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73화>
* * *
진유성은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사고 스터티룸으로 돌아오다가 희한한 목소리를 들었다.
아니, 들었다고 표현하는 것도 이상했다.
그의 몸은 스터디룸의 1층 입구로 향하고 있었고, 목소리가 들린 것은 3층의 오픈형 스터디룸에서였으니까.
그러나 진유성은 스터디룸이 있는 건물 전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다.
물론 흘리는 공부가 깊어서 모든 소리를 듣는 건 아니고, 생존에 위협이 되는 소리나 아는 사람의 목소리만을 듣는다.
그리고 이 빌딩에 진유성이 알고 있는 사람은 상소윤뿐이고.
상소윤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정확히는, 웬 남자가 상소윤에게 전화번호를 물어보고 있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헌팅인가?’
놀라운 일이다.
보통 박색하고, 가끔은 빢쌖한 상소윤에게 관심을 표하다니.
‘사이비인가? 아니면 다단계?’
진유성은 그런 의심을 품었지만, 들리는 목소리에 따르면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상소윤이 거절하자 곱게 물러나는 걸 보니 말이었다.
“흐음…….”
진유성은 드디어 인정할 타이밍이 왔다고 생각했다.
상소윤이 박색하지 않다는 것을.
진유성은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상소윤이 이 세계에서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는 것과 공감하는 건 다르다.
아프리카 원주민 중에는 귓불이 길수록 아름다운 부족이 있다.
그들은 귓불을 늘리기 위해서 어렸을 때부터 귀에 무거운 장신구를 달고 산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귓불이 축 늘어져 있는데, 한국인이 그 모습을 봤다면 어떨까?
미의 기준을 알 수는 있지만, 공감하기 힘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진유성도 그러했다.
그는 약육강식의 시대에서 태어났고, 자랐다.
그가 살던 세계에서 강하다는 건 미(美)이자 덕(德)이었고, 약하다는 건 추(醜)이자 불(不)이었다.
물론 이목구비 자체에는 미의 기준이 적용될 수도 있다.
짙은 눈썹, 오똑한 코, 앵두 같은 입술.
이런 수식어는 중원이나 지구나 비슷하니까.
문제는 이러한 부분들이 모였을 때 주는 느낌이다.
중원에서는 강인하고, 다부진 외모가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에 반해 상소윤은 너무 말랐고, 너무 약해 보였다.
목내이(木乃伊 : 미라)와 비슷하다.
툭 치면 부러질 것 같다.
‘그걸 뭐라고 하지? 벌크업?’
만약 상소윤이 벌크업을 통해 근육을 늘리고, 골격을 키운다면?
진유성이 잠시 상상해 보았다.
벌크업이 완료된 후의 상소윤의 모습을.
‘호오.’
박색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니, 아름다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진유성은 피륙의 아름다움에 구애받는 사람이 아니다.
너무 오랫동안 살아왔기 때문에 그런 게 전부 무의미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사람은 어차피 늙고, 늙은 뒤에 남는 것은 외모가 아니라 영혼이 풍기는 향기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며 3층에 도착했다.
“왜 이렇게 늦게 와?”
“카페에 사람이 좀 많았다.”
“뭐야? 휘핑크림은?”
“없다. 그런 쓸모없는 설탕 덩어리를 먹을 바에는 아이스크림을 먹어라.”
“뭐래, 아이스크림도 설탕 덩어리거든?”
상소윤이 투덜거리며 커피를 마시고는 툭 내뱉었다.
“야. 근데 너 걔랑 연락하냐?”
“누구 말이냐?”
“최유리.”
진유성이 고개를 저었다.
최유리가 국가대표에 뽑히고 태릉선수촌으로 떠난 뒤에는 한 번도 연락해 본 적이 없었다.
연락이 온 적도 없었고.
“없다.”
“왜?”
“지나갔지 않느냐?”
“뭐가 지나가?”
“인연이.”
진유성은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지만, 지나간 일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서 최유리 하면 떠오르는 건 그녀의 모습이 아니다.
선천진기가 떠오른다.
중원에서도, 지구에서도 그 정도로 맑고 정명한 선천진기를 본 적이 없으니까.
“갑자기 그건 왜 묻느냐.”
“이거 봐 봐.”
상소윤이 언어 영역의 비문학 지문을 보여 주었다.
지문에 나오는 학생의 이름이 최유리였다.
진유성이 어깨를 으쓱했다.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공부나 해라. 오늘의 할당량을 채우기 전에는 핸드폰과 지갑을 돌려주지 않을 테니.”
“지독해.”
상소윤이 투덜거렸지만 표정은 밝았다.
역시 사람은 갈궈야 한다.
막상 공부를 하다 보니 제법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상소윤이 공부를 하는 사이, 진유성은 노트북을 펼쳤다.
그리곤 얼마 전부터 쓰기 시작한 소설의 뒷부분을 쓰기 시작했다.
참고로 진유성이 쓰는 소설의 제목은 <지존천마>였다.
누군가에겐 지존이자, 누군가에겐 천마였던 자신의 일대기였으니 이보다 적합한 제목은 없었다.
그렇게 개방형 스터디룸에서 몇 시간을 보낸 진유성은 상소윤이 공부를 못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아, 심심해.”
“야, 곧 어버이날인데 선물 사러 갈래?”
“스승의 날 때 뭐할 거야?”
“혹시 새롬이한테 톡 안 왔어?”
집중력이 개똥이다.
계속해서 멀더의 술법을 쓰며 상소윤이 공부에 공감하도록 만들었지만, 10분을 못 넘긴다.
어지간한 게이트를 클리어할 때 들어가는 내공보다 상소윤에게 쓴 내공이 더 많았다.
멀더의 술법은 한 번 시전하는데도 적지 않은 내공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결국 먼저 백기를 든 건 진유성이었다.
진유성은 핸드폰을 들어 유혜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GG.
그러자 유혜연에게서 답장이 왔다.
-야, 너두?
* * *
진유성은 100년이 넘도록 살아오면서 수많은 적들과 마주했다.
그들 중에는 진유성이 보기에도 합당한 당위성으로 자신과 대적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는 그런 이들에게는 나름의 배려를 했다.
목숨을 빼앗더라도 명예를 훼손시키지는 않도록 주의한 것이었다.
물론 반대의 적들도 있었다.
그 어떤 당위성도 없이, 그저 자존심 때문에 진유성과 싸우는 이들도 있었다.
이런 이들이 최악인 점은 스스로의 목숨만 귀하게 여긴다는 것이었다.
진유성과 대적을 결정했으면 본인이 전면에 나설 때도 있어야 하는데, 늘 자신의 수하들만 내세웠다.
결국 아랫사람들이 실컷 죽고 난 다음에 항복하는 경우도 있었고.
진유성은 이런 이들을 용서하지 않았다.
아무리 많은 전쟁 배상금을 낸다고 하더라도 철저하게 파멸시켰다.
이처럼 진유성은 적에 대한 자신만의 기준이 있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모르겠다.
그저 부들거리고만 있었다.
└와, 작가 놈 개 멍청하네. 고려가 진씨 왕가냐?
└재밌게 보고 갑니다.
└디테일해서 좋네요.
└디테일은 개뿔. 고려 복식에 들어간 단어 다 틀렸음ㅋㅋㅋㅋ
└자료 조사도 안 하고 뇌피셜로 쓴 듯ㅋㅋㅋㅋ
└10살도 안 된 꼬맹이가 고려에서 명나라까지 걸어갔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네ㅋㅋㅋ
└정변이 일어났는데 그걸 도망갔다고 했네.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무신정변 때 명나라는 건국도 안 했는데?
└댓글마다 싫어요 누르는 거 작가 놈 아니냐ㅋㅋ?
진유성이 연재 사이트에 올린 <지존천마>는 생각보다 괜찮은 반응을 얻었다.
꽤 디테일하며, 리얼하다는 게 전체적인 평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진유성이 실제로 겪은 디테일이 들어가 있으며, 진유성이 실제로 겪은 리얼리즘이 내포되어 있으니까.
그러나 이는 곧 진유성의 괴로움으로 이어졌다.
디테일과 리얼리즘을 무기로 삼은 진유성의 글이 실제 고려, 명나라와 다른 부분이 많기 때문이었다.
이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진유성이 살던 명나라와 지구의 명나라는 분명 다르다.
하지만 그런 부분을 알 수 없는 독자들은 집요하게 설정을 물고 늘어졌다.
개중에는 악플도 꽤 많았다.
“상림아.”
“네.”
“아무래도 안 되겠다.”
“뭐가요?”
“살계(殺戒)를 열 때가 된 것 같다. 그것도 아주 크게.”
“아, 무슨 말씀하시는 거예요.”
“전부 죽여 버리겠다!”
그게 진유성을 부들거리게 만들었다.
“대한민국은 법치 국가입니다. 교주님도 국가를 운영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시잖아요.”
“그럼 전부 고소하겠다.”
“에이, 저런 걸로 고소 안 돼요.”
“왜! 내가 이토록 가슴이 아픈데!”
진유성이 버럭했지만, 상림은 어깨만 으쓱했다.
그도 연예인들을 괴롭히는 악플러를 강하게 처벌해야 된다고 믿는 사람이지만, 이 경우에는 악플이라고 보기에 좀 애매하다.
그들이 보기엔 진유성의 소설이 엉터리인 게 맞으니까.
그저 피드백의 표현이 조금 강할 뿐이다.
그 뒤로도 진유성은 길길이 날뛰었지만 방법은 없었다.
인터넷에 댓글을 단 사람들을 어떻게 찾겠는가?
그때 진유성이 입을 열었다.
“해커를 고용해야겠다.”
“해커요?”
“그래. 해커는 IP 추적 같은 게 가능하다며? 그래서 전부 찾아가서 딱밤이라도 한 대씩 때릴 거야.”
“교주님, 그건 심각한 범죄입니다. 그러시면 안 돼요.”
그 순간, 진유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상림아.”
“네?”
“핸드폰을 내놓거라.”
“제 핸드폰이요? 왜요?”
“지금 내 본능이 외치고 있다. 이 나쁜 놈들 중에 네가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고.”
“네? 제가 악플을 달았다고요?”
“그래. 그러니 악플러들을 옹호하는 게 아니냐!”
진유성의 말에 상림이 어이없다는 듯 웃더니, 당당하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진유성이 상림을 응시하며 핸드폰으로 소설 연재 사이트에 들어갔다.
접속 기록이 있고, 자동 로그인이 되어 있다.
진유성은 마이페이지에 가서 ‘내가 쓴 댓글 모아 보기’를 클릭했다.
그리고는…….
“사, 상림아.”
크게 감동했다.
└너무 재미있게 보고 갑니다. 작가님.
└소설 너무 재미있어요.
└기존 역사와 설정이 달라서 그렇지, 작가님이 엉터리로 쓴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연참해 주세요!
상림이 쓴 댓글은 전부 응원 댓글밖에 없었다.
심지어 악플을 다는 다른 독자와 싸운 흔적도 있었다.
‘이럴 수가…….’
진유성은 감동하면서 반성했다.
자신은 어찌 이렇게 쓰레기 같은 것일까?
이토록 자신을 응원해주는 수하를 악플러로 매도하고 의심하다니…….
그러자 상림이 촉촉한 눈으로 코밑을 쓱 문질렀다.
“부끄러워서 댓글 단 거 말 안 했던 건데…….”
“내가 미안하다!”
“아닙니다, 교주님. 댓글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어제 회식했지?”
“네? 네. 회식했죠.”
“이리 와라. 벌모세수를 해 주마.”
“갑자기요?”
“어허, 갑자기는 무슨! 몸에 탁기가 남아 있으면 내공의 정순함을 유지하는 데 방해가 된다!”
진유성이 상림의 등에 손을 올렸다.
몸의 탁기를 쫓아내는 벌모세수는 본래 혈도가 굳지 않은 어린 시절에만 효용이 있다.
성인이 되면 혈도가 굳어 버리고, 벌모세수를 해도 큰 호용이 없다.
그러나 진유성에게는 예외였다.
그가 가진 말도 안 되는 내공 운용 능력이라면 혈도를 자극하지 않고도 탁기를 날려 버릴 수 있었다.
본래는 주기적으로 벌모세수를 하는 게 좋았다.
하지만 귀찮아서 내버려두고 있었는데…….
이제 전혀 귀찮지 않다.
언제나 그를 응원해 주는 상림을 위해서라면 벌모세수가 문제겠는가?
벌모목욕까지 가능하다!
진유성이 그런 생각을 하며 상림의 장심에 손을 올렸다.
이윽고 압도적인 진유성의 내공이 상림의 온몸을 훑고 지나가기 시작했다.
탁기와 화기를 날려 버리고, 타통된 임독양맥의 흐름을 보다 원활하게 만들었다.
그사이, 상림은 웃음을 참고 있었다.
‘후후.’
진유성이 모르는 사실 한 가지가 있었다.
상림은 개인용 핸드폰을 들고 다니지만, 회사에 두고 다니는 업무용 핸드폰이 따로 있다.
워라밸을 맞추기 위해서 일부러 집에는 가져오지 않는.
그리고…….
└작가놈, 인성 별로일 게 뻔히 보이네.
└딱 봐도 주변 사람들이 싫어할 듯.
└그렇게 살지 마쇼ㅉㅉ
그 핸드폰으로 작성한 댓글들이 자신의 본심이었다.
진유성은 모르겠지만.
‘후후하하하!’
난생 처음으로 상림이 진유성을 이긴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