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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155화 (155/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55화>

* * *

F급 게이트 몬스터들은 어그로에 끌린다.

발 빠른 각성자가 어그로를 유지해 준다면, 막강한 화력을 지닌 각성자가 손쉽게 처치할 수 있다.

그래서 SG의 정책 중, F급 게이트에 관한 건 늘 논란이 되었다.

SG는 F급 게이트라고 하더라도 22명의 인원이 함께 클리어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현장 각성자들의 의견은 달랐다.

F급 게이트는 10명 내외로 도전해도 충분하다.

어그로를 확실히 유지할 신체계 각성자가 있다면 B급 이상 각성자 다섯으로도 충분하다.

이게 각성자들의 중론이었다.

하지만 SG는 자신들의 정책을 바꾸지 않았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F급 각성자들이 설 자리를 잃을까 봐서였다.

F급 게이트가 고위 각성자들의 차지가 되면, F급 각성자들은 안전한 수입원을 잃는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이러한 정책에 가장 큰 불만을 가진 건 F급 각성자들이었다.

그들은 F급 게이트를 F급 각성자 10명이서도 충분히 클리어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즉, 10명이서 얻을 수 있는 수익을 SG의 정책 때문에 22명이서 나눠 갖는다고 생각했다.

이 같은 논란은 아주 오랫동안 이어졌고, 현재도 진행 중이었다.

그래서 캘리포니아에 많은 각성 연구원들의 시선이 쏠리고 있었다.

자유 각성 지대 캘리포니아에서는 F급 게이트의 출입 가능 인원을 10명 이상으로 규정했다.

이 말은 F급 각성자들 10명이서 팀을 구성해 도전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세계 각국의 연구원들이 게이트에 도전하는 F급 각성자들의 특성, 클리어 타임, 부상 정도를 체크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토팽가 주립 공원(Topanga State Park) F급 게이트는 관심 밖이었다.

10명이 도전하는 건 똑같았지만, 그 면면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A, B, C급 각성자가 각 3명씩.

그리고 F급 각성자 한 명.

누가 봐도 안전 지향적인 헌팅을 하겠다는 의도가 보였다.

하지만 이 팀은 전혀 안전하지 않았다.

팀 구성원이 소수라서?

F급 게이트를 얕잡아 보고 있어서?

9명이서 F급 각성자를 털어 먹겠다는 속셈을 가지고 있어서?

전부 아니었다.

바로, 이 팀에 진유성이 포함되어 있어서였다.

* * *

존 돈은 토팽가 주립 공원에서 만난 브레드 파커를 보고는 내심 흡족해했다.

비싸 보이는 장비를 바리바리 차고 온 것도 마음에 들었고, 그 장비가 새것처럼 보이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딱 봐도 사용한 흔적이 거의 없다.

초짜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보다 마음에 드는 건, 브레드 파커가 동양인이라는 것이었다.

동양인은 미국 사회에서 흑인보다 더 차별받는 존재다.

게이트 안에서 장비를 털리고 징징거린다고 해도, 사람들이 이놈의 말을 들어 줄 확률은 낮다.

애초에 게이트 안에서는 그 어떤 전자기기도 사용할 수 없다.

녹음을 할 수도 없고, 카메라로 찍을 수도 없다.

그야말로 힘만이 통용되는 완벽한 무법지대.

그동안은 SG의 복잡한 정책들 때문에 할 수 없었던 일을 드디어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민자야?”

“내가 아니라 할아버지가 이민자지.”

“그럴 거 같았어. 그럼 어디 출신이야?”

“샌프란시스코.”

“장비가 번쩍번쩍한 걸 보니 돈 좀 만졌나 보네? 헌팅으로 돈을 번 건가?”

존 돈이 슬쩍 상대의 커리어를 떠봤다.

이어진 대답은 흡족했다.

“항구 노동자들에게 뭘 좀 팔았지.”

“설마……. 이거?”

존 돈이 담배를 피는 시늉을 하자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면 더 좋다.

전직 마약상의 억울함을 누가 믿어 준단 말인가.

“아무튼 잘해 보자고.”

존 돈과 친구들이 미소로 브레드 파커를 반겼다.

꽤 친절하게 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친절은 딱 게이트에 들어가는 순간까지였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저는 이번 미션을 진행할 관리자 ‘F-1S’입니다.]

[우선, 게이트 인원에 선별되심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현재 인원은 10명입니다.]

“비켜, 이 자식아. 안 보이잖아.”

어그로를 담당할 신체계 각성자 마우렐이 브레드 파커의 어깨를 퍽 하고 밀었다.

브레드 파커가 깜짝 놀라서 휘청거리자, 마우렐이 씩 웃었다.

어차피 관리자는 허공에 떠 있으니 보이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게다가 목소리를 듣는 것도 아니고, 심상을 전달받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것은 괜한 시비라고 볼 수 있었다.

정신계 각성자 두 명이 다가와서 마우렐을 말렸다.

“벌써부터 그러면 어떡해? 빡 돌아서 헌팅 중에 우리 뒤를 칠 수도 있다고.”

“이런 건 마지막날에 하라고.”

마우렐이 어깨를 으쓱했다.

“미리미리 기를 죽여 놔야지.”

“기를 죽이는 방법이야 많으니까. 내버려둬.”

마우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그 뒤로 브레드 파커를 철저히 배제시켰다.

식사를 할 때도 아홉 명이서 했고, 사냥을 할 때도 아홉 명이서만 했다.

브레드 파커와 말 한 마디 섞지 않았고, 혹시라도 말을 걸면 인상을 쓰며 무시했다.

이는 마지막 날을 위해 미리미리 기를 죽여 놓는 과정이었다.

함께 헌팅을 하면 ‘나도 싸웠다.’라는 마음 때문에 반항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처럼 철저히 배제시키면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라는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장비를 털어 버릴 때도 고분고분하게 일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들은 브레드 파커를 죽일 생각은 없었다.

게이트 안에서 사명 사건이 발생하면 복잡한 수많은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러니 기를 죽인 다음에 정신계 스킬들을 이용해서 공포를 안겨 줄 것이었다.

스스로 장비를 바치도록.

“근데 이 자식은 어디 간 거야?”

“볼일이라도 보러 갔나 보지.”

“아님 어디 짱 박혀서 밥 먹는 거 아니야?”

너른 평원처럼 보이는 게이트 내부는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넓다.

아무도 게이트의 끝을 봤다는 이가 없으니 말이었다.

그러니 각성자들은 생리 현상을 해결할 때 먼 곳으로 이동했다.

어차피 게이트의 하루는 전투 시간 12시간과 휴식 시간 12시간으로 구분된다.

휴식 시간에는 게이트 어느 곳에 있던지 공격받을 일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브레드 파커가 보이지 않아도 그러려니 했다.

전투 중에만 그들 옆에 있으면 되니까.

그 사이 브레드 파커, 아니 진유성은 게이트에 없었다.

놀랍게도 그는 게이트 밖에 있었다.

* * *

“어우.”

진유성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 자식들이 하고 있는 걸 보면 몸이 근질거려서 참을 수가 없다.

한 대 콱 쥐어 박고 싶은데, 이게 또 컨셉상 그럴 수가 없다.

잔뜩 겁 먹어있는 컨셉이니까.

역시 현실은 소설과 다르다.

소설에서 봤을 때는 조롱당하다가 힘을 빵! 터트리는 게 엄청 멋있었는데……..

생각보다 재미없다.

그나마 진유성이 기대하는 건, 이 자식들이 마지막 날에 뭔가를 꾸미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마 단순히 무시당하는 걸로 끝이었다면 못 참았을 거 같다.

“에이, 젠장.”

진유성은 투덜거리며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게이트 안에서 주어지는 음식은 썩 맛있지 않다.

먹을 만하긴 한데, 식도락을 즐길 정도는 아니다.

처음으로 온 미국인데, 현지 음식을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진유성이 게이트를 찢고 나온 이유도 이것 때문이었다.

누군가 이런 진유성의 행동을 목격했다면 경악을 금치 못했을 것이었다.

지금껏 그 누구도 게이트를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진유성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딱 하나 아쉬운 것이라면…….

‘좋은 검이 하나 있어야겠는데.’

입멸공을 쓸 때마다 검이 소멸한다.

입멸공을 단 한 번이라도 견디려면 A급 이상의 장비여야 하는데, 너무 아까웠다.

적게는 몇천만 원에서 많게는 억 단위의 물건도 있기 때문이었다.

꼭 입멸공을 쓸 때마다 비싼 이용료를 지불하는 기분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어떤 음식을 먹을까 고민하던 진유성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보니까, 유혜연이었다.

-유성아, 잘 있지?

“그럼요.”

-주말에 들어온다고?

“네. 그럴 거 같아요.”

진유성은 상림을 통해서 대정고에 기업 탐방을 다녀오는 식으로 출석을 대체했다.

그러나 LA에 오느라 예정보다 미국 체류 기간이 길어졌다.

현재는 결석 상태였다.

하지만 이런 학생이 진유성만 있는 건 아니었다.

다른 학생들 중에도 학기 중에 훌쩍 외국을 다녀오는 이들이 있다.

돈이 워낙 많다보니 제멋대로 사는 학생들이 많은 것이었다.

진유성은 그 뒤로 유혜연과 안부와 관련된 통화를 나눴다.

-그래. 뭐, 사고 치지 말고.

“칠 사고가 뭐가 있겠어요.”

-누구 때리지 말고.

“제가 누굴 때리겠어요.”

-뭐 뺏지 말고.

“…….”

윷놀이를 할 때도 생각했던 건데, 사실 유혜연은 자신보다 강한 고수가 아닐까?

어떻게 이렇게 자신의 행동을 꿰뚫어 보는지 모르겠다.

전화를 끊고는 밥을 먹고, LA 밤거리를 관광했다.

그때 핸드폰이 지잉 진동했다.

11시간으로 맞춰 놓은 타이머가 진동하는 것이었다.

이제 게이트 안의 휴식 시간이 끝나고, 전투 시간이 시작할 때가 되었다.

“아, 출근하기 싫다.”

진유성이 투덜거리며 토팽가 주립 공원으로 향했고, 게이트를 찢고 들어갔다.

진유성이 슬그머니 나타났음에도 각성자들은 관심이 없었다.

평원 어딘가에 짱 박혀 있다가 전투 시간이 다가오자 기어 들어온 것으로 생각한 것이었다.

그렇게 3일차 전투가 시작되었다.

진유성은 각성자들이 싸우는 걸 구경하며 하품했다.

* * *

7일차 전투가 끝이 났다.

본래 마지막 전투가 끝이 나면 휴식 시간이 주어지는 대신 게이트 밖으로 이동된다.

하지만 전투가 끝났음에도 각성자들은 게이트 밖으로 이동하지 않았다.

그들이 한 마리의 몬스터를 죽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뀌에에에엑!

나뭇잎과 나뭇가지를 엮어놓은 것처럼 생긴 몬스터가 이상한 소리를 지르며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스킬계 각성자가 시전한 구속의 구를 벗어날 순 없었다.

그때, 존 돈을 비롯한 아홉 명의 각성자가 진유성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진유성은 흠칫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이봐, 파커.”

“……왜?”

“우리가 왜 저 한 마리를 안 죽인 거 같아?”

“그, 글쎄?”

“너에게 기회를 주기 위함이지.”

“기회?”

“우리 아홉 명이 너 대신 게이트를 클리어하느라 고생했잖아? 네가 죽지 않도록 지켜주기도 하면서 말이지.”

존 돈이 진유성에게 바짝 다가오며 속삭였다.

“대가가 있어야 하지 않겠어?”

“무, 무슨 대가?”

“글쎄?”

겁에 질린 진유성을 보며 존 돈이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인벤토리 목록을 공유하는 건 어때? 그중에서 몇 개 골라 보게.”

“그런…….”

“죽고 싶어?!”

마우렐이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진유성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결국 진유성은 아홉의 각성자들에게 인벤토리 목록을 공유했다.

인벤토리 목록 공유는 굉장히 간편한 기능이라서, 공유되는 순간 상대방이 가진 물품을 원하는 대로 정렬해서 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이게 무슨!”

“S급? SS급?”

“화, 환각인가?”

아홉의 각성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그들에게 들어온 인벤토리 목록이 실로 괴기했기 때문이었다.

한 명의 각성자가 이 정도의 물품을 지니고 있을 수는 없다.

이는 아놀드 벡이라고 하더라도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램으로 거래되는 마정석의 수백 킬로그램이 있고, 포션이 수 천 개가 있다.

그뿐인가.

SS급 물건이 즐비하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이들이 주춤거리는 순간, 불같은 성정을 지닌 마우렐이 진유성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환각을 일으키는 정신계 스킬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이런 개 같은 자식이!”

그 순간 진유성이 눈을 번뜩였다.

“상림을 욕하는 건 참을 수 있다! 하지만 날 욕하는 건 참을 수 없다!”

진유성이 마우렐의 가슴팍에 손바닥을 내지르며 소리 쳤다.

“꾸짖을 갈(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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