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175화 (175/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75화>

* * *

진유성은 대정고의 유명 인사다.

아마 대정고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을 꼽으라면 첫 번째로 상소윤이 꼽힐 것이고, 두 번째로는 진유성이 꼽힐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스승의 날 행사로 진유성의 유명세가 상소윤을 이긴 듯했다.

1학년과 2학년들이 식당에서 진유성을 볼 때면 수군거리기 시작했으니까.

연기훈은 아직도 진유성을 볼 때마다 뒷골이 당겨 오는지 뒷목을 잡았다.

‘내가 그때 화를 냈어야 했는데!’

세상 천지에 스승의 머리에 밀가루를 뿌리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란 말인가!

‘근데 왜 문을 열 때 밀가루가 터지게 하는 건 괜찮지? 서프라이즈니까? 진유성이 한 짓거리가 더 서프라이즈였는데?’

사실 연기훈은 아직도 가치관의 혼란을 겪는 중이었다.

이런 사건들을 뒤로 하고 5월이 천천히 지나갔다.

진유성은 고등학교 생활이 마음에 들었다.

나중에 상림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상림은 본래 진유성을 고등학교에 보낼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다고 했다.

보내려는 이유는 상식을 가르치기 위해서.

이건 상림의 판단이 맞다.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면서 배우는 상식과 TV 매체를 통해서 배우는 상식은 확연히 다르니까.

상소윤은 진유성이 세상 또라이라고 말하고 다니지만, 그녀가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

그나마 학교를 다니고, 친구들을 사귀어서 이 정도인 것이다.

하지만 어딘지 불안해서 보내지 말까라는 생각도 했다고 했다.

진유성이 담임이나 교감, 교장한테 반말을 할 수도 있으니까.

솔직히 연기훈은 진유성의 입장에서 꼬꼬마다.

본인은 학생들 앞에서 나이가 있는 척을 자주 하지만, 진유성보다 거의 90살이 어리다.

그런 진유성을 학교로 보내게 된 계기는 유혜연 때문이었다.

“그럼 유성이가 집에서 혼자 공부를 하라고요?”

“그건 안 돼요. 유성이도 사람들 사이에서 배워야죠.”

유혜연이 진유성의 입학을 강력히 주장하자, 애처가인 상림이 고개를 끄덕인 것이었다.

결국, 이 모든 건 진유성이 경직된 북한 사회가 아닌 한국의 정서를 배우길 바랐던 유혜연의 고집 덕분이었다.

그래서 진유성은 요즘 고민이 있었다.

대학교에 가는 것도 좋다.

고등학교와 대학교는 좀 다른 것 같지만, 거기서도 친구를 사귀게 될 테니까.

하지만 대학교를 졸업하고는 무엇을 해야 할까?

물론 간간히 게이트를 클리어하면서 돈 많은 한량으로 지낼 수 있다.

아놀드 벡의 뒷배도 있고, 김정철과 함께 만드는 JC 각성 마켓도 있다.

그러나 이는 전면으로 나서서 할 수 없는 일이다.

뒤에서 게이트를 클리어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백수나 다름이 없다.

진유성은 뒤처지는 삶을 아주 오랫동안 경험했다.

물론 사람들은 감히 천마신교주의 삶을 두고 뒤처진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오히려 만인의 존경을 받으니 부러워했겠지.

하지만 틀렸다.

진유성은 쭉 뒤쳐졌다.

보통의 사람들은 20대의 짧은 젊음을 만끽하다가 30대가 되면 젊음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 젊음을 더욱 소중히 여기고, 짧은 생을 나눌 배우자를 찾게 된다.

그렇게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면 이제는 아이를 낳는다.

그리곤 아이가 자라는 것을 화제 삼아 남은 삶을 버틴다.

진유성의 수하들도 그러했다.

천마신교의 전설을 일으킨 수하들도 하나씩 늙어 가며 가정을 일구었고, 아이를 낳았다.

그들은 모이면 자신의 자식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에 대해 떠들었고,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자식이 얼마나 속을 썩이는지에 대해 떠들었다.

그 다음으로는 다시 자식의 자식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에 대해 떠들었고, 마침내 생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떠들다가.

삶을 마감했다.

이 순리에서 진유성은 영원히 뒤처진 사람이었다.

멋쩍게 웃으며 아이를 자랑하는 수하들은 진유성의 앞에서 손자를 자랑하지 않았다.

아마 전혀 늙지 않는 진유성에 대한 배려일 것이었다.

그래도 천마신교를 함께 일군 1세대의 수하들은 진유성의 외로움과 괴로움에 대해서 눈치채고 있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진유성은 고민이 되었다.

아마 짧으면 20년 길면 30년쯤 뒤에 그는 상소윤과 유혜연을 떠나야 할 것이다.

신분을 세탁하고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은 늙지 않으니까.

모르겠다.

그때쯤 되면 상소윤이나 유혜연에게 자신의 정체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상림이 증언을 서고, 늙지 않는 모습을 보여 준다면 믿을 수 있겠지.

하지만 그렇게 되면 지금의 관계는 완전히 끝이 난다.

설마 상소윤과 유혜연이 완전히 믿어 준다고 해도…….

그들과 상림은 죽는다.

그렇다면 80년 뒤의 진유성은 다시 한번 지구에 홀로 남겨지는 것일까.

그렇게 살아가는 것일까.

그런 고민이 자꾸만 들었다.

진유성이 이런 고민을 하는 건 별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그가 쓰고 있는 <지존천마>의 소설을 쓰다 보니, 100여 년 전의 자신이 자꾸 떠올라서였다.

그때 자신은 괴로웠지만, 또한 즐거웠다.

짧은 젊음을 만끽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니 진유성은 돈 많은 백수로 살고 싶지 않았다.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던가?

사람의 욕구 중 하나가 자아실현의 욕구라고.

그가 300년을 살지, 400년을 살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이 지구에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평범한 젊음’이라는 건 확실했다.

그렇게 진유성은 결론을 내렸다.

“일을 해 봐야겠다.”

어떻게 따지면 무력으로 돈을 버는 헌팅은 중원에서 해 왔던 일들의 연장선이다.

때문에 헌팅이 아닌 완전히 다른 일을 하고 싶었다.

긴 고민 끝에 진유성은 그런 결론을 내렸다.

* * *

“아르바이트를 하시겠다고요?”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일이다.”

“갑자기 왜요?”

“무력으로 돈을 버는 일 말고 다른 일을 해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긴……. 중원의 돈의 흐름은 지금 생각해 보면 좀 이상하죠.”

현 시대에서 단지 싸움을 잘한다는 이유로 돈을 받을 수는 없다.

그러나 중원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유수의 명문 정파들도 보호비 명목으로 주변 상가들에게 돈을 걷었으니 말이다.

“근데 교주님은 미성년자라서 지금 하는 건 아르바이트죠.”

“상관없다.”

“무슨 일을 하시게요?”

“모르겠다.”

“가볍게 서비스업부터 시작하시죠. 편의점 알바 같은 거.”

“편의점이라…….”

“지인 중에 압구정 쪽 편의점을 관리하는 점장이 있거든요. 그 사람한테 말하면 적정한 시간에 하실 수 있을 걸요?”

“그럼 내가 네 소개로 온 걸 알지 않느냐?”

“아, 완전 모르게? 진짜 일을 하시게요?”

“그래. 10년 뒤에도 몰래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다닐 수는 없으니까.”

게다가 진유성은 알고 있었다.

타트바의 말처럼 마도사들은 결국 그를 찾아올 것이고, 게이트는 종말을 고할 것이다.

이는 진유성이 타트바의 말을 믿는 게 아니었다.

마도사들이 추구하는 목표와 진유성이 원하는 바가 상충하기 때문이었다.

마도사들은 지구의 아카샤를 침탈해, 지구를 제물 삼아 신이 되려고 한다.

하지만 진유성은 그 꼴을 보고 있을 생각이 없다.

그러니 언젠가는 충돌할 것이고, 그 일은 순식간에 끝이 날 확률이 높았다.

본래 모든 일이 그러하다.

계획을 준비하고 수립하는 과정을 길지만, 결론은 순식간에 다가온다.

진유성도 중원을 집어삼키고, 황실을 집어삼키는 데 걸린 시간이 딱 3년이었으니까.

“그럼 그냥 공사장에서 일하다가 만난 고등학생이라고 둘러대죠, 뭐.”

“그것도 괜찮겠군.”

진유성과 상림의 이러한 대화는 생각지도 못한 일로 이어졌다.

“상소윤, 너도 같이 해.”

“뭐? 싫어!”

“이놈의 가시나가. 너 유성이한테 공부 배우는 거 어떻게 됐어!”

“뭘 어떻게 돼! 잘 배우고 있지!”

“잘 배우고 있어?”

유혜연이 어이없다는 듯 핸드폰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우리유성이 : GG]

[나 : 야, 너두?]

진유성의 GG 선언과 유혜연의 공감이 담겨 있었다.

상소윤이 진유성을 휙 하고 노려봤지만, 진유성은 어깨만 으쓱했다.

사실인 걸 뭘 어쩌겠나.

“내가 지지야?”

“뭐?”

“유치원생도 아니고 지지가 뭐냐, 지지가.”

진유성과 유혜연은 상소윤이 약간의 오해를 했다는 걸 깨달았지만, 굳이 설명하진 않았다.

GG나 지지나 똑같으니까.

“이놈의 지지배.”

“엄마, 혹시 그거 라임?”

상소윤이 헛소리를 했지만, 유혜연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결국 상소윤은 진유성과 함께 편의점 알바를 할 수밖에 없었다.

* * *

상림이 진유성과 상소윤이 할 편의점 알바 자리를 구하는 사이, 진유성은 손님을 맞이했다.

천마신교라고 이름붙인 상가 건물에서.

“게이트를 클리어하자마자 바로 온 겁니다.”

진유성이 연락한 지 정확히 열흘 뒤, 한국에 도착한 아놀드 벡이었다.

아놀드 벡은 꽤 피곤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백악관 근처에 게이트가 생성되면서 그가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일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일을 처리한 아놀드 벡이 곧장 한국행 비행기를 탄 것은, 진유성의 말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아니고, 타트바가 나한테 부탁한 일이 있는데 네 도움이 필요하다.”

아놀드 벡은 진유성이 한 말의 대부분을 믿는다.

그는 다른 세계에서 왔고, 백 년이 넘도록 살았으며, 신화적인 영역의 힘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진유성이 가지고 있는 거대한 힘이 설명이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좀 이상한 일이긴 하다.

만약 10년 전쯤에 미래에서 온 자신이 ‘너는 다른 차원에서 왔다고 주장한 사람과 만나게 될 거야, 그리고 그 말을 믿을 거야.’라고 말한다면?

코웃음을 쳤을 것이었다.

그 믿음의 근거가 고작 ‘힘’이라면 더더욱.

아직도 이성적으로는 100%의 확신이 없다.

하지만 진유성과 만나면 홀린 듯이 그의 말을 믿게 된다.

아놀드 벡이 진유성이 감추고 있는 기세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아놀드 벡이 읽는 기세는 진유성이 품은 힘의 1할도 되지 않겠지만.

아무튼 아놀드 벡이 곧장 한국으로 날아온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이 장소의 도청은 안전한 겁니까?”

“도청기도 기계잖아. 그치?”

“당연합니다.”

“그럼 내가 모를 순 없지. 소리가 들리니까.”

아놀드 벡은 진유성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언노운 엠페러, 아니 마스터가 모든 소리를 듣는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럼 말씀하셔도 됩니다. 대체 왜 절 부르신 겁니까? 타트바의 부탁은 또 뭐고요?”

진유성은 잔뜩 피곤해 보이면서도 의무감을 불태우는 아놀드 벡을 보고는 약간 민망해졌다.

그도 사람이다.

가면 요리사로서 유투브에서 활동하겠다는 이유로 아놀드 벡을 부른 게 좀 쓸데없다는 걸 알고 있다.

‘에이, 뭐. 어른이 부르는데 와야지. 내가 무공도 도와줬는데.’

거짓말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진유성이 입을 열었다.

“내가 요리를…….”

그 순간이었다.

아놀드 벡이 미간을 찌푸렸다.

“잠시만요.”

이윽고 아놀드 벡은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것 같은 심상을 만들어 냈다.

전음을 쓸 때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과 비슷한데, 좀 다르다.

“뭐 하냐?”

“아멜라 메건과 정신 감응 스킬을 주고받고 있었습니다.”

“그런 것도 가능해?”

“아멜라 메건은 신의 메신저고, 저는 사도니까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설핏 인상을 찌푸린 아놀드 벡이 말했다.

“엔리케 카를로가 묘한 짓을 벌였군요.”

“멕시코 SSS급 각성자?”

“그렇습니다.”

“뭔데?”

“EX급 아이템을 두고 싸움을 벌여 보자고, 전 세계 SS급 이상의 각성자들에게 도발을 던졌습니다.”

“EX급도 있어?”

“없습니다. 말로만 존재하죠. 엔리케 카를로가 뭔가를 꾸미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 순간까지만 해도 진유성은 아놀드 벡의 말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잠시 뒤.

아놀드 벡이 엔리케 카를로의 초대장을 보여 주는 순간, 그의 눈이 커졌다.

아멜라 메건이 전송한 사진 속에는…….

“본인 말로는 EX급 아이템인 엑스칼리버라고 하는군요.”

진유성의 기억과 완전히 일치하는 입멸검이 자리하고 있었으니까.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