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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148화 (148/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48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회의실에 침묵이 맴돌았다.

침묵을 깬 것은 팀장이었다.

“앤던, 한국어가 어색하다지 않았어?”

“안 쓴지 너무 오래돼서 어색하죠. 그래도 못 들어 줄 정도는 아닐 겁니다.”

앤던의 변명에 팀장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한국어가 어색하다고 탓하는 건 아니야. 상황이 이상해서 그래.”

보이스 피싱이라며 전화를 끊은 한국인의 행동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

세상에 누가 낯선 언어로 더듬더듬 사기를 친단 말인가?

사기를 치려면 능숙한 언어로 능숙하게 하겠지.

‘혹시 우리와 소통하지 않고 언론에 발표하려는 건가?’

그럴 수도 있다.

최악을 생각해 보자면 딥마인드 주식이 떨어지는 것에 배팅을 하고는 언론 공개를 할 수도 있다.

주가란 생각보다 심리적인 변화에 민감해서, 알파고가 딥러닝의 왕좌를 내놓으면 주가가 하락하긴 할 거다.

하지만…….

‘그게 엄청나게 유의미한 수치일까?’

잘 모르겠다.

이런저런 상황들을 가정하던 팀장이 앤던에게 손짓했다.

“다시 전화해 봐.”

그러나 이번엔 아예 전화를 받지도 않았다.

그 순간, 팀원 중 한 명이 말했다.

“혹시 사람이 아닐까요?”

“뭐?”

“사람이 직접 바둑을 둔 거라면 저희의 갑작스러운 연락을 오해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다른 이들이 실소를 흘렸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다.

알파고는 세계 최고의 프로들에게도 접바둑(돌을 깔아 주는 바둑)을 두는 수준이다.

물론 이세돌의 경우가 있으니 한 판 정도는 질 수도 있다.

알파고가 패배할 확률이 0%는 아니니까.

하지만 지금처럼 6연패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지금의 알파고는 이세돌과의 대국 때보다 강한 버전이다.

“일단 공식적으로 메일을 보내 보자고. 어쩌면 우리가 너무 성급하게 접근했을 수도 있어.”

“맞습니다. 아시아 문화권은 예의와 절차를 중시하는 편이니까요.”

보통 이런 경우에는 공문을 먼저 보내고 연락을 취하는데, 너무 놀라서 다짜고짜 연락한 것도 사실이다.

“한데, 공문에 답이 없으면 어떡합니까?”

“상금이 있잖아. 상금을 받으려면 공문을 받겠지.”

“아…….”

알파고에게 1승이라도 거둔 이에게는 3만 달러의 상금이 수여된다.

하지만 모두들 상금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지난 몇 년간 단 한 번도 지급된 적이 없으니.

그때 팀장이 테이블을 탕 내리치며 팀원들의 이목을 모았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이제부터 우리가 할 일이 뭐야?”

“왕좌를 재탈환해야죠.”

“맞아. 가장 중요한 건 상대의 알고리즘을 파악하는 일이야.”

“전 우선 프로 기사들에게 대국을 보여 주고 벨제붑의 기풍을 파악해 보겠습니다.”

“전 벨제붑의 수를 저희 쪽 알고리즘으로 분석해 보겠습니다.”

“전 딥러닝 기반이 아닐 경우를 산정해서 카테고리를 찾아보겠습니다.”

팀원들이 의욕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잠시 왕관을 넘겨줄 수 있다.

그들이 그동안 너무 긴장감 없는 시간을 보내 온 것도 사실이니까.

하지만 왕좌를 빼앗길 수는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벨제붑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지존천마의 AI를 깨부숴야 했고.

하지만, 그들의 열정과 노력은 전부 쓸데없는 짓이었다.

진유성에게 존재하는 알고리즘은 딱 하나뿐이었으니까.

상림을 괴롭히면, 즐겁다는 것.

최근에는 상림이란 카테고리에 지종수가 포함되기도 했고.

* * *

뉴욕의 딥마인드 본사가 지존천마의 알고리즘을 추측하는 사이, 진유성은 컴퓨터를 끄고 침대에 누웠다.

원래는 학교에 가기 전 알파고와의 바둑을 8연승까지 달리려고 했다.

8번을 내리 졌으면, 적어도 8번은 내리 이겨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6연승을 했을 때 걸려온 전화 한 통에 흥이 깨져 버렸다.

수치스러운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사실, 진유성은 보이스 피싱을 당한 적이 있었다.

“불경한 자식.”

그때를 생각하니 또 수치스러웠다.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정확히는 상림이 막 진유성의 신분을 구입하고 핸드폰을 만들어 줬던 시점이었다.

당시 진유성에게는 상식이 전혀 없었다.

아니, 그보다는 누군가 자신을 속일 수도 있다는 생각자체를 안 했다.

중원에서 그런 시도를 했다가는 천마신교도들에게 무슨 꼴을 당할지 몰랐으니까.

그래서 핸드폰 소액 결제를 해야 한다는 자칭 공무원의 말에 별 생각 없이 결제를 했다.

금액도 정확히 기억한다.

12만 3천 원.

그러나 이건 사기였다.

사기라는 걸 깨달은 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지난 백 년 동안 그 누구도 진유성에게 허튼 수작을 부리지 않았다.

모두가 진유성의 눈치를 봤고, 진유성의 비위를 맞췄다.

그런데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사기를 당하다니.

그것도 말도 어눌한 놈한테!

물론 핸드폰 대금은 상림이 내고 있었으니 진유성이 직접적으로 손해를 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존심이 너무 상했다.

중원에서 절대자였던 내가 한국에서는 호구?

견딜 수 없는 수치였다.

진유성은 부끄러웠기에 이 사실을 누구한테도 말한 적이 없었고, 스스로도 거의 까먹고 있었다.

한데 이상한 놈 때문에 그날의 수치가 떠올랐다.

그래서 바둑을 멈춘 것이었다.

알파고와의 대국은 완전한 평정심으로 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패배할 확률이 높았다.

진유성은 침대에 누워 오늘의 대국을 복기하기 시작했다.

일단, 다른 모든 걸 떠나서 아주 재밌었다.

대국의 수준이 진유성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높았다.

진유성은 제갈세가주를 접바둑으로 이긴 뒤부터 입신의 칭호를 얻었고, 그 뒤로는 적수를 찾을 수가 없었다.

팽팽한 대국을 원한다면 두 점 정도를 깔아 줘야 했다.

하지만 두 점을 깔아 줬다는 것 자체가 이미 상대가 진유성보다 하수라는 걸 전제하고 가는 것이다.

긴장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알파고와의 대국은 아니었다.

조금만 방심해도 패배할 것 같은 긴장감이 있었다.

아마 순수한 바둑 실력만 놓고 보면 알파고와 진유성은 동수일 것이었다.

아니, 아주 미세한 차이로 알파고가 고수일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유성이 알파고를 이겼던 이유는 방식의 차이 때문이었다.

알파고가 매순간 승리 확률을 높이려 바둑을 둔다면, 진유성은 먼 시점을 보며 바둑을 두고 있었으니까.

물론 이런 생각을 진유성만 한 건 아니었다.

알파고와 대국을 진행한 프로 기사들 중에도 같은 생각을 한 이도 있었다.

다만 그 순간까지 바둑을 끌고 갈 수 있는 게 진유성밖에 없을 뿐이었다.

진유성은 침대에 누워서 알파고와의 대국을 복기하다가 한 가지 격렬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학교 가기 싫다.’

학교에 가지 않고 계속 바둑이나 두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계단으로 올라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진유성은 가족 구성원들의 프라이버시를 위해서 1층은 기감의 영역에 두지 않았다.

계단에 올라와야지만 그의 영역 안으로 들어오는 셈이다.

물론 본능이 위험을 감지하는 순간, 기감의 영역이 수 km로 확장되긴 하지만.

그때 방문 앞에 도착한 유혜연이 문을 두드렸다.

“유성아, 일어났어?”

“네.”

문을 열고 들어온 유혜연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딘지 진유성의 얼굴이 평소보다 시무룩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혹시 어디 아파?”

“아뇨?”

“근데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

“학교 가기 싫어서요.”

유혜연은 잠깐 동안 말없이 진유성을 쳐다보았다.

진유성은 유혜연의 시선을 느끼며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졌다.

보호자의 허락을 받으면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잖아?

유혜연이 학교에 가지 말라고 말해 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유혜연의 입이 열렸다.

“진소윤.”

“네?”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밥이나 먹게 내려와.”

“……?”

진유성이 고개를 갸웃했다.

상소윤도 아니고, 진유성도 아니고, 진소윤은 뭐란…….

“……!”

그 순간, 진유성이 두 눈을 부릅떴다.

방금, 유혜연이 자신을 상소윤 취급한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진유성이 화들짝 놀라서 침대에서 내려오자 유혜연은 1층으로 내려갔다.

진유성은 수치심에 부들거리다가 1층으로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오니 냉장고 앞에서 졸린 눈으로 물을 마시고 있는 상소윤이 보인다.

“으아아아아.”

물을 마신 상소윤이 기지개를 켜더니 진유성을 힐끔 쳐다봤다.

“뭘 계속 쳐다봐?”

“박색하구나.”

“그래. 굿모닝.”

“유난히 팅팅 불어 박색한 걸 보니 어제 라면을 먹고 잔 것 같구나.”

“아닌데? 물만 먹고 잤는데?”

“물만 먹고도 이토록 박색할 수 있다니, 온 세상이 통곡할 일이로다.”

“아, 왜 아침부터 시비야!”

“3,000만큼 박색한 네 얼굴을 보니 가슴이 답답해서 그렇다.”

“…….”

“입을 다물고 있어도 박색하구나.”

“아, 엄마!”

잠도 덜 깼는데 봉변을 당한 상소윤이 유혜연에게 후다닥 달려갔다.

“진유성이 아침부터 뭐라고 해!”

“보기 좋네.”

그러나 유혜연은 관심이 없었다.

“아빠!”

상소윤은 이번엔 세수를 하고 나오는 상림에게 달려가 진유성의 악행을 고했다.

딸의 이야기를 들은 상림이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진유성을 불렀다.

“유성아.”

진유성은 유혜연과 상소윤이 있을 때는 상림에게 한 수 접어주는 편이었다.

설정상 상림이 외삼촌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상림은 건수가 생기면 유혜연과 상소윤 앞에서 진유성을 혼내곤 했다.

물론 그러고 나면 둘만 있을 때 열 배로 갈굼을 당하지만…….

‘입 다물고 있다고 교주님이 안 갈구는 것도 아니잖아?’

어차피 무슨 짓을 해도 갈굴 걸 알고 있으니 이런 식으로 복수하는 것이었다.

솔직히 유혜연과 상소윤 앞에서 교주님을 혼내면 짜릿하다.

상림이 그런 생각을 하며 엄한 눈으로 진유성을 쳐다보는데…….

‘지금은 안 된다.’

독기 가득한 진유성의 눈빛을 보니 사타구니와 정수리가 찌릿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지금 혼내면 탈모빔과 고자빔을 같이 맞을 것 같았다.

“어흠.”

상림이 헛기침을 하는데 진유성이 다가온다.

“왜 그러시죠, 외삼촌?”

“아니, 그게…….”

“말씀을 해 보세요.”

평소에 잘 쓰지 않는 극존칭을 들으니 더욱 두렵다.

결국 상림은 상소윤에게 화살을 돌렸다.

“소윤아, 아침부터 유난 떨지 말고 밥이나 먹자.”

“……아빠 미워!”

상소윤이 잔뜩 토라졌지만, 상림은 어쩔 수 없었다.

대머리 고자가 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적어도 딸의 결혼식장에 손을 잡고 들어갈 때까지는 풍성한 머리카락을 유지해야 한다.

소윤이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결국 상림은 조용히 욕을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모발…….”

대체 교주 놈은 아침부터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그사이, 진소윤이란 한 마디로 모든 상황을 만든 유혜연은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침부터 집이 활기찬 게 보기 좋다.

상황이 일단락되고, 식탁에 둘러앉은 네 명은 밥을 먹기 시작했다.

식구(食口)란 단어 그대로 함께 밥을 먹는 입을 뜻한다.

아마 옛 선인들은 함께 먹는 밥의 힘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방금 전까지 삐져 있었던 상소윤과 상림이지만,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원래의 분위기로 돌아왔다.

그렇게 밥을 먹던 중, 진유성이 스마트폰을 보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침부터 보이스 피싱 회사에서 메일이 왔다.

바둑을 둔 건 어떻게 알았는지, 상금을 받고 싶으면 연락을 하란다.

진유성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가족들에게 물었다.

“혹시 딥마인드라고 알아요?”

“딥마인드? 어디서 들어 봤는데?”

“알파고 만든 회사 아니었나?”

상림의 대답에 진유성이 흠칫 놀랐다.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요?”

“알파고가 그거 말고 또 있나?”

진유성은 순간 새벽에 걸려온 전화가 보이스 피싱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인은 좀 해 봐야겠지만, 이게 진짜라면?

‘미국에 가야 하나?’

안 그래도 드벡이도 미국에서 유명해지라고 말했는데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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