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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144화 (144/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44화>

아놀드 벡은 자신이 세계의 비밀에 가장 근접했다고 생각했기에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책임감에 비해 알고 있는 정보의 양은 형편없었다.

게이트를 만든 존재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저 사악한 존재라는 것만 알 뿐.

심지어 그들이 게이트를 만든 이유도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러니 진유성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는 진실을 추격하는데 급급한 것이 아니라 이미 사악한 존재들과 싸우고 있는 것이었다.

아놀드 벡이 놀란 마음을 추스르고는 물었다.

“그럼 패스워드를 가져간 이유도 그들과 싸우기 위해서입니까?”

“패스워드? 아, 그 색목인? 걔가 네 동료냐?”

“그렇습니다.”

“패스워드는 그냥 우연히 알게 된 건데?”

“우연히요?”

진유성이 언어 습득의 술법에 대해서 설명했다.

이태원에서 만난 색목인 여자의 선천진기에서 곧고 맑은 느낌을 받아 사용했다는 것까지.

이야기를 들은 아놀드 벡이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당시 아멜라 메건이 한국으로 향했던 이유는 서울역 1차 게이트를 조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말이죠.”

“그럼 비공식적으로는?”

“아카샤의 계시였습니다. 그녀는 아카식 레코드에 접속할 수 있는 메신저이자, 아카샤의 현신을 도울 그릇입니다.”

진유성은 문득 타트바의 말이 떠올랐다.

[전 머지않은 시점에 세상에 현신할 겁니다.]

[제 현신을 돕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타트바가 아멜라 메건이라는 여자를 통해 현신하려는 모양이었다.

“패스워드가 당신에게 전달된 게 아카샤의 뜻이었던 것 같군요.”

아멜라 메건은 아카샤의 계시를 받고 한국에 왔고, 진유성을 만나 패스워드를 전달하게 되었다.

아놀드 벡은 이러한 일들을 아카샤의 안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유성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이태원에 방문한 것은 우연이었다.

진유성이 서울 지리를 잘 몰랐기 때문에 이태원에 들른 것이지, 본래는 강을 따라 달렸어야 했다.

아카샤가 자신의 발길까지 조종할 수 있을 리 없다.

설령 그녀가 신이라고 해도.

진유성은 신에게도 자신의 자유 의지를 침범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타트바는 나한테 3초 컷이었잖아?’

아무리 신의 본체가 아니라 화신이라고 하지만, 약해도 너무 약했다.

진유성이 아놀드 벡을 힐끔 쳐다보았다.

솔직히 좀 놀리고 싶다.

아놀드 벡에게 네가 믿는 신이 약골이라고 놀리고 싶다.

하지만 오늘은 검을 부순 게 미안하니까 봐주기로 했다.

다음에 만났을 때 놀리면 되니까.

“혹시 패스워드를 사용해 보셨습니까?”

“어. 그거 좋더라.”

“그걸 사용하면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응? 넌 안 해 봤냐?”

“저희는 패스워드를 발견했지만, 쓸 수는 없었습니다.”

“왜?”

“패스워드를 입력하기 위해서는 너무 많은 마력이 필요합니다.”

“아, 그렇긴 하지.”

신전 전체를 내공으로 일순해야 하는데, 거기 들어가는 내공의 총량이 장난이 아니다.

제일 처음에는 진유성도 버겁다고 느낄 정도였으니까.

게다가 딱 보니까 내공의 질도 균일해야 해서,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서 될 일도 아니었다.

“애당초 패스워드는 인간에 대한 조롱에 가깝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만약 뉴욕, 아니 서울 한복판에 도로를 새로 낸다고 치죠. 그때 일방통행 도로와 쌍방통행 도로, 둘 중 어떤 것을 만드는 게 편하겠습니까?”

“당연히 쌍방통행이겠지.”

일방통행로는 한쪽으로만 이동할 수 있기에 기획 구간에서부터 신경 쓸 것이 많다.

그에 반해 쌍방통행도로는 길만 이으면 되는 것이고.

“사악한 존재들이 게이트를 만들고 인간들도 마스터 플레이어가 될 수 있도록 해 둔 이유도 그것 때문입니다.”

사악한 존재들만 마스터 플레이어가 될 수 있다면 그건 인간의 영역에서 벗어난 일이다.

즉, 아카샤의 절대 공간에서 게이트를 색으로 인식하지 않을 확률이 있었다.

그러나 인간들도 마스터 플레이어가 될 수 있다면?

이는 지닌 바 힘의 문제일 뿐이지, 인간종과 이종의 문제는 아니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패스워드와 마력만 있다면 마스터 플레이어가 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말 아무나 마스터 플레이어의 자격을 증명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마도사들의 계획이 흔들리게 된다.

그래서 마도사들은 간단하지만 아주 어려운 난관을 하나 놔두었다.

인간이 품을 수 없는 압도적인 총량의 마력.

그것이 있어야지만 마스터 플레이어의 자격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었다.

즉, 지금 이 세상에 마스터 플레이어가 될 수 있는 건 세 명뿐이었다.

세쌍둥이 마도사의 첫째와 둘째.

그리고 진유성.

이건 진유성조차 몰랐던 사실이었다.

물론 별로 중요한 정보 같진 않았다.

타트바의 말에 따르면 어차피 마도사들은 자신을 찾아올 거라고 했으니까.

“여기까지가 제가 알고 있는 정보들입니다.”

“음.”

“이제 당신의 이야기를 해 주시겠습니까?”

진유성이 턱을 매만지며 잠시 고민했다.

아놀드 벡에게 어느 선까지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애매해서였다.

하지만 진유성은 이내 마음을 정했다.

어디까지 믿을지 모르겠지만, 전부 다 말해 주기로.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아놀드 벡의 과거를 들은 영향이 컸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모르겠지만 아놀드 벡은 그와 비슷한 일을 많이 겪었다.

게다가 아주 진지한 태도로 게이트 사태를 끝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었다.

게이트 사태가 끝나면 전 세계에 황제로 칭송받는 본인의 영달이 끝이 날 텐데 말이었다.

하지만 진유성은 이 역시 이해할 수 있었다.

중원의 수많은 사람들이 천마신교주인 자신을 존경하고, 부러워하고, 우러러봤지만…….

진유성은 지금이 더 즐거웠다.

천마신교주 진유성이 아니라 대정고의 진유성일 때가 더 행복하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아놀드 벡도 그럴 수도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황제로 칭송하고, 일거수일투족 간섭을 하는데 그게 행복하겠는가?

‘나는 맘에 안 드는 놈들 때려 주기라도 했지.’

진유성은 무력으로 대명제국을 굴복시켰지만, 아놀드 벡은 그것도 아니었다.

어지간한 인격과 인품으로는 살 수 없는 인생이다.

고민을 끝낸 진유성이 입을 열었다.

“네가 이 이야기를 어디까지 믿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고려의 왕자였다.”

“고려? 그게 무엇입니까?”

“대한민국의 옛 나라이지. 수백 년 전에 멸망한.”

“그럼 당신이 과거의 사람이라는 겁니까?”

“일단 들어 봐.”

지금껏 진유성의 모든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상림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한 명이 더 추가되고 있었다.

미국판 상림, 아놀드 벡.

* * *

모든 이야기가 끝나고.

“…….”

아놀드 벡은 침묵했다.

허황된 이야기다.

상식적으로는 믿을 수 없다.

하지만, 그의 본능이 외치고 있었다.

이 이야기는 진실이라고.

어쩌면 이러한 본능의 외침은 진유성의 강력한 무력에서 나오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는 공간을 베어 버려서 달걀의 껍질과 내용물을 분리했었다.

이는 인간이 닿을 수 없는 영역의 일이었다.

그러니 진유성의 말은 사실일 확률이 매우 높았다.

또 하나, 게이트를 만들어 내는 세쌍둥이와 진유성의 고향이 같다는 것도 의미심장했다.

세쌍둥이가 다른 세계에서 온 침략자라면, 진유성은 다른 세계에서 온 수호자인 셈이니까.

세상의 모든 것은 균형이 맞기 마련이다.

“혹, 증거가 있습니까?”

“타트바한테 물어봐. 색목인 여자가 소통할 수 있다며?”

“아멜라 메건의 능력은 질문과 답변을 받는 방식의 소통은 아닙니다. 신이 일방적으로 내려 주는 사념을 읽을 뿐이죠.”

“타트바가 너희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거 아니야? 그럼 알려주겠지.”

“일단 기다려 보겠습니다.”

“그래, 뭐.”

그렇게 대화가 끊겼다.

진유성이 멀뚱멀뚱 아놀드 벡을 쳐다보다가 물었다.

“근데 너 왜 왔냐?”

“예? 당신이 불러서…….”

“아니, 한국으로 언노운 엠페러를 찾으러 왔다며.”

“언노운 엠페러를 저희 팀으로 영입하고자 했습니다. 언노운 엠페러가 영국에서 만났던 다스 베이더라고 생각했거든요.”

“끝이야?”

“언노운 엠페러가 게이트를 만든 사악한 존재일 수 있다는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습니다.”

“각성 마켓은?”

“그건 겸사겸사 진행하던 일이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 설명해 드리자면…….”

“설명은 무슨.”

진유성이 대화를 끊었다.

그는 몇 가지 힌트들 덕분에 각성 마켓과 관련된 진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SG는 언젠간 힘을 잃는다.

SG에 대한 불만이 너무 많아졌고, 세상이 너무 평온해졌다.

그러나 아놀드 벡은 SG가 없어지고 시작될 무질서한 각성 사회를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세계 각국에 사설 각성 마켓을 만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명분을 먹고 자라난 SG가 사라져 각성 사회 질서를 유지할 수 없을 때, 돈을 먹고 자라난 마켓으로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 위해서.

“이거 맞지?”

“……맞습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사람이 생각하는 게 다 그렇지, 뭐.”

아놀드 벡은 몇 가지 힌트들을 가지고 전체를 추측한 진유성의 두뇌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외람되지만 한 가지 조언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아놀드 벡의 말투가 공손해진 것을 느낀 진유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드벡이는 자신의 말을 믿기로 결심한 것 같았다.

“뭔데?”

“정체를 너무 숨기지 마십시오.”

“내 정체?”

“예. 진유성이란 사람의 정체는 숨길 수 있지만, 언노운 엠페러라는 각성자는 드러내는 게 좋습니다.”

“왜?”

“사악한 존재, 그러니까 당신이 마도사라 부르는 존재들은 이미 인간 사회에 깊숙이 개입해 있습니다.”

아놀드 벡은 SG 내부에 묘한 행동을 하는 이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처음엔 그들이 사악한 존재들과 내통을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들은 정보량의 통제로 일방적으로 이용당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를 통해 아놀드 벡은 마도사들이 사회뿐만 아니라 SG에도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SG에 돌아다니는 정보를 조작할 정도로 깊숙하다.

게다가 진유성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셋째의 이름이 ‘록펠러’였다.

미국인들 중에 록펠러 가문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었다.

“지금의 사회가 안전한 것은 마도사들이 위기감을 느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만약 위기감을 느끼게 된다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발악하겠지?”

“발악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는 게 놀랍지만……. 맞습니다. 그들이 가진 모든 수를 동원해 저와 동료들, 그리고 진유성 당신을 공격할 겁니다. 인간들을 동원할 수도 있죠.”

“흠…….”

타트바는 마도사들이 상림, 유혜연, 상소윤을 인식할 수 없을 거라고 말했지만, 또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언노운 엠페러란 이름에 무게가 생겨야 합니다.”

“어떻게?”

“제가 미국에 신분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지금은 2차 각성자들이 많이 탄생해서 신분을 만들기 좋은 시점입니다.”

게다가 진유성의 말에 따르면 그는 마스터 플레이어의 자격을 증명한 게이트로 마음껏 이동할 수 있다고 했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게 그리 어렵지 않다.

아놀드 벡이 말했다.

“얼굴을 숨기고 활동을 해서 명예를 얻으십시오. 유명해지십시오. 지구의 네 번째 SSS급 각성자가 되십시오.”

아놀드 벡의 말이 끝나는 순간, 진유성의 얼굴이 흥분으로 상기됐다.

아놀드 벡의 설명과 정확히 부합하는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거미에 물린 슈퍼 히어로.

스파이더맨.

“기분이 이상해요, 아놀드 씨.”

“네?”

그 순간, 진유성이 몸을 훌쩍 던져 벽에 네 발로 붙었다.

도마뱀의 모습에서 착안된 벽호공(壁虎)은 본래 절벽을 기어오르는 무공이었다.

하지만 진유성의 벽호공은 극성에 이르러 수직으로 선 매끈한 벽에도 붙어 있을 수 있었다.

그 순간, 진유성이 후다닥 벽을 달리더니 말했다.

“I AM SPIDER-MAN.”

아놀드 벡은 잔뜩 흥분한 진유성을 보며 흠칫했다.

실수한 것 같다.

망아지의 고삐를 손수 풀어 준 기분이 든다.

아니 그보다…….

‘대체 내 조언의 어디서 스파이더맨이 연상되는 거지?’

아직 미국판 상림은 진유성이 익숙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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