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172화 (172/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72화>

진유성은 유투브에 영상을 올려본 적은 없지만, 유투브 영상을 아주 많이 봤다.

어쩌면 단기간 내에 가장 많은 영상을 본 이용자가 진유성일 수도 있었다.

대부분의 유투브 영상을 8배속으로 하고 보기 때문이었다.

물론 보통의 사람들도 8배속 영상을 볼 수는 있다.

어차피 유투브는 자막을 적극 이용해 소리를 시각화시키니까, 적당히 이해하면서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8배속의 집중력을 유지하며 오랫동안 볼 수는 없었다.

하나의 검로(劍路)를 이해하기 위해 칠주야 동안 고민할 수 있는 진유성의 집중력이 없으니까.

그런 이유로 진유성은 유투브의 행태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자신이 업로드한 영상에 찍힌 조회 수가 뭘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300만.

정확히는 200만대 후반이지만, 거의 300만에 근접한 조회 수.

영상을 올린 지 4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 정도 조회 수를 기록했다는 건, 영상이 많은 알고리즘에 포함되었다는 소리다.

‘역시, 유투브 이용자들은 눈이 제대로 박혀 있군.’

자신의 화려한 요리 퍼포먼스에 기막힌 요리 실력에 감탄한 것이 틀림없었다.

이 정도 요리라면 한 번 봐서는 만족할 수가 없다.

아마 각각의 이용자들이 감탄을 금치 못하고 100번씩은 본 게 아닐까?

진유성은 그런 생각을 하며 영상을 클릭했다.

그리고는 인상을 와락 구겼다.

└와, 씨. 무슨 JC 그룹 회장이ㅋㅋㅋㅋ

└근데 이 아저씨 엄청 잘 먹네ㅋㅋㅋ 먹방할 만한데ㅋㅋㅋ

└유투브가 돈이 되긴 하나 보네. 그룹 회장님이 영상을 찍고.

└돈 벌라고 하는 거겠냐? 그룹 홍보차 하는 거지.

└근데 김 회장 부끄러워하는 거 보여서 더 웃기지 않냐ㅋㅋㅋ

└약간 수치를 즐기는 거 같음ㅋㅋㅋㅋㅋㅋㅋ

└근데 JC가 이니셜이었냐? 방금 찾아보니까 회장님 이름이 김정철이네.

└ㄴㄴ 존나 처먹의 줄임말임.

└존나 처먹ㅋㅋㅋㅋㅋㅋ

└존나 처먹ㅋㅋㅋ 미친 새끼.

└이 새끼. 드립 괜찮았다.

└니가 뭔데 날 평가해.

└나? 난 안동 김씨 가문의 58대손 김동안이다.

└평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누구도 진유성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았다.

모두가 김정철 회장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간혹 김정철 회장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은 이들은 영상 퀄리티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키야, 역시 돈 많은 사람이 유투브 하니까 영상 때깔이 다르네.

└저 프레임 단위로 CG 들어간 거 봐 봐ㅋㅋㅋ

└돈 엄청 깨졌을 거 같은데.

└님들 지금 이거 때문에 JC 그룹 주가 상승세임ㅋㅋㅋ 영상 값 만 배쯤 뽑았을 듯.

└에이, 이 영상으로 상승세겠냐?

└ㄴㄴ 진짜임. 원래 JC 그룹이 똑똑한 후계자가 없고, 김정철이 아픈 것 때문에 평가절하 중이었거든.

└아프다고?

└ㅇㅇ 아팠다는 말이 많았음. 은퇴할라고도 했고. 근데 JC 하는 거 봐 봐. 한 5인분 먹은 거 같지 않냐?

└JC 한다고?

└존나 처먹는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암튼 그래서 주가 폭등 중. 영상의 영향이 분명 있음.

└나도 저녁이나 JC 하러 가야겠다.

└오늘 회식인데 소고기 JC한다.

뭔가 그런 기분이 든다.

소개팅에서 분위기는 다 띄워 놓고 모두를 즐겁게 해 줬는데, 막상 애프터는 조용히 있던 친구가 된 기분.

물론 진유성은 소개팅 같은 거 해본 적 없다.

그냥 한국 영화에서 봤던 감상평을 늘어놓았을 뿐이었다.

왜냐고?

진짜 그런 기분이 들었으니까.

“이럴 순 없어.”

진유성은 한참을 부들거렸다.

주말인데 진유성이 뭐 하나 싶어 방에 들어왔던 상소윤을 내쫓고는 또 부들거렸다.

하지만 진유성은 생산적인 사람이다.

제 아무리 쓸데없는 짓을 하더라도 일단 최선을 다하고 본다.

멈춰서 좌절할 바에는 한 걸음이라도 더 나아가는 사람.

그게 진유성이었다.

컴퓨터 책상에 앉아서 고민하던 진유성은 결론을 내렸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가면 요리사는 얼굴을 감추고, 말을 하지 않는다.

그에 반해 김정철은 얼굴을 드러냈고, 말을 많이 한다.

사람들의 포커싱이 김정철에게 쏠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 포커싱을 가면 요리사에게 돌리기 위해서는 김정철보다 더 유명한 게스트가 필요했다.

그럼 사람들이 JC 그룹의 홍보 영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이 대단한 게스트를 섭외한 가면 요리사에 대해 궁금해 할 것이었다.

그리고…….

진유성은 적합한 인물을 알고 있었다.

진유성이 책상 서랍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이 핸드폰은 위성 추적, 도청, 통신 감찰에 걸리지 않는 놈이다.

아놀드 벡이 자신에게 연락할 때마다 사용하라고 준 물건이었다.

부들거림을 해소하기 위해 진유성은 아놀드 벡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가 게이트 안에 있는 것만 아니라면 전화를 받을 것이었다.

잠시 뒤, 아놀드 벡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 드벡아.”

-무슨 일이십니까?

“한국에 급한 일이 생겼다.”

-네? 급한 일이요? 무슨 일이죠?

“말로 설명하기가 좀 힘들고, 일단 네가 한국에 와야겠는데.”

-게이트와 관련된 겁니까?

진유성은 잠시 고민했다.

말을 다 하지 않는 것과 거짓말을 하는 건 별개의 문제다.

솔직히 말해 유투브용 영상을 찍는 건 게이트와 관련이 없는 거다.

‘아!’

그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게이트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고, 타트바와 관계가 있는 일이다.”

-타트바…….

타트바.

창세신의 반쪽이자 전지의 힘을 얻은 아카샤의 화신.

진유성은 타트바를 만난 적도 있고, 때린 적도 있고, 협박한 적도 있다.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이름을 부르고 있지만, 아놀드 벡에게 타트바는 신의 대리인과 같은 존재였다.

-타트바에게 어떤 문제가 생겼습니까?

“문제는 아니고, 타트바가 나한테 부탁한 일이 있는데 네 도움이 필요하다.”

거짓말이 아니다.

[최대한 많은 일을 하세요.]

[당신을 품은 존재가 나타난다면 승산을 높이는 길은 다름밖에 없으니까요.]

타트바는 분명 이렇게 말을 했다.

물론 여기서 타트바가 말하는 ‘많은 일’에는 유투브 영상을 찍는 행위는 포함되지 않을 것이었다.

그녀가 말하는 ‘일’이란 진유성이 품고 있는 무와 공을 변주시킬 행위들을 뜻하니까.

하지만 진유성은 애써 이해하지 못한 척을 했다.

타트바가 많은 일을 하라고 말한 건 사실이니까, 타트바를 모시는 아놀드 벡은 자신을 도와야 한다.

수화기 너머의 아놀드 벡이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무슨 일인지는 말씀하지 마십시오. 이 전화기가 안전하다고 해도 100%는 아닙니다.

“그래.”

-시일이 촉박한 일입니까?

“그건 아닌데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 왜? 바쁘냐?”

-5시간 뒤에 게이트에 들어가야 합니다. 백악관 인근에 B급 게이트가 예고됐습니다.

“그럼 그거 클리어하고 와라. 그동안 견디고 있으마.”

-알겠습니다.

진유성은 전화를 끊고 생각에 잠겼다.

아놀드 벡이 게이트를 클리어하는 데 일주일이 걸릴 거니까, 아마 한국에 오는 건 8일쯤 뒤일 것이었다.

그때까지는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의 관심을 빼앗긴 굴욕감을.

그사이, 백악관과 멀지 않은 워싱턴 D.C의 호텔에서 머물고 있던 아놀드 벡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견딘다고?’

진유성이 지금까지 견딘다는 말을 쓴 적이 있던가?

S급 게이트도 산책 나가듯이 클리어할 수 있는 무력을 지닌 이가 말이었다.

‘뭔가 큰일이 났군.’

아놀드 벡은 심각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명상을 통해 신체를 컨트롤하기 위해서였다.

최상의 상태로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한국으로 가야 한다.

* * *

진유성이 한국에서 어려워하는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유혜연.

이상하게도 유혜연의 말은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이는 유혜연이 진유성에게 깊은 신뢰와 애정을 보내기 때문일 것이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자신이 상림의 집에 얹혀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중원에서는 한 집안의 가장이 조카를 데리고 살겠다면 그냥 통보하면 된다.

내일부터 조카가 같이 산다.

잘 대해 주도록.

딱 두 마디면 모든 상황이 종료된다.

하지만 한국에 적응한 지금, 유혜연이 진유성을 받아들여 준 게 얼마나 큰일인지 알게 되었다.

그뿐인가.

유혜연은 자신을 친조카처럼 대했다.

그렇기 때문에 유혜연의 부탁을 거절하는 게 쉽지 않았다.

황금 같은 일요일에 진유성은 상소윤과 함께 스터디 카페로 향한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

상소윤에게 공부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

두 사람이 개방형 스터디 카페에 들어오며 말다툼을 벌였다.

“꼭 이런 시끌벅적한 곳에서 공부를 배워야겠느냐?”

“난 너무 조용하면 공부가 안 된단 말이야.”

“조용해도 안 되고, 시끄러워도 안 되는 게 아니고?”

“뭔 소리야?”

“무슨 짓을 해도 공부가 안 되는 돌머리라는 말이었다.”

“죽는다, 진짜.”

두 사람은 투덜거리면서도 요금을 결제하고 4인용 테이블에 앉았다.

“야, 나 60등 안에 들 수 있냐?”

“모르겠다. 누구를 가르쳐 본 적이 없어서.”

진유성은 고수를 초고수로 만드는 건 손쉽게 할 수 있다.

워낙 높은 경지에 있다 보니 고수들이 고민하는 부분이 훤히 보인다.

게다가 고수들은 진유성이 던져 주는 조언을 금과옥조처럼 받아들이고, 이해하려 노력하기 마련이었다.

어느 정도 말이 통한다는 소리였다.

그러나 말이 안 통하는 하수를 쓸 만한 고수로 만드는 능력은 전무했다.

대체 이걸 왜 못하는지를 모를 때가 많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상소윤에게 무공을 가르쳐 주는 것이라면 진유성은 포기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공부다.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일이다.

‘공부를 어떻게 가르치지?’

진유성은 일단 원론적인 부분을 물어보기로 했다.

“상소윤.”

“왜?”

“공부를 하려는 마음은 있느냐?”

“있지. 왜 없겠어.”

“근데 왜 안 하느냐?”

“몰라? 손이 잘 안 가.”

“그렇군.”

진유성은 턱을 쓰다듬었다.

역시 이런 경우에는 한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갈궈야 한다.

상림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어디서 인간 구실을 하기 힘든 상림이 이렇게 멀쩡히 사는 것은, 진유성이 주기적으로 갈궜기 때문이다.

중원에서도, 한국에서도.

결정을 내린 진유성의 손이 번개같이 움직였다.

상소윤의 손에 들려 있는 핸드폰과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지갑을 가져가 버린 것이었다.

“야……!”

상소윤이 소리를 지르려다가 말을 삼켰다.

아무리 개방형의 스터디 카페라곤 하지만 소리를 지르는 건 실례였다.

상소윤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아, 뭐 해!”

“오늘의 공부 할당량을 다 채우기 전에는 돌려주지 않겠다.”

“아, 진짜. 열심히 할게.”

“일단 열심히 해라.”

“아빠한테 이른다?”

“상관없다.”

“엄마한테!”

“외숙모는 날 지지해 줄 것이다.”

상소윤은 진유성에게 핸드폰만 돌려 달라고 애걸복걸했지만, 진유성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대신 진유성은 상소윤에게 멀더의 술법을 사용했다.

언어습득의 마도술은 상대와 무의식을 공유해 언어를 배우는 최상위 술법이다.

진유성은 압도적인 경지로 손쉽게 사용하지만, 사실은 사용하는 게 극히 까다로운 마도술이었다.

언어 습득의 마도술에는 한 가지 부가 효과가 있는데, 이는 피사용자가 사용자에게 친밀함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여기서의 친밀함은 친분보다는 공감의 의미가 강했다.

즉, 언어 습득의 마도술을 사용하면 상소윤이 진유성의 행동에 공감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었다.

“아, 진짜…….”

아니나 다를까. 상소윤은 투덜거렸지만, 진유성의 행동을 이해했다.

그리곤 교과서로 시선을 돌리며 진유성에게 말했다.

“그럼 나 커피 좀 사다 줘.”

“무슨 커피~?”

“……?”

진유성의 말투가 이상하다.

꼭 여자 같았다.

상소윤의 시선을 받은 진유성이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언어 습득의 마도술은 다 좋은데 이게 문제다.

“큼, 무슨 커피를 원하느냐?”

“나 카페모카.”

“카페모카 존맛탱.”

“……?”

“큼. 나도 카페모카를 좋아한다는 소리였다.”

부끄러워진 진유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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