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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154화 (154/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54화>

* * *

SG는 각성 사회의 질서를 수립했고, 오랜 기간 동안 그들이 만든 질서를 유지했다.

SG가 수립한 질서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그들이 UN의 소속이라는 것이었다.

UN의 평화 유지비는 국가의 분담금에서 나온다.

즉, SG가 유지되기 위해 필요한 돈이 각국의 세금에서 나온다는 말이었다.

이 말을 조금 다르게 해석해 보자면 SG는 결국 국가에게 돈을 받는 방범 업체였다.

하지만 각국을 이끄는 지도자들은 알고 있었다.

그나마 아놀드 벡과 초대 SG 본부장의 노력이 없었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을 거라는 사실을.

원래 모든 상황은 아 다르고 어 다르다.

보안 업체가 가게에 받는 보호비와 조폭이 가게에 걷는 보호비는 개념 자체가 다르다.

SG는 보안 업체가 될 수도 있었고, 폭력 조직이 될 수도 있었다.

SG를 보안 업체로 만든 것은 전적으로 아놀드 벡과 초대 SG 본부장의 정의였다.

하지만…….

정의의 개념은 새로운 시대가 열림에 따라 변화하기 시작했다.

SG의 질서 하에 유지되는 각성 사회가 아니라, 각성자들의 자율성에 맡겨지는 시대.

변화의 시작은 2차 각성자들의 대거 등장이었다.

인구 대비 0.3~0.4%를 유지하던 SG의 정책이 무너지고, 각성 인구가 2%대로 뛰어오르며 많은 문제들이 발생했다.

가장 큰 문제는 각성자들이 벌어들이는 수익이 낮아졌다는 것에 있었다.

각성 사회의 총 파이는 그대로인데, 각성 인구만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상위권 각성자들은 딱히 변화를 체감하지 못했지만, 하위권의 각성자들은 소득의 낙폭을 실감했다.

당연히 SG에 불만을 가졌다.

하위 각성자들만 SG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다.

하위 계층의 국민들도 불만이 있었다.

교육 수준이 낮아 더 나은 미래를 그릴 수가 없는 하위 계층은 각성을 통해 일확천금을 노리고 싶어 한다.

하지만 SG의 정책은 아무나 각성자로 만들어 주지 않았다.

SG의 절차에 따라 각성 사관학교에 입학해야한다든지, UN 소속 군인 신분으로 훈련을 받고 각성을 해야 한다.

SG는 각성자들이 의무감과 소속감을 가지길 원했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정치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민심을 얻고, 선거에서 승리하고, 나아가 SG의 영향력까지 낮출 수 있는 방안으로.

그렇게 치열한 정치전을 통해.

캘리포니아 주가 전 세계 최초로 ‘자유 각성 지대’가 되었다.

* * *

“아마 이 흐름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갈 겁니다.”

“그래서 각성 마켓으로 새로운 질서를 만들려는 거고?”

“그렇습니다. SG의 힘이 사라지면 자본의 힘은 더 강해질 거니까요.”

“어허. 각도 높아진다.”

진유성의 말에 아놀드 벡이 인상을 쓰며 다시 제대로 된 기마 자세를 취했다.

인상을 쓰는 건 아놀드 벡뿐만이 아니었다.

비밀결사단원들 전부가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진유성에게 지도를 받고 있었는데, 진유성의 지도는 지극히 간단했다.

극한까지 몰아붙이는 신체 단련.

심지어 정신계 각성자인 아멜라 메건도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으며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진유성이 기마 자세를 취한 9명의 사이를 돌아다니며 말했다.

“각성을 통해 강해져서 그런가? 너희들은 기본적으로 너무 약해.”

“하지만 저희도 나름대로 신체 단련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약하다는 건 체를 뜻하는 게 아니야. 심과 기가 약하다는 거지.”

심기체(心氣體)는 늘 동시에 단련해야 한다.

어느 하나만 집중적으로 단련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각성자들 대부분은 각성을 통해 기(氣)만 단련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한 대도 안 때렸는데 픽 하고 기절하지. 안 그래?”

진유성의 물음에 벤 아일리쉬가 울컥하며 되물었다.

“그럼 당신도 이런 훈련을 하는 겁니까?”

“난 안 하지.”

“어째서죠?”

“힘들잖아.”

“…….”

물론 진유성도 예전에는 이런 단련을 했었고, 지금도 신체를 단련하긴 한다.

하지만 입신지경에 들어선 뒤부터 신체를 극한으로 몰아붙이는 건 아무 의미가 없어졌다.

심기체, 정기신의 합치를 이룬 뒤부터는 신체를 혹사해도 지치지 않기 때문이었다.

진유성이 지치려면 3개월 정도 먹지도, 자지도 않고 훈련만 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선천진기가 상한다.

“넌 인마, 불만 갖지 말고 해. 여기서 네가 젤 위험하니까.”

진유성이 벤 아일리쉬의 뒤통수를 탁 하고 때리자, 벤 아일리쉬가 풀썩 쓰러졌다.

온몸에 힘이 없는데 뒤통수를 맞자 견디지 못한 것이었다.

“제가 제일 위험하다고요?”

“그래. 너는 태어날 때부터 상단전이 열려 있어서 주화입마에 들기 딱 좋아.”

그 뒤로 2시간이 흘렀을 때.

아놀드 벡을 끝으로 마침내 모든 결사단원들이 바닥에 쓰러졌다.

다음으로 진유성은 지칠 대로 지친 이들과 비무를 하며 몇 가지 조언을 해주었다.

진유성이 결사단원에게 한 수 지도해 주는 것은 별다른 이유가 없었다.

이들이 정의로운 이유로 모여들었기 때문이었다.

각자의 성정은 어떨지 몰라도, 다들 게이트 사태의 끝을 위해 달리는 이들이다.

게이트 사태가 끝이 나면 자신들의 부와 명예가 끝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이틀 동안 결사단원들의 무공을 지도해 준 진유성은 캘리포니아로 떠났다.

숙원을 이루기 위해서.

“내 이름은 브레드 파커. F급 짐꾼이죠.”

“네?”

“가난하지만, 착한 여동생이 있죠.”

“네?”

“분명 여자 동창 중에는 고위 각성자도 있을 겁니다.”

“…….”

로스앤젤레스 국제 공항에서 손님을 태운 택시 기사가 불안한 표정으로 룸미러를 보았다.

아무래도 그가 태운 손님이 마약을 한 거 같다.

* * *

자정을 기점으로 자유 각성 지대가 된 캘리포니아 주의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어수선 속에는 희망도 있었고, 걱정도 있었다.

LA에 도착한 진유성은 호텔에 짐을 풀고는 아놀드 벡이 준 핸드폰에 어플을 깔았다.

캘리포니아 주에서 배포한 이 어플을 통해야만 헌팅에 참여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위장 신분 브레드 파커의 사회 보장 번호를 입력하고, 각성 등록 번호를 입력하자, 캘리포니아 주의 예정 게이트들이 보였다.

‘많네?’

이번 주에 예정된 게이트만 68개였다.

진유성은 게이트가 생각보다 많다고 생각했지만, 이건 땅 크기의 차이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일주일에 열리는 게이트는 평균적으로 15개 전후이다.

한국의 국토 면적은 10만㎢.

캘리포니아 주의 면적은 42만㎢.

면적이 4배 이상이니 68개라는 게이트 수는 평균보다 아주 조금 많은 수치였다.

다만 68개 중 12개는 D급 이상의 게이트라서 SG가 처리하기로 했다.

현재는 E급과 F급만 자유 게이트였고, 범위는 순차적으로 늘릴 예정이었다.

즉, 프리랜서 각성자들이 나눠 먹을 게이트는 56개였다.

56개는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었다.

현재 SG 소속임을 포기하고 캘리포니아로 들어온 프리랜서 각성자는 500명밖에 되지 않았다.

500명으로 56개의 게이트를 커버할 수는 없었다.

F급 게이트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는 E급도 섞여 있다.

프리랜서 커버하지 못하는 게이트는 일단 SG에서 외주 형식으로 처리하기로 했다.

물론 처음에만 이렇고, 프리랜서 각성자들은 점점 많아질 것이었다.

돈도 많이 벌 수 있고, SG의 엄격한 규칙을 벗어던질 수 있으니 말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현 상황에서는 프리랜서 각성자가 부족했다.

그 말은 즉, 팀에 들어가기도 쉽다는 것.

“흠.”

진유성은 어플을 뒤적이며 어떤 팀에 지원할지를 고민했다.

어차피 아놀드 벡이 진유성에게 요구한 건 처음부터 유명해지라는 건 아니었다.

일단 캘리포니아 자유 각성 지대에서 몇 개의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활동 기록을 남기라고 했을 뿐.

진유성 입장에서도 ‘포인트’를 남겨 두기 위함도 있었다.

한 번 클리어한 게이트를 자유자재로 이동할 수 있으니, 몇 개의 게이트를 클리어해 두면 한국에서도 편하게 오갈 수 있다.

또한 큼지막한 게이트를 클리어해 유명세를 얻는 건 시간이 좀 흐른 뒤일 필요성이 있었다.

아무튼 이러한 이유들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시당해 보고 싶은 진유성의 마음이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도 안 되고, 사람이 너무 적어도 안 된다.

사람이 너무 많으면 주목받기 힘들고, 사람이 너무 적으면 손 하나가 아쉬워서 무시받기 힘들다.

‘등급 높은 각성자가 이끄는 팀인 게 가장 좋은데…….’

한동안 무협 소설에 심취해 있던 진유성은 최근엔 판타지와 현대 판타지를 보기 시작했다.

현대 판타지에는 전문가물이라는 종류가 있는데, 그 중 가장 인기가 많은 게 각성자물이었다.

일반인들이 각성자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 늘 인기가 좋았다.

이런 각성자물을 보면 늘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무시받던 주인공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힘을 드러내는 그 짜릿함.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진유성의 눈에 하나의 공고가 들어왔다.

“완벽하군.”

A급 각성자 3명과 B급 각성자 3명, C급 각성자 3명.

총 9명으로 이루어진 팀이 F급 각성자 1명을 구하고 있었다.

이들이 1명만 구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캘리포니아 주가 F급 게이트에 도전하기 위한 인원을 10명 이상으로 제한해 놨기 때문이었다.

모집 공고를 보니까 현재까지도 1명이 구해지지 않은 듯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게이트는 공헌도에 따라 아이템과 마정석을 자동으로 분배한다.

한데, 팀에 A, B, C급의 각성자가 있다면?

F급 각성자가 얻을 수 있는 아이템과 마정석은 거의 없을 것이었다.

그래서 다른 F급 각성자들은 이 팀을 기피하고 있었지만…….

‘냄새가 난다.’

진유성에게는 아주 달콤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마음을 정한 진유성이 어플을 통해 팀장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곧장 답장이 왔다.

[너 장비 뭐야.]

[착용하고 있는 거?]

[착용했든, 착용할 거거든.]

[왜?]

[헌팅 중에 팀원이 죽으면 피곤하니까 방어구 보고 결정할 거야.]

진유성이 재빨리 자신의 인벤토리를 살폈다.

좋은 방어구를 가지고 있어야지만 팀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마 헌팅 중에 팀원이 죽으면 꽤 귀찮은 조사를 받나 보다.

인벤토리를 살피던 진유성은 적당히 좋아 보이는 아이템들을 골랐다.

F급 각성자가 S급은 장비를 가지고 있는 건 이상하니, A급으로만 골랐다.

진유성이 장비 목록을 보내자, 또다시 즉답이 왔다.

[장난하는 거 아니고?]

[장난?]

[이 장비를 네가 가지고 있다고?]

[어.]

[사진 찍어서 보내 봐.]

별걸 다 시킨다.

장비를 꺼내 찍은 사진을 전송하자, 바로 답장이 왔다.

[팀에 합류한 걸 축하해. 잘해 보자고.]

그리곤 헌팅을 진행할 날짜와 장소를 알려주었다.

날짜는 이틀 뒤.

장소는 LA에서 멀지 않은 토팽가 주립 공원(Topanga State Park)에 예정된 게이트였다.

진유성이 잠시 생각하다가 메시지를 하나 더 보냈다.

[손발 같은 거 안 맞춰 봐도 되나?]

이들이 자신을 무시해 줄 인격(?)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돌아온 답장은 진유성을 매우 흡족하게 했다.

[F급이랑 손을 맞춰서 뭐 해?]

마음에 드는 인격을 가진 놈들이다.

* * *

“존, 그렇게 보냈다가 합류 안 하면 어쩌려고?”

산타 모니카 해변에 모인 이들이 존 돈(John Don)의 핸드폰을 보며 말했다.

그러나 존은 어깨만 으쓱했다.

“그럴 거였으면 그렇게 절실히 사진을 찍어 보내지 않았겠지.”

“하긴, 그것도 그래.”

“이 자식이 묵고 있는 호텔 보여? 돈이 많은 자식 같은데?”

F급 각성자가 찍은 장비 뒤로 보이는 호텔이 심상치 않다.

딱 봐도 굉장히 비싸 보이는 호텔이었다.

“돈은 많지만 눈치는 없네.”

“장비 다 뺏기고 뭐라고 할지가 기대되는데?”

“딱 보니까 부모가 돈이 많겠지.”

“우리 엄마한테 이를 거야!”

왁자지껄한 웃음이 터졌다.

“이런 게 자유 각성 지대지.”

“캘리포니아 만세라고 건배해야 하나?”

존 돈을 비롯한 9명의 친구들이 미리 축배를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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