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43화>
* * *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놀드 벡을 전통적인 미국인으로 알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전통적이란, 미국에서 태어났고 자랐으며, 미국의 교육으로 미국적인 사고방식을 지니게 된 이를 뜻했다.
하지만 사실 아니었다.
아놀드 벡은 멕시코에서 나고 자랐으며, 멕시코 시민권을 가지고 있던 멕시코인이었다.
그의 부모님은 멕시코로 이민을 온 미국인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아놀드 벡은 미국 문화보다 멕시코 문화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전 세계적으로 백 명도 넘지 않을 것이었다.
지금은 죽은 초대 UN SG 본부장이 직접 아놀드 벡과 관련된 서류들을 바꾸어 놓았으니까.
씁쓸한 이야기지만, 아놀드 벡이 멕시코 출신이라는 걸 밝혔다면 전 세계인들이 그에게 ‘황제’라는 호칭을 사용하진 않았을 것이었다.
그걸 예견한 초대 SG 본부장은 아놀드 벡을 미국인으로 탈바꿈시켰다.
물론 의심을 하는 이들은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아니, 국적 가지고 몇 분을 이야기하는 거야?”
“예?”
“내가 네 성장 환경까지 들어야 하냐?”
진유성의 말에 아놀드 벡이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놀드 벡이 직접 이 이야기를 꺼내는 건 진유성이 처음이었다.
아멜라 메건도 이 사실을 알고 있긴 했지만, 그녀는 아놀드 벡을 통해 안 것이 아니었다.
아카식 레코드.
그곳에 접속할 수 있다는 증거들을 아놀드 벡에게 보여 주는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이었다.
하니 꽤 긴장되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털어놓았는데, 진유성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럼 최대한 축소하겠습니다.”
미국에서 멕시코 국경으로 넘어가는 데는 검문이 없다.
반대로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넘어오려면 여러 개의 검문을 통과해야 한다.
영화에서 보면 종종 범죄자들이 경찰에 쫓기다가 멕시코 국경을 넘으면, 경찰들이 포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건 영화적인 연출이 아니라, 실제로 포기를 했다.
죄를 짓고 멕시코로 넘어갔다는 것은 미국으로 돌아올 수 없음을 뜻했으니까.
아놀드 벡의 부모님도 범죄를 짓고 국경을 넘은 이들이었다.
그래서 아놀드 벡의 유년 시절은 평탄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뜻이 있었다.
아놀드 벡은 12살 이후로 일을 했고, 돈을 벌었고, 공부를 했다.
그 덕분에 그는 사립 학교의 교사가 되었다.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는 할렘가의 아이들에게 스페인어와 영어를 알려주었다.
하지만 이게 사립 학교 부모들의 빈축을 샀다.
빈부 격차가 극심한 멕시코에서 사립 학교를 다닌다는 것은 꽤 부유한 집안임을 뜻했는데, 아놀드 벡이 할렘가의 아이들에게 글을 알려주는 게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었다.
학교는 아놀드 벡에게 교외 지도를 멈출 것을 명했지만, 아놀드 벡은 듣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학교에서 잘렸다.
그러자 가장 먼저 난리를 친 것은 그의 부모님들이었다.
마약에 쩔어 아놀드 벡이 벌어 오는 돈에 연명하던 이들은, 그의 자식이 멍청한 짓을 하다가 학교에서 잘렸다고 생각했다.
아놀드 벡은 자신을 욕하는 부모님에게서 환멸을 느꼈다.
솔직히 말하자면 버리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자신이 이들을 포기하면, 돈 없이 마약을 구하려다가 갱단에 총을 맞고 죽게 될 것을 알았다.
그래서 포기할 수가 없었다.
아놀드 벡이 ‘일자리를 금방 구하겠다.’라고 말을 하는데…….
게이트가 열렸다.
전 세계에 동시 다발적으로 열렸던 첫 번째 게이트 사태였다.
“결국 직업을 얻은 셈이 됐죠. 각성자가 됐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부모님도 함께 게이트로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게이트 안에 들어간 이들은 아놀드 벡의 거주지였던 할렘가의 이들이었다.
당연히 그 안에는 마피아들도 있었다.
마피아들은 폭력으로 위협해 민간인들과 몬스터들을 싸우게 했다.
그리곤 몬스터가 싸우는 법을 관찰하고, 지친 몬스터들을 잡아 레벨업을 했다.
아놀드 벡은 민간인 무리에서도 고강한 정신력과 뛰어난 반사 신경으로 살아남았지만, 그의 부모는 거기서 죽었다.
그때, 아놀드 벡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딱 세 글자였다.
드디어.
그 순간, 아놀드 벡은 화들짝 놀랐고, 스스로에게서 참을 수 없는 역겨움을 느꼈다.
그를 낳아 준 부모가 죽은 것을 보며 ‘드디어’라는 생각을 떠올렸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인간인 이상 그래서는 안 됐다.
“제가 정의롭게 살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아마 방어 기제일 겁니다.”
“스스로에게서 풍기는 악취를 피하기 위해서?”
진유성의 말에 아놀드 벡이 화들짝 놀랐다.
전후 사정을 이야기해 주긴 했으나, 이토록 완벽한 핵심을 찌를 줄은 몰랐다.
“그걸 어떻게……?”
진유성은 고개만 저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진유성 역시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주혜미의 죽음 이후 시작된 성전.
진유성을 신으로 모시는 이들이 진유성의 분노를 거름 삼아 벌인 거대한 학살극.
진유성은 이 성전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했다.
분노에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중원에 주 씨 성을 가진 이들은 없었다.
하지만, 정말 제어할 수 없었을까?
그때 진유성은 고독과 외로움 때문에 모든 것에 무감각하고, 아무 것에도 흥미를 갖지 못했다.
그때 맛본 분노란 감정은 오히려 달콤했다.
그동안은 분노를 터트릴 대상조차 없어서 참고 있었는데…….
어쩌면 자신은 잠시 분노를 음미했던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 것이었다.
물론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진유성은 주혜미가 죽은 뒤, 정말로 분노했으니까.
하지만 혹시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스스로에게 메스꺼움을 느꼈다.
그래서 진유성은 대명제국을 통치하는 데 더욱 열중했다.
정의를 곧게 세우면 자신의 순수성을 증명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잠시 그런 생각을 하던 진유성이 아놀드 벡에게 물었다.
“복수는 했고?”
“마피아들에게 말입니까?”
“어.”
“안 했습니다. 아니, 못했습니다.”
“못했다고? 왜?”
“그때 마피아를 이끌던 리더가 엔리케 카를로입니다.”
“그게 누군데?”
진유성을 잠시 쳐다보면 아놀드 벡이 어깨를 으쓱하곤 말했다.
“엔리케 카를로. 세상에 3명뿐인 SSS급 각성자 중 한 명이죠.”
미국의 엠페러, 아놀드 벡.
멕시코의 소드 마스터, 엔리케 카를로.
중국의 검성(劍聖), 월성.
놀랍게도 아놀드 벡과 엔리케 카를로는 같은 게이트에서 각성을 한 이였다.
“만약 그가 평범한 각성자였다면 전 분명히 복수를 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멕시코의 독립 각성 단체인 메히까뜰(Mexicatl)을 이끌고 있죠.”
아놀드 벡이 엔리케 카를로를 찾아가는 순간, SG와 메히까뜰의 전쟁이 벌어진다.
이는 분명 미국과 멕시코의 전쟁으로 번질 수도 있다.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대의명분이 무거워 사적인 복수를 할 수 없다.
“…….”
진유성은 조금 놀랐다.
앞선 경우도 그랬지만, 이번도 자신과 아놀드 벡이 비슷했다.
진유성은 역성혁명을 일으켜 부모님을 죽인 고려의 무신들에게 복수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복수를 다짐하면, 그건 자신과 무신들의 싸움이 아니다.
대명제국과 고려의 싸움이 될 것이고, 그 끝에는 고려의 멸망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고려의 백성들은 고통을 받을 것이고.
진유성은 차마 자신의 복수를 위해서 고려를 역사의 뒤안길로 보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복수를 포기했다.
아놀드 벡의 모습처럼.
“…….”
“왜 그렇게 보십니까?”
“아니, 좀 신기해서.”
“제가 복수를 참고 있는 게 신기하십니까?”
“뭐, 어느 정도는.”
“사실 전 이성으로는 엔리케 카를로의 행동도 이해합니다. 게이트라는 미지의 것에서 살아남기 위해 주변 환경과 자신의 조건을 이용한 것이니까요.”
할렘가의 주민들이 일대를 휘어잡는 마피아에게 대항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설령 대항을 해서 게이트 밖으로 나온다고 해도, 곧장 피살될 확률이 높고.
엔리케 카를로는 그 상황을 알고 있었기에, 민간인들을 방패막이로 쓴 것이었다.
“하지만 이해와 용납은 다른 법이죠. 게다가 저와 엔리케 카를로가 처음으로 들어간 게이트는 F급 게이트였습니다.”
F급 게이트는 민간인들이 똘똘 뭉치면 충분히 클리어할 수 있는 게이트였다.
아놀드 벡은 그 뒤로 멕시코 국경을 넘어서 미국에 도착했다.
엔리케 카를로가 메히까뜰을 설립하면서 각성자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는데, 그의 밑으로 들어갈 순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우연한 계기로 S급에 접어들게 되고, 희생정신을 바탕으로 영웅의 행보를 밟아 나갔다.
재앙과도 같았던 워싱턴 DC의 A급 게이트를 클리어해 냈고, 인류 최초로 SS급에 접어들었다.
그러다가 UN과 손을 잡고 SG를 설립했고, SG와 미국을 대표하는 인물이 된 것이었다.
진유성은 조용히 아놀드 벡의 이야기를 들었다.
본래 같았으면 이야기를 끊어도 진작 끊었어야 했다.
하지만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아놀드 벡에게서 자신과 비슷한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여기까지가 미국 대통령이 알고 있는 정보의 수준입니다.”
“대통령?”
“네. 그는 저의 과거와 행적에 대한 보고를 받을 테니까요. 이제부터 드리는 말은 미 대통령도 모르는 일입니다.”
“뭔데?”
“게이트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겁니다. 아카식 레코드, 그러니까 지구의 방어 프로그램을 오염시켜 지구를 침탈하기 위해서.”
아놀드 벡은 침을 꿀꺽 삼켰다.
진유성의 정확한 정체는 모르지만, 이 비밀에는 놀라지 않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진유성은 심드렁했다.
심드렁한 반응에 아놀드 벡이 당황했다.
“이건 장난이 아닙니다. 만화나 마블 영화도 아니고요.”
“누가 뭐래?”
“너무 반응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아는 이야기라서 그래.”
“안다고요? 게이트가 만들어졌다는 걸?”
“어.”
“말도 안 됩니다!”
“뭐가?”
“아카식 레코드에 접촉하지 않고는 이 사실을 알 수 없습니다. 이는 저희가 모든 역량을 동원하고 동료들을 희생해서 알아낸 일입니다.”
“흠.”
그러고 보니 신기하다.
진유성은 딱히 마도사들의 뒤를 캤던 것이 아니다.
내키는 대로 행동하다가 록펠러와 엮였고, 그를 소멸시키며 이런저런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입멸공을 얻었던 해남을 방문해 아카샤의 화신인 타트바를 만나기도 했다.
만약 운명이란 게 있다면, 운명이 그를 게이트 사태 앞으로 밀어 넣는 것 같다.
그때 아놀드 벡이 미심쩍은 눈빛을 보낸다.
분명 자신을 ‘게이트를 만드는 쪽’으로 의심하는 눈빛이었다.
휘익-
진유성의 손이 움직였다.
살기와 예기가 전혀 없음에도 아놀드 벡이 펄쩍 뛰며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진유성은 아놀드 벡이 물러난 만큼 따라 붙으며 손을 휘둘렀다.
따악!
이마를 부여잡은 아놀드 벡이 당황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반응이 꽤 격렬하다.
상림도 처음에는 저랬다.
하지만 요즘엔 ‘제 표정이 불경했나요?’라고 납득을 한다.
“표정이 불경하더구나. 미국판 상림아.”
“예? 그게 누굽니까?”
“그런 게 있다.”
진유성이 잠깐 생각하더니 물었다.
“게이트를 누가 만드는지는 알고?”
“사악한 존재라고만 알고 있습니다.”
“세쌍둥이 마도사들이야. 근데 한 놈이 죽었으니까 이제 쌍둥이겠지?”
“그, 그게 무슨?”
“내가 죽였거든. 아, 원래 죽은 놈이었으니까 소멸시킨 건가?”
진유성의 말에 아놀드 벡이 입을 벌리고는 다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