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50화>
* * *
구글 맵을 보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진유성이 DeepMind 빌딩을 발견했다.
거대하고 번쩍인다.
꽤 비싸 보이는 빌딩이었다.
아무래도 사기는 아닌 것 같았다.
사실 상림이 딥마인드에서 날아온 URL을 확인하고는 사기가 아니라고 확언해 주기도 했었다.
빌딩으로 들어가자 안내 데스크 쪽에 서 있던 경비원이 다가와 입을 열었다.
“여긴 딥마인드 본사인데, 무슨 일로 방문했니?”
순간 진유성은 설렘을 느꼈다.
이런 장면, 소설에서 많이 봤다.
후줄근한 차림의 주인공이 화려한 곳으로 들어가려 하자, 경비원이 제지한다.
경비원에게 무시를 당하고 나서 주인공은 핸드폰을 들어서 전화를 한다.
누구에게?
회사의 보스에게.
그럼 보스가 내려와서 경비원을 혼내 주고, 사람들이 시선을 받으며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진유성이 설레는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알파고와 싸우러 왔다.”
“……?”
경비원이 고개를 갸웃하며 진유성을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자, 어서 날 무시하여라.’
진유성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잠깐만 기다려 줄래?”
경비원이 어딘가에 전화를 걸자, 잠시 뒤 빌딩 안쪽에서 두 명의 백인 남자가 헐레벌떡 다가오는 게 보인다.
꽤 먼 거리였지만, 진유성은 그들이 ‘한국’과 ‘지존천마’라는 단어를 섞어 대화하는 걸 들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이게 아닌데…….
진유성은 아쉬워하고 있었지만, 당연한 일이었다.
본래 딥마인드는 공항까지 마중을 나오려고 했지만, 진유성이 거절을 했다.
호텔에 들러 짐을 풀고 곧장 딥마인드 본사로 찾아가겠다고 한 것이었다.
그러니 알파고 관련으로 방문하는 동양인-특히 한국인-이 있으면 무조건 윗선에 보고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비원이 멈칫했던 것은 진유성이 너무 어려 보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생각은 허겁지겁 달려온 팀장과 앤던도 마찬가지였다.
‘대체 몇 살이지?’
‘10대처럼 보이는데?’
팀장이 티를 내지 않고 진유성에게 인사를 건넸다.
“Hello. 혹시 한국에서 온 지존천마입니까?”
“춘마가 아니다. 천마다.”
“춘마.”
“천마.”
“춘-마.”
“아, 진짜.”
팀장이 자꾸 자신의 이름을 도색 소설에 나올 것 같은 느낌으로 바꿔 부르자, 진유성이 투덜거렸다.
그 사이 팀장이 반쯤 미심쩍은 표정으로 물었다.
“출입증은 가져오셨죠?”
“이거?”
진유성이 핸드폰으로 메일을 열어 딥마인드에서 보낸 공문을 보여 주었다.
공문을 보던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눈앞의 동양인 소년이 그들을 좌절하게 만들었던 벨제붑이었다.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죠?”
“19살.”
“바둑을 배운 지 10년이 넘었다고 했었죠?”
“대충.”
“아주 어릴 때부터 바둑을 두신 거군요.”
팀장이 자신을 바둑 영재로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진유성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제 이름은 데릭 테스입니다. 딥마인드의 창립자이자, 현재는 딥러닝 개발팀의 팀장으로 있습니다.”
딥마인드가 구글에 인수되고, 창립자인 데릭 테스는 본래 CEO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데릭 테스는 CEO가 되는 순간 실무에서 손을 떼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연구자를 천직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CEO를 포기했다.
그리곤 팀장으로 남았다.
물론 막대한 주식을 들고 있으니 단순한 팀장은 아니겠지만, 이런 데릭 테스의 결정은 딥마인드를 더 끈끈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데릭과 앤던의 소개를 받은 진유성도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통성명을 끝낸 그들은 딥마인드의 15층으로 향했다.
15층에는 프레스 센터가 있었는데, 거기서 진유성의 상금 수여식이 있었다.
회사 입장에서 적지 않은 지출이 있으니, 지출 근거를 기록으로 남겨 놓아야 했다.
“기자는 부르지 않았습니다. 대국도 비공개로 원하는 것 같으니.”
“뭐, 그래.”
“하지만 사내 기록은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대로 해. 공개만 안 되면 뭐.”
원래 진유성은 자신이 알파고를 이기는 순간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싶었다.
유투브를 보니까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이 전 세계로 생중계된 것처럼 말이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까 그러면 꽤 귀찮은 일들이 발생할 것 같기도 했다.
영국에서도 축구 실력을 몇 번 보여 줬더니, 스카우터들이 좀비처럼 쫓아왔었다.
원래는 조금 더 영국 관광을 즐기고 싶었는데, 스카우터들이 너무 귀찮게 해서 빨리 귀국한 것이었다.
한데 알파고를 이기면?
전 세계가 귀찮게 할 것이다.
진유성이야 1억 명의 기자들이 달려들어도 피해서 도망칠 수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상소윤이나 유혜연은 아니다.
임신 중인 유혜연을 매일 매일 기자들이 찾아와서 귀찮게 하면 안 좋을 것 같았다.
게다가 그렇게 되면 지금의 평온한 일상이 깨질 것 같기도 하고.
‘나중에 하고 싶어지면 다시 하지, 뭐.’
알파고가 어디 가는 것도 아니고, 생중계가 하고 싶어질 때 해도 상관없다.
아마 진유성의 이런 생각을 들었다면 상림은 감격해서 그만 울어 버렸을 것이었다.
드디어 교주 놈이 생각이란 걸 하게 됐다고.
그렇게 상금 수여식이 끝나고, 진유성은 데릭 테스를 비롯한 팀원들과 함께 한 층을 더 올라갔다.
팀원들은 진유성이 덤덤히 16층에 올라오자 계속해서 표정을 바꾸고 있었다.
팀원들 중 절반은 진유성이 AI를 쓰는데 본인이 둔 척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나머지 절반은 정말 진유성이 두었다고 생각했고.
물론 개중에는 이 모든 게 어떤 트릭일 수 있다고 의심하는 이들도 있었다.
왜냐하면, 알파고니까.
알파고는 세상의 어떤 프로 기사도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 오른 바둑의 신이니까.
하지만 진유성의 표정은 몹시 덤덤했다.
회사를 신기한 듯 구경하긴 했지만, 딱히 긴장한 모습이 보이지도 않았다.
그렇게 도착한 16층.
이곳에서 진유성은 알파고와 다시 한번 바둑을 둘 것이었다.
대국 준비를 도울 스태프가 다가와 진유성에게 물었다.
“딱히 준비할 건 없나요?”
“준비?”
“특별히 마시는 음료 브랜드가 있다던가, 정신을 집중할 때 먹는 초콜릿이 있다던가요.”
“아, 그럼 나는 하이네켄. 넉넉히 사다 줘.”
“맥주? 맥주를 마시며 대국을 하겠다고요?”
“어. 안 되나?”
스태프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팀장만 쳐다보았다.
“미국은 만 21세가 지나야지 술을 마실 수 있어요.”
“아, 진짜? 하지만 한국은 마실 수 있는데?”
한국계 미국인 앤던이 다가와서 말했다.
“한국의 음주 가능 나이는 스무 살이잖아요?”
“……아닌데?”
“전 한국에 가 봤을 뿐더러 한국계 미국인이에요.”
“쳇.”
술을 먹기 위해 수작을 부리던 진유성이 혀를 찼다.
그렇게 긴장감 없는 진유성의 태도를 뒤로한 채 모든 대국 준비가 끝났다.
딥마인드는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TPU를 모조리 끌어와서 진유성과 대국할 알파고에 연결시켰다.
사실 연산을 도와줄 TPU에 비례해 알파고의 기력이 상승하는 건 아니다.
TPU에도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데, TPU가 10대 있는 것과 100대 있는 건 별다른 차이가 없다.
하지만 아주 미세하게나마 차이가 있기에,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 보는 것이었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친 채, 바둑판 앞에 진유성과 데릭 테스가 마주 앉았다.
알파고는 손이 없기 때문에 알파고의 수에 따라 바둑을 둬 줄 사람이 필요한데, 오늘은 그게 데릭 테스였다.
서로가 마주 본 채로 데릭 테스가 짤막한 질문을 던졌다.
“알파고의 약점이 있나요?”
“있던데?”
“그게 뭡니까?”
오늘 대국이 영상으로 기록되지 않으니 직원들이 정신없이 둘의 대화를 타이핑하기 시작했다.
“무조건 이길 확률이 높은 곳에 두더라고.”
“네? 그게 왜 약점이 됩니까?”
“야, 봐 봐. 네가 조금 더 빠른 길로 가려고 골목으로 접어들었어. 근데 오토바이가 나와서 빵 너를 치어 버린 거야.”
“네.”
“그럼 인생을 좋은 쪽으로 가려다가 봉변당한 거지?”
“그렇겠죠.”
“그런 거야.”
“…….”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소년의 말이 사실이라면 확률을 추구하는 알파고의 알고리즘에 문제가 있다는 소리였다.
‘직접 보면 알겠지.’
그렇게 바둑이 시작되었다.
딱, 딱, 딱.
진유성은 의자에 비스듬히 앉은 채 바둑을 뒀고, 데릭 테스는 알파고가 모니터를 확인하며 신중하게 돌을 옮겼다.
우상단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전투의 승자는 알파고였다.
하지만 바둑은 본래 하나의 싸움을 완전히 끝내지 않는다.
싸움의 우열을 어느 정도 가리고는 대국을 확장시킨다.
이유는 간단하다.
만약 우상단에서 2수짜리 승리를 거두었다고 치자.
한데 좌상단에서 1수짜리 패배를 경험할 수도 있다.
그때 우상단의 한 수를 양보하며, 좌상단의 패배를 만회시킬 수가 있다.
반대로 상대는 우상단의 2수짜리 패배를 만회하려 좌상단의 1수짜리 승리를 내어 주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둑이 인생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패배와 승리가 반복되면서 그 균형을 통해 전체적으로 승리로 나아가기 때문이었다.
우상단의 전투 이후, 좌하단의 전투가 벌어졌다.
이번에도 전투의 승자는 알파고였다.
‘89%.’
알파고의 승리 확률이 88%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동안 알파고가 패배한 패턴을 보면 ‘절대 질 수 없는 확률’ 계산이 나온 순간, 모든 게임이 뒤집어졌다는 걸.
‘하지만 지금?’
‘여기서 어떻게 역전을 한다는 거지?’
‘긴장한 건가? 아니면 사기꾼인 건가?’
사람들의 긴장감 섞인 시선이 쏟아지는 순간.
진유성이 갑자기 자세를 바로 했다.
그리고는 바둑통에서 흑돌을 하나 꺼내더니…….
“흡!”
하늘로 튕겨 올린다.
동전처럼 팽그르르 도는 바둑돌이 하늘 높이 떠오른 순간.
진유성이 수직으로 팔을 쭉 뻗었다.
그러자 허공에서 돌고 있던 바둑돌이 진유성의 검지와 중지 사이로 착 하고 안착한다.
보통 사람은 수백 번 연습해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퍼포먼스.
난데없는 퍼포먼스에 딥마인드 직원들이 당황하는 순간.
진유성의 팔이 바둑판 위로 힘차게 내리꽂혔다.
따-악!
진유성의 손에 들려있었던 흑돌이 바둑판의 중앙에 내리꽂힌다.
“보아라, [기계]. 이것이 [인간]의 한 수다.”
진유성의 나지막한 ?물론 모두에게 들릴 정도로- 중얼거림이 끝나는 순간, TPU가 요란하게 가동되는 게 느껴진다.
알파고가 진유성의 수를 분석하고, 다음 수를 찾고, 승리 확률을 계산하는 것이었다.
이윽고 나온 승리 확률은…….
43%.
딱.
22%.
딱.
16%.
거기가 끝이었다.
이세돌과의 대국에서도 그랬듯이, 패배를 직감한 알파고가 떡수를 던지기 시작했다.
떡수란 이길 수 없는 바둑을 억지로 이어 가는 수를 뜻했다.
잠시 뒤.
알파고가 불계패를 선언했다.
이길 수 없다는 신호였다.
“이럴 수가…….”
“진짜였어…….”
딥마인드 팀원들이 경악을 금치 못하고 중얼거렸다.
저 동양인 소년은 대국에 들어서기 전에 모든 신체를 검사했다.
금속 탐지기도 돌렸고, 혹시 몰라서 렌즈도 검사했다.
하지만 외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정말 맨몸으로, 오직 자신의 두뇌로 게임을 끝낸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