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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177화 (177/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77화>

* * *

진유성은 엔리케 카를로의 행동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입멸검을 보여 준 걸 보며 자신을 초대한다고 생각했고, 그 뒤에 마도사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즉, 자신이 상대할 대상은 엔리케 카를로 따위가 아니다.

세쌍둥이 마도사의 남은 둘인 셈이었다.

그럴 확률은 낮지만 혹시라도 엔리케 카를로의 뒤에 마도사가 없다면?

우연히 입멸검과 똑같이 생긴 EX급 아이템을 얻었고, 그걸 과시하고 싶은 거라면?

그럼 더 별것 없다.

가서 엔리케 카를로란 놈의 됨됨이를 확인해 보면 된다.

됨됨이가 바른 놈이라면 내버려 둘 것이고, 바르지 못한 놈이라면 몇 대 때려 주면 된다.

세상에 존재해선 안 될 독재자라서 멕시코 국민들을 괴롭히고 있다면?

죽여도 상관없다.

고작 해야 SSS급 각성자일 뿐이니까.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진유성뿐이었다.

좀 더 범위를 늘리자면 진유성의 영향을 받은 아놀드 벡과 상림 정도.

나머지 사람들은 비상 상태였다.

“엔리케 카를로를 중립 지역으로 이끌어야 합니다. 각성자들을 멕시코로 집어넣을 수 없습니다.”

“중립 지역? 어디?”

“미국 안이 최선책이고,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 지대가 차선책입니다.”

“각성자들의 움직임은 어때?”

“SS급 각성자들 중에 몇몇이 관심을 가지는 모양새입니다. S급 각성자들도 있고.”

상식적으로, 엔리케 카를로는 어떤 꿍꿍이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즉, 이대로 멕시코에 들어가는 건 위험한 짓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각성자들은 멕시코로 가는 것에 생각보다 거부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그들은 SS급 이상의 각성자이다.

SS급 이상이라는 것은 지구상에 100명도 되지 않는다.

이들의 자존심은 엄청나고, 무력에 대한 강한 자존감을 가지고 있다.

몬스터를 상대로 싸우는 힘을 측정하자면 SSS급이 SS급의 우위에 서 있다.

하지만 대인 전투에서는 다르다.

종종 F급 각성자들이 D급이나 C급을 죽이는 사건 사고가 벌어진다.

이는 대 몬스터 전투와 대 인간의 전투가 완전히 다름을 뜻한다.

소문에 따르면 FBI에서 양성하는 각성자 전문 암살자들도 대부분이 F급이라고 하니 말이었다.

둘째, 멕시코는 고위 각성자가 살기에 좋은 국가이다.

엔리케 카를로가 그들을 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수도 있고, 포섭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수도 있다.

설령 해하고자 했더라도 귀화의 의지를 밝힌다면?

무려 SS급 각성자인데 그냥 내칠 리가 없을 것이다.

사실 각성자들 중에는 내심 ‘나 정도면 더 좋은 대접을 받아도 될 텐데’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특히 S급 이상이 그러했다.

SS급 각성자는 100명이 안 되고, S급 각성자는 1,000명이 안 된다.

60억 인구-게이트 사태 이후로 50억까지 내려갔으나, 제법 회복했다- 중 1,000명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선택받은 인간을 뜻했다.

그리고 멕시코는 각성 등급에 대한 차별 정책이 확실한 곳이다.

S급 이상의 각성자들은 멕시코에 아방궁을 짓고 온갖 향락과 쾌락에 살아간다.

엔리케 카를로의 눈 밖에만 나지 않으면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다.

SG가 지난 20여 년간 억눌러 놓은 각성자들의 욕망이 꿈틀거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SG는 이러한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더 이상 도덕적인 잣대로 각성자들을 눌러 놓는 게 한계에 이르렀다는 것도.

그나마 타의 모범이 되는 아놀드 벡의 존재 때문에 몇 년 연장한 셈이었다.

“아놀드 벡의 반응은?”

“고민 중이라고 합니다. 멕시코에 가서 엔리케 카를로가 뭘 꾸미는지 봐야 할지, 아닐지.”

“절대 안 된다고 말해.”

“엔리케 카를로가 미국 내로 들어온다고 하면요?”

“그럼…… 가야겠지.”

거기서도 빼는 건 자존심의 문제였다.

“일단 최대한 장황하고 복잡한 공문을 보내. 접견 지역을 미국으로 설정하지 않으면 SG는 이번 이슈에 배타적인 태도라고.”

SG 본부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면 이번 임기가 마지막이겠군.”

본부장의 말은 재선에 실패해 다음 SG 본부장에게 자리를 넘기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니었다.

말 그대로 SG가 사라짐을 뜻했다.

엔리케 카를로의 이번 행동은 SG 치하 각성 세계의 종말을 고하는 방아쇠가 될 수도 있었다.

SS급 각성자 한 명만 멕시코로 귀화하기만 해도 끝이다.

자국의 SS급 각성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에 국가에서 난리를 떨 것이고, 차별 정책이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그 차별 정책은 각성자들에게 달콤함을 줄 것이다.

하지만 달콤함 속에는 독이 숨어 있다.

모태 각성자들의 출연과 더불어 각성자들이 스스로를 신인류로 구분하는 데 근거가 되는 셈이었다.

‘엔리케 카를로가 여기까지 보고서 일을 진행한 것일까?’

그렇다면 정말이지 두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본부장의 생각은 틀렸다.

이번 일은 전적으로 마도사들의 둘째가 계획한 일이었으니까.

* * *

SG의 간부들이 앞으로 벌어질 일을 걱정하고 있었다면, 대중들은 보다 단순했다.

[Go Anold Beck!]

[Beat the Mexican!]

아놀드 벡이 멕시코로 건너가서 엔리케 카를로를 혼내 주기를 바라는 구호가 연일 인터넷을 울렸다.

아놀드 벡은 이성의 세계를 상징하는 인물이고, 엔리케 카를로는 야만의 세계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러니 SG 치하의 시민들이 엔리케 카를로를 응징하길 바라는 건 당연했다.

사실 엔리케 카를로의 멕시코 이전에 야만의 세계를 상징하는 국가는 북한이었다.

하지만 미국인들이 북한보다 멕시코를 불쾌하게 여기는 건, 멕시코는 그들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멕시코 마피아 따위에게 황제가 질 리가 없어.”

“SG는 언제나 답답하게 굴어. 그들은 대체 뭘 두려워하는 거야?”

아마 시민들 중에는 SSS급 각성자의 싸움을 보고 싶은 이들도 있을 것이었다.

종종 멕시코에 카메라를 보내서 두 사람의 싸움을 생중계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여론이 거세질 때쯤, 엔리케 카를로가 다시 입을 열었다.

-

각성자들은 전부 겁쟁이들이다.

그들은 SG의 정책 아래에서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가장 적은 몬스터를 처리해 온 스캐빈저다.

차라리 나와 아놀드 벡의 싸움을 원하는 일반인들이 더 용맹한 것 같군.

그렇다면 모두 멕시코로 와라.

멕시코는 SG와 다르다.

모든 국민에게 평등한 각성의 기회를 제공한다.

너에게 재능이 있다면, 넌 S급 이상의 각성자가 될 수 있고, 너의 삶을 완전히 바꿔 버릴 수 있다.

각성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너에게 능력이 있다면 멕시코로 찾아와라.

메히까뜰의 일원이 되라.

언젠간 네가 나의 왕관을 이어받을 아우구스투스가 될 수도 있으리라.

-

엔리케 카를로의 도발은 꽤 치명적이었다.

스스로를 황제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비교하며, 능력 있는 이는 카이사르의 뒤를 이을 아우구스투스가 될 수 있다고 말한 것이었다.

한 줄의 선동을 막기 위해서 수백 장의 종이가 필요하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선동에 당하는 건, 그만큼 선동이 강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마피아 몇몇이 멕시코로 넘어간 것이 기점이었다.

교육도 받지 못하고, 가난한 하층민들 사이에서 멕시코 국경을 넘자는 붐이 일어났다.

미국의 국경 수비대는 갈피를 못 잡았다.

본래 국경 수비대는 미국에서 멕시코로 넘어가는 걸 말리지 않는다.

반대로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건 철저히 수색해서 통과시킨다.

그렇다면 이 경우에도 국경을 넘는 이들을 모른 채 놔둬야 하나?

이런 고민으로 상부에 문의했지만, 상부에서도 말이 없었다.

아직 미국 의회나 SG도 정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미국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 하층민이 넘어가는 건 괜찮다는 의견과, 이걸 방치하면 일이 더 커질 거라는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결국 화살은 아놀드 벡에게 향했다.

“아놀드 벡, 그대는 엔리케 카를로를 제압할 수 있습니까?”

“싸워 보지 않고는 모를 일입니다. 그 역시 SSS급 각성자니까.”

“당신은 어떻게 하길 바랍니까?”

“엔리케 카를로는 의도적으로 모든 대화의 포커스를 미국에 맞추고 있습니다. 중국이나, 한국, 독일에는 관심이 없죠. 이는 그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으리라 판단됩니다.”

“그래서요?”

“내버려 두시죠.”

“……그게 당신의 선택입니까?”

“사태가 더욱 심각해지면 제가 개입하겠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아놀드 벡의 말에 몇몇이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아놀드 벡이 멕시코에 가서 엔리케 카를로를 응징한다는 대답이 듣고 싶었나 보다.

사실 아놀드 벡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진유성이 말하지 않았는가?

엔리케 카를로의 뒤에는 마도사가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고.

아놀드 벡은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알고 있다.

진유성을 만나기 전이었다면 국경을 넘어 멕시코로 향했을 수도 있다.

그리곤 죽었을 수도 있고.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그는 진유성을 만난 이후로 하늘 위의 하늘에 대해 눈을 떴다.

지금 국경을 넘는 건 만용이다.

그러니…….

‘지금쯤 멕시코에 도착했겠군.’

진유성에게 맡길 수밖에.

* * *

진유성은 본래 캘리포니아의 게이트로 이동한 다음에, 거기서 멕시코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캘리포니아의 게이트를 클리어한 적이 있으니 게이트를 통해 이동할 수도 있겠다 싶은 것이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 게이트는 이용할 수가 없었다.

진유성이 임의로 폭주시켰기 때문인지, 존재 자체가 사라져 있었다.

결국 진유성은 이틀을 기다려 금요일 새벽에 집에서 나왔다.

“전 합천으로 가 보겠습니다.”

“그래.”

유혜연과 상소윤에게는 상림의 지방 출장을 같이 간다는 식으로 둘러댔다.

진유성은 얼마 전에 일을 해 보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 상림이 하는 일을 지켜보고 싶다고 말해도 의심을 사지 않았다.

상림이 합천으로 향하는 사이, 진유성은 인천으로 향했다.

출국을 위해서였다.

엄밀히 말하면 출국이라기보다는 밀입국에 가까웠다.

인천에서 일본까지 배를 탄 다음에, 일본에서 비행기를 타고 온두라스로.

온두라스에서 기차를 타고 멕시코로 국경으로.

국경 지대에서부터는 경공으로.

어차피 돌아올 때는 서울역 게이트로 돌아올 생각이니 출국 기록이 없어야 했다.

그렇게 꼬박 22시간이 걸려서 도착한 멕시코.

그곳의 풍경은 진유성의 얼굴을 굳게 만들었다.

멕시코의 5월은 비가 잦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껴 있었고, 땅에는 진흙이 철벅거린다.

그 진흙 위에 아이들이 있었다.

제대로 먹지 못해 배가 불룩 튀어나온 아이들은 진유성을 보고는 구걸을 하려는 듯 손을 내밀었다.

손에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눈에는 희망이 하나도 없었다.

꼭…….

‘중원 같군.’

천마신교가 대명제국을 평정하기 전의 중원과 비슷했다.

공기 전체에 절망과 우울의 냄새가 깊게 배어 있었다.

진유성은 멕시코에 도착하기 전에 인터넷으로 이곳의 상황들을 찾아보았다.

인류 최악의 독재자에 의해 고통받는 국가.

각성자들은 사치스러운 삶을 즐기고, 일반인들은 수탈당하는 국가.

자료들의 대부분은 이러했다.

그러나 진유성은 자료들을 신뢰하지 않았다.

멕시코는 대부분의 정부들과 대립각을 세우는 국가이다.

이데올로기가 대립하는 이상, 대외적으로 좋은 말을 해 줄 리가 없다.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국경 지대와 멀지 않은 도시의 상황을 보니 표정이 절로 굳었다.

진유성은 자신에게 달려오는 아이들에게 멀더의 술법을 사용했다.

그리곤 물었다.

“엔리케 카를로는 어떤 사람이지?”

순간, 아이들의 얼굴에 공포가 묻어난다.

구걸하려고 다가오던 이들이 화들짝 놀라서 도망갔다.

아마 중앙 정부에서 내려온 프락치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 어린 아이들이 희망을 알기도 전에 공포부터 배웠다.

“오랜만이군. 이런 기분.”

진유성은 깊은 분노를 느꼈다.

그의 분노는 멕시코 수도로 향하고 있었다.

수도에 도착해 엔리케 카를로를 만났을 때.

그가 온갖 사치와 향락을 즐기며 국가의 역량을 독점하고 있다면?

가난하고 고통받는 민초들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다면?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면?

그 순간, 전 인류는 기록을 고쳐야 할 거다.

SSS급 각성자의 숫자를.

3명에서, 2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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