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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170화 (170/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70화>

* * *

JC 그룹 내부에 새로운 계열사가 설립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김정철 회장은 각성 마켓과 관련된 이야기를 비밀로 유지했지만, 워낙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보니 모든 걸 숨길 수는 없었다.

그래도 사전 조율해야 할 대부분의 사안은 처리가 되었다.

머지않은 시점에 각성 마켓의 설립을 발표해도 될 것 같았다.

게다가 호재도 있었다.

바로 어제, 캘리포니아의 자유 각성 지대에 이 오픈했다.

최초의 민간 각성 마켓이 개설된 것이었다.

물론 지금도 중국이나 멕시코에 SG와 독립된 각성 마켓이 있고, 치외법권의 사업가들이 운영하는 블랙마켓들도 있다.

하지만 이는 공인된 마켓이 아니다.

사업자 등록을 하지도 않고, 각성자들이 세금을 내지도 않는다.

CF 각성 마켓이 최초의 민간 발주 마켓인 셈이었다.

김정철 회장은 최초의 타이틀을 빼앗긴 게 전혀 아쉽지 않았다.

오히려 최초를 빼앗겨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민간 각성 마켓이 탄생하면 시작될 수많은 비판의 담론들이 CF에 쏠려서 다행이라고.

아마 JC 각성 마켓이 오픈되면 호사가들은 ‘장사꾼 김정철이 CF를 벤치마킹했다.’라고 생각할 것이었다.

김정철의 뒤에 언노운 엠페러나 아놀드 벡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김정철 회장은 그런 생각을 하며 서류들을 정리했다.

“남은 건 이것이군.”

김정철 회장은 대한민국 정부 부처에서 온 공문을 보며 고민에 잠겼다.

마켓의 이름.

한국 정부는 바보도 아니고, 장님도 아니고, 귀머거리도 아니다.

그들은 김정철이 단신으로 각성 마켓을 오픈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고, 나름대로 뒷조사를 했다.

그 결과 김정철의 뒤에 아놀드 벡과 팀 우산도의 각성자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또한 쇠락해 가는 SG가 영향력을 계승하기 위해 ‘마켓’이라는 수단을 선택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김정철에게 접촉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신기하군.’

한국 정부가 김정철의 행동 동기를 이해하는 데 걸린 시간이 2달이다.

그것도 모든 국정 기관을 총동원해서.

하지만 언노운 엠페러, 진유성은 어떠한가.

처음 만난 자리에서 곧장 모든 것을 꿰뚫어 보았다.

물론 자신이 진유성에게 아놀드 벡이 뒤에 있다는 이야기를 해 주긴 했다.

하지만 그 정보만 가지고 모든 것을 통찰한 통찰력은 신기(神技)에 가까웠다.

‘신기해서 신기인가?’

재미없는 농담을 떠올린 김정철은 다시 서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한국 정부가 원하는 건 하나였다.

각성 마켓의 이름을 으로 정하는 것이었다.

이는 JC 각성 마켓이 아시아를 아우르는 마켓이 될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었다.

한국 정부는 기업 브랜드의 네임 밸류가 국가 브랜드보다 높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S 그룹이 있으니까.

그래서 JC 각성 마켓에 KOREA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어 하는 것이었다.

이름뿐만 아니라 지분도 간절히 원하고 있다.

15%의 지분에 무려 25조를 베팅한 것이었다.

25조는 한국 정부 1년 치 예산의 5%에 가까웠다.

그만큼 정부는 JC 그룹의 각성 마켓이 성공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었다.

뒤에 황제로 불리는 아놀드 벡이 있으니까 말이었다.

하지만 이건 안 될 일이었다.

지분을 가지고 있다는 건 내부 감사가 가능하다는 것이고, 진유성과의 거래가 추적될 가능성도 있었다.

김정철은 지분은 거절할 생각이었지만, 이름은 얼마든지 바꿀 용의가 있었다.

한국 정부가 10조 정도만 준다면 말이었다.

돈만 문제가 아니다.

이름을 통일감과 소속감을 주기 때문에 한국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어쨌든 사업 초반에는 자국민을 대상으로 돈을 벌어야하니 말이었다.

‘결국은 7~8조 사이로 깎이겠지만, 일단 10조를 불러 보자.’

물론 대한민국 정부에 JC 그룹의 마켓 뒤에 엠페러와 언노운 엠페러가 둘 다 있다는 것을 밝히면 10조가 문제가 아니다.

이름만 바꾸는 것에 25조를 배팅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김정철은 진유성이 두려웠다.

그의 물리적인 폭력이나 강압이 두렵다는 게 아니었다.

진유성은 그런 것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하지만 김정철이 보기에 진유성이 힘을 과시하는 것에 관심이 없는 것은 과시하기 싫어서가 아니다.

이미 과시를 해 볼 만큼 해 보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긴 했다.

21세기 정보화 시대에 진유성이 자신의 힘을 과시했다면, 기록이 남았을 것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을 살아온 김정철은 진유성이 일반인의 잣대로 판단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절대적인 무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사용해봤으며, 사람을 굽어보았다.

그래서 진유성의 존재가 두려웠다.

김정철은 진유성의 비위를 거스르는 짓을 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혹시 진유성이 엔리케 카를로인가?’

멕시코의 절대자 엔리케 카를로.

지구상에 3명뿐인 SSS급 각성자.

아놀드 벡이 UN에 소속되었고, 월성이 중국에 소속된 것과 다르게, 스스로 아래 멕시코를 굴복시킨 자.

현재 멕시코의 상태는 좋지 않다.

그는 폭력과 공포로 멕시코를 지배하고 있었고, 수많은 시민들이 고통받고 있었다.

그야말로 하 나라를 멸망시킨 폭군 걸왕(桀王)의 재림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UN과 SG는 인도적인 차원에서 멕시코에 대한 경고를 거듭하고 있지만, 엔리케 카를로는 들은 척도 안 하고 있었다.

이에 사람들 사이에서는 SSS급 각성자들 중에 엔리케 카를로가 가장 강한 게 아니냐는 말도 있었다.

미국과 국경을 마주한 멕시코에서 폭정이 일어나고, 중남미 국가에 대한 야욕을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있는데도 제재가 없는 걸 보면 말이었다.

하지만 김정철은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인 것 같다.

진유성이 엔리케 카를로라면 많은 부분이 설명되겠지만, 그보다 더 많은 부분이 설명되지 않는다.

진유성과 엔리케 카를로는 둘 다 두려운 존재지만, 그 두려움의 성질은 좀 다르니까.

김정철 회장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인터폰이 울렸다.

-회장님, 한 이사님이 찾아오셨습니다.

“홍보팀 한 이사?”

-예.

“들어오라고 해. 녹차 두 잔 주고.”

-알겠습니다.

비서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한 이사가 조심스러운 몸가짐으로 회장실로 들어왔다.

두 사람은 응접 소파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비서가 녹차를 가져다줄 때쯤 한 이사가 본론을 열었다.

“회장님.”

“응?”

“그, 아, 흠…….”

한 이사가 쉬이 입을 열지 못하자, 김정철이 설핏 미간을 찌푸렸다.

“뭔데 그래?”

“혹시, 그, 제가…….”

“말을 해!”

한 이사의 답답한 행동이 김정철이 미간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누가 사칭을 한 줄 알았는데…….”

“알아듣게 말하게.”

김정철의 눈치를 보던 한 이사가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곤 유투브에 들어가더니 영상 하나를 클릭했다.

“신입 사원이 어쩌다가 발견한 건데, 아직은 조회 수가 100도 안 됩니다. 저희 쪽에서 알고리즘 노출을 막았거든요.”

알고리즘 노출을 막았어도 검색으로 들어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는 한 이사의 설명을 들으며 김정철은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영상의 정체를 눈치챈 것이었다.

“아, 거 참! 반응 더 화끈하게 하라고! 요!”

“아니, 연륜과 지혜는 어디다가 팔아먹었어! 요!”

“그래, 그거지! 요!”

진유성의 상가 건물에서 찍었던 영상이다.

즉, 김정철의 두근거림은 자신의 흑역사를 마주하게 될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역시 진유성은 두려운 존재였다.

“후우…….”

녹차를 들이킨 김정철이 심호흡을 했다.

그리곤 떨리는 손으로 영상을 재생했다.

황금색 가면을 쓴 가면 요리사가 중식도를 들어 올리자, 반짝이는 중식도면 안에 흑염룡이 꿈틀거린다.

화면이 흑염룡에 포커스 되는데, 흑염룡이 물고 있는 게 JC 그룹의 로고다.

“……?”

영상이 이어진다.

-하앗!

-타타타타탁!

도마를 두드리는 힘찬 손놀림.

김정철이 눈앞에서 이루어졌던 것보다 훨씬 빠르다.

아마 배속을 시켜 놓은 것 같았다.

당근과 오이가 날아다니는데, 주황색 당근에는 JC 그룹의 로고와 상품 따위가 하나하나 오버랩되어 있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한 이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CG에 들어간 비용이 상당할 거라는 게 홍보팀의 판단입니다.”

“그래?”

“네. 이게 모든 프레임마다 입혀 놓은 거라서…….”

가면 요리사의 요리 장면 자체는 김정철의 생각보다 괜찮았다.

어느 정도 재밌기도 하고, 유쾌하기도 했다.

게다가 JC 그룹의 로고와 상품이 곳곳에 들어가 있는데, 꼭 숨은 그림 찾기를 하는 듯한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쿡방의 뒤로 이어진 먹방이었다.

-아닛?

-이 맛은……!

“제발 꺼!”

김정철 회장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한 이사가 허겁지겁 영상을 중지했다.

반응을 보아하니 역시 회장님도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후우, 후우…….”

숨을 몰아쉰 김정철은 더는 감히 영상을 보지 못했다.

간신히 건강을 되찾았는데 심장이 좋지 않았다.

아마 지금 죽는다면 수치사로 기록되지 않을까?

“영상을 내릴까요? 회장님?”

“당…….”

당연히 그러라고 명령하려다가 멈칫했다.

이 영상을 올린 사람이 언노운 엠페러니까.

멋대로 내렸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진유성이 아이템을 공급하지 않겠다고 강짜를 놓을 수도 있었다.

애당초 저 영상을 찍은 것도 아이템을 안 준다는 협박 때문이었으니까.

“당? 당이라뇨?”

“……당근이 맛있더군.”

“네?”

“영상은…… 놔두게.”

“……진심이십니까?”

“두 번 말하게 하지 말고!”

김정철 회장이 부끄러워한다.

그 모습을 본 한 이사가 눈을 번뜩였다.

처음 신입 사원이 회장님의 이름을 도용한 영상이 올라갔다는 말을 회의에서 했을 때, 한 이사는 보고도 받지 못했다.

보고도 받지 않을 만한 사항이라고 생각하고, 즉시 유투브 측에 영상을 내리려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영상을 확인한 팀장이 곧장 한 이사에게 보고했다.

아무래도 영상 속 주인공이 회장님이 맞는 것 같다면서.

한 이사는 그때까지만 해도 회장님의 영상을 무단으로 가져다 쓴 줄 알았다.

한데, 아니었다.

이건 김정철 회장이 직접 가서 직접 녹화한 것이다.

회사 차원에서 이런 영상을 찍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가만히 보면 영상 곳곳에 JC 그룹의 홍보성 장면들이 숨어 있었다.

그렇다는 건…….

‘숨겨 놓은 손자다!’

저 황금 가면을 쓴 이가 김정철 회장의 손자다.

그렇지 않으면 이딴 영상을 찍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알겠습니다. 알고리즘 추천을 풀고, 홍보팀에서 푸시를 하겠습니다.”

“그,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아닙니다. 회장님의 복심을 읽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회장은 숨겨 놓은 손자를 정계에 데뷔시킬 생각인 것 같았다.

즉, 그가 할 일은 이 영상이 JC 그룹의 홍보에 도움이 되게 만드는 것이다.

한 이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하게 인사하고는 회장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곤 핸드폰을 들었다.

“홍보팀 전원 집합.”

한 이사가 빠져나가고 텅 빈 회장실.

김정철이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에 섰다.

사옥 고층 빌딩의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었다.

자신이 이룩한 것들이 아래에서부터 켜켜이 쌓여 있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김정철은 처음으로 다른 생각을 했다.

“여기서 뛰면 아플까……?”

김정철.

77살의 나이에 수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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