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165화 (165/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65화>

* * *

마정석의 효용성이 발견된 뒤에도 지구는 여전히 석유 중심 사회였다.

이는 석유와 마정석의 가격 대비 에너지 효율을 비교했을 때, 석유가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각국의 정부는 SG의 요청 아래 꾸준히 마정석을 에너지원으로 하는 제품을 개발했다.

그 결과, 마정석을 원동력으로 하는 자동차도 나왔고, 발전기도 나왔고, 노트북도 나왔다.

전 세계가 이러한 제품들을 꾸준히 개발한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마정석이 석유와 다르게 매장량의 한계가 없고, 자연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각성자들의 부 때문이었다.

마정석은 게이트를 클리어하면 공헌도에 따라 자동으로 분배되는 부산물이다.

그에 반해 아이템이나 룬 가호, 스킬 등은 랜덤으로 드롭된다.

즉, 마정석은 각성자들의 기본급과도 같았다.

이런 기본급의 가치가 없다면 각성자들이 돈을 버는 것은 운에 의존하는 것이고, 운에 의존할 것이면 SG의 체재를 순응할 이유가 없었다.

이런 이유에서 SG와 정부는 억지로 마정석에 가치를 부여했고, 이런저런 연구를 통해 상품성을 개발해 나갔다.

석유를 에너지원으로 하는 제품들에 환경보호세를 부과하고, 마정석을 에너지원으로 하는 제품에 부가가치세를 할인해 주는 것도 이 같은 정책의 일환이었다.

그렇게 20년이 지난 지금은 마정석 제품들의 점유율은 많이 올라왔다.

석유를 에너지원으로 이용하는 게 65%, 마정석을 에너지원으로 이용하는 것이 35% 정도 된다.

특히 보일러나 오토바이 같은 경우는 마정석 제품의 점유율은 70%가 넘었다.

석유 모델보다 마정석 모델이 관리가 편하고, 수명이 더 긴 덕분이었다.

그렇게 지구는 각성 세계와의 적절한 공존을 통해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태 각성자의 등장으로 마정석 사회가 요동치고 있었다.

일주일 전, SG의 그램당 마정석의 시세는 150달러였다.

하지만 현재는 250달러 밑으로는 거래가 되고 있지 않았다.

그나마 최소 거래가가 250달러이고, 평균 거래 가격은 300달러가 넘었다.

정보를 접한 각성자들이 마정석의 가격이 폭등할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김정철 회장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마정석의 거래가는 결국 200달러 안팎으로 수렴할 것이라고.

이는 마정석이 각성 사회뿐만 아니라, 에너지원에서도 주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었다.

사실 현재 각국에서 보유하고 있는 마정석의 수량은 꽤 많았다.

각성자들이 거래를 중단해 가격을 올리려고 해 봤자 UN의 권고에 따라 국가 보유량을 풀기 시작하면?

가격이 내려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김정철 회장은 지금이 각성 마켓을 키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직 UN과 정부가 방향성을 잡지 못하고 있을 때.

원래 세계정세가 요동칠 때면 눈치 빠른 장사꾼들이 돈을 벌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이러고 있는 거다.’

김정철 회장은 그렇게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입을 열었다.

“허억! 이토록 빠르고 정확한 칼놀림이라니!”

타타타탁!

도마를 두드리는 진유성의 손놀림에 당근들이 토막 나며 날아오른다.

오늘은 카메라를 의식했기 때문인지 이전처럼 화려하게 날아다니는 것은 아니었다.

일반인이 노력하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채를 썰고, 튕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 해도 꽤 신기한 광경이긴 했다.

“이것은 마치, 마치…….”

감탄사를 고민하던 김정철 회장이 입을 다물었다.

별다른 감탄사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진유성이 인상을 팍 쓰며 칼질을 멈췄다.

“컷!”

“또?”

“아니, 아저씨. 어휘력이 그렇게 부족해요?”

“……미안하네.”

벌써 열두 번째 NG였다.

마정석을 갖고 싶지 않냐는 진유성의 말에 시작된 쿡방과 먹방 촬영은 난항을 겪고 있었다.

김정철 회장의 미지근한 태도 때문이었다.

사실 김정철 회장의 나이를 생각하면 이건 당연한 일이었다.

“아니, 나한테 마정석만 있는 것도 아닌데.”

“열심히 하겠네.”

그 뒤로 김정철 회장은 진유성의 구박을 받으며 열심히 리액션을 했다.

근데, 기분이 묘했다.

김정철은 언노운 엠페러가 보기보다 나이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가 가지고 있는 통찰력의 깊이를 생각해 보면 세상 경험이 부족할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진유성이 직접 입으로 확인해 주기도 했고.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진유성은 자신보다는 나이가 어릴 것인데…….

‘날 꼭 한참 아랫사람처럼 취급하는군.’

한데 기분이 나쁘지가 않다.

오히려 당연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드디어 쿡방의 리액션이 끝이 났다.

마침내 요리가 완성된 것이었다.

이제 먹방의 시작이었다.

이 부분은 생각보다 별 문제 없이 끝이 났다.

진유성의 요리는 굉장히 맛있고, 김정철 회장은 진유성의 요리를 먹는 걸 좋아한다.

애초에 김정철 회장이 언노운 엠페러의 존재를 알게 된 것도, 진유성의 요리 때문이니까.

마지막 요리까지 싹싹 긁어 먹은 김정철이 진유성을 보며 물었다.

“다 된 건가?”

“그런 거 같네요.”

“그럼 카메라는 끄지?”

진유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카메라를 껐다.

김정철은 빵빵해진 배를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사업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일단 자네가 세운 CMSG의 모회사를 만들고, 각성 상품 관련의 계열사를 만들어야 하네. 그래야 JC 그룹이 만들 각성 마켓에 정상적으로 상품을 건네고, 대금을 받을 수 있거든.”

“해 줘요.”

“물론이네.”

“우선 정부 부처에서 인가를 받으려면 최소한의 각성 물품을 보유했다는 증거가 필요한데…….”

“해 줘요.”

“리스트를 전달해 주면 해 주겠네.”

김정철은 그 뒤로도 몇 가지 이야기를 했지만, 답변은 간단했다.

“해 줘요.”

“……알았네.”

어차피 해 줄 생각이긴 했지만, 뭔가 기분이 묘했다.

아주 오랜만에 써 보는 단어인데, 꼭 꼬봉이 된 것 같다.

그때 진유성이 처음으로 질문을 던졌다.

“근데 그렇게 막 해도 됩니까? CMSG가 공식적으로 각성자를 보유한 것도 아닌데?”

수천억에 이를 각성 물품을 각성자 한 명 없이 팔아 치워도 되는 지에 대한 물음이었다.

김정철 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관없네.”

“왜요?”

“정부는 CMSG를 각성 상품 밀수 업체로 생각할 거니까. 하지만 때론 밀수도 합법 사업이 되지.”

과거, 한국이 경제 성장을 이룩할 때 중요한 수출 역군 중 한 요소가 나까마(보따리상)였다.

이는 분명 밀수지만, 국가의 정책 방향과 부합했기 때문에 눈감아 줬던 일이었다.

CMSG의 존재는 이런 보따리상이 될 것이었다.

수출이 아니라, 수입이라는 것만 다를 뿐.

대한민국 정부는 SG가 쇄락한 뒤 각성 마켓을 통해 ‘아시아’를 대표하는 플랫폼을 갖고 싶어 했다.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문정혁과 차정명으로 대표되는 팀 우산도의 역량이 무시무시하게 치솟으며, 전체적인 각성자의 질이 상승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CMSG가 각성 물품을 밀수해서 한국의 각성 마켓에 공급한다면?

정부에서 말릴 이유가 없었다.

기업의 사업 활동 방향과 국가의 정책 방향이 일치하니까.

“뭐, 뇌물을 좀 뿌리긴 해야겠지만 이건 JC쪽에서…….”

“해 줘요.”

“한다고!”

“아니, 왜 화를 내지? 마정석이 필요가 없는 건가?”

“……미안하네.”

김정철 회장은 남은 수명의 절반 정도를 화병으로 잃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언노운 엠페러가 이런 놈일 거라고는 세상 그 누구도 모를 것이었다.

“아무튼 이런 상황에서 자네가 해 줄 일이 있네만.”

“뭡니까?”

“자네가 거래하는 품목에 한해서는 거래 수수료를 받지 않겠네. 대신 10년 동안 우리 마켓에 독점 공급을 한다는 계약서를 써 주게.”

각성 마켓은 아마존 같은 배송 업체와 다르다.

창고에 쌓아 두고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사람 대 사람 간의 거래가 필요하다.

미국에 있는 각성자가 각성 물품을 구매했는데, 그 물품을 가지고 있는 게 한국 각성자라면?

구매자가 한국에 갈 수도 없고, 판매자가 미국에 갈 수도 없다.

이때 필요한 게 보증인이다.

마켓에서 보증한 각성자가 판매자의 물건을 받아서, 미국으로 가서 구매자에게 물건을 전달한다.

보증인은 헌팅만으로 먹고 살 수 없는 F급 각성자들이 도맡는다.

이런 과정을 통해 판매되기 때문에 각성 마켓에서 그렇게 많은 수수료를 떼는 것인데…….

김정철 회장은 진유성에게 수수료를 받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독점 공급을 약속받는 대신에.

진유성에게도 나쁜 일은 아니었다.

거래 수수료는 통상 20~30% 정도 책정이 되는데, 100억을 팔면 20억이나 떼이는 셈이니까.

“그렇게 하죠.”

“일본 쪽과 하던 거래도 종료해야 하네.”

“아, 걔네.”

진유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야쿠자 쪽 마켓과 편하게 거래를 했지만, 그만둘 때가 된 것 같다.

“나한테 A급 이상의 물품들의 리스트를 전달해 주겠나?”

진유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인벤토리 목록을 공유했다.

역시 편리한 기능이다.

물론 이러한 편리함은 마도사들이 독을 숨겨 놓은 장치이긴 하다.

인간들이 이종의 기운과 친밀해질수록 아카식 레코드는 오염되는 것이니까.

‘그 자식들 빨리 잡아 족쳐야 하는데.’

타트바는 마도사들이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고 했지만, 잘 모르겠다.

요즘 너무 조용하다.

한국에 대형 게이트가 열리지도 않고 말이다.

진유성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김정철 회장은 진유성이 공유해 준 리스트를 노트북으로 문서화하고 있었다.

아마 JC 직원들이 보면 놀랄 것이었다.

회장이 직접 타이핑을 하며 거래 물품 목록을 만들고 있는 것이니까.

하지만 진유성이 언노운 엠페러라는 걸 생각해 보면 김정철 회장 말고는 일할 사람이 없다.

김정철 회장은 한참 진유성이 보유한 A급 이상 물품들을 정리하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심연용? 이건 뭔가?”

“그게 뭔데요?”

“용이면 용이지, 심연용은 뭐지?”

종족 아이템에는 늘 종족의 이름이 앞에 붙는다.

누카 전사의 어금니처럼.

한데, 진유성이 공유한 리스트에 있는 ‘심연용의 화석’은 처음 들어보는 종족명이었다.

애당초 용족 자체가 흔치 않은 종족 아이템이긴 했다.

진유성은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이 아이템은 그가 처음으로 들어간 서울역 게이트에서 얻은 아이템이었다.

-누카 종족의…….

-누카 종족의…….

-수인족의…….

-전사의…….

-심연용의…….

인벤토리 알람을 끄기 직전에 올라왔던 메시지였다.

“흠?”

진유성이 인벤토리 목록을 열어서 심연용의 화석을 확인했다.

-심연용의 화석

[심연용은 수명이 다하면 화석으로 돌아가고, 용족의 아카식 레코드와 화석을 연결해 천 년 후 부활합니다.

현재 심연용족은 멸망했기 때문에 영원히 부화할 수 없습니다.

흡수 시, 심연 마력 스탯이 생성, 활성화됩니다.]

멸망한 종족의 마지막 화석이라는 것 같았다.

진유성이 심연용의 화석을 인벤토리에서 꺼내 보았다.

그냥 돌멩이다.

한데, 그 안에 제법 응축된 기운이 들어 있긴 했다.

‘내단 같은 거네?’

오랫동안 살아온 영물들의 몸속에는 내단이 있고, 그것을 섭취하면 기연을 얻을 수가 있다.

심연용의 화석은 내단과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다만, 진유성한테는 별로 필요가 없는 물건이었다.

그는 중원에서의 내공을 회복하는 중이지만, 내단은 쓸모가 없었다.

내단의 진정한 효용은 단전의 크기를 키우는 데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진유성은 더 이상 커질 수 없는 단전을 가지고 있기에 효용 가치가 떨어졌다.

‘상림한테 팔아야겠군.’

삼키면 내공을 얻긴 하겠지만, 어차피 게이트 안에서도 얻을 수 있다.

그럴 바에는 비싼 돈을 받고 상림한테 파는 게 낫다.

“그건 빼 주세요.”

“알겠네.”

김정철 회장은 그 뒤로 한참 동안 진유성이 가지고 있는 A급 이상의 물품들을 정리했다.

모든 정리가 끝났을 때, 김정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만간 계약서를 가지고 찾아올 거고, 마정석의 대금만 먼저 지불하지.”

“얼마나 줍니까?”

“300kg을 그램당 200달러에 맞춰서 구매하겠네.”

“그래서 얼마냐고요.”

“30만 그램이니, 200달러를 곱하면 6천만 달러지.”

6천만 달러.

한화로 700억을 훌쩍 뛰어넘는 금액이었다.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