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60화>
진짜 매운 음식은 입에 넣는 순간 그 매움을 온전히 느끼지 못한다.
맵긴 한데 먹을 만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더 맵고, 그래도 이 정도면 견딜 만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더 매워진다.
그렇게 끝없이 매워지다가 어느 순간 깨닫는다.
전혀 먹을 만하지 않다고.
그리고 이런 현상을 가속시키는 방법이 있다.
바로, 하나 더 먹는 것이었다.
“하나 더 먹을까?”
“콜.”
“먹을만 하네.”
누가 봐도 먹을만 하지 않은 표정의 지종수가 허세를 부렸다.
그렇게 그들은 계속해서 떡볶이를 섭취했다.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그들은 후회를 하고 있었다.
괜한 짓을 해서 이 고통을 자초하고 있다는 후회를.
매운 걸 잘 먹고, 좋아하는 정새롬과 상소윤조차 얼굴이 빨개져서 땀을 쏟아내고 있었으니 말이었다.
그들이 주목하는 것은 진유성이었다.
‘이쯤 진유성이 포기하고…….’
‘우리는 물을 마셔야 하는데…….’
놀랍게도 진유성의 얼굴은 태연했다.
분명 1단계 매운맛을 먹을 때도 매워하던 진유성이었는데,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평온했다.
상소윤이 너무 매워 혀를 헥헥 거리며 진유성을 쳐다보았다.
상소윤과 유혜연이 추측하는 진유성의 과거는, 그가 북한 지배 가문의 자식이지만 살기 위해 간첩 훈련을 받았다는 데까지 업데이트가 되었다.
이를 테면 후계 구도 때문에 숙청당할 막내아들이 살아남기 위해 남파 공작원에 지원한 형식으로.
즉, 그녀들의 스토리에 따르면 진유성은 남파 공작원 훈련을 받은 게 틀림없다.
그러니까 저 매운 걸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견디고 있는 거다.
‘이게 간첩의 인내심……!’
과연 대단하다.
진유성이 매운 걸 못 먹는 걸 몰랐다면 연기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거였다.
“지, 진유성. 안 맵냐?”
지종수의 물음에 진유성이 어깨를 으쓱했다.
“전혀 맵지 않다.”
“어떻게 이게 안 매울 수가 있지?”
“난 너희 같은 나약한 것들과는 다르다. 자, 어서 하나를 더 먹도록 하지.”
진유성이 포크를 들어 떡볶이를 콕 찍어 먹었다.
“맛있군. 아주 맛있어.”
태연하게 소스를 핥아 먹고는 다시 떡볶이 2개를 콕콕 찍었다.
그리곤 혀를 날름거리며 입에 넣었다.
진유성의 행동에 지종수가 기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이 정신 나갈 만큼 매운 걸 3개나 한 번에 처먹었다.
미친놈이 따로 없었다.
놀란 건 정새롬도 마찬가지였다.
“야, 진유성. 너 그러다 피똥 싼다.”
“나는 화장실을 가지 않는다. 생리 현상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지.”
“미쳤냐? 요정이냐?”
“헛소리 그만하고 내가 먹은 만큼 3개를 더 먹어라.”
진유성의 말에 모두가 얼음물이 담긴 컵을 간절히 쳐다보았다.
하지만 이대로 패배하기에는 자존심이 너무나 상했다.
생각해 보면 수학여행에서도 모조리 패배했다.
낚시도 패배했고, 섰다도 패배했다.
여기서는 질 수 없다.
그리고…….
‘일단 꼴등만 아니면 되잖아?’
누군가 물에 손을 대는 순간 그 사람이 모든 식사비를 결제해야 한다.
딱 한 명만 제끼면 된다.
다들 그런 생각으로 견디고 있을 때, 진유성은 계속해서 활개를 쳤다.
“소스 맛이 좋구나. 하하하.”
혀가 맵다 못해 온몸을 저리게 만드는 소스를 숟가락으로 퍼먹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누가 봐도 억지웃음을 지으면서 소스를 먹는 진유성은 꼴 보기 싫었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이 다른 참가자들의 기를 죽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우린…….’
‘진유성을 이길 수 없어!’
패배감에 사로잡힌 순간.
도저히 참지 못한 지종수가 손을 뻗어서 물통을 잡았다.
그리곤 물통째 물을 들이켜기 시작했다.
미친 듯이.
지종수의 패배 선언을 본 상소윤과 정새롬이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카운터 옆의 냉장고를 열어서 물통을 하나씩 꺼내서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진유성은 패배자들의 추레한 몰골을 보며 승리를 만끽했다.
“지, 진유성.”
“왜 그러느냐?”
“넌 물 안 마시냐?”
“흠, 맵진 않은데 목이 좀 마르구나.”
진유성은 물을 딱 한 모금만 마셨다.
매운 걸 해소하려는 마음조차 없는 것이었다.
“이럴 수가…….”
순간, 상소윤은 소름이 돋았다.
처음 매운 닭발 집에 갔을 때부터 진유성이 그림을 그렸다는 걸 깨달았다.
사실, 진유성은 매운 걸 잘 먹는 사람이었다.
이 모든 것이 연기였다.
절름발이가 범인인 것보다, 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인 것보다, 더욱 놀라운 반전이었다.
물론 이는 잘못된 생각이었다.
진유성이 예언자도 아닌데, 여기까지 어떻게 보겠는가.
하물며 오늘 떡볶이를 먹자고 한 건 정새롬이었는데.
진유성이 매움을 느끼지 않는 것에는 간단한 이유가 있었다.
‘역시 아는 것이 힘이군.’
학교에서 매운 맛이 미각이 아니라 통각이라는 것을 배운 탓이었다.
매운 맛은 통각(痛覺)과 온도 감각이 복합된 피부 감각에 속한다고 했다.
즉, 혓바닥에 분포된 미뢰로 느낄 수 있는 맛이 아닌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진유성은 내공으로 통각, 온도 감각, 피부 감각을 차단하면 매운 맛을 느끼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시험해 본 건 아니었다.
그냥 떡볶이 집으로 걸어오면서 생각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건, 진유성이 현대 과학에 대해서 꽤 높은 신뢰를 보이고 있음을 뜻했다.
타트바에 따르면 전지전능한 신은 차원 위상을 바꾸기 위해 자신을 두 개로 나누었다고 했다.
전지와 전능으로.
중원에 남은 게 전능이라서 무공이 발달한 것이고, 지구에 남은 게 전지라서 과학이 발달한 것이었다.
진유성이 중원 무공의 정수를 담고 있다면, 과학은 지구 기술의 정수를 담고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과학 정보를 믿은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공으로 감각을 차단하니 매운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진유성은 친구들을 농락한 것이었다.
단점이 하나 있다면, 떡볶이의 식감을 전혀 느낄 수 없다는 것이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배는 이미 채웠으니까.
상소윤, 정새롬, 지종수에게 패배를 안겨 줬으니 만족했다.
“쯧쯧, 나약한 것들.”
진유성은 그 뒤로 친구들을 신나게 놀렸지만, 그들은 반응하지 못했다.
너무 매워 입에 얼음을 물고 있느라 말할 힘도 없었다.
약 10분 정도가 지나고, 간신히 기력을 회복한 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식을 다 먹고도 계속 가게에 자리를 차지하는 게 민폐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요…….”
지종수가 내민 카드를 받은 가게 주인이 놀란 표정으로 진유성을 쳐다보았다.
“학생, 안 매워?”
매운 걸 잘 먹는 사람들을 많이 봤지만, 이걸 먹고도 안 매워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
주인의 질문을 받은 진유성이 어깨를 으쓱했다.
“인생보다 맵진 않더군요.”
진유성은 그렇게 말하고는 본인의 명언(?)에 감명을 받았는지 핸드폰을 켰다.
그리곤 매워하는 세 사람을 찍고는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렸다.
[내 인생과 비교하면…… 전혀 맵지 않았다.]
명문장이라고 좋아하는 진유성에게 한마디 해야 할 세 사람은 말이 없었다.
괜히 입을 열었다가는 입에 물고 있는 얼음이 떨어질 것 같아서였다.
그렇게 세 명의 패배자와 한 명의 승리자가 대정고로 돌아왔다.
떡볶이 집과 대정고가 거리가 좀 있고, 생각보다 떡볶이 집에서 시간을 많이 허비했다.
대정고로 돌아오니 점심시간이 딱 끝난 상태였다.
자리에 앉자마자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고, 선생님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선생의 인사를 받은 진유성이 내공을 거둬들였다.
감각의 전달을 억제하고 있던 내공이 단전으로 거둬들이자, 통각과 온도 감각, 피부 감각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한데…….
“으음.”
좀 맵다.
벌써 30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입안에 매운 감각이 남아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물을 더 마실걸 그랬다.
진유성이 주변을 둘러봤지만 수업은 시작되었고, 물은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견딜 만한 수준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겠지란 생각으로 일단 버텼다.
하지만…….
진짜 매운 음식은 견딜 만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더 맵고,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순간 더 매워진다.
진유성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아주 약간의 매움이라도 느끼는 순간 통각을 차단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통각을 차단한다고 해서 이미 느낀 통증이 없어지지 않는다.
이미 전달된 신호는 여전히 뇌에 남아 있다.
내공은 신경계 수술이 아니다.
그냥 막는 거다.
팔이나 다리가 잘렸을 때 통각을 차단한다고 해서 처음 느낀 고통이 없어지는 게 아닌 것과 같은 이치였다.
“흐으읍…….”
진유성의 얼굴이 점점 붉어지기 시작했다.
허겁지겁 통각을 차단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몸이 뜨거웠다.
혓바닥에서 시작된 불길이 온몸을 태우는 것 같았다.
무공의 고수가 된 이후로 이토록 속수무책의 감각에 휩싸여 보기는 처음이었다.
이건 마치 입멸공을 얻기 위해 이름 모를 진법 안으로 들어갔을 때와 같았다.
앞뒤를 분간할 수가 없고, 위아래를 분간할 수가 없다.
너무나 매웠다.
진유성의 이상 증후를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선생님이었다.
“진유성 학생?”
그게 기폭제였다.
진유성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저히 못 참겠다.
“잠깐 나갔다 오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나요?”
선생이 조심히 물었다.
대정고의 선생들은 학생들을 조심스럽게 대한다.
인격적으로 미성숙하고, 돈이 많은 이들이 악의 없이 수많은 사고를 치기 때문이었다.
선생의 조심스러운 질문을 받은 진유성은 맵다는 말을 하려다가 참았다.
매워한다는 게 들통 나면 친구들에게 거둔 완벽한 승리의 색이 바래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아프다고 하는 게 나았다.
“몸이 너무 뜨겁습니다.”
진유성은 그렇게 말하고는 후다닥 교실을 빠져나갔다.
그 순간, 정새롬과 상소윤, 지종수가 시선을 교환했다.
역시 진유성도 매웠던 것이다.
몸이 뜨겁다며 뛰쳐나갈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역시…….’
‘입은 아니라고 하지만.’
‘몸은 솔직하군.’
화장실로 달려갔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었다.
* * *
유명 웹소설 작가 김성동은 며칠 전에 처음 들어보는 출판사의 연락을 받았다.
본래 같았으면 연락을 받지 않았을 것이었다.
1년 전에 쓰던 작품을 연중하고 도망쳤던 이력이 있었기 때문에 출판사의 연락은 달갑지 않았다.
그는 더 이상 그 작품을 쓰고 싶지 않았다.
과분한 사랑을 받았지만, 부담이 너무 커져서 어떻게 전개해야 할지 꽉 막혀 버린 탓이었다.
하지만…….
‘진짜로?’
출판사에서 계약금으로 부른 액수가 너무 컸다.
통상적으로 출판 계약에서의 계약금이라고 하면 선금이다.
미리 돈을 받은 다음에, 나중에 글을 써서 버는 수익으로 갚아 나가는 형식이다.
하지만 라는 출판사는 아니었다.
그들은 말 그대로의 계약을 위해 거는 계약금을 준다고 했다.
그리고 그 금액은 무려 2억이었다.
계약서에 도장만 찍으면 2억을 거저 얻는 셈이었다.
결국 김성동은 출판 관계자와 만났다.
“저희는 이번에 새롭게 탄생한 출판사입니다.”
“근데 왜 이런 큰돈을……?”
“연중하신 작품의 판권을 저희가 사들였습니다. 이 작품의 뒤를 이어 간다는 조건 하에 계약이 진행될 것입니다.”
“그, 꼭 그 작품이여야 하나요?”
“네. 그렇지 않으면 저희는 판권의 소유자로서 작가님을 고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 고소요?”
“연중으로 작품 계약에 적혀 있는 조항들을 지키지 않은 셈이니까요.”
상림이 고용한 출판사의 경영 대리인은 유능했다.
그는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써가며 김성동을 조련했다.
결국…….
“계약하겠습니다.”
계약이 체결되었다.
최근 일주일 간 CSMG와 계약을 체결한 작가가 스무 명이 넘었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연중 작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