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57화>
Quest 29. 무료한 천마님
본래 게이트가 종료되고 게이트 밖으로 이동할 때는 기감이 흐려져 주변을 인식할 수가 없다.
이는 사방을 백팔 구역으로 나누고, 그것을 다시 삼재로 나누어 구별하는 진유성조차 마찬가지였다.
한데 재밌게도 게이트를 폭주시키면서 밖으로 나오자 인지 능력이 흐려지는 순간이 없었다.
게이트 밖으로 나오자마자 1km 밖에서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진 것이었다.
“뭐야?”
진유성이 기절해 있는 9명의 각성자, 아니 일반인을 발로 툭툭 밀어내고는 인벤토리에서 선글라스를 꺼냈다.
그리곤 다가오는 사람들을 기다렸다.
멀리서 들리는 이야기를 통해 추측하건대, 저들은 SG의 각성 경찰인 듯했다.
각성 경찰이 출동한 이유는, SG 소속을 포기하고 자유 각성자가 된 존 돈 일행이 과거에 저지른 범죄가 발각된 것 같았고.
‘역시…….’
제 버릇은 개도 못 주는 법이다.
이놈들이 모여서 나쁜 짓을 한 게 한두 번이 아닌가 보다.
진유성은 그런 생각을 하며 주변을 쓱 둘러보았다.
너른 공원 바닥에 보일 듯 말 듯한 그을음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게이트 폭주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나무도, 풀도, 흙 안의 미생물도.
모두가 그대로다.
이 말은 진유성이 게이트 폭주를 억제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게이트를 폭주시키는 모든 에너지를 흡수했고, 나아가 마도사들에게 돌아가려는 영성까지 흡수해 버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마도사들이 영성이 흡수하는 통로에다가 심검(心劍)을 날렸다.
영성을 흡수하기 위해 기경팔맥을 활짝 열어 놓은 상태였을 텐데, 심검이 날아왔다?
분명 큰 타격을 입었을 것이었다.
‘열받아서 찾아오면 좋을 텐데.’
진유성은 그런 생각을 하며 게이트 안에서 흡수한 기운의 성질을 살펴보았다.
일단 영성은 늘 그렇듯 흡수하기 좋았다.
영성이라는 것 자체가 인류를 번영시키기 위해 인간 개개인이 품고 태어난 기운이다.
이 말은 곧, 인간이 흙으로 돌아가면 자연으로 환원되는 기운이란 소리였다.
그렇기 때문에 내공으로 전환하기에 가장 좋은 기운이다.
그에 반해 게이트를 폭주시키려는 기운은 불순물이 가득한 혼탁한 기운이다.
‘흠.’
아무래도 게이트 폭주는 영성을 모으다가 파생된 불순한 기운을 가지고 일으키는 것 같았다.
후으으으으-
진유성이 품고 있던 불순한 기운을 배출했다.
진유성의 기운에 대한 구속력은 어마어마해서, 원한다면 불순한 기운도 단전에 품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내공의 정순함이 상할 수 있기에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영성은 흡수하고 탁기를 배출했을 때쯤, SG의 각성 경찰이 도착했다.
책임자로 보이는 이가 쓰러진 존 돈 일당과 진유성을 번갈아 보더니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브레드 파커.”
“각성 신분증이 있습니까?”
진유성은 아놀드 벡이 줬던 신분증을 인벤토리에서 꺼내서 제출했다.
진유성의 신분증을 기계에 가져다 댄 그들이 나지막하게 ‘2차 각성자’라는 단어가 섞인 대화를 나누었다.
신분을 확인한 책임자가 물었다.
“설마 이들을 전부 죽인 거요?”
“넌 사람이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나?”
“무슨……?”
“심장이 총알에 뚫렸을 때? 아니! 불치의……”
“팀장님, 전원 살아 있습니다!”
누군가의 외침에 진유성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감히 자신이 말을 하고 있는데 끊어?
그러나 존 돈 일당이 살아있다는 말에 경찰들이 후다닥 움직이더니 모두를 제압했다.
A, B, C급 각성자 9명을 제압하기 위해서 만반의 준비를 했건만, 그 준비는 쓸데가 없었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쓸데없음이었다.
좁은 공간에 가둬 놓고 싸우면 모를까, 넓은 공원에서 전투가 벌어지면 무조건 사상자가 발생한다.
각성 경찰들도 모두 각성자였지만, 그들 중에는 A급 각성자가 두 명밖에 없었다.
존 돈 일당이 제압되는 걸 지켜본 책임자가 진유성에게 물었다.
“브레드 파커,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이들이 내 장비를 털어 먹기 위해 습격했고, 난 반격했다.”
“일 대 구로 싸웠다는 말입니까?”
“당연하지.”
“그게…….”
그들은 각성 신분증을 통해 브레드 파커가 최근에 각성한 2차 각성자이며, F급 각성자라는 걸 확인했다.
F급 각성자가 대체 어떻게 고위 각성자가 포함된 9명을 이겼다는 말인가.
“대체 어떻게……?”
“내 이름은 브레드 파커. F급 짐꾼이죠.”
“짐꾼? 짐꾼이 뭡니까?”
“세상에서 가장 높은 포텐을 지닌 직업이다. 높은 확률로 기연과 조우할 수 있지.”
“예?”
“내가 저들을 어떻게 물리쳤냐고? 그건 내가 [정의]이기 때문이다.”
진유성이 검지를 촥 하고 들어 올리더니 천천히, 아주 천천히 선글라스를 고쳐 썼다.
그리고는 그곳을 빠져나왔다.
뿌듯했다.
드디어 그토록 원했던 힘을 숨긴 주인공이 되었다.
“존나 카리스마 있어. 이러니까 경찰들이 뻑이 가지.”
그사이 SG의 각성 경찰들은 브레드 파커를 붙잡아야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고 있었다.
SG 소속이었다면 참고인으로 불러들였을 텐데, 브레드 파커는 캘리포니아 주의 자유 각성자다.
아직 자유 각성자 관련 법안이 발의되지 않아서 이러기도 애매하고 저러기도 애매하다.
그리고…….
‘마약 한 거 아니야?’
좀 미친놈 같다.
책임자는 일단 존 돈 일당을 심문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기절한 이들을 호송 차량에 태웠다.
* * *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한 진유성이 입국 수속을 밟고는 공항을 빠져나왔다.
공항 안에는 카메라가 너무 많아서 미세 먼지를 차단하는 필터를 잠시 없애야 하는데.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공항 밖으로 나오자마자 내공을 운영한 진유성이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상림이 보였다.
“오셨어요?”
“오냐.”
누가 보면 이상한 모습이었다.
4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건장한 남자는 존댓말을 쓰고,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학생은 반말을 하는 것이.
하지만 실제로 40대 중후반의 남자는 60년을 넘게 살았고, 20대 초반의 남자는 100년을 훌쩍 넘게 살았다.
“근데 교주님.”
“엉?”
차에 올라타자 상림이 물었다.
“교주님 정확한 나이가 어떻게 되십니까?”
“몰라?”
“모른다고요?”
“어. 이게 너무 오래 살면 햇수를 안 세게 돼서. 대충 110년은 넘고 120년은 안 될걸?”
진유성이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왜?”
“아뇨. 조만간 하마가 태어나잖아요.”
“그치.”
하마의 출산 예정일까지는 이제 4개월 반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상림은 진유성을 통해, 하마가 좀 더 빨리 태어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진유성이 내공으로 성장을 북돋아 줬기 때문인지, 하마의 신체는 거의 성장했다.
아마 한두 달 내로 아이가 태어날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되면 3개월이나 빨리 태어나는 것이고 칠삭둥이로 불릴 수도 있지만, 하마는 그 어떤 신생아보다 건강할 것이었다.
무려 중원의 고금제일인이 돌봐 줬으니까.
“한 100살까지는 살고 싶은데, 그렇게 살 수 있나 싶어서요.”
“흠, 잘 모르겠는데.”
무공이 고강하다고 해서 수명이 무한정 늘어나는 건 아니다.
지금껏 진유성이 만나 본 무인 중에 가장 고강한 이는 신주청이었다.
신주청은 유일하게 진유성의 경지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 외의 무인들에게 진유성은 천마 혹은 천신으로 보일 뿐이었다.
그런 신주청조차 노화를 이기진 못했다.
노화를 이기기 위해 마지막의 벽을 넘으려다가 소천했고.
아마 신주청이 벽을 넘을 생각을 하지 않고 현상 유지를 했더라면, 100살을 넘게 살았을 것 같기도 하다.
그에 반해 상림은 경지가 좀 낮다.
물론 상림은 천마신교의 3인자였고, 중원에서도 적수가 드문 고수긴 했다.
하지만 진유성이나 신주청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생각해 보세요, 교주님. 제가 벌써 65살이거든요.”
중원에서 보낸 시간과 한국에서 보낸 시간을 합치면 상림은 올해로 꼭 65살을 살아온 것이었다.
“여든에 죽는다고 생각하면 이제 15년밖에 남지 않은 거잖아요?”
“그치.”
“갑자기 걱정이 돼서요.”
“수명 부분은 나도 잘 모르겠는데. 주청이가 100살을 못 넘겼을 것 같기도 하고, 넘겼을 것 같기도 하고…….”
“저는 그럼 무조건 100살을 못 넘길까요?”
“모른다니까? 너도 알다시피 무인들은 서서히 늙는 게 아니라, 픽 하고 죽는 경우가 많잖아.”
“그쵸.”
노화로 죽는 무인들은 보통 1년 만에 급격하게 노쇠해진다.
즉, 90살에 죽은 사람이 있다고 치면 89살까지는 건강하다가 1년 만에 죽는 것이었다.
이는 단련된 단전과 쌓아온 내공이 선천진기의 소모를 대신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아주 건강해’라고 확신을 가지고 있다가도, 1년 만에 선천진기를 잃으며 수명을 다하는 경우가 많다.
진유성이 상림의 어깨를 토닥였다.
“걱정하지 마.”
“왜요? 혹시 제가 선천진기를 잃을 때쯤 도와주실 수 있나요?”
“몰라? 안 해 봐서 모르겠는데.”
본래 멀더가 죽어 갈 때쯤 선천진기를 억지로 보강하려고 했는데, 멀더가 그러고 싶지 않다고 했다.
멀더는 죽기 전쯤에 치매를 앓았는데, 진리를 추구했던 마도사로서의 긍지를 위해서라도 담담히 죽음을 받아들였으니까.
“그럼 왜 걱정하지 말라는 거예요?”
“나는 네가 죽어도 살아 있을 거니까. 그때가 되면 내가 돌봐 줄게.”
“……그게 위로가 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당연하지. 이승의 일은 걱정하지 않고 편히 갈 수 있잖아?”
진유성의 말에 상림이 입을 삐죽이더니 아무 말도 없이 차를 출발시켰다.
이 자식, 삐진 게 분명하다.
‘수명이라…….’
진유성도 정말 수명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과거에는 자신도 여느 무인들처럼 건강하다가 픽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때는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내심 죽음을 원하기도 했다.
“하늘의 유성은 세상을 잠깐 스쳐 지나가건만 당신은 영원한 삶을 사는군요.”
“내 삶도 영원하진 않을 거요. 조금 길 뿐.”
“나의 죽음 이후에 긴 시간을 살아갈 당신이지만, 이걸 볼 때면 내 생각을 해 줄 수 있나요?”
진유성은 주혜미에게 말했던 것처럼 자신의 삶이 영원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100년을 넘게 산 순간부터 약간의 두려움은 있었다.
‘계속해서 고독하게 수천 년을 살아가면 어쩌지?’
그래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한데…….
이제는 좀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도착한 순간부터 삶이 더욱 즐거워졌다.
아직 하지 못한 일이 많고, 해 보고 싶은 일도 많았다.
그 순간.
진유성은 자신의 내면에 있는 소우주(小宇宙)에 약간의 변화가 일어남을 느꼈다.
그동안 진유성의 무와 공은 관조자와 같았다.
뜨겁게 타오르기보다는 차갑게 내리앉아 있었다.
하지만 진유성이 처음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품는 순간, 변화가 일어났다.
관조자가 아닌, 조력자로.
기분 좋은 변화였다.
진유성의 단전에 자리 잡은 내공이 순식간에 일주천 했다.
한데, 그 속도가 평소보다 훨씬 빨랐다.
의(意)와 행(行)이 갖춰지면, 염(念)과 동(動)은 따라오니, 이것이 심검지경(心劍之境)이다.
진유성은 그동안 자신의 심검이 죽어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당연한 것이었다.
마음에 살아가고 싶은 의지가 부족한데, 심검이 어찌 완전히 깨어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 순간.
진유성의 심검은 완전해졌다.
진유성이 피식 웃었다.
“에이, 허접들.”
“네?”
“아니, 내 심검이 이런 상태였는데도 그렇게 나가떨어졌나 싶어서.”
“무슨 소리 하시는 거예요?”
“너 혹시 관짝 댄스라고 알아?”
“그게 뭐예요?”
“네가 죽으면 내가 춰 줄 춤이 있어.”
“…….”
“불경한 표정 짓지 말고 차나 몰아라.”
상림과 진유성을 태운 차가 인천에서 압구정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