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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147화 (147/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47화>

* * *

처음 바둑 AI가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바둑 AI가 후반에 강할 것이라고 추측했다.

바둑은 백지 위에 집을 쌓아 가는 경기다.

361개의 칸 위에 서로가 1개씩의 돌을 올렸을 때, 과연 기계가 경우의 수를 연산할 수 있을까?

오직 계산만으로 빈 곳들에서 승리 확률이 높은 곳을 찾을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정확한 계산이 필요한 후반에는 기계가 강하지만, 직관이 필요한 초중반에는 인간이 더 강할 것이다.

이게 알파고가 등장하던 시점에 바둑계의 전반적인 인식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어떠한가?

정반대였다.

알파고는 오히려 초중반에 매우 강했다.

이 말은, 알파고가 인간이 가진 직관의 영역조차 확률로 계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후반에 가면 인간과 알파고의 능력이 비슷해졌다.

바둑이 후반에 접어들었다는 것은 둘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줄어들었음을 의미했다.

이때는 뛰어난 두뇌를 가진 국수들의 연산 능력이 기계와 비슷해졌다.

특히 사활, 패싸움, 끝내기에서는 인간이 기계보다 뛰어난 모습을 보였다.

그러니 초중반만 비등하게 지나가면 인간이 이길 확률이 비약적으로 상승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난관의 초중반을 지나 후반까지 간 대국이 딱 한 번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이세돌 기사의 4국.

그나마 지금의 버전은 이세돌 기사와 뒀던 버전보다 ELO가 1,000점 가까이 상승했고.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는 인간이 기계를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사결의 상태에 돌입해 상단전을 활성화시키고, 입멸공의 오성을 극대화한 진유성의 연산 능력은 굉장한 수준이었다.

진유성은 10자리 이상의 숫자를 암산으로 곱연산할 수 있었다.

20자리, 30자리 숫자도 시간이 걸릴 뿐이지 할 수 있다.

다만 머리 쓰는 게 싫어서 하지 않을 뿐이었다.

딱.

그래서 진유성과 알파고의 바둑은 치열하게 흘러갔다.

“으음…….”

처음 진유성이 알파고의 이야기를 듣고 반응한 것은 국수로서의 자존심이었다.

그는 고금제일의 국수였고, 이것은 지구에 와서도 변하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지구에서는 바둑을 숫자로 표현하지만, 중원에서는 아니었다.

수졸(守拙), 약우(若遇), 투력(鬪力), 소교(小巧), 용지(用智), 통유(通幽), 구체(具體), 좌조(坐照)라는 명칭으로 불렀다.

통유(通幽 : 바둑의 그윽한 경지에 이르렀다) 정도가 되면 그 지역의 패자라 할 수 있었다.

구체(具體 : 모든 조건을 갖추어 완성에 이른 경지) 정도가 되면 한 성의 패자라고 할 수 있었다.

좌조(坐照 : 앉아서 삼라만상의 변화를 훤히 내다 볼 수 있다)는 중원에서 한 손가락 안에 드는 이들을 뜻했다.

본래 국수의 실력을 구분하는 단어에는 좌조가 최고였다.

하지만 진유성이 중원의 모든 좌조의 국수들을 꺾고, 그들에게 접바둑을 두게 되자 하나의 호칭이 더 생겼다.

입신(入神)이었다.

오직 진유성만 유일하게 입신의 국수였다.

그러니 사람들이 알파고가 바둑에 있어서 입신의 경지에 올랐다고 표현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딱.

진유성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신중하게 바둑을 두었다.

그렇게 72수가 지났을 때였다.

“졌네.”

패배했다.

대마불사를 믿고 큰 형세를 만들었지만, 알파고의 공격 능력은 굉장했다.

빈틈을 파고들더니 딱 한 수 차이로 패배했다.

진유성은 기권을 누르기 전에 머릿속으로 방금의 대국을 복기했다.

아쉽다.

지금 생각해 보니 한 수 정도의 불리함을 극복할 길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보지 못했다.

기권을 누르고, 진유성은 다시 한번 대국을 눌렀다.

이번에는 앞선 대국과 다르게 진유성은 수비적으로 도전했다.

창 대 창의 느낌을 알았으니, 이번엔 방패로 싸워 볼 생각이었다.

딱, 딱.

텅 빈 방 안에 바둑돌이 놓아지는 사운드만 들렸다.

그때 상소윤이 와서 문을 열려고 했지만, 진유성은 내공으로 문을 잠가 버렸다.

“뭐야? 왜 잠겼어?”

진유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야! 뭐 해!”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너 이상한 거 보냐?!”

정말 방정맞은 계집아이다.

진유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그러자 상소윤이 흠칫 놀라더니 방 안을 슬그머니 들여다본다.

“바둑 두니까 저리 가라.”

“바둑 두는 거 맞아?”

“집중 깨지니까 방해하지 마라.”

상소윤을 보낸 진유성은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마우스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진유성의 방패는 단단했지만, 알파고의 공격은 그보다 거셌다.

패배.

진유성은 또다시 패배했다.

하지만 성과가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이 자식, 역시 사람이 아니다.

사람이 바둑을 둘 때는 불리한 수를 극복하는 몇 가지 방법들이 있다.

왼쪽 아래에서 불리한 싸움이 시작되면, 고수들은 일부러 왼쪽 위에서 새로운 싸움을 벌인다.

바둑판의 크기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다 보면 왼쪽 아래와 왼쪽 위가 연결이 된다.

거기서 불리함을 타개할 방법들이 나올 수도 있고.

하지만 알파고는 불리함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이 ‘유리한’ 상황을 만들려고 한다.

진유성은 알파고의 알고리즘을 전혀 모르지만, 아무래도 승리 확률이 높은 곳에 돌을 두는 것 같았다.

그럼 함정을 파면 되지 않을까.

초수 싸움에서는 승리 확률이 높은 곳을 내주고, 그게 전체로 확장되었을 때는 불리하도록 말이었다.

진유성은 그 뒤로도 여섯 번을 더 졌다.

8연패나 당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까지의 패배는 기풍을 확인하기 위한 준비 작업일 뿐이었다.

진유성은 제갈세가주에게 6연패를 당했었다.

하지만 6연패 이후로는 수백 판을 두면서도 단 한 번도 지지 않았다.

두 점을 내주고 둘 정도였다.

이는 진유성이 타고난 오성도 있지만, 입멸공을 통해 무학의 본질을 깨우쳤기 때문도 있었다.

시계를 힐끔 보니 새벽 2시였다.

학교에 가기 전에 6시간 정도가 남이 있다.

그 여섯 시간 동안 승패를 동등하게 맞춰야겠다.

8연승을 하겠다는 선언이었다.

* * *

딥마인드 12층, 회의실.

출근 시간이 자유로운 이들은 점심이 넘었을 때쯤, 샌드위치와 햄버거 따위를 들고 회사에 나타났다.

그렇게 회의실에 모여든 이들은 많은 업무를 처리하던 중, 문득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한국의 대학생들이 만든 AI로 추측되는 언더독이 등장했었다는 걸.

“내기 할까? 60% 이하로 떨어진 적이 있는지?”

“에이, 누가 60% 이하에 배팅합니까?”

“내가 하지, 뭐.”

“저녁을 사고 싶으시면 말씀을 하세요, 팀장님.”

이들이 배팅하는 것은 알파고의 승리 확률이었다.

알파고는 매 순간 승리 확률을 계산하며 바둑을 두는데, 이세돌과의 대국을 제외하면 단 한 번도 순간 승리확률이 60% 이하로 내려간 적이 없었다.

“난 늘 언더독을 응원하거든.”

팀장이 그렇게 말하며 대국 기록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8승 0패의 상황에서 9번째 대국이 진행되고 있는 시점이다.

그리고 현재까지 기록은…….

“사, 사십 퍼센트?”

놀랍게도 알파고의 승리 확률이 40%까지 떨어진 시점이 있었다.

“에이, 저녁 얻어먹으려고 장난치시는 거죠?”

“직접 확인해.”

딥마인드의 직원들이 모여들어서 대국 기록을 보며 깜짝 놀랐다.

팀장의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

정말 순간 승리 확률이 40%대로 떨어진 상황들이 많았다.

대국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어느 것 하나 쉽게 이긴 판이 없었다.

그러나 그보다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었다.

“기풍이 다 다릅니다. 어느 판은 맞불을 놓았고, 또 어느 판은 지독히 수비적으로 했습니다.”

“이거…… 어쩌면 새로운 형태의 알고리즘이 나온 것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알파고의 기풍을 학습해서 약점을 찾는 것 같습니다.”

그 순간이었다.

“아홉 번째 대국…… 패배했습니다.”

“뭐?!”

현재의 대국이 어떻게 진행되나 궁금해진 직원이 대국을 확인하는 순간, 알파고가 패배한 것이었다.

현재까지 알파고가 대 AI 전에서 기록한 수치는 495전 494승 1패.

1패는 버그로 인한 석패니 제외한다고 치면, 실력으로 진 판은 없었다.

494전 494승이었다.

그런데 마침내, 1패가 기록된 것이었다.

딥러닝 AI의 왕좌에 오른 이후에도 딥마인드는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오히려 거기서 벌어들인 돈으로 더욱 연구에 매진했다.

이제 더 이상 업그레이드된 바둑 AI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는데…….

져 버렸다.

모두가 충격에 휩싸여 있는데 곧장 열 번째 대국이 시작되었다.

“모니터로 돌려 봐.”

딥마인드 최고의 석학들이 알파고와 지존천마의 대국을 관전하기 시작했다.

“엄청 빠르게 두네.”

“포석 속도만 놓고 보면 알파고보다 1.5배 정도 빠릅니다.”

“잠깐, 저기서 왜 저렇게 뒀지?”

순간 사람들이 의문을 표했다.

지존천마가 돌을 두는 순간, 알파고의 승리 확률이 88%까지 치솟았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알파고는 곧장 유리한 형세를 이끌어 가기 시작했다.

“혹시 이전 대국이 우연한 승리였을까요?”

“멍청한 소리 하지 마. 인공지능 간의 대결에서 우연한 승리는 없어.”

간만에 보여 주는 팀장의 날카로운 모습에 팀원들이 입을 다물었다.

그들은 열 번째 대국이 알파고의 승리로 끝났다고 생각하며 대국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한데,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알파고는 여전히 자신의 승리 확률을 70% 이상으로 점치고 있었는데…….

좌 상단과 우 상단에서 벌어진 싸움이 하나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

“미친!”

모든 사람들이 의문을 표했던 돌 하나가 모든 게임을 뒤집어 버렸다.

마치 여기까지 못 봤냐고 알파고를 비웃듯이 돌들을 연결했다.

잘못 두었다고 생각한 돌 하나가 수 싸움에서 돌 두 개의 역할을 하며 순식간에 게임을 뒤집어 버린 것이었다.

“13%…….”

그렇게 알파고의 승리 확률은 13%까지 떨어졌다.

알파고의 패배였다.

모두가 충격에 휩싸여있는 상황에서 11국이 시작되었다.

그때 팀장이 직원들에게 한 가지 명령을 내렸다.

“TPU 있는 거 다 끌어와서 벨제붑과의 대국에 연결해.”

TPU란 딥러닝에서 주로 사용되는 벡터/행렬 계산을 병렬 처리할 수 있게끔 특화된 하드웨어였다.

알파고의 알고리즘은 완벽해서 가정용 컴퓨터로도 ELO 4,000점 이상의 퍼포먼스를 뽐낼 수 있었다.

하지만 TPU를 연결하면 연산 속도가 신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그렇게 TPU를 연결한 알파고와 지존천마의 대국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11국도 패배였다.

12국, 13국, 14국도 패배였다.

알파고와 지존천마의 대결이 8승 6패까지 이어진 것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대국을 보고 또 봐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존천마는 계속해서 불리함을 만들고 그것을 유리함으로 만들고 있었다.

만약 최정상의 고수에게 ‘넌 원하는 시점에 돌 2개를 연속해서 둘 수 있어.’라고 말한다면?

그는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을 수 있다고 자신할 것이었다.

한데, 지존천마가 그렇다.

불리한 듯 버려 둔 돌이 수 싸움을 할 때 늘 2개, 혹은 3개의 몫을 하게 된다.

그렇게 포석되니 승리 확률이 순식간에 곤두박질치며 패배한 것이었다.

“혹시 알고리즘의 약점을 찾은 게 아닐까요?”

“아냐. 그건 아니야. 모양이 전부 다르잖아.”

특정 약점을 찾아서 공격하는 거라면 모양이 비슷해야한다.

하지만 지존천마의 포석은 계속 다르다.

결국 참지 못한 팀장이 입을 열었다.

“지금 한국이 몇 시지?”

“어, 새벽 6시 정도입니다.”

“벨제붑 팀도 이 대국을 지켜보고 있겠지?”

“그렇겠죠. 그들이 만든 프로그램이 최강자를 꺾는 순간이니까.”

“그들을 뉴욕에 초청해야겠어.”

팀장이 곧장 한국계 미국인인 앤던을 불렀다.

그리곤 지존천마가 바둑 사이트에 가입할 때 적었던 인적 사항을 가리키며 말했다.

“전화해 봐.”

“전화해서 뭐라고 합니까?”

회의실로 불려오며 전후 사정을 대충 들은 앤던이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딥마인드라고 밝히고, 뉴욕으로 초청하려고 한다고.”

“알겠습니다.”

앤던이 지존천마의 인적 사항에 적힌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곤 어설픈 한국말로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지존천마 팀이시죠? 네, 저희는 뉴욕의 딥마인드 본사입니다. 알파고를 만든…….”

앤던이 고개를 갸웃했다.

전화가 끊겼기 때문이었다.

“끊겼는데요?”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던 팀장이 물었다.

“국제 번호 제대로 입력했어?”

“맞습니다. 다시 해 보겠습니다.”

전화가 연결되고 앤던이 입을 열려는 순간, 수화기 너머에서 꽤 큰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곤 전화가 끊겼다.

“뭐래? 뭐라고 소리친 거 같던데?”

앤던이 황당한 목소리로 답했다.

“보이스 피싱을 할 거면 한국말 좀 배우고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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