든다.
진유성이 검을 휘두른…….
[흡!]
로스차일드가 꿰뚫어보았던 것은 진유성이 아니었다.
속임수였다.
실제 진유성은 로스차일드의 감각을 피해서 좌측에서 짓쳐들고 있었다.
[말도 안 돼!]
로스차일드의 영혼체가 당혹스러운 심상을 뿜어냈다.
마도사들은 육신을 잃어버리며 쾌락을 잃었다.
하지만 그게 그들의 약화를 뜻하진 않았다.
오히려 육신을 잃은 뒤에 몇 배는 강력해졌다.
특히 신뢰할 수 없는 인간의 오감을 버리고, 영혼체의 기감에 익숙해진 것이 중요했다.
영혼체의 기감을 속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들은 정보를 통해 판단하는 게 아니라, 인과를 읽고 판단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진유성은 로스차일드를 손쉽게 속여 냈다.
얼마 전, 인과율을 속이는 방법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난 달걀을 베었지만, 베지 않을 수도 있었다.”
“두 가지 가능성에서 하나를 생하고, 하나를 사했으며, 하나를 입하고, 하나를 멸했을 뿐.”
아놀드 벡에게 볶음밥을 해 주면서 깨달았다는 게 우습지만, 또한 우습지 않았다.
본래 모든 것은 인연으로부터 비롯되는 법이다.
진유성이 로스차일드를 속인 건 찰나였지만, 진유성은 찰나의 순간을 영원처럼 이용할 수 있는 고수였다.
입멸공.
최종오의(最終奧義).
멸(滅).
진유성은 지구에 도착한 이후 가장 안정적으로 입멸공의 최종오의를 사용했다.
가짜 입멸검이라 하나, 분명 진유성의 손에 들린 건 최상품의 검이었다.
지금은 사라져 버린 아놀드 벡의 검보다 훨씬 뛰어나고, 입멸공에 최적화되어 있다.
진유성의 입멸공이 로스차일드의 존재를 멸하려 날아왔다.
로스차일드는 그 순간 깨달았다.
수백 년간 이어진 자신의 생이 허무하게 끝이 났다는 걸.
중원의 절대자는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몇 배는 강했다.
다시 싸운다고 해도 이길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로스차일드는 소멸을 맞이했다.
아니, 맞이하는 줄로만 알았다.
캉!
새까만 영기에서 튀어나온 한 자루의 검이 진유성의 입멸공을 쳐내기 전까지는.
‘검을 쳐냈다고?’
진유성이 눈을 가늘게 떴다.
입멸공은 분명 명확한 대상을 상대로 써야지만 큰 힘을 발휘하는 무공이다.
인과율을 다루는 힘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로스차일드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입멸공을 막아 낸다면 보다 수월하긴 하다.
하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전 중원을 뒤져 봐도 그게 가능한 사람은 한 손에 꼽으리라.
그사이, 로스차일드의 새까만 영기 틈에서 누군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이런 데서 죽긴 이르다. 로스차일드.”
[젠장.]
중국의 SSS급 각성자이자, CSG의 수장인 월성이었다.
그 순간, 진유성이 두 눈을 크게 떴다.
“네가……!”
남자의 얼굴이 익숙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