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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151화 (151/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51화>

막연히 진유성을 의심하고 있던 이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끓어오르는 격정을 이기지 못하고 박수를 쳤다.

짝짝짝.

박수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누군간 휘익- 하는 휘파람까지 불었다.

그만큼 인간이 알파고를 이기는 건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딥마인드의 석학들이 진유성을 의심하고 있던 건, 진유성이 싫거나 미워서가 아니었다.

개인적인 감정을 가질 만한 사이도 아니다.

그들의 의심은 과학적인 지식으로 규정지은 한계에서 오는 것이었다.

바둑은 오랫동안 딥러닝의 최후 과제처럼 여겨졌다.

바둑은 체스나 장기처럼 말들의 이동 규칙이 없다.

돌을 내려놓는 매 순간에 엄청난 자유도가 있고, 엄청난 창의력을 발휘해야 한다.

딥러닝은 이러한 창의력을 AI의 연산력으로 환산하는데 성공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하지만 동시에 딥러닝을 개발한 이들도 인간이었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면, 이세돌이 알파고를 이기는 순간 딥마인드 직원들이 환호한다.

그들도 인간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연구적으로 불타오른다.

인간의 승리를 축하하면서도 알파고의 패배 요인을 연구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알파고는 개량되었고, 이제 인간의 창의력은 알파고의 연산력을 이길 수 없는 걸로 결론이 났다.

이게 그들이 규정한 한계였다.

그런데 지금, 그들이 세운 한계가 아주 멋지게 깨져 버렸다.

한국에서 온 지존천마는 연산력으로 알파고를 이긴 게 아니었다.

기보 분석 결과에 따르면 지존천마의 연산력은 알파고보다 낮다.

하지만 창의력에서 월등했다.

소규모 국지전의 불리함을 전면전으로 전환하며 모든 패배를 만회하는 한 수.

그것은 정녕 신의 한 수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었다.

“설마!”

그 순간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던 데릭 테스가 소리를 질렀다.

데릭 테스의 비명에 직원들이 박수를 멈췄다.

데릭 테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진유성에게 물었다.

“설마 소규모 국지전들은 일부러 패배하는 겁니까?”

“응.”

“알파고가 가장 승리 확률이 높은 곳에 두는 걸 예측하려고?”

“오, 맞아. 똑똑하네?”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치열한 싸움일 경우 진유성도 알파고의 모든 수를 예측할 수는 없다.

하지만 4 대 6, 혹은 3 대 7 정도의 불리함을 만들어 놓는다면?

예상이 된다.

알파고는 진유성이 보기에도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곳만 뒀으니까.

진유성은 이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처음에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8연패를 한 것이었다.

데릭 테스와 진유성의 대화는 딥마인드 직원들에게 엄청난 영감을 주었다.

연산력으로 창의력을 대체하겠다는 딥마인드의 목표가 완전히 바뀌는 순간이었다.

데릭 테스가 그들에게 새로운 목표를 심어 준 진유성을 위해 다시 한번 힘찬 박수를 쳤다.

그러자 직원들도 따라 했고.

그 박수 소리를 들으며 진유성이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좀 가라고 박수를 치는 건가?’

아직 알파고와의 대전료도 받지 못했는데 자꾸 가라는 것 같다.

박수 칠 때 떠나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다행히 아직 가라는 소리는 아닌 것 같았다.

진유성은 그 이후로 딥마인드의 요청에 따라 몇 번의 바둑을 더 뒀다.

그리고 늘 그렇듯, 주접을 떨었다.

따-악!

“이것이 신의 한 수!”

따-악!

“내가 좌상단에서 무릎을 꿇은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따-악!

“알파고? 들어가시고!”

진유성은 알파고의 약점을 찌르는 수를 둘 때마다 주접을 떨었다.

영어로만 한 것도 아니다.

좋은 드립이 떠오를 때면 한국어를 섞어 쓰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딥마인드 직원들의 표정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지존천마는 동양에서 온 바둑 천재였다.

아니, 천재가 아니다.

나이와 무관하게 바둑이란 분야에서 정점을 찍은 Master였다.

근데…….

왜 저렇게 멋이 없을까.

그냥 입 닫고 바둑만 두면 정말 멋있을 것 같은데, 주접이 끊임이 없다.

저 거지 같은 퍼포먼스 좀 안 하면 좋겠다.

그 시간, 누구보다 진유성의 주접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는 데릭 테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몇 시간 전까지만 하더라도 데릭 테스는 지존천마와 알파고의 바둑이 전 세계로 생중계되지 않는 걸 아쉬워하고 있었다.

한데 지금 보니까 생중계 안 하길 잘했다.

만약 저런 주접이 전 세계로 생방송됐다면?

사람들이 방송을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코미디로 받아들였을 것 같다.

“토네이도 두기!”

진유성이 몸을 비비 꼬았다가 풀며 바둑돌을 두자, 데릭 테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잠시 뒤, 알파고가 다섯 번 째 대국의 패배를 선언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난 이게 마지막인데?”

진유성의 말에 데릭 테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마지막이란 소리를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이해한 것이었다.

“다음엔 저희가 한국으로 찾아가겠습니다.”

“아니, 바둑을 더는 안 둘 거라고.”

“예? 그게 무슨…….”

진유성이 바둑을 두기 시작한 것은 알파고란 AI가 이 세상 바둑의 최강자라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중원의 최강이었으니, 지구의 최강과 한 번쯤은 겨뤄 봐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호승심.

꼭 알파고가 아니더라도, ‘바둑의 신’이란 소리를 듣고 있는 프로 기사가 있으면 언젠간 찾아갔을 것이었다.

물론 한편으로는 어디 기계 따위가 건방지게 입신의 칭호를 받았는지에 대한 불만도 있었고.

진유성이 바둑을 둔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으니, 이제 더 이상 바둑을 둘 이유가 없었다.

서열 정리는 확실하게 끝냈다.

이제 진유성이 지구에서도 최강이었다.

“바둑계에 데뷔하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당연하지.”

“뭐가 당연합니까?”

“너무 쉬워서 재미없어.”

바둑이 재미없다는 건 아니었다.

그냥 직업으로 삼기에는 재미없다는 것이었다.

진유성의 말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데릭 테스는 입을 쩍 벌렸다.

잠시 침묵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만약 알파고의 다음 버전이 나온다면 테스트를 요청드려도 됩니까?”

“돈 많이 주면.”

“물론입니다. 오늘 대전료도 빠른 시일 내로 입금될 겁니다.”

“그래.”

데릭 테스가 문득 고개를 갸웃했다.

영미권에는 존댓말이란 게 없지만 그래도 뉘앙스적으로 존칭어와 평어의 개념은 있다.

한데 생각해보면 이 동양인 소년은 말투는 묘하다.

사람을 굉장히 내려다보는 말투를 쓰는데, 이상하게도 그게 어색하지 않았다.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다.

그냥 당연하게 느껴졌다.

데릭 테스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진유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할 말 없으면 간다?”

“아, 오늘의 대국 결과는 언론에 공개될 거고, 기보도 공개될 겁니다. 다만 당신의 신원이나 인적 사항은 나오지 않을 겁니다. 음, 국적 정도는 공개할 수도 있을 것 같군요.”

“그래.”

고개를 끄덕인 진유성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데릭 테스가 진유성을 배웅하려고 했지만, 진유성은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무슨 배웅이란 말인가.

그렇게 딥마인드의 직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아니, 닫힌 줄 알았다.

탁.

거의 닫힌 엘리베이터 문틈으로 손이 삐져나왔다.

물체를 감지한 문이 열리자, 진유성이 검지로 데릭 테스를 가리키고 있었다.

“무슨……?”

진유성은 입을 열지 않았다.

다만 데릭 테스를 가리키던 손으로 입에 지퍼를 채웠을 뿐이었다.

데릭 테스가 얼떨결에 지퍼를 채우는 모습을 따라 하자, 진유성이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다시 문이 닫혔다.

문이 닫히자 딥마인드 직원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말하지 말라는 거겠죠?”

“그렇지.”

“왜 그는 유명세를 원하지 않는 걸까요?”

“자신의 인생이 오직 바둑에만 묶이는 걸 원치 않는 게 아닐까? 알파고를 이겼다는 게 알려지는 순간 그의 인생은 바둑에 묶일 테니까.”

“하긴…….”

꿈보다 좋은 해몽이었다.

진유성은 그저 영화를 따라 한 것뿐이었는데.

* * *

<구글 딥마인드, ‘알파고가 인간과의 대결에서 패배했다.’>

4월 13일, 딥마인드의 창립자 겸 딥러닝 개발 팀장 데릭 테스는 기자 회견을 통해 알파고가 인간과의 대국에서 패배했음을 밝혔다.

비공개로 진행된 대국에서 알파고는 완패했으며, 바둑의 발전을 위해 5개의 기보를 공개했다.

충격적인 딥마인드의 발표 이후, 국수들 사이에서는 5개의 기보를 두고 ‘인공 지능 간의 대결이다.’, ‘사람이 둔 게 맞다.’의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이와 같은 갑론을박의 원인은 딥마인드 측에서 대결 상대의 신원 공개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딥마인드 측은 그들이 밝힐 수 있는 것은 대결자가 한국 국적의 아마추어로서…….

* * *

“그러니까, 이게 당신이 한 일이란 말입니까?”

“드벡아. 내가 뭐라고 부르라고 했냐.”

“……마스터?”

“그래, 인마.”

진유성이 아놀드 벡의 엉덩이를 툭 치자, 주변에서 경악의 시선을 보냈다.

아놀드 벡은 세계에서 단 3명뿐인 SSS급 각성자이자, 전 세계인의 존경을 받는 이였다.

본인은 극구 부정을 하겠지만, 위인이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었다.

한데, 동양인 소년이 아놀드 벡을 대하는 태도가 어떠한가?

친구, 아니 무슨 아랫사람을 대하는 태도다.

아무리 아놀드 벡에게 진유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해도, 눈앞에서 보는 것과는 느낌이 달랐다.

‘저 꼬맹이가…….’

‘아놀드 벡보다 강하다고?’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아무리 봐도 진유성에게서 강함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역시 이렇게 되는군.’

주변의 분위기를 느낀 아놀드 벡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진유성은 딥마인드를 방문하기 위해 뉴욕으로 오면서 아놀드 벡에게 연락을 취했다.

본래는 아놀드 벡이 다시 한번 한국을 방문하기로 했었지만, 어차피 미국에 오는 거 겸사겸사 만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였다.

이에 아놀드 벡은 진유성을 뉴저지로 초대했다.

뉴저지의 호수 옆에는 IT 부호의 소유로 알려진 거대한 저택이 있다.

실제로도 이곳은 부호의 저택이었다.

하지만 지하에는 세상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공간이 있었는데…….

이곳이 바로 아놀드 벡과 아멜라 메건이 이끄는, ‘어머니’의 의지에 따라 게이트 사태를 종식시키려는 결사단의 근거지였다.

“야, 근데 너희는 이름이 뭐냐?”

“저희는 이름이 없습니다.”

이름은 개성을 부여하고, 개성은 밖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아놀드 벡과 아멜라 메건은 결사단의 이름을 짓지 않았다.

이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한 것도 있었다.

무의식이 공유되는 아카식 레코드의 정보는 물리적인 거리가 의미가 없다.

오히려 심리적인 거리가 중요했다.

만약 사악한 마도사들에게 아카식 레코드를 찬탈당했을 때 그들에게 이름이 있다면 금방 추적당한다.

하지만 이름이 없다면 특정 카테고리로 그들을 추적하기 힘들다.

이런 이유로 이름을 짓지 않은 것이었다.

“그래도 너희들끼리 몰래 이야기해야 될 때가 있지 않아?”

“그럴 때는 주어를 쓰지 않습니다. 대화의 모든 주어가 의도적으로 생략되면 눈치를 채는 거죠.”

“오, 재밌네.”

진유성의 말에 결사단원 중 한 명이 눈썹을 꿈틀했다.

벤 아일리쉬.

지구상에 50명도 되지 않는 SS급 각성자이자, 미국 내에서는 포스트 아놀드 벡이라고 부르고 있는 황태자.

그가 진유성에게 불쾌한 감정을 보이고 있었다.

아놀드 벡을 막 대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고, ‘재밌네’라는 말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모인 게 아니다.

게이트 사태가 종식되면 그들이 지닌 힘도 사라진다.

그것까지 각오하고 모인 이들이었다.

그러니 그들에게는 예의와 존중이 필요했다.

마침내 참지 못한 벤 아일리쉬가 진유성을 향해 말했다.

“말을 좀 가려서 하시죠.”

진유성이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뭘?”

“아놀드 벡에게 너무 무례한 거 아닙니까?”

“음?”

진유성은 마음대로 사는 것 같지만, 나름대로의 선을 지키며 살아간다.

생각해 보니, 이들에게는 아놀드 벡이 하늘 같은 존재일 것이었다.

그러니 부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놀드 벡을 너무 막 대하긴 했다.

그냥 반가워서 그랬는데, 부하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은 모양이었다.

진유성은 순순히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그래, 이건 내가 잘못했네.”

진유성이 순순히 사과하자 당황한 건 벤 아일리쉬였다.

하지만 당황 뒤로 의심도 피어올랐다.

‘정말 아놀드 벡보다 강할까? 저토록 순순히 사과하는데?’

혹시 아놀드 벡이 속고 있는 건 아닐까?

벤 아일리쉬가 그런 생각을 하며 슬그머니 기세를 끌어올려 보았다.

상대가 고수라면 이 정도 기세에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었다.

그때 진유성이 툭 말했다.

“나 이런 전개 좋아하는데.”

“……?”

“너도 좋아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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