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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141화 (141/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41화>

* * *

주방에 선 진유성이 설레는 마음으로 조리대 앞에 섰다.

본래 조리대 아래에는 단상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는 조리대의 높이를 높여서 테이블에 앉은 이들이 조리 과정을 볼 수 없도록 하는 장치였다.

조리대는 높이만 높은 게 아니라, 미묘하게 주방 쪽으로 기울어져 있기도 했다.

기울기는 5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평범한 사람의 시야각을 생각하면 충분한 장치였다.

그러나 지금, 이러한 장치들은 전부 없어져 있었다.

진유성이 아놀드 벡을 초청한 다음에 부랴부랴 없애 버린 것이었다.

단상의 연결 부분을 강기로 말끔하게 날리고, 기울어진 부분은 검으로 베어 평평하게 만들면서.

그야말로 하늘에 닿은 무공을 이상한 데에 쓰는 진유성이었다.

어쨌든 이런 노력 덕분에 아놀드 벡은 요리 과정을 전부 볼 수가 있었다.

“흡!”

다스 베이더 가면을 쓴 진유성은 기합을 넣는 순간 가슴이 웅장해졌다.

이 장면을 남에게 얼마나 보여 주고 싶었던가.

요리왕 비룡은 전설이다.

“하앗!”

진유성이 재차 기합을 내지르며 양파, 당근, 파를 머리 위로 집어 던졌다.

방금 막 마트에서 사온 신선한 채소들이 허공에 날아오른 순간.

진유성의 중식도가 움직였다.

파팟!

“……!”

대체 뭐 하는 건가 싶어서 보고 있던 아놀드 벡이 깜짝 놀랐다.

칼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간신히 궤적을 따라갈 수 있을 뿐, 변화를 잡아 낼 수가 없었다.

‘저 칼이 날 노렸다면?’

방법이 없다.

살기 위해서는 그저 거리를 벌리는 수밖에 없었다.

아놀드 벡은 영국에서 진유성을 만났을 때보다 훨씬 강해져 있었다.

물론 다스 베이더 가면을 쓴 정체불명의 각성자를 이길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진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그와 자신의 격차는 인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태산의 높음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는 여전히 산 중턱에 있었다.

운무에 갇힌 태산의 꼭대기는 그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아놀드 벡이 형용할 수 없는 아득함을 느끼는데, 진유성의 검이 재차 변화했다.

횡으로 움직이던 검이 이제는 수직으로 움직인다.

검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세상이 반으로 쪼개질 것 같은 날카로움이 느껴진다.

“What?!”

이윽고 보이는 광경은 잘 정돈된 채소들이 한곳을 향해 날아가는 광경이었다.

그냥 포물선을 그리고 날아갔으면 그러려니 할 것 같다.

해 본 적은 없지만, 어쩌면 자신이 할 수 있을 수도 있었고.

하지만 이건 포물선이 아니다.

나선을 그리며 날아간다.

양파, 당근, 파가 나선으로 회전하며 프라이팬으로 들어간다.

그 순간 진유성이 오른발로 올리브유 통을 차올렸다.

탓!

단순히 차올린 게 아니었다.

진유성의 발놀림에는 극한으로 발휘된 내가중수법의 극의가 숨어 있었다.

내가중수법이란 상대의 호신강기를 무시하고 내부로 침투하는 수법.

이는 발경이 극의에 오른 이들이 사용하는 수법이었는데, 익히기가 극히 까다롭지만 그만큼 강력한 무예였다.

그리고 지금.

진유성의 내가중수법은 올리브유 통의 내부에서 터져 나왔다.

통에 담긴 올리브유가 천천히 회전을 하더니 입구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탁!

힘의 압력을 이기지 못한 올리브유 통의 뚜껑이 열린다.

그러더니 소량의 올리브유가 프라이팬으로 정확히 날아든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열렸던 올리브유의 뚜껑이 닫혔다.

이는 진유성이 내가중수법을 사용함과 동시에 반대 방향으로 암경을 발휘했음을 뜻했다.

즉, 올리브유가 뚜껑을 열고 튀어나가는 힘이 소멸되자, 반대 방향으로 암경이 나아가며 뚜껑을 닫은 것이었다.

양방향으로 발경을 하는 수법은 중원에도 없었다.

애당초 그럴 필요도 없을뿐더러, 필요가 있더라고 할 수가 없다.

양방향으로 나아가는 두 개의 발경 중 하나의 힘이 더 큰 순간 한쪽이 소멸해 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진유성에게는 힘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섬세함이 있었다.

아놀드 벡조차 전부 알아보지 못할 고절한 무예였다.

“…….”

아놀드 벡은 놀라는 걸 멈췄다.

그리곤 눈을 크게 떴다.

이 남자가 보여 주는 수많은 무예들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는 신주청 못지않은 무공 재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보고 배울 것이 없었던 아놀드 벡에게 엄청난 영감을 주었다.

‘짜식.’

아놀드 벡이 두 눈을 크게 뜨고 요리법을 감상하고 있자, 진유성은 기꺼운 마음이 들었다.

역시 아놀드 벡은 괜찮은 놈이다.

진유성은 그 뒤로도 수많은 무공을 발휘해 요리를 진행했다.

아주 간단한 동작 하나에도 수많은 절기들이 이용되었다.

진유성은 만드는 요리는 요리왕 비룡에 나온 것들 중 거의 유일하게 일반인들이 해 먹는 요리.

‘황금 볶음밥’이었다.

황금 볶음밥은 편의점에서도 도시락용으로 팔고 있었다.

황금 볶음밥의 묘미는 밥알 하나하나를 계란이 감싸서 풍미를 돋우는 것이었다.

만화에서는 과장된 방법으로 요리를 했지만, 실제로 밥알에 계란이 스며들게 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그저 계란을 잘 풀고 간을 맞춘 다음에, 밥을 고루 펼쳐 두는 것이었다.

주의 사항이라고는 밥을 아주 잘 펼쳐야 하며, 계란이 잘 스며들 수 있도록 놔두는 정도였다.

그러나.

진유성이 쉬운 방법으로 요리를 할 리가 없었다.

그는 만화에서 나왔던 것보다 더욱 화려하고 더욱 비현실적인 방법으로 황금 볶음밥을 만들 생각이었다.

일단 모든 준비는 끝났다.

남은 것은 이 요리의 하이라이트인 계란이었다.

“보아라.”

진유성이 아놀드 벡에게 말을 거는 순간, 양옆에서 불길이 치솟는다.

물론 저 불길에 요리를 하면 재료들이 탄다.

이 불길은 그냥 멋으로 피워 둔 것이었다.

아놀드 벡이 진유성을 쳐다보자, 진유성이 우측에 내려 두었던 아놀드 벡의 검을 들었다.

독도 게이트에서 문수혁에게 빌렸던 아놀드 벡의 검.

이 검은 진유성에게 꽤 큰 도움이 되었다.

덕분에 입멸공을 마음껏 사용해 록펠러를 소멸시키고, 게이트를 찢을 수 있었다.

그러나 주인이 있는 검이니 돌려주는 게 마땅했다.

아놀드 벡을 이곳으로 부른 이유의 90%가 요리 때문이라면 9%는 검을 돌려주기 위해서였다.

1%는 이런저런 잡다한 이유들이었고.

자신이 만든 볶음밥을 맞추지 못하면 검을 부순다는 건, 그냥 장난이었다.

“이 검의 이름이 무엇이냐?”

“First Guardian, Royal Knight.”

아놀드 벡이 가지고 있는 7개의 SSS급 아이템을 세븐 가디언즈라고 부르는데, 그 중 진유성이 빌린 검의 이름은 로열 나이트였다.

이름처럼 황제 아놀드 벡에게 가장 의미가 있는 물건이었다.

“로열 나이트.”

몇 달간 쓰던 검의 이름을 알게 된 진유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검에 기운을 불어넣었다.

이게 로열 나이트로 쓰는 마지막 입멸공이었다.

문득, 타트바를 만났을 때가 떠오른다.

[본래 입멸공을 얻은 순간 그대는 인간의 태를 벗어던졌어야 합니다.]

[입멸공은 인간이 품을 수 있는 힘이 아닙니다.]

타트바는 진유성이 입멸공을 품고 있다는 것에 경악했다.

하나 진유성은 그녀가 경악을 하든, 입멸공이 신의 힘이든 관심이 없었다.

다만 타트바 덕분에 입멸공의 가능성에 관해 한 가지 깨달은 바가 있었다.

‘어쩌면 나 스스로도 한계를 규정지은 게 아닐까?’

입멸공이 대단한 힘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진유성은 입멸공을 무공으로 대했다.

생, 사, 입, 멸.

이것들을 무공이라는, 인간의 영역으로 국한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입멸공이 신에게서 기인한 힘이라면, 신은 이 힘으로 세상을 창조한 것이다.

한계가 있을 리가 없다.

진유성이 지금부터 행할 일은, 인간의 영역으로 국한 지은 것이 아니었다.

“보아라!”

진유성이 3개의 달걀을 허공에 집어 던졌다.

그리곤 검을 휘둘렀다.

스슥!

분명 검은 3개의 달걀을 베고 지나갔다.

하지만…….

달걀은 베어지지 않았다.

으깨지지도 않았고, 부서지지도 않았다.

여전히 허공에 떠 있었다.

그 순간, 아놀드 벡의 눈앞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달걀이 떠 있는 공간이 흔들거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드라마에 보면 눈앞이 흐려지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일부러 초점을 흐려, 사물을 두 개로 겹쳐 보이게 만드는 기법이 있다.

지금이 꼭 그랬다.

달걀이 떠 있는 공간이 두 개로 겹쳐 보이며 흔들거렸다.

아놀드 벡은 순간적으로 달걀이 아주 멀리 있는 것 같았다.

실제로는 1m가 조금 넘는 거리였지만, 심정적으로 아주 멀리 있어서 아무리 걸어가도 닿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 순간, 흔들리던 공간이 완전히 분열되며.

츠르륵.

세 개의 달걀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이 쏟아졌다.

흰자와 노른자가 아래 받쳐 놓은 양푼 안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이, 이럴 수가!”

놀라는 대신 두 눈을 크게 뜨겠다고 다짐한 아놀드 벡이었지만, 이번에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달걀은 분명 허공에 그대로 떠 있는데, 내용물만 쏟아졌으니 말이었다.

이는 꼭 공간이 두 개로 분열되어서 하나는 달걀이 그대로 있고, 하나는 베어진 것만 같았다.

그 다음에 다시 공간이 합쳐진 것처럼 느껴졌고.

깜짝 놀라 달려간 아놀드 벡이 도저히 참지 못하고 허공에 떠 있는 달걀을 움켜쥐었다.

퍼석, 하는 소리와 함께 달걀이 부서진다.

하지만 달걀 안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흰자와 노른자로 이루어져야 하는 내용물이 없다는 것이었다.

퍼석, 퍼석.

아놀드 벡이 남은 2개의 달걀을 부쉈지만, 마찬가지였다.

“어, 어떻게?!”

“난 달걀을 베었지만, 베지 않을 수도 있었다. 두 가지 가능성에서 하나를 생하고, 하나를 사했으며, 하나를 입하고, 하나를 멸했을 뿐.”

“…….”

아놀드 벡은 다스 베이더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 사이 진유성은 근엄한 태도를 유지하며 속으로 좋아하고 있었다.

‘되네?’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진짜로 될 줄은 몰랐다.

진유성이 검을 허공에 던져 반 바퀴 돌렸다.

탁.

검 날의 끝을 잡은 진유성이 손잡이 부분이 아놀드 벡에게 향하도록 내밀었다.

“가져라가. 그동안 잘 썼다.”

솔직히 좋은 검이라곤 생각했지만, 입멸공을 이토록 버텨 줄지는 몰랐다.

서울역 2차 게이트 앞에서 차정명의 검을 훔쳤을, 아니 빌렸을 때는 입멸공을 쓰자마자 검이 가루가 되었으니까.

아놀드 벡이 엉겁결에 검을 잡자, 진유성이 검에서 손을 뗐다.

“음?”

검을 잡은 아놀드 벡이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검이 가벼웠다.

그가 알고 있던 로열 나이트의 무게가 아니었다.

“왜 이리 가…….”

왜 이리 가볍냐는 질문을 던지려는 순간.

프스스스.

검이 가루가 되어 흩날리기 시작했다.

“……!”

“……!”

진유성과 아놀드 벡이 동시에 놀랐다.

사실 입멸공을 여러 번 버틴 로열 나이트는 이미 검으로서의 수명이 다한 상태였다.

하나 진유성이 새롭게 개척한 생사입멸의 오의가 화룡정점을 찍었고.

가루가 된 검이 사락사락 흩어지며 양푼이 속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이 꼭, 계란에 간을 맞추기 위해 소금을 뿌리는 것 같았다.

황당한 상황에 진유성과 아놀드 벡의 눈빛이 부딪쳤다.

선수를 친 건 진유성이였다.

“야! 네가 마지막으로 잡았다!”

“…….”

“내가 망가뜨린 거 아니다!”

“…….”

아놀드 벡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눈앞의 남자가 영국에서 가벼운 태도를 보이며 ‘아임 유어 파더’ 같은 농담을 건넬 때는 정체를 숨기기 위해 가벼움을 연기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 남자.

지독히 얄팍하다.

일신상의 무예는 하늘에 닿았으나, 그릇이 티스푼만도 못하다.

하늘도 야속하다.

어찌하여 이런 남자에게 신화적인 무력을 내려 줬는지.

아놀드 벡이 한숨을 쉬는 사이, 진유성은 계속해서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어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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