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56화>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마우렐이 나가떨어지자, 각성자들의 표정이 변했다.
마우렐은 A급 각성자인데다가 신체계 각성자다.
아무리 방심하고 있더라도 F급 각성자한테 한 방에 나가떨어질 일은 없다.
‘어쩐지 A급 장비들을 덕지덕지 바르고 있더라니.’
존 돈이 이를 악물었다.
브레드 파커란 놈이 돈을 털어 장비를 산 F급 각성자인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Lazy Player인 것 같다.
Lazy Player.
각성 등급을 제대로 신고하지 않는 이들.
지닌바 각성 능력은 A급이라도 F급에서 멈춰 있는 각성자들을 지칭하는 용어였다.
이건 보통 돈 많은 놈들이 하는 짓이었다.
각성 등급이 많아질수록 많은 돈과 명예를 얻을 수 있는데, 돈과 명예가 필요치 않은 이들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게 아니면…….
‘프락치인가?’
SG에서 자유 각성 지대에 고위 각성자를 파견할 거라는 소문이 있었다.
자유 각성 지대에서 벌어지는 각성 범죄를 막기 위해서였다.
이거라면 앞뒤가 맞아 떨어진다.
어마어마한 인벤토리 목록과 지금까지 기가 죽은 척을 하던 행동까지 전부.
“이제 와서 겁을 먹은 게냐?”
진유성이 성큼성큼 각성자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1 대 8의 상황이었음에도 각성자들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그 순간 존 돈이 소리를 질렀다.
“몬스터를 죽여!”
구속의 구로 묶어 놓은 마지막 몬스터를 죽이면 게이트가 클리어 된다.
게이트가 종료되면 밖으로 나가게 되고, 게이트 밖은 치외법권이 아니다.
고함을 내지른 존 돈이 냅다 스킬을 사용했다.
움직인 건 존 돈 뿐만이 아니었다.
8인의 각성자가 전부 몬스터를 향해 스킬을 퍼부은 것이었다.
하지만.
피피피핏!
뭔가에 막혀서 스킬들이 전부 무력화되었다.
진유성이 시전한 호신강기였다.
본래 호신강기를 타인에게 걸어 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마 전 무림을 통틀어도 그게 가능한 이는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진유성이 누군가.
그는 고금제일무인이다.
고금(古今), 옛날과 지금.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서 가장 강한 무인이라는 것은 무림이 탄생한 이래로 유일하다는 것과 같았다.
과거와 현재뿐만이 아니다.
진유성에게는 전무후무라는 수식어도 늘 붙어 왔다.
전에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그것이 진유성이 품고 있는 무공이었다.
“딱 대, 이 자식들아.”
몬스터를 보호한 진유성이 몸을 움직였다.
각성자들이 허겁지겁 스킬을 퍼붓기 시작했다.
서울역 A급 2차 게이트에서 진유성은 자신을 몬스터로 오인하는 각성자들과 싸웠었다.
구슬픈 빠끄 소리와 함께.
그때도 느낀 것인데, 이곳의 각성자들은 대인(對人)전이 형편없었다.
몬스터와 싸울 때는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데, 사람과 싸울 때는 허접하기 그지없었다.
“어딜 보는 거냐.”
각성자들이 발악하며 스킬을 퍼부었지만.
“그건 내 잔상이다.”
진유성에게 닿을 리가 없었다.
빡!
진유성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각성자들이 뒤통수를 부여잡고 쓰러졌다.
“느려.”
역시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진유성은 각성자들을 단숨에 쓰러트릴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한 명씩 요리했다.
이놈들은 죄질이 나쁘다.
아홉 명이서 편을 먹고 각성자 한 명을 털어 버리려고 했다.
그 한 명이 진유성이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당했을 것이었다.
빡!
진유성의 뒤통수 후려치기에 마지막 각성자가 쓰러졌다.
아홉 명의 각성자들이 신음을 흘리며 바닥을 기었다.
개중 몇몇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다리가 풀려서 다시 쓰러지기를 반복했다.
진유성은 가장 먼저 존 돈에게 다가갔다.
“죽을래? 아니면 아이템을 다 넘길래?”
“그, 그게 무슨!”
“뭐긴 뭐야. 네가 나한테 하려던 짓이지.”
“SG의 가, 감시자가 이런 짓을 해도 된다고 생각해?!”
진유성은 이놈들이 자신을 SG의 암행어사 같은 걸로 오해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는 SG를 대표하는 아놀드 벡에게 신분을 받았으니까.
“딱 말해. 죽을래, 아이템을 내놓을래?”
“차라리 죽여라!”
“그래.”
진유성의 누워 있는 존 돈의 머리에 주먹을 내질렀다.
콰-앙!
엄청난 소리와 함께 흙이 날리고, 바닥이 움푹 패인다.
저 정도 충격이라면 누가 봐도 죽었다.
그 모습에 다른 각성자들이 벌벌 떨어졌다.
저 미친놈이 정말로 존 돈을 죽인 것이었다.
진유성은 이번엔 마우렐에게 다가갔다.
꾸짖음을 당하고 나가떨어진 마우렐이 벌벌 떨더니 억지로 몸을 일으킨다.
“드, 드리겠습니다.”
“내놔.”
“그럼 살려 주는 겁니까?”
“그래.”
마우렐이 허겁지겁 아이템을 전부 건넸다.
아이템은 중요하지만, 목숨이 더 중요하다.
진유성은 그렇게 여덟 명의 아이템을 전부 건네받았다.
그리곤 발로 존 돈을 툭툭 건드렸다.
기절해 있던 존 돈이 정신을 차렸다.
존 돈이 죽지 않았다는 걸 깨달은 각성자들이 당황했지만, 이미 모든 아이템을 건넨 뒤였다.
진유성은 굳이 존 돈의 아이템까지 가져가진 않았다.
이놈에게 아이템이 남아 있는 것이 더욱 큰 벌이 될 것이었다.
나머지 여덟 명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만약 이들이 진유성을 죽이려 했다면, 진유성도 이들을 죽였을 것이었다.
진유성은 살인을 좋아하진 않지만, 필요한 순간에는 거리낌이 없었으니까.
이들이 진유성의 아이템만 뺏으려고 했던 것은 유일한 행운이 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은 아니었다.
이대로 끝내면 다음 피해자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흠.”
진유성이 각성자들에게 빼앗은 아이템 목록을 보다가 제일 좋은 검을 하나 빼 들었다.
“사, 살려 준다면서!”
“안 죽여.”
진유성은 아놀드 벡의 눈앞에서 계란의 껍질과 내용물을 분리한 적이 있었다.
이는 스스로의 한계를 깨는 경험이기도 했다.
그동안은 입멸공으로 할 수 있는 일에도 한계를 두었지만, 이것이 신의 힘이라는 걸 깨닫고는 한계를 깨 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이상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히 무공의 경지가 올라간 것 같진 않단 말이지.’
굉장한 깨달음을 얻었으니, 그가 품고 있는 소우주(小宇宙)에도 변화가 있어야 맞았다.
하지만 고요했다.
이 정도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게 좀 이상했다.
진유성은 그런 생각을 하며 각성자들에게 다가갔다.
“사, 살려 줘!”
“안 죽인다니까?”
진유성은 게이트와 각성자의 근원에 대해서 알고 있다.
그러니 근원을 도려내는 것도 가능하다.
프스스스스.
진유성의 검에서 농밀한 기운이 피어오르고, 그의 검이 각성자와 게이트를 연결하는 ‘연결 고리’를 베어 냈다.
이들은 더 이상 각성자가 아니게 됐다.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왔다.
각성자들은 주기적으로 경험치를 얻지 않으면 고통을 느낀다고 했다.
진유성은 연결 고리가 끊어진 이들이 고통에서 해방되는지 알지 못했다.
괜찮을 수도 있고, 괜찮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 신경 써 줄 필요는 없다.
고통을 느낀다면 그것 또한 징벌이 될 테니까.
‘다시 게이트에 들어가면 각성을 할 수 있으려나?’
이것도 모르겠다.
“이, 이럴 수가.”
그사이, 각성자들은 그동안 모은 스탯과 마력이 사라지는 탈력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상태창!”
더 이상 시스템이 그들의 부름에 답하지 않는다.
그때였다.
[미션 종료까지 5분 남았습니다.]
[클리어에 실패하는 경우, 잔존 몬스터에 비례하는 강도의 폭주가 일어납니다.]
[게이트 폭주 시, 모든 각성자는 사망합니다.]
[현재 남은 몬스터 : 1개체]
푸른빛을 띠는 관리자가 등장하더니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처음 보는 메시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진유성은 지금껏 들어간 모든 게이트에서 순식간에 적을 처리했다.
게이트 제한 시간에 임박할 때까지 시간을 보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진유성의 관심을 끄는 건 메시지가 아니었다.
스릉.
늘 궁금했다.
관리자를 적대하면 안 된다는 불문율.
그것을 깨면 어떻게 되는지.
어차피 저 관리자도 마도사들의 작품이니까.
“어이, 퍼런 놈.”
관리자의 시선이 진유성에게 향한다.
그 순간, 진유성의 검이 관리자를 향해 날아갔다.
“미친놈! 뒤져라!”
진유성의 행동을 지켜본 존 돈이 벌컥 소리를 질렀다.
SG가 가장 큰 패착으로 꼽는 일 중 하나가 관리자를 포획하려는 시도를 했던 것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관리자란 놈을 포획하고, 심문하면 게이트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을 거란 기대에.
하지만 결과가 어떤가?
모두 죽었다.
당대 가장 강한 각성자들이 전멸했다.
물론 초창기였기에 가장 강한 이들이라고 해봐야, 현재 등급으로는 S급, 혹은 SS급 정도일 것이었다.
아놀드 벡처럼 인외의 벽을 넘은 이들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리자는 절대적이었다.
존 돈은 브레드 파커가 죽을 것을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파파파파팟!
진유성의 검기가 관리자의 온몸을 할퀴더니, 이내 소멸시켜 버렸다.
“뭐야? 별거 아니잖아?”
중원의 이십대 고수보다 살짝 아래다.
아마 현재의 상림과 싸우면 백중세로 몇천 초를 겨루다가 상림이 질 것이었다.
‘근데 드벡이랑 상림이랑 싸우면 누가 이길까?’
잠깐 고민해 봤는데, 잘 모르겠다.
드벡이도 꽤 강해졌고, 상림도 꽤 회복했으니까.
진유성이 전투에 관해서 모르겠다는 건 두 사람이 백중세임을 의미했다.
실력으로 승부가 난다기보다는 몸 상태나 운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는 수준이다.
‘나중에 둘이 한 번 붙여 봐야지.’
진유성은 그런 생각을 하며 평원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내친김에 한 가지를 더 경험해 봐야겠다.
바로, 게이트 폭주였다.
“이봐! 빨리 몬스터를 죽여!”
“시간이 얼마 없다고! 미친놈아!”
각성자, 아니 이제는 일반인으로 돌아온 아홉 명이 난리를 피우기 시작했다.
브레드 파커가 관리자를 죽인 것은 놀라웠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게이트 클로징이었다.
조금 전에 게이트 클로징이 5분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으니,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아마 1분 남짓.
게이트가 폭주하면 그 안에 있는 각성자들은 전부 죽는다.
폭주한 게이트에서 살아나온 각성자는 지금껏 없었다.
하지만 진유성은 미동도 없었다.
그는 게이트 폭주를 경험해 볼 생각이었다.
어차피 남은 몬스터는 한 마리뿐이고, 지금의 게이트는 공원에 열렸다.
주변이 잘 통제되고 있으니, 소소한 폭발로는 민간인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다.
그렇게 째깍째깍 시간이 흘렀다.
두려움이 극에 달해진 다른 이들이 히스테리를 부렸지만, 진유성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렇게…….
5분이란 시간이 지났을 때.
[게이트가 닫힙니다.]
[남은 몬스터 개체에 비례해 폭발이 일어납니다.]
[공간이 붕괴합니다.]
용권풍이 몰려왔다.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넓은 평원의 천지사방에서 붉은 빛을 띠는 폭풍이 휘몰아쳤다.
바람만 몰려오는 게 아니었다.
공간이 구겨진다.
마치 거대한 거인이 종이를 구기는 것처럼 공간이 구겨져 왔다.
“으아아아악!”
“모, 몬스터를 죽이라고!”
그러나 이미 몬스터는 사라진 뒤였다.
이미 게이트 폭주가 결정되었기 때문이었다.
진유성은 시끄럽게 구는 9명의 수혈을 짚어 잠재우고는 한곳에 모았다.
잠시 뒤, 거의 모든 공간이 구겨졌다.
남은 곳은 진유성과 일반인들이 머물고 있는 한줌의 땅 뿐이었다.
드드드드드드.
천지사방이 진동하는 게 느껴졌다.
그 속에서 진유성이 미소를 지었다.
“그렇군.”
공간이 붕괴되면 이 안에 잠들어 있던 모든 기운과 영성은 어딘가로 전달이 되는 것 같다.
그 어딘가는 마도사들일 것이고.
당연한 일이다.
이만한 기운을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진유성이 주먹을 말아 올렸다.
그리곤 온 세상을 떨리게 하는 바람 속으로 가볍게 내질렀다.
핏.
힘없는 일권(一拳)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용권풍을 헤치고, 또 헤치고 나아갔다.
절대 힘을 잃지 않고.
* * *
“큭!”
함께 서류를 보던 이가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지자, 아놀드 벡이 깜짝 놀랐다.
“왜 그래?”
“모, 모르겠어요. 갑자기 숨이 막혀서…….”
“심력 소모가 너무 컸던 건가?”
아놀드 벡이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보다가 말했다.
“당분간 아카식 레코드에 접촉하는 건 삼가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럴게요.”
가슴을 부여잡고 있던 아멜라 메건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깊은 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