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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167화 (167/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67화>

* * *

최근 볼링업계에선 클럽 무드를 내는 락볼링장이 유행이었다.

클럽처럼 조명을 달고, 클럽 음악을 틀고, 술을 파는 것이다.

운동을 한다기보다는 사교 모임의 장과도 같았다.

하지만 클럽 무드의 영업은 보통 저녁 8시가 넘은 후부터였기 때문에, 대정고 학생들이 방문했을 때는 평범한 볼링장이나 다름없었다.

“평범하네.”

진유성, 지종수, 심도훈, 고인수, 상소윤, 정새롬.

여섯 사람은 사이즈에 맞는 신발로 갈아 신은 뒤, 각자의 볼을 찾기 시작했다.

“뭘 고르는 것이냐?”

“네 손에 맞는 볼.”

“내 손에 맞는 볼? 크기를 말하는 거냐, 무게를 말하는 거냐?”

“둘 다. 손가락이 들어가는 구멍의 크기도 보고.”

상소윤의 말에 진유성이 볼링 볼을 들어 보았다.

전부 다 가벼워서 딱히 차이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제일 무거운 걸 들고 왔다.

진유성은 볼링을 해 본 적은 없었지만, 규칙은 대충 알고 있었다.

이번에는 TV나 인터넷에서 봐서 아는 게 아니었다.

만화를 봤었는데, 그 만화가 볼링에 대한 만화였다.

재미가 없어서 1권만 조금 보다 말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스포츠의 규칙을 이해하기는 충분했다.

‘뭐, 규칙이랄 것도 없지.’

볼을 던져서, 핀을 넘어트린다.

볼을 던지는 기회는 두 번이다.

점수를 세는 건 좀 더 복잡했지만, 어차피 볼링장의 점수는 기계가 세 주기 마련이었다.

“이렇게 끼는 것이냐?”

진유성이 조금 어색하게 볼링볼의 구멍에 손가락을 끼자, 남은 다섯 명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오늘도 또 그 전개인가?”

“그러겠지.”

“진유성은 아마 볼링을 처음 쳐 볼 거야.”

“그러겠지.”

“지종수는 진유성을 이기기 위해 내기를 제안할 거야.”

“그러겠지.”

“하지만 진유성은 처음 쳐 본다면서 스트라이크를 남발하겠지?”

“아마도.”

“그 다음에는 패자들을 조롱하겠지.”

“음.”

“패자는 말없이 카운터로 향할 거고.”

“정확해.”

티키타카를 주고받던 심도훈과 고인수가 진유성에게 물었다.

“진유성. 너 볼링 처음 치지?”

“그렇다.”

“잘 칠 거지?”

“당연하지 않겠느냐? 난 못하는 게 없다. 그게 설령 태어나서 처음 해 본 거라도.”

진유성의 말에 모두가 어깨를 으쓱했다.

다른 사람이 저런 말을 했으면 비웃었겠지만, 확실히 진유성의 운동 DNA는 남다르다.

그때 심도훈이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지종수의 등짝을 짝 하고 내리쳤다.

지종수가 깜짝 놀라서 반문했다.

“왜 때려!”

“안 돼.”

“뭐가?”

“머릿속에서 진행된 상상을 멈춰. 지금 진유성을 무참히 짓밟고 승리를 쟁취하는 상상하고 있지?”

“…….”

“그리곤 주변 사람들이 널 흠모의 눈빛으로 쳐다보는 상상하고 있지?”

심도훈이 상소윤을 슬쩍 눈짓했다.

상소윤이 있어서 ‘주변 사람’이라고 했지만, 지종수의 상상 속에는 아마 상소윤만 있을 거다.

“종수야,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

“아, 왜!”

“없다면 없는 거야. 설령 볼링을 이겼다고 하더라도 주변 사람들이 널 흠모의 눈빛으로 쳐다보는 일도 없을 거고.”

“…….”

지종수도 바보는 아니다.

심도훈의 말처럼 진유성이 가지고 있는 운동 센스는 종목을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 지종수는 볼링을 별로 못 친다.

몇 번 쳐 봤는데 100점을 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결국 지종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보기에도 승률은 낮아 보였으니까.

“내기 없이 할까?”

“그럼 좀 노잼 아니야?”

“개인전으로 하던가.”

“여섯 명이잖아. 4팀까지 밖에 설정이 안 되는데.”

잠깐 고민하던 중에 정새롬이 말했다.

“일단 몸풀기 해서 실력을 보고, 진유성 팀에 제일 못하는 두 명을 넣어 주면 되잖아.”

“그럴까?”

“미리 말해 두지만 난 볼링 잘 치거든.”

정새롬이 약간의 호승심을 불태우며 진유성을 힐끔 쳐다보았다.

진유성은 그 시선을 받으며 코웃음만 쳤다.

알량한 장기자랑에서 1등을 한 번 했다고 자신을 우습게 본다.

‘실력을 보여 주지.’

그렇게 몸풀기가 시작되었다.

첫 번째 순서는 진유성이었다.

진유성은 친구들이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주변에서 볼링을 치고 있는 사람들의 폼을 보았다.

손가락을 끼는 법, 걷는 법, 볼을 던지는 법.

그의 체술은 입신의 경지에 다다라서 슬쩍 보고도 모든 걸 파악할 수…….

“어?”

힘차게 던진 진유성의 볼이 좌측 거터(도랑)에 빠졌다.

흔히 똥통에 처박는다고 부르는 그것이었다.

“시, 실수다!”

자신의 실책을 부정한 진유성이 다시 한번 볼을 잡았다.

그리곤 조금 더 신중하게 공을 던졌다.

이번엔 거터에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좌측으로 기울어서 핀을 3개밖에 쓰러트리지 못했다.

그 순간, 다섯 명의 시선이 교차했다.

‘설마?’

‘진유성이 못하는 스포츠가 있다고?’

‘하긴, 볼링은 힘이나 속도로 하는 게 아니잖아?’

자리로 돌아온 진유성의 얼굴은 약간 상기되어 있었고, 친구들이 입을 열기 전에 변명을 늘어놓았다.

“처음 해 봐서 그런다. 다음부터는 무조건 모든 핀을 쓰러트리겠다.”

진유성은 그렇게 말하며 손을 움직여 가상의 훈련을 시작했다.

파파팍.

“오, 나이스.”

그사이 정새롬이 스트라이크를 기록했다.

정새롬-심도훈은 볼링을 잘 치는 편이었고, 상소윤-고인수는 평범했다.

지종수-진유성은 기복이 심했다.

“오! 보았느냐!”

스트라이크를 기록한 진유성이 기뻐했지만, 바로 다음번에는 두 번 연속 거터에 볼을 박아 넣었다.

스핀이 잘 들어가면 스트라이크를, 스핀이 잘 들어가지 않으면 거터를 기록하는 것 같았다.

‘오늘 처음 쳐본다면서 스핀을 넣는 것도 신기하긴 하네.’

정새롬은 그런 생각을 하며 진유성의 운동 신경을 인정했다.

하지만 경험이 없어서 기복이 심한 건 틀림없었다.

그렇게 연습 경기가 끝이 났다.

“팀 짜기 쉽겠는데?”

실력이 비슷한 이들이 끼리 주먹가위를 통해 팀을 나누었다.

1팀 : 정새롬, 상소윤, 지종수.

2팀 : 심도훈, 고인수, 진유성.

이것이 나뉜 팀이었다.

“볼링비에 음료수 내기?”

“저녁까지 얹자.”

지종수가 진유성을 힐끔거리며 제안했다.

진유성은 고개만 끄덕일 뿐, 시선은 다른 사람들이 치는 볼링에 향해 있었다.

자신에게 못하는 운동이 있다는 것에 어지간히 분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팀이 나뉘고, 내기가 픽스되었다.

“진유성, 너는 복불복이니까 두 번째로 쳐. 내가 첫 번째, 인수가 마지막. 오케이?”

“알겠다.”

심도훈-진유성?고인수로 순서가 정해지자, 저쪽도 정새롬-지종수-상소윤으로 순서를 짰다.

그렇게 단판 내기 볼링이 시작되었다.

시작은 1팀의 우세였다.

팀의 에이스인 정새롬은 스트라이크를 치고, 심도훈은 6점밖에 기록하지 못했다.

다음으로 지종수가 운 좋게 스트라이크를 기록했다.

벌써부터 1팀이 앞서 나가는 모양새였다.

“야, 잘 쳐라.”

심도훈의 말에 진유성이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상소윤이 고개를 갸웃했다.

“야, 진유성. 너 어디 아파?”

“안 아프다.”

“근데 다리는 왜 절어?”

상소윤의 말처럼 진유성은 다리를 절뚝거리며 볼링공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하지만 공을 잡는 순간, 거짓말처럼 절뚝거림이 멎었다.

불현 듯 어떤 생각이 든 상소윤이 눈을 크게 떴다.

‘유주얼 서스팩트?’

유명한 반전 영화.

시종일관 절뚝거리던 사건의 목격자가 경찰 조사를 받고 경찰서를 나오는 순간, 똑바로 걷는 장면.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도 자료 화면으로 한 번쯤은 봤을 만큼 유명한 엔딩 장면이었다.

상소윤은 진유성이 그것을 따라하고 있다는 걸 눈치 챘다.

그렇다는 건…….

볼링공을 들고 레일 앞에 선 진유성이 문득 뒤를 돌아본다.

진유성의 입가에는 사악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눈치 챈 것은 상소윤뿐이었다.

상소윤과 진유성이 눈빛이 마주치자, 진유성이 상소윤을 향해 속삭인다.

YOU JUST ACTIVATED MY TRAP CARD.

상소윤은 진유성의 속삭임을 들을 수 없는 거리에 있었다.

하지만 왠지 들은 것만 같았다.

진유성이 그들을 농락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진유성이 힘차게 걷기 시작한다.

‘달라!’

걸음걸이가 다르다.

몸풀기를 할 때는 어딘지 어색했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걸음걸이 하나하나에 당당함이 묻어났고, 번뇌가 전혀 없었다.

진유성의 손이 힘차게 뻗어지자, 볼링공이 호쾌한 호선을 그리며 나아간다.

그리곤.

촤르륵-!

스트라이크를 만들어 냈다.

그랬다.

몸풀기는 전부 진유성의 연기였다.

체술이 입신의 경지에 오른 진유성이 볼링을 못 친다는 건 말도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는 처음 다뤄 보는 무기도 일각의 시간만 주어지면 능히 천 년을 다뤄 본 것처럼 쓸 수 있었다.

진유성이 경악의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정새롬, 지종수, 상소윤을 내려다보았다.

‘뻔한 전개라고?’

하지만 그 전개가 가장 재미있다.

호쾌한 스트라이크를 선보인 진유성이 자리로 돌아오자, 지종수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연습 게임은 버린 거냐? 처음부터 내기에 모든 것을 걸 속셈이었나?”

진유성은 입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를 깔아 보는 눈빛으로 대답할 뿐이었다.

다음부터는 진유성의 스트라이크 쇼였다.

촤르륵!

촤르륵!

모든 볼링 핀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진다.

올 스트라이크 퍼펙트게임을 기록했을 때의 점수는 300점.

어지간한 볼링의 고수들도 올 스트라이크 퍼펙트게임을 기록하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진유성은 300점을 기록하고야 말 것 같았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진유성과 같은 팀인 심도훈과 고인수의 점수가 신통치 않았다.

정새롬이 스트라이크와 페어 처리를 이어 가는 데 반해서, 심도훈은 상태가 좋지 않았다.

상소윤이 분전하는 데 반해서 고인수는 맥이 없었고.

“뭐 하는 거냐! 힘을 내!”

진유성이 닦달을 했지만, 닦달을 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니었다.

그렇게 양 팀의 점수 차이는 고만고만했다.

2~3점 차이의 승부가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모두에게 마지막 차례가 돌아왔다.

정새롬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볼링을 쳤고, 지금도 엄마와 함께 볼링장을 자주 찾는다.

프로에게 정기적인 레슨도 받고, 집에 볼링 시설도 갖춰 놓았다.

정새롬도 퍼펙트게임을 해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아직 그녀는 긴장감을 이기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아!”

공을 던지는 순간 정새롬은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제대로 스핀이 먹지 않은 공이 거터로 빠져 버린 것이었다.

이대로라면 다음번에 스트라이크를 쳐도 스페어밖에 되지 않았다.

그나마 다음 구도 스트라이크를 치지 못했다.

7개의 핀을 쓰러트리며 7점을 기록한 것이었다.

“하하하하!”

정새롬의 실수를 지켜본 진유성이 호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다음 차례의 심도훈은 6점을 기록했고, 지종수는 7점을 기록했다.

드디어 진유성의 차례가 왔다.

‘내가 스트라이크를 치면?’

진유성은 자신의 점수를 300점으로 놓고 양 팀의 점수를 계산해 보았다.

아쉽게도 진유성의 손에 승부가 결정 나진 않는다.

하지만 압도적으로 유리한 고지에 있다는 건 분명했다.

촤르륵!

진유성은 마지막까지 스트라이크를 기록해 300점을 맞추고는 뒤로 물러났다.

남은 차례는 1팀의 상소윤과 2팀의 고인수.

상소윤이 침을 꿀꺽 삼키고는 공을 던져 9점을 기록했다.

이렇게 되면 이긴 것과 다름이 없다.

고인수가 1점을 기록하면 동점이고, 2점을 기록하면 승리니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진유성이 고인수에게 다가갔다.

“2점만 기록하면 되니까, 모든 핀을 쓰러트릴 생각을 하지 마라.”

“그래?”

“그렇다. 지금까지 보아 온 바에 따르면 넌 볼을 중앙으로 보내는 데 소질이 있다.”

진유성의 말에 고인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인수를 격려한 진유성이 정새롬, 상소윤, 지종수에게 다가갔다.

“보아라, 패배자들. 너희가 패배하는 순간을.”

그 순간, 진유성은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세 사람의 얼굴에 패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등 뒤에서 공이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한데, 정상적이지 않다.

공이 거터에 빠지는 소리였다.

진유성이 사색이 되어서 뒤를 돌아보니, 첫 시도에서 0점을 기록한 고인수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고인수! 정신 차려라. 패배자가 될 순 없다!”

고개를 끄덕인 고인수가 힘차게 공을 던졌다.

그리고 그 공은…….

똥통에 박혔다.

0점.

진유성이 속한 2팀이 1점 차이로 패배한 것이었다.

망연자실한 진유성을 향해 정새롬이 입을 열었다.

“또 졌네? 패배자?”

상소윤이 보탠다.

“허접.”

지종수가 말한다.

“너무 쉬워서 재미없다.”

무차별적인 비난의 폭격을 받던 진유성이 고인수를 뒤돌아보았다.

뭔가 이상하다.

이럴 수는 없다.

‘고인수는 분명 똥통을 향해 공을 집어던졌단 말이다!’

그때 진유성의 시선을 받은 고인수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YOU JUST ACTIVATED OUR TRAP CARD.

“……!”

그랬다.

오늘은 하이난에서 결성된 연합군이 드디어 첫 번째 승리를 거머쥐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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