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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152화 (152/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52화>

진유성의 가슴이 떨려 오기 시작했다.

그동안 얼마나 간절히 이런 전개를 원했던가.

무시받던 주인공이 마침내 힘을 드러내는 순간은 늘 짜릿하다.

지금까지는 이런 전개가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진유성이 가지고 있는 힘이 너무나 강대해서였다.

인간은 지성을 가지고 있지만, 몸 안에는 동물적인 감각이 남아 있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이들도 무의식적으로 진유성에게 거대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한데,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

건장한 체격의 벤 아일리쉬가 아담하니 이뻐 보인다.

사내놈이 피부도 곱다.

‘나에게 좀 더 시비를 걸어 줘!’

진유성이 따스한(?) 응원의 눈길로 쳐다보자 벤 아일리쉬가 멈칫했다.

그리곤 물었다.

“전개가 무슨 뜻입니까?”

“아냐, 아냐. 계속해.”

“뭘 계속하란 말이죠?”

“하던 거 계속 하라고. 어허, 기세 줄이지 말고.”

벤 아일리쉬는 놀랐다.

언노운 엠퍼러가 자신의 기세를 정확히 읽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허세가 아닐까?’

한 번 의심이 들자, 그런 생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마음의 결정을 내린 벤 아일리쉬가 입을 열었다.

“당신과 겨뤄 보고 싶습니다.”

벤 아일리쉬의 태도는 정중했다.

마음 같아서는 사기꾼이냐고 몰아붙이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면 아놀드 벡의 권위를 무시하는 일이 된다.

어쩔 수 없이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했다.

진유성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러면 구도가 별로 안 예쁘다.

안하무인처럼 굴 것 같더니, 갑자기 왜 이리 공손하단 말인가?

김이 팍 식은 진유성이 고개를 저었다.

“싫어.”

“어째서입니까?”

“가서 드벡이나 이기고 와.”

“당신, 정말 언노운 엠페러인가?”

“엉?”

“무기를 들어라. 그리고 증명해라. 죽고 싶지 않으면.”

프스스스스-

벤 아일리쉬가 기세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싸움을 회피하는 진유성의 태도가 그에게 확신을 준 것이었다.

그 순간, 진유성이 활짝 웃었다.

“돌아왔구나, 벤태식이.”

“뭐?”

“드벡이는 나가 있어. 고맙다라고 말하고.”

“네?”

“고맙다라고 하라고. 너 한국어 하잖아?”

“고, 고맙다.”

진유성이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자, 아놀드 벡이 뒤로 물러났다.

뭐가 뭔지 모르는 결사단원들도 물러났고.

그러자 아멜라 메건이 아놀드 벡에게 말을 걸었다.

“말려야 하지 않을까요?”

“왜?”

“여긴 싸움에 적합한 공간이 아니에요. 자칫 잘못하면 지반이 무너질 수도 있어요.”

비밀 결사대의 근거지는 지하 공간이고, 호수 근처이기 때문에 지반이 단단한 편은 아니었다.

가만히 있다고 무너질 리는 없지만, 강한 충격을 받으면 지반이 무너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놀드 벡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 없으니까, 걱정 마.”

벤 아일리쉬는 강한 각성자임이 틀림없다.

아마 SS급 각성자들 중에서는 가장 강할 것이며, 아놀드 벡도 경시할 수 없는 이였다.

하지만 진유성에게는 의미가 없다.

지반에 충격이 받을 정도의 전투가 벌어질 리가 없다.

진유성에게 한 대 맞고 기절하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아놀드 벡은 그런 생각을 하며 벤 아일리쉬를 쳐다보았다.

아놀드 벡은 결사단원들에게 언노운 엠페러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를 다 해 줄 순 없었다.

이건 비밀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였다.

언노운 엠페러는 다른 세상에서 왔고, 그 세상의 절대자였다.

백 년이 넘게 살아왔고, 게이트를 만든 마도사들과 싸웠을 뿐더러, 아카샤의 공간에 들어간 적도 있다.

그가 지닌 힘은 입신에 이르렀고, 홀로 신을 상대할 정도이다.

과연 이 말을 결사단원들이 신뢰할 수 있을까?

아마 아닐 것이었다.

아놀드 벡은 진유성과 두 차례 조우했고, 두 번 모두 엄청난 놀라움과 직면했다.

영국에서는 압도적인 힘에 놀랐다.

지구상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자신을 어린애처럼 다뤘으니까.

한국에서는 압도적인 기술에 놀랐다.

‘가면 요리사’라는 이상한 컨셉으로 요리를 하며 선보인 기술들은 아놀드 벡에게 엄청난 영감을 줬다.

그가 마력을 다루는 솜씨는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그는 가능성을 베었다.

달걀의 외형을 부수지 않은 채 내용물만 쏟아 냈던 놀라운 검예.

그것은 분명 가능성을 베어 낸 것이었다.

이러한 경이로움을 목격했기에 아놀드 벡은 진유성의 말을 믿을 수 있었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보다, 그가 보여 준 일검이 더욱 놀랍고 신비로웠으니까.

하지만 결사단원들은 아닐 것이었다.

진유성이 가진 경이로움은 말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아무리 진유성의 배경을 이야기 해 줘 봤자 와 닿을 리가 없다.

그래서 구체적인 이야기는 해 주지 않았다.

아놀드 벡이 이야기한 것은 진유성이 게이트 사태가 열리기 전부터 힘을 가지고 있었으며, 보기보다 나이가 아주 많으며, 자신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렇게 되는군.’

아놀드 벡은 진유성이 결사단원들과 한 번쯤은 충돌할 줄 알았다.

맹수들도 첫 만남에서 서로를 견주어 보는데, 각성자들이 그러지 않을 리가 없으니까.

하지만 딱히 걱정하진 않았다.

진유성은 그릇이 티스푼만도 못하지만, 악인은 절대 아니다.

몇 대 때리고 말 것이다.

오히려 진유성 정도의 고수에게 몇 대 맞다 보면 벤 아일리쉬도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아놀드 벡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마침내 벤 아일리쉬가 검을 빼들었다.

그에 반해 진유성은 끝까지 무기를 쥐지 않았고.

“검을 쓰는 걸로 알고 있는데?”

“마음속에도 검이 있느니라.”

“난 선문답 따위에 넘어가지 않는다.”

“말이 길구나, 아해야. 들어오도록 하여라.”

진유성이 한껏 폼을 잡으며 옷자락을 펄럭였다.

도포 자락을 펄럭여야 멋있는데, 바람막이를 펄럭인 게 좀 아쉽다.

‘코트라도 입고 올 걸.’

왼손은 뒷짐을 지고 오른손을 내민 진유성이 손을 까딱였다.

그 순간, 진유성의 기감에 요동치는 벤 아일리쉬의 심동이 느껴졌다.

제법이다.

공격하기 전에 심동으로 상대의 실력을 견주어 볼 줄 안다.

하지만 그래 봐야 장난 수준이다.

심동에 반응을 하려면 그게 위협적인 공격이여야 하는데,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잠을 자다가 무방비로 공격을 당해도 손쉽게 반응할 수준이다.

‘흠.’

진유성은 굳이 반응하지 않았다.

저러다가 제 풀에 지쳐서 공격을 할 거라고 생각하고.

물론 진유성이 반응하지 않는다고 해도, 진유성의 몸속에 잠들어 있는 내공은 일제히 깨어난다.

일단 살기를 감지하면 신체가 전투를 위한 상태로 돌입한다.

진유성은 그렇게 벤 아일리쉬의 공격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본래 진유성은 적과 싸울 때 선공을 양보해 주지 않는다.

고수가 선공을 양보해야 한다는 무림의 규칙 같은 건 진유성이 보기에 정말 쓸데없었으니까.

하지만 이 경우에는 적이 아니니 선공을 양보해 주는 것이었다.

그게 멋있기도 하고.

한데…….

‘아니, 도대체 언제 오는 거야?’

벤 아일리쉬는 검을 든 채 움찔거리기만 할 뿐 도무지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심동을 보내 방법을 가늠해 보는 것 같은데, 통할 리가 있나.

진유성의 생각처럼 벤 아일리쉬는 가상의 전투를 그려 보고 있었다.

이는 벤 아일리쉬가 오랫동안 쌓아 온 방법이었다.

머릿속으로 하나의 선을 가정하면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할지도 보인다.

그리고 그 선이 상대방의 몸에 닿는 순간, 벤 아일리쉬는 공격한다.

공수가 늘 상상과 똑같이 전개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대체로 비슷하다.

그런데, 이건 뭔가 이상하다.

선을 보내면 선이 사라져 버린다.

공격을 수행할 방법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는다.

상대방은 그저 가만히 있을 뿐인데 말이었다.

‘스, 스킬 같은 건가?’

당황한 벤 아일리쉬는 변칙적인 공격을 떠올려 보았다.

자신의 균형을 무너트리며 하단을 치려고도 해 보았고, 고수들 간의 전투의 금기로 여겨지는 도약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여지없다.

선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거대한 호수가 물방울의 형체를 먹어 버리는 것처럼.

그렇게 자신의 공격 의사는 녹아 버린다.

벤 아일리쉬는 막막함을 느꼈다.

100m짜리 거인을 앞에 두는 것 같다.

자신의 공격은 하잘것없고, 상대의 공격은 스치기만 해도 죽을 것 같다.

그 순간이었다.

‘내 방어가 너무 철저해 보이나?’

그런 생각을 한 진유성이 일부러 양쪽 발의 각도를 넓혀 보았다.

공격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기 힘든, 그런 불편한 자세였다.

고수들 간의 대결에서 이런 자세를 취하면 즉시 살해당할 정도로.

“흡!”

빈틈을 캐치한 벤 아일리쉬가 기합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지금 달려들지 않으면 영영 기회가 없을 거라는 본능이 번뜩였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진유성의 시선이 벤 아일리쉬를 향했다.

두 사람의 눈동자가 마주친다.

화들짝 놀란 벤 아일리쉬가 뭔가를 하려다가…….

풀썩.

쓰러져 버렸다.

진유성은 처음엔 벤 아일리쉬가 균형이 꼬여서 쓰러진 줄 알았다.

그러니 일으켜 준 다음에 다시 싸우려고 했다.

근데, 기절했다.

진짜로 기절했다.

“야! 야, 인마!”

쓰러진 벤 아일리쉬 앞에 쪼그려 앉은 진유성이 뒤통수를 탁탁 때렸다.

근데 미동도 없었다.

“일어나, 이 자식아. 뭐하는 거야?”

깜짝 놀란 아멜라 메건이 후다닥 달려와서 벤 아일리쉬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아멜라 메건의 손이 빛나기 시작한다.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벤 아일리쉬가 마지막으로 남긴 심상을 읽은 것이었다.

“……아!”

아멜라 메건이 탄식을 내질렀다.

투신자살을 하는 이들은 높은 곳에서 뛰어내린 충격으로 죽는 게 아니다.

실제로 죽음에 이르는 이유는 심장마비다.

지면에 충돌하기 직전, 자신이 죽는다는 공포를 이기지 못한 심장이 마비되며 죽는 것이었다.

벤 아일리쉬가 마지막으로 남긴 심상도 이와 비슷했다.

진유성의 눈길이 그에게 닿는 순간.

그는 죽음을 느꼈다.

공격을 가늠하기 위해 진유성에게 보낸 무수한 선.

그것이 진유성의 몸에서 검은 연기처럼 피어오르더니 면이 되었고, 면은 곧 공간이 되었다.

그 공간이 벤 아일리쉬의 온몸을 가두어 버리자, 벤 아일리쉬는 깨달았다.

진유성이 손가락만 까딱하면, 자신은 수천 가지의 방법으로 죽는다는 걸.

그래서 기절한 것이었다.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이럴 수가…….’

벤 아일리쉬의 심상을 읽은 아멜라 메건은 진유성을 쳐다보는 게 어려웠다.

마지막 순간.

벤 아일리쉬의 눈에 보인 진유성은 팔이 수백 개에 다리가 수백 개인 괴물처럼 보였으니까.

그 잔존 공포가 남아 있다.

사실 벤 아일리쉬는 특별한 각성자였다.

그는 전 세계에 드문 듀얼 각성자다.

아놀드 벡처럼 신체계 각성자이며, 아멜라 메건처럼 정신계 각성자라는 소리였다.

보통 듀얼 각성자는 약하다.

아니면 하나의 계열을 버리고, 하나에만 모든 것을 투자한다.

하지만 벤 아일리쉬는 두 가지 계열에 매진했고, 성과를 거두었다.

그의 특기는 심상으로 가상의 전투를 벌이고, 그것으로 현실의 전투를 유리하게 이끌어 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독이 됐다.

검 한 번 내지르지 못하고 기절해 버렸으니까.

벤 아일리쉬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결사단원들은 진유성의 강함을 인지하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벤 아일리쉬가 기절할 정도의 공포를 느꼈다는 건, 그가 심상 속에서 무참히 살해당했음을 뜻했다.

이런 광경은 처음 본다.

아놀드 벡도 이 정도는 아니다.

모두가 진유성의 무시무시한 강함에 놀라고 있을 때…….

찰싹, 찰싹.

진유성은 욕구 불만(?)에 벤 아일리쉬의 등짝을 때리고 있었다.

“야! 일어나!”

이건 진짜 아니다.

드디어 간절히 원하던 순간이 다가왔고, 자신의 강함을 과시할 수 있는 타이밍이었는데!

이 새가슴이 기절해 버렸다.

이러면 다른 이들은 자신이 운 좋게 이겼다고 생각할 게 아닌가!

“일어나라고!”

그러나 벤 아일리쉬는 대답이 없었다.

기절해 있으니까.

“왜 싸우질 못하니…….”

진유성이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어쩐지 운수가 좋더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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