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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163화 (163/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63화>

* * *

아카식 레코드가 오염되었다는 것은 생각보다 심각한 일이었다.

우선 머지않은 미래에 마도사들이 야욕을 드러낼 수도 있다.

지금은 마도사들이 온전한 힘을 쓸 수 있는 공간이 게이트 내부로 제한되어 있다.

물론 게이트 밖에서도 마도술을 사용하긴 한다.

하지만 아카샤가 두려워 완전한 힘을 드러내는 법은 없었다.

실수로라도 절대 의지에 발각당하는 순간, 아카샤의 밖으로 추방당해 영원한 차원의 미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록펠러가 게이트 밖인 프라하 올드캐슬에서 진유성에게 무참히 패퇴한 것에는 이러한 이유가 있었다.

물론 만반의 준비를 한 게이트 내부에서도 패배해서 소멸당했지만.

하지만 아카식 레코드가 오염됨에 있어서 마도사들의 야욕은 작은 문제였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바로, 아카샤가 둘로 나누어질 수 있다는 것에 있었다.

현재 인류는 두 가지 인종으로 나누어진다.

각성자와 비각성자였다.

아직은 각성자의 수가 월등히 적었기에, 각성자와 비각성자는 모두 인간이라는 틀로 분류될 수 있었다.

각성자들 중에는 비각성자들에게 우월 의식을 갖는 이들이 있다.

우리는 힘이 있고, 너희는 없다는 식으로.

하지만 그 우 월의식은 연봉, 직업, 명예를 통해 얻는 우월 의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각성자 스스로가 ‘난 인간보다 우월한 존재야.’라고 말하는 경우는 없다.

이유는 간단했다.

숫자가 너무 적으니까.

SG의 정책에 따라 0.3~0.4%대를 유지하던 각성 인구는 2차 각성 이후 2%대로 상승했다.

하지만 그래봐야 백 명 중 두 명일 뿐이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사회적 동물이다.

98명이 포함된 사회와 2명이 포함된 사회가 있다면, 전자의 사회가 ‘정상적’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만약 각성 인구가 30%대까지 올라선다면?

이때부터는 분위기가 묘해진다.

70명으로 이루어진 사회와 30명으로 이루어진 사회.

한데, 30명으로 이루어진 사회가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면?

30명의 사회가 70명의 사회를 식민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인류를 경영하는 아카샤가 반으로 쪼개질 수밖에 없었다.

각성 인류와 비각성 인류.

혹은 신인류와 구인류.

먼 미래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숫자와 혈통이란 조건이 맞춰지면 시작될 일이다.

각성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각성자 부부 사이에서 각성 상태의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필연처럼 시작될 일이었다.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있는 진유성은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꿰뚫어볼 수가 있었다.

‘이 사실을 내가 처음으로 발견한 건 아닐 거 같고.’

아마 SG도 각성 상태의 아이가 태어났다는 걸 알고 있을 것 같았다.

그 정보를 공개하는 시점을 조율하고 있을 것이고.

진유성은 그런 생각을 하며 윤재라는 아이의 손을 놓았다.

약간 걱정이 됐다.

각성자들은 오랫동안 헌팅을 하지 않으면 고통을 느낀다.

민간에 널리 알려진 사실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꽁꽁 숨겨진 사실도 아니다.

재벌이나 고위 관료들의 자제로 구성된 대정고의 학생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

아마 자식 놈들이 철없이 각성자를 하겠다고 할까봐 미리미리 알려 준 것 같기도 하다.

한데 이런 신생아들은 헌팅을 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고통은 어떻게 해소할 수 있단 말인가?

‘혹시 모태 각성자들은 고통을 느끼지 않을까?’

그럴 수도 있다.

록펠러가 남기고간 지식을 떠올려 보면, 각성자들이 고통을 느끼는 것은 그들로서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인 것 같다.

사실 이건 마도사들 입장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었다.

그들은 각성자들이 좀 더 활개 치는 사회를 원했는데, 각성 고통 때문에 어느 정도 제약이 생겼다.

게이트를 통제하는 SG가 각성자들까지 통제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흠.”

진유성은 그런 생각을 하다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수녀에게 물었다.

“이 아이가 자주 우나요?”

“자주 울죠.”

“얼마나 자주 우나요?”

“원래 아기는 매일 울어요.”

너무 맞는 말이라서 잠깐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저 말 하나로 모태 각성자들은 고통에서 해방됐다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헌팅을 멈춘 각성자들이 고통을 느끼는 주기는 천차만별이라고 했다.

누군간 3~4개월 만에 느끼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2년 동안 괜찮은 적도 있었다.

심지어 고통을 느끼지 않는데도 느낀다고 착각하는 경우도 있었다.

진유성은 수녀에게 인사하고는 상소윤에게로 돌아왔다.

“뭐 했냐?”

두 아이를 돌보고 있던 상소윤의 물음에 순간 대답이 궁해졌다.

하지만 진유성이 누구인가.

그는 수천 편의 드라마와 수천 편의 영화를 보았다.

이럴 때 해야 말과 표정을 말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아는 사람을 본 거 같아서.”

아련한 표정을 지은 진유성의 말에 상소윤이 괴이한 표정을 지었다.

아기를 보고 아는 사람인 줄 알았다고?

그렇다는 것은…….

‘설마 아들? 아니, 동생일 수도 있잖아?’

혼란스러운 상소윤의 표정과 함께 보육원의 식사 시간이 이어졌다.

* * *

식사 시간이 끝나고 진유성과 상소윤은 설거지를 했다.

그사이 아기들은 낮잠에 빠져서 보육원 전체가 조용했다.

“조용하네.”

상소윤이 어딘지 넉넉한 표정으로 말을 하자, 진유성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다.”

“뭐?”

“상소윤, 음공이란 걸 알고 있느냐?”

“음공? 무협지에 나오는 그 음공?”

상소윤은 본래 무협 소설이나 판타지 소설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진유성이 너무 재밌게 보길래 심심해서 몇 개 뺏어서 본 적은 있었다.

거기서 음공을 봤던 것 같다.

“소리로 공격하는 거 아니야?”

“맞다. 그럼 음공의 고수와 하수를 나누는 기준을 아느냐?”

“몰라? 목청?”

“쯧쯧. 무식하구나.”

진유성의 반응에 상소윤이 발끈했다.

“그걸 안다고 유식한 게 아니거든!”

“당연한 소리를 왜 하느냐?”

“그럼 왜 무식하다고 해!”

“꼴등한테 무식하다고 하는 거다. 오해하지 말아라.”

“…….”

상소윤은 조만간 있을 중간고사에서 반드시 진유성을 이기겠다고 다짐했다.

“음공의 고수들은 듣기 좋은 소리를 낸다. 이를 테면 독을 향기에 감춘 거지. 더 듣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 때문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간 기맥이 가닥가닥 조각나고 칠공에서 피를 토하게 된다.”

“그럼 하수는?”

“하수는 듣기 싫은 소리를 낸다. 그렇기 때문에 적이 즉시 알아차리고 도망치는 경우가 많다. 설령 음공의 공격력이 강하다고 해도 듣지 않으면 그만 아니더냐?”

“뭐, 그러네.”

무협 소설을 많이 본 건 아니지만, 그럴 듯한 소리다.

“근데 갑자기 왜 이런 말을 하는데?”

“음공의 하수들이 보육원으로 쳐들어오는 것 같다.”

“엉?”

“그야말로 듣고 싶지 않은 소리구나.”

상소윤은 진유성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했지만…….

금방 진유성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수녀님!”

“꺄아아!”

“아, 내놔아!”

학교가 끝난 초등학생 무리들이 보육원에 들이닥쳤기 때문이었다.

분명 숫자는 8명밖에 되지 않는데, 어마어마한 소음을 낸다.

그야말로 음공이었다.

* * *

오후 5시가 되자 보육원에서 생활하는 초, 중, 고등학생들이 전부 하교했다.

그 숫자가 30명이 넘다 보니 보육원 전체가 북적거리는 느낌이었다.

상소윤이 수녀님을 따라서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사이, 진유성은 보육원의 운동장에 있었다.

“이름이 뭐예요?”

“진유성.”

“진유성 학생이 골키퍼를 봐줄래요?”

대학교 봉사 동아리 학생의 말에 진유성은 고개만 끄덕였다.

수녀님들이 저녁 준비를 편하게 하기 위해서 남자 아이들을 데리고 축구를 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숫자가 딱 20명이라서 진유성과 봉사 동아리 학생이 양 팀의 골키퍼를 맡기로 했다.

“얘들이 공차면 멋지게 먹혀 주세요.”

“멋지게?”

“네. 최선을 다해 막는 척 하지만 골을 내어주세요.”

가만 보니까 양팀의 수비수들은 고등학생이고, 미드필더들은 중학생이고, 공격수들이 초등학생이다.

만약 정상적인 축구 경기를 한다면 이런 매치업이 불가능하다.

초등학생들이 고등학생을 어떻게 뚫겠는가?

축구를 하자기보다는 적당히 재미있게 놀자는 게 맞았다.

그렇게 축구가 시작되었다.

고등학생들이 공을 잡아서 앞으로 보내 주면 초, 중등 학생들이 자기들끼리 열심히 공격을 한다.

그럼 수비수 역할을 하고 있는 고등학생들은 적당히 막고, 적당히 당해 준다.

‘많이 해 본 솜씨군.’

적당히 당해 주는 고등학생들의 연기력이 심상치 않았다.

아마 수녀들이 식사 준비를 하는데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 주려고 노력하는 모양이었다.

‘기특하군.’

그때 중학생 중 한 명이 진유성이 있는 골대를 향해 기습적인 중거리 슛을 날렸다.

강력한 슛이 골대의 구석으로 향했다.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진유성은 저도 모르게 슛에 반응했다.

몸을 붕 날려서 공을 잡아 버린 것이었다.

그러자 실망한 중학생의 얼굴이 보인다.

‘아.’

순간 아차 싶어진 진유성이 허공에서 몸을 움직였다.

그러자 공을 잡았음에도 강렬한 슈팅 때문에 진유성이 골대 안쪽으로 밀려 들어간 모양새가 되었다.

“우, 우와!”

“와아아아!”

“김강수 쩔어!”

환호가 터진다.

골대 구석을 노린 절묘한 슈팅을 막아 낸 골키퍼.

하지만 슛이 너무 강렬해 허공에서 공을 잡았음에도 뒤로 밀려난 것이 꽤 멋있었던 모양이었다.

진유성은 순간 뿌듯해졌다.

역시 선행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좋아. 더 멋지게 먹혀 주지.’

진유성이 눈을 빛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데굴데굴 공이 굴러오기 시작한다.

골대로 쇄도하던 초등학생이 찬 것인데, 빗맞은 모양이었다.

속도가 빠르면 멋지게 먹혀 주기 좋을 건데, 속도가 너무 느렸다.

진유성이 두뇌를 가동했다.

저 느린 공 속도에 맞춰서 어떤 연기를 해야 완벽할까.

그 순간, 좋은 생각이 들었다.

“합!”

진유성이 오른쪽으로 거칠게 몸을 날리려다가 멈칫하고, 다시 왼쪽으로 향했다.

역방향 동작에 걸린 것 같은 골키퍼의 반응이었다.

진유성은 뒤늦게 왼쪽으로 몸을 날렸지만, 데굴데굴 굴러오던 공이 골대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우, 우와!”

“들어갔다!”

또다시 학생들이 좋아한다.

그 뒤로 진유성의 비선방 쇼(?)는 계속되었다.

공중에서 180도 회전하며 쳐내려고 했지만 공이 들어가고.

정면으로 오는 슈팅을 펀칭해 내려는데 힘에 밀려서 뒤로 나가떨어지고.

그야말로 멋지고 화려한 동작들 사이로 속속 골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흐압!”

날아오른 진유성이 공을 막으려고 튀어 올랐지만 역방향에 걸린다.

그러자 진유성은 허공에서 몸을 틀어 골대를 차며 반대쪽으로 몸을 날렸다.

흙먼지가 촥 피어오르는데, 먼지를 뚫고 공이 슉 들어간다.

“…….”

“…….”

“…….”

과유불급(過猶不及).

정도를 지나치는 것은 미치지 못하는 것보다 못했다.

아니 세상에 어떤 미친놈이 오른쪽으로 뛰어올랐다가 몸을 틀어 골대를 박차고 왼쪽으로 이동한단 말인가.

무슨 체조 선수 같다.

그럴 운동 신경이 있으면 데굴데굴 굴러가는 공을 처리하지 못할 리가 없다.

“젠장! 강하군!”

진유성이 안타까워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곤 자세를 낮추며 양팔을 쭉 펼친다.

“자! 덤벼라!”

진유성을 보고 있던 초, 중등학생들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만 할래…….”

“재미없어…….”

골을 넣으면 넣을수록 농락당하는 기분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상소윤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함께 축구를 구경하고 있던 봉사 동아리 대학생들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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