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58화>
인천 공항에서 출발한 상림의 차가 홍대를 지날 때쯤, 상림은 진유성에게 삐져 있던 것이 풀렸다.
생각해보면 자신은 지구에 와서 무공을 잃었기 때문에 수명이 훨씬 짧아졌을 것이었다.
그러니 진유성의 등장으로 단 10여년이라도 더 살게 되지 않았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니 꽁해 있던 마음이 풀렸다.
그래서 상림은 진유성에게 해 줘야 할 이야기를 입에 담았다.
“교주님.”
“엉?”
“교주님 명의로 회사를 하나 세워야 할 거 같아요.”
“회사? 갑자기 무슨 회사?”
“이번에 국세청장이 비리가 걸려서 사임했거든요.”
진유성도 이젠 한국 사회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국세청장이 뭐하는 사람인지 알고 있다.
국가의 세금을 걷는 이들의 수장이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대통령 선거철이 오면서 정치권에서 그걸 물고 늘어져서요. 사실 교주님 계좌에 그렇게 많은 돈이 들어가 있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이거든요.”
진유성이 벌어들인 돈은 블랙마켓에서 온 돈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해 보자면 각성 물품을 팔고 중국과 일본에서 받은 돈이다.
일본의 야쿠자들과 거래한 금액은 별다른 문제가 안 됐다.
거래 대금을 한화로 받았기 때문에 이미 일본에서 세탁이 된 돈이었다.
문제는 중국의 즉매회와의 거래-를 빙자한 강탈-에서 얻은 돈이었다.
상림은 그 돈을 여러 쿠션을 먹여서 한국으로 들여왔다.
그리고 그걸 진유성의 계좌에 넣는 데 이런저런 편법을 동원했다.
필요하면 뇌물도 먹였다.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게이트 쇼크 이후 정치권이 크게 부패했기 때문이다.
원래는 부패하지 않았냐고 한다면 그것도 아니지만, 지금만큼은 아니었다.
게이트 쇼크는 그 시대를 경험해 본 이들에게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남겼다.
당시에는 과학자들이 GEL 수치를 발견하지 못했고, 게이트를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게이트 근방의 민간인들을 대피시키지도 못했고, 각성자들이 찾아가서 게이트를 클리어하지도 않았다.
이 말은 곧, 자다가도 얼마든지 게이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더 큰 문제는 그게 ‘내’가 아니라 ‘내 가족’이 게이트에 휘말렸을 때다.
회사에 다녀왔는데 집에 있던 아내와 아이가 게이트에 끌려가 버렸다면?
그 상실감은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었다.
이런 일들은 SG가 출범하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아마 SG가 1년만 늦게 출범했더라도 전 세계 인구 중 절반은 극심한 우울증을 앓았을 것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동안 전 세계에는 쾌락주의와 한탕주의가 만연했다.
어차피 갑자기 죽을 수 있으니 마음 내키는 대로 살자는 것이었다.
이 순간을 즐길 수 있는 돈이 최고라는 식으로.
정치권이 크게 부패한데는 이러한 이유가 있었고, 이러한 부패함은 상림의 일처리를 도와주는 부분이었다.
물론 상림이 직접 국세청장에게 돈을 건넨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가 건넨 돈이 오르고 올라가 국세청장에게 도달했을 수도 있다.
상림의 말에 진유성이 갸웃했다.
“왜? 내가 일해서 번 돈을 내가 쓰겠다는데?”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설마 불법이야?”
진유성은 불법을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앞뒤가 꽉 막혀서 불법은 무조건 안 된다는 건 아니지만, 가급적이면 합법의 경계에서 일을 진행하고 싶어 한다.
오랫동안 대명제국을 통치해 온 통치자의 감수성 때문이었다.
그래서 상림은 고개를 저었다.
“불법은 아닙니다. 편법이죠. 교주님이 각성자 등록을 하지 않은 이상 어쩔 수 없는 부분입니다.”
“흠…… 문제가 되냐?”
“큰 문제는 아닙니다. 제가 찾아보니까 JC 회장이 일처리를 잘해 줬더라고요.”
“아, 김정철인가? 그놈?”
“네.”
진유성이 기억을 더듬었다.
“자네를 조사하면서 몇 가지 조치를 취해 뒀네.”
“이젠 내가 조사한 방식으로 자네를 추적할 수 없을 걸세. 그 누가 와도. 내가 서류들의 엉성한 부분을 다시 짜 맞췄거든.”
상림의 말처럼 김정철은 자신을 추적하면서 몇 가지 서류 작업을 해 줬다고 말했었다.
“네. 확실히 대기업에서 나서서 마킹을 해 주니까 빈틈이 많이 없어졌어요. 아마 과거의 일로 트집 잡히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럼 회사를 만들자는 건?”
“앞으로의 일 때문이죠. 어쨌든 교주님이 가지고 있는 돈은 너무 많거든요. 앞으로도 계속 수입이 생길 거고.”
상림이 생각하기에 진유성은 법인 회사를 하나 차려야했다.
그래야지만 주기적으로 수입이 발생하고, 돈이 오가는 흐름을 만들 수 있다.
“저희 회사의 하청업체로 등록할게요. 제가 알아서 진행할까요?”
“허어, 감히 내가 네 밑으로 들어가란 말이냐?”
“그럼 협력 업체로 할게요.”
“감히 네가 나와 나란히 서겠다는 말이냐? 불손하구나!”
“그럼 상생 업체로 할게요. LF 건설이 도움을 받는.”
“허어, 감히 네가 내 고혈을 빨아먹겠다는 것이냐?”
“아, 그럼 어쩌라고요!”
딱!
이내 뒤통수를 얻어맞은 상림은 더는 반항할 마음이 사라져 버렸다.
그때 진유성이 생각지도 못한 말을 했다.
“출판사를 차리겠다.”
“네? 출판사요?”
“왜? 안 되냐?”
“아뇨, 뭐 안 될 건 없는데…… 몇 천억을 처리하기엔 회사 볼륨이 너무 작을걸요?”
“그럼 거기에 더해서 김정철이를 만나서 각성 마켓을 만드는 데 유통 업체 같은 걸로 참여한다면 되겠지.”
“아…….”
상림이 깜짝 놀랐다.
생각도 없고, 철도 없고, 인성도 없고, 싸가지도 없고, 배려심도 없는 것 같아도, 확실히 교주님은 똑똑하다.
JC 그룹의 회장은 교주님이 언노운 엠페러라는 걸 알고 있으니, 각성 마켓에 지분 참여를 하면 된다.
“어, 그럼 되겠네요. 출판사는 안 해도 되겠는데요?”
“싫은데? 할 건데?”
“왜요?”
“완결을 안 내고 잠수 탄 작가 놈들의 정신을 개조할 생각이다.”
진유성은 무협 소설을 보며 분노를 토한 적이 많았다.
가장 재미있는 순간에 갑자기 잠수를 탄 작가들 때문이었다.
언젠간 싹 잡아다가 정신 개조를 하고 싶단 마음이 있었지만, 실천할 생각은 없었다.
한데, 어차피 회사를 차려야한다면 출판사가 낫지 않겠는가.
상림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작가들 때리면 안 돼요.”
“허어, 내가 사람 때리고 그럴 인물로 보이냐?”
“그럼 저는 왜 때려요?”
“넌 사람이 아니잖아. 상림이지.”
“……?”
상림은 교주님이 자신을 욕하는 건지, 개드립을 치는 건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진유성은 둘 다 아니었다.
아무 생각이 없이 자연스럽게 한 말이었다.
* * *
다음 날.
유혜연이 차려주는 아침을 먹은 진유성은 오랜만에 상소윤과 함께 대정고로 등교했다.
“너 혼자 미국에서 재밌었냐?”
“아주 재밌었다.”
“뭐했는데?”
“힘을 숨겨 보았다.”
“힘을 숨겨?”
“그리고 카리스마를 내보였지.”
“뭐라는 거야? 미친놈이.”
어제 진유성이 집으로 왔을 때 상소윤은 자고 있었다.
그래서 등교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상소윤의 태도는 툴툴거렸지만, 사실은 오랜만에 만난 진유성을 꽤 반가워하고 있었다.
원래 사람이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
언제나 시끄럽고 정신 사납던 진유성이 없으니, 집안 전체가 조용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었다.
아니, 집뿐만이 아니다.
3학년 1반 자체가 조용해진 것 같았다.
그리고 이것은 상소윤의 생각뿐만이 아니었다.
“진유성이다!”
하품을 하며 3학년 본관 건물로 향하던 정새롬이 진유성과 상소윤을 발견하고는 달려왔다.
“진유성!”
“뭐 하는 게냐.”
진유성이 인상을 찌푸렸다.
정새롬을 볼 때면 수학여행의 참패가 떠올라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정새롬은 진유성을 진심으로 반기고 있었다.
“빨리 주접 떨어 줘.”
“뭐라는 거냐? 말만 한 계집애가.”
“오, 그래. 바로 이 말투야. 이게 진짜야.”
반기는 대상이 진유성인지, 진유성의 주접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진유성이 3학년 본관으로 들어가자 같은 반 친구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 왔다.
무려 12일 만의 등교였다.
개중 주말이 4일이었으니, 8일 동안 학교를 빠진 것이었다.
그 중 5일은 출석이 인정된 기업 탐방.
나머지 3일은 무단결석.
진유성은 자신을 반기는 학생들을 보며 묘한 기분이 들었다.
천마신교에 있을 때 진유성은 존경과 경애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존경과 경애에는 친근한이란 단어가 어울리지 않았다.
모두가 진유성을 어려워했다.
특히 그와 함께 천마신교를 일구었던 1세대 무인들이 죽고 나서는 더욱 그랬고.
그래서 이런 환대는 처음이었다.
진유성을 환대해 주는 사람은 또 한 명 있었다.
드르륵.
아침 조회 시간에 맞춰 들어온 3학년 1반의 담임 연기훈이었다.
“진유성 왔냐?”
“네.”
“조회 끝나고 교무실로 와. 혼나야지.”
3일이나 무단결석을 했으니 담임 입장에서는 열불이 날 수밖에 없었다.
“자, 다들 다음 주에 중간고사인 거 알지?”
“네? 중간고사라고요?”
“방금 누구야. 지종수, 너냐?”
“심도훈입니다.”
“어휴, 이 자식들. 아무튼 대학 갈 놈들은 중간고사 준비 잘해라. 내신이야 상관없겠지만, 3학년 시험 문제들은 수능에 나올 만한 문제들이니까.”
대정고의 3학년 시험 문제지는 모든 학원들이 입수하고 싶어 하는 보물이다.
그만큼 적중률이 높기 때문인데, 이 적중률은 당연히 돈의 힘이었다.
수능 시험을 출제한 경력이 있는 이들에게 큰돈을 주고 시험지 제작을 맡기는 것이다.
그렇게 한동안 잔소리를 하던 연기훈이 조회를 끝냈다.
“진유성은 따라오고.”
진유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연기훈의 뒤를 따랐다.
연기훈은 진유성을 크게 혼낼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겼지만, 복도로 나오자 그 분위기는 사라졌다.
“재밌게 놀다 왔냐?”
“네.”
“뭐 했는데?”
“그냥 관광했습니다. 기업 탐방 좀 하고.”
딥마인드를 폭격했으니 탐방이라기보다는 침공이었다.
“얘들한테는 나한테 혼났다고 해라. 안 그러면 다른 놈들도 훌쩍 사라질 수도 있으니까.”
연기훈은 진유성을 혼낼 생각이 별로 없었다.
그도 학창 시절을 겪어 봤기 때문에 진유성의 일탈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역시 진유성은 비범하다.
“그럼 저 그냥 가도 되나요?”
연기훈이 혼낼 마음이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 돌아가려고 하니 말이었다.
과연 대정고 최고의 빌런이었다.
“할 말이 있으니까 계속 따라와.”
진유성은 그렇게 연기훈과 함께 교무 건물로 향했다.
“잠깐 여기 앉아 있어.”
교무실에 도착하자 뭔가 서류를 읽던 연기훈이 입을 열었다.
“유성아, 너 대학 간다고 했지?”
“어, 일단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럼 너 봉사 활동 좀 해야 하는데?”
“봉사 활동이요?”
“어. 이게 대정고 차원에서 기부로 봉사 활동 시간을 때우긴 하는데, 그래도 가긴 가야 해. 흔적이 한 번은 남아야 하거든.”
없는 일을 만드는 것과 있는 일을 부풀리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었다.
“원래는 1학년 때 단체로 가는데, 너는 1학년 때 없었으니까.”
“알겠습니다.”
“혹시 같이 갈 친구 있으면 데려와라. 출석 인정해 주니까 갈 놈들 있을 거야.”
진유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봉사 활동을 해 본 적은 없지만 딱히 어려울 것 같진 않았다.
“이 중에서 가고 싶은 곳으로 골라서 말해줘라.”
연기훈이 진유성에게 A4 용지를 건넸다.
봉사 활동이 가능한 대정고의 제휴 업체 목록이었다.
진유성은 A4를 받아 들고는 교무실을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