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46화>
바둑은 19개의 줄을 가진 정사각형의 땅 위에 색이 다른 두 개의 돌을 가지고 하는 정복 전쟁이다.
국수는 흑과 백 진영의 지휘관이 되어 자웅을 겨룬다.
때론 작은 것을 내주고 큰 것을 취하며, 피할 수 없는 전장에서 전투를 벌이며, 판세가 불리하면 성동격서로 상대의 판단을 흐려야 한다.
그리곤 단 한 칸이라도 더 큰 영역을 취한 사람이 승자가 되는 것이었다.
진유성은 무학의 정수가 담긴 입멸공을 익혔기 때문에 전장을 가늠하는 눈이 남달랐다.
딱.
마우스를 클릭하자 바둑돌을 두는 소리가 스피커로 울린다.
상대방은 하나의 수를 두는데 1분이 넘게 고민했지만, 진유성은 아니었다.
그는 별 고민 없이 돌을 두었다.
‘쉽군.’
처음엔 상대의 낯선 포석에 당황했는데, 곰곰이 뜯어보니 거기서 거기였다.
그가 명나라에서 두던 바둑과 본질적으로 다른 게 없었다.
결국 진유성은 채 5분도 지나지 않아서 상대의 기권을 받아냈다.
부딪치는 싸움마다 패배하니 상대방이 의욕을 잃은 것이었다.
-졸라 비겁하네. 18급에 와서 양학하고 싶냐?
기권을 누른 상대방이 진유성에게 채팅을 쳤지만, 진유성은 피식 웃을 뿐이었다.
-난 올라가는 중이고, 넌 그 과정에 차였을 뿐이다.
본래 진유성은 비난에 익숙하지 않았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만민의 위에 군림했기에, 누군가 그를 비난하면 어떻게든 혼내 줘야 직성이 풀렸다.
하지만 진유성은 변했다.
그는 심연을 들여다보았다.
롤이라는 무시무시한 심연을.
그곳에는 모든 부정적인 감정이 존재한다.
미움, 증오, 변명, 외면 등등…….
심연의 주민들을 지나 정상까지 올라가 본 진유성은 불특정 다수의 비난 따위 신경 쓰지 않는 멘탈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롤은 무림의 후기지수들이 한 번쯤 해 볼 만한 게임인 것 같다.
후기지수 중에는 사문에서 평온하게 무공을 배우다가 갑자기 무림에 나와서 바보가 되는 경우가 있다.
타인의 추악한 욕망이나 이유 없는 비난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이들에게 무림 출두를 하기 전에 롤을 하게 해 준다면?
강철과도 같은 멘탈을 갖게 될 것이다.
진유성은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바로 다음 대국을 잡았다.
딱, 딱, 딱.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채 5분이 지나지 않아서 상대는 기권했다.
-한 수 배웠습니다.
이번 상대는 꽤 예의가 있었다.
진유성은 그 뒤로 계속해서 대국을 이겨 나갔다.
바둑은 20수만 넘게 두면 상대와 내 실력 차이를 알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진유성의 상대들은 계속해서 금방금방 기권했다.
그렇게 15연승 정도를 했을 때였다.
갑자기 메시지 하나가 떠올랐다.
[당신의 급수를 재설정해 주세요.]
진유성이 너무 압도적인 승률을 거두자, 프로그램에 따라 유저에게 급수를 설정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곧장 1급으로 갈 수는 없었다.
[6급, 8급, 10급, 12급.]
4개의 선택지에서만 급수를 선택할 수 있었다.
진유성은 고민 없이 6급을 선택했다.
[앞으로 열 번의 대국은 배치의 형식을 갖습니다. 급수가 가파르게 상승하거나, 하락할 수 있습니다.]
‘생각보다 빨리 왔군.’
구글의 딥러닝 프로그램과 겨루기 위해서는 최소한 5급 이상의 실력을 가져야 했다.
이는 너무 많은 어중이떠중이들이 몰려서 트래픽이 초과되는 일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진유성은 최소한의 요건인 5급만 찍고 만족할 생각은 없었다.
본래 바둑은 9단까지밖에 단수가 없다.
하지만 이제는 인간이 닿을 수 있는 9단 위에 딥러닝 프로그램이 있다고 했다.
해서 바둑 딥러닝 프로그램의 대표주자 격인 알파고를 10단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러니 진유성이 인공지능을 이기기 위해서는 일단 9단부터 이겨야 하지 않겠는가.
간만에 잠을 자지 않는 하루가 될 것 같다.
진유성은 그렇게 아침까지 바둑을 뒀다.
정확히는, 유혜연이 요리를 하다가 이층으로 올라오는 기척을 읽기 전까지.
* * *
구글 딥마인드 본사, 12층 회의실.
수많은 스크린 모니터와 노트북이 가득한 회의실 문이 열리며 딥러닝 팀이 모여들었다.
두 시간 후에 한국의 바둑 사이트에 알파고의 새로운 버전이 오픈되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의 일정이 끝나면 곧장 중국, 일본 순으로 테스트가 진행될 예정이기도 했다.
딥마인드는 바둑을 정복했음을 선언하며 더 이상 알파고를 공식전에 내보내는 일은 없을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말은 지켜졌다.
하지만 알파고란 이름이 가지는 가치를 금액으로, 정확히는 광고비로 환산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주기적으로 온라인 대국을 진행해야 했다.
이런 연례 행사는 늘 알파고의 승리로 끝났다.
사실 외부에는 알파고의 연례 행사가 구글이 딥러닝 기술을 업그레이드시킬 때마다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막대한 개발비를 세이브하기 위한 자본주의의 행위일 뿐이었다.
알파고는 이미 완벽했다.
지금까지 알파고의 패배는 1패뿐이었다.
한국의 이세돌에게 당한.
알파고가 연례 행사를 한국에서 먼저 오픈하는 것은 유일하게 알파고를 이긴 국수에 대한 존경의 의미가 있었다.
“별 다른 문제없지?”
“문제는 없는데…….”
직원 중 한 명이 노트북을 유심히 들여다보다가 말했다.
“간만에 언더독이 붙었네요.”
“그래?”
“네. 삼 일 전에 아이디를 만들었는데, 현재까지 전승입니다. 워우, 많이도 뒀네요. 96승 0패입니다.”
“프로들이랑 3일 동안 96판을 뒀다고?”
“아뇨, 아뇨. 18급에서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3단까지 올라왔네요.”
“아하. 아마추어부터 시작했구나. 왜 그랬지?”
“테스트 기간이 부족했나 보죠. 어느 대학교인지 패기 좋은데요?”
“언더독은 늘 보기 좋지.”
이들이 말하는 언더독이란 또 다른 바둑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뜻했다.
사실 바둑의 뿌리인 한, 중, 일은 딥러닝보다 10년 먼저 바둑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었다.
그러나 딥마인드가 딥러닝이란 알고리즘을 만들고 개발에 착수한 지 1년 만에, 모든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탈탈 털어 버렸다.
그리곤 왕좌에 올랐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왕좌에 오른 알파고의 아성에 도전하는 인공지능 프로그램들은 많았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495전 494승 1패.
그나마 1패는 버그였고, 버그는 고쳐졌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더 이상 알파고의 아성에 도전하는 회사는 없어졌다.
돈만 쓰고 망신만 당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패기 있는 젊은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대학생들은 종종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알파고의 연례 행사에 도전장을 던지곤 했다.
3일 전에 출연해 103승을 거두고 있는 플레이어도 아마 어떤 대학생들의 작품일 것이었다.
“ELO는 어때?”
“좀 애매하네요. 5급이랑 대충 둔 판도 있고, 1단을 압살한 판도 있고. 인공지능이 불안정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추산되는 ELO가 있을 거 아니야. 결과만 딱 놓고 보면.”
“그럼 대충 2000점은 넘을 것 같습니다.”
ELO란 스포츠 분야에서 승리와 패배로 계산되는 점수를 뜻했는데, 전 세계 1등과 2등의 ELO는 3700점 정도였다.
그리고 바둑 ELO 1등과 2등은 한국인이었다.
다만 ELO가 꼭 랭킹을 뜻하진 않았다.
랭킹을 이기기 위해서는 공식전에 나가야 하는데, 인터넷 대국은 공식전과 정비례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영역에서 가장 높은 ELO가 3700점이라면, 현재 알파고의 ELO는 5185점.
이세돌과 대국을 벌였던 버전 때는 4500점을 넘었다.
현재 인간이 알파고를 이길 확률은, 최정상의 바둑 기사라 하여도 1,000분의 1밖에 되지 않았다.
“재밌네. 아이디가 뭐야?”
“어, 모르겠는데요. 한국어라서.”
“여기 한국어 잘하는 사람 있지 않았나?”
“아, 앤던이 한국계입니다.”
잠시 뒤, 앤던이라는 이름을 가진 직원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그리곤 팀장의 부탁을 받고 또 다른 인공지능 플레이어의 아이디를 확인했다.
앤던은 한국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한국어를 읽을 줄은 알았지만, 문화적인 의미까진 알진 못했다.
“지존천마? 무슨 뜻이지?”
앤던이 한국의 구글에 들어가서 단어를 검색했다.
대충 보니 무슨 캐릭터 이름 같다.
“지존이 군주고, 천마가 악마 같은 거네요. 하늘에서 내려온 사악한 군주?”
“호오. 벨제붑 같은 건가?”
“벨제붑은 유대인들이 쓰는 멸칭이고, 보통 바알이라고 부르지 않나요?”
“아무튼 뭐. 사악한 마귀들의 우두머리라는 거잖아? 재밌네.”
확실히 언더독이 쓸 만한 이름이다.
“어쩌면 한국 대학생들일 수도 있겠는데?”
“그러게요.”
“기대해 보자고. 두 시간 뒤에 벨제붑이 우리에게 도전장을 던지는걸.”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지존천마는 로그인을 하지 않았다.
“뭐지?”
“글쎄요. 어쩌면 알고리즘에 문제가 발견되서 수정 중일 수도 있죠.”
“흠. 김빠지는데.”
결국 딥마인드 팀은 실시간으로 지켜보던 화면을 내렸다.
언더독이 언제 나타날지도 모르는데, 그걸 계속 보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딱 그때가 진유성이 학교가 끝난 시간이었다.
* * *
집에 도착한 진유성은 유혜연에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는 곧장 2층으로 향했다.
스마트폰으로 보니, 벌써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오픈을 했다고 했다.
학교에서 계속 바둑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시간이 엄청 더디게 흘렀다.
“흠.”
옷을 갈아입은 진유성이 후다닥 컴퓨터 앞에 앉았고, 바둑 사이트에 접속했다.
그리곤 우측 상단에 영롱하게 빛나는 96승 0패를 잠시 쳐다보다가 마우스를 움직였다.
딥러닝 프로그램과 대전하기.
어제까진 비활성화였던 버튼이 드디어 활성화가 되었다.
사실 지금까지의 대국은 좀 싱거웠다.
세월이 흐르며 바둑이 발전할 줄 알았는데, 기교만 발전했다.
초반 싸움을 회피하며 세력 경쟁권을 늘리는 바둑이 유행하고 있으니 말이었다.
그러나 진유성은 늘 끝까지 물고 늘어졌기에, 기권을 굉장히 빨리 받는 편이었다.
물론 이는 진유성이 아직 최정상의 고수들을 만날 수 없는 위치에 있기 때문도 있었다.
3단이라고 하면 아마추어들도 도달하는 경지이다.
기왕이면 9단을 경험해 보고 인공지능과 싸우고 싶었건만, 시간이 없었다.
“후우…….”
진유성이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내공을 일주천했다.
평소에 잘 쓰지 않는 두뇌를 가동할 시간이었다.
잠들어있는 오성을 일깨우고, 언제든지 생사결의 상태에 돌입할 준비를 끝냈다.
그리곤 마우스를 클릭했다.
달칵.
달칵하는 소리와 함께 몇 가지 메시지가 떠오른다.
대충 읽어보니 지금의 대국이 알파고의 딥러닝 시스템에 입력되어도 괜찮냐는 내용이었다.
전부 YES를 누른 진유성의 눈앞에 마침내 노란빛을 띠는 바둑판이 펼쳐졌다.
“건방지구나.”
건방지게도 알파고가 백을, 진유성이 흑을 잡도록 설정이 되어 있다.
사실 이건 시스템적으로 당연한 것이었다.
상대전적이 높은 쪽이 백을 잡고, 상대전적이 없다면 등급이 높은 쪽이 백을 잡으니까.
하지만 진유성의 눈에는 건방진 고철 덩어리일 뿐이었다.
그렇게 알파고와의 바둑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