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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140화 (140/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40화>

* * *

김정철 회장에게 아놀드 벡을 데려오라고 명령, 아니 부탁을 하고 내보냈다.

“아놀드 벡을 데려와서 나까지 삼자대면을 하자는 건가?”

김정철 회장이 나가면서 던진 질문에 진유성이 어깨를 으쓱했다.

“아저씨는 그냥 집으로 가세요.”

“내 제안에 대한 답변은 주지 않는 건가?”

“드벡이랑 얘기 좀 해 보고.”

“알겠네.”

김정철 회장은 자신이 아놀드 벡과 비교하면 한참 처지는 인사라는 걸 알고 있었다.

황제는 전 세계의 존경을 받는 성자이고, 자신은 한국의 기업인일 뿐이다.

‘그나저나…….’

언노운 엠페러는 이해가 가지 않는 것 투성이다.

외모는 어려 보이지만 통찰력은 하늘에 닿아 있고, 정체를 숨기고 있지만 아놀드 벡과 알고 있다.

각성자들끼리 공유하는 비밀이 있는 걸까?

하지만 김정철 회장은 묻지 않았고, 앞으로도 물을 생각도 없었다.

나이가 들면서 절실히 알게 되는 것이 말의 무게였으니까.

“내 직통 번호일세.”

김정철 회장은 그렇게 명함을 주고 상가를 떠났다.

김정철 회장이 떠나자 진유성은 생각에 잠겼다.

‘근데 드벡이는 다스베이더가 아이어맨이라는 모르지 않나?’

진유성이 영국에서 아놀드 벡을 만났을 때는 다스 베이더 가면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의 언노운 엠페러는 아이언맨 가면을 쓰는 존재다.

“흠…….”

잠시 고민하던 진유성이 결론을 내렸다.

아마 알고 있을 것 같다.

세상이 아무리 넓다고 하나, 얼굴을 가리려 헬멧을 쓰고 다니는 각성자가 많진 않을 것 같다.

그 각성자가 아놀드 벡보다 강하다면, 그건 한 명뿐일 것이고.

아마 아놀드 벡은 두 존재가 동일인물이라는 걸 눈치 챘을 확률이 높았다.

설령 모른다고 하더라도, 자신을 만나는 순간 알 수밖에 없었다.

진유성에 비하면 부족할 뿐이지, 아놀드 벡도 적수가 거의 없는 무인이었다.

자신을 보는 순간 키, 골격, 목소리 등등으로 언노운 엠페러가 영국에서 만났던 다스 베이더라는 걸 모를 수가 없었다.

‘모르면 알려 주지, 뭐.’

[제 현신을 돕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어머니를 찾는 이들을 만나면, 그들이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라는 걸 알아주세요.]

[아놀드 벡도 그중 한 명입니다.]

타트바가 말해 줘서 아놀드 벡이 어느 소속인지 대충 알 것 같으니까.

아놀드 벡은 아카샤의 수족이다.

생각해 보면 ‘I am your father’이란 자신의 말에 아놀드 벡이 움찔움찔하던 이유가 여기 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 밑에 있는데 아버지란 존재가 나타났으니까.

생각을 정리한 진유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요리를 안 한 지 꽤 오래돼서 상가에는 재료가 없었다.

재료를 사 와야 할 것 같다.

드디어 숙원을 이룰 때가 됐다.

‘나중에 아놀드 벡에게 정체를 밝히는 날이 오면 요리를 해 줘야겠군.’

진유성은 이렇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친구들에게는 자신이 요리를 하는 모습을 제대로 보여 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놀드 벡에게는 아니다.

영국에서 만났을 당시, 그는 아놀드 벡을 두들겨 패면서 몇 가지 가르침을 줬었다.

이미 무력적인 부분에서 숨길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요리를 할 때도 감출 것이 없었다.

진유성이 설레는 마음으로 상가를 나섰다.

* * *

지도를 보고 있던 아놀드 벡이 지도를 내려놓았다.

지이잉.

소수의 사람만 알고 있는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 왔다.

아놀드 벡과 아멜라 메건이 한국에 온 것은 언노운 엠페러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아놀드 벡 정도에 위치에 오른 이는 시간이 금보다 비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한국으로 왔다는 것은 언노운 엠페러를 추적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서였다.

실제로도 거의 실마리를 잡은 듯했다.

그와 아멜라 메건이 출발한 곳은 한남동의 한 피규어샵.

피규어샵에는 진품 아이언맨 가면이 도난(1달러를 내긴 했지만)당한 적이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그날이 아멜라 메건이 이태원에서 패스워드를 도난당한 날이었다.

또한 그날, 아이언맨 가면을 쓴 각성자에게 봉변을 당했다는 고등학생들도 있었다.

세 가지 사건이 벌어진 장소를 핀 포인트 삼아 이동경로를 유추해 보자면, 언노운 엠페러는 지도상에서 곧은 직선으로 이동했다.

이태원-한남동-강변북로-압구정-청담동-잠실-송파.

언노운 엠페러의 직선 경로에 걸리는 동네들이었다.

다음으로 그들이 한 일은 CCTV를 뒤져 보는 것이었다.

CCTV에 오류가 발생한 것처럼 얼굴이 뿌옇게 나오는 존재.

그가 바로 언노운 엠페러니까.

그 결과…….

‘압구정.’

압구정에서 유독 CCTV의 노이즈가 자주 출몰하고 있었다.

물론 CCTV의 노이즈가 늘 언노운 엠페러에게만 출몰하는 건 아니었다.

오래된 CCTV에서 종종 발생하는 문제이기도 했고, 렌즈에 습기가 차면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빈도라는 건 무시할 수 없는 근거였다.

그쯤에서 아놀드 벡과 아멜라 메건은 언노운 엠페러의 활동지를 압구정 일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여기까지 되면 사실 90%는 찾은 것이었다.

이제부터는 수많은 사람들을 풀어서 물량으로 밀어붙이면 그만이다.

하지만 아놀드 벡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언노운 엠페러는 영국에서 만났던 다스 베이더일 확률이 높았다.

아놀드 벡은 다스 베이더에게 큰 고마움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을 풀어서 언노운 엠페러를 찾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의 정체가 한국 사회에 드러날 수밖에 없다.

아놀드 벡은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가 숨어 지내는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인데, 그 존재를 만천하에 밝히는 건 도리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원래는 팀 우산도의 도움을 받을 생각이었는데, 팀 우산도는 언노운 엠페러를 극진히 존경하고 있었다.

그래서 언노운 엠페러의 정체를 밝히는데 도움을 줄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어쩔 수 없이 아놀드 벡은 아멜라 메건과 둘이서 작전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전화가 걸려 온 것이었다.

발신자는 그가 한국의 각성 마켓을 제안한 김정철 회장이었다.

아놀드 벡이 전화를 받으며 스톱워치를 켰다.

이 전화기는 3분 이내의 통화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추적이 불가능한 특수한 물건이었다.

3분이 넘어가면 통화 기록이 남으니, 그 안에 끊어야한다.

-통화 가능하시오?

“무슨 일이십니까.”

수화기 너머의 김정철 회장이 딱딱한 아시아식 영어로 말을 걸었다.

뉘앙스는 별로였지만, 김정철 회장은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었다.

두 사람의 대화에는 문제가 없었다.

-황제를 찾는 사람이 있소.

“마켓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면 전화를 끊겠습니다.”

아놀드 벡은 김정철 회장을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았다.

사견을 가질 만큼 알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행동이 자본주의에 엮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업인들은 대부분이 자신의 존재를 기업의 이득으로 바꾸고 싶어서 안달이 난 이들이었다.

그렇게 매몰차게 말한 것이었다.

그가 김정철 회장과 대화를 할 때는 마켓에 관한 것밖에 없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황제를 찾는 사람은, 황제가 찾고 있던 사람이오.

“선문답은 사양하겠습니다.”

-언노운 엠페러가 그대와 만나고 싶다고 전해 왔소.

“그 말, 책임질 수 있습니까?”

-황제의 앞에서 거짓을 고할 정도로 담이 크진 않소. 자세한 건 그를 만나 보면 알겠지.

“어딥니까?”

-주소를 보내 주겠소.

“문자 수신이 안 되는 핸드폰입니다. 읽어 주시죠.”

-아, 그랬지. 근데 한국말을 할 줄 아시오? 주소가 한국어인데?

“소리를 외워서 스텝에게 전달할 수는 있습니다.”

스텝 따윈 없다.

아놀드 벡은 한국어에 능숙했다.

아멜라 메건의 정신계 스킬을 통홰 언어 지각 능력을 활성화시키면, 한 달이면 그 어떤 언어도 마스터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이는 비밀이었다.

때론 그 나라의 언어를 모른다는 것이 정보를 얻기 위한 포석이 될 때도 있었으니까.

김정철 회장의 입에서 주소가 흘러나왔다.

‘압구정이군.’

김정철 회장의 말에 신빙성이 더해지는 순간이었다.

“다시 연락드리죠.”

전화를 끊은 아놀드 벡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아멜라 메건에게 상황을 전달하고는 곧장 호텔을 떠났다.

* * *

‘여기라고?’

아놀드 벡이 목적지를 보고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대정고 앞의 상가 건물.

아놀드 벡은 이 근처를 몇 번 왔던 적이 있었다.

압구정역에서 그가 묵고 있는 호텔까지 가는 경로이기 때문이었다.

상가 앞에 선 아놀드 벡이 정신을 집중했다.

혹시라도 함정일 확률을 배제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건물 안에서는 한 사람의 기척만 느껴질 뿐,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 기척은 너무 평범했다.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는군.’

심지어 각성자도 아니다.

이는 둘 중 하나이다.

아주 평범한 사람이거나, 그가 더듬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사람이거나.

자세를 가다듬은 아놀드 벡이 문을 두드리려는데, 갑자기 스르륵 문이 열렸다.

‘상대가 날 느낀 건가?’

아놀드 벡이 침을 꿀꺽 삼키고는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건물 내부는 흔히 말하는 중국풍의 붉은 빛이 번쩍거리는 인테리어였다.

좌측에는 요리를 위한 조리 시설들이 있었고, 정면에는 커다란 홀이 있었다.

텅 빈 홀 중앙에는 8명 정도가 둥그렇게 앉을 수 있는 거대한 테이블이 있었고…….

테이블 위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다스 베이더 가면을 쓴.

아놀드 벡은 순간적으로 상대의 키와 골격을 확인했다.

아놀드 벡 정도의 고수에게 앉아 있다는 것은 장애물이 아니었다.

‘완전히 일치한다.’

영국에서 만났던 다스 베이더와 똑같았다.

그 순간, 테이블 위에 멋지게 앉아 있던 남자가 훌쩍 몸을 날려 아놀드 벡 앞에 섰다.

아놀드 벡이 움찔할 정도로 표홀한 몸놀림이었다.

“당신은…….”

“난 가면 요리사다!”

“가면…… 요리사?”

“그렇다.”

“가면 요리사가 무엇입니까?”

요리왕 비룡을 보지 않은 아놀드 벡은 다스 베이더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순간, 다스 베이더가 다짜고짜 검을 빼 들었다.

깜짝 놀란 아놀드 벡이 물러나려다가 멈춰 섰다.

살기도, 예기도 전혀 느낄 수 없기 때문이었다.

검을 꺼낸 다스 베이더가 아놀드 벡을 향해 곧게 내밀었다.

그 순간, 아놀드 벡이 눈을 반짝였다.

저 검은 자신의 것이었다.

독도 게이트를 클리어하려는 한국의 각성자들에게 빌려주었던 세븐 가디언즈 중 퍼스트 가디언즈.

그렇다는 건, 역시 언노운 엠페러가 영국의 다스 베이더였다.

“검을 돌려받기 위해 왔나?”

“당신이 절 불렀다고……?”

“그렇다면 나와 내기를 해야 한다.”

“……?”

“세 개의 볶음밥이 나올 것이다. 이 중 가장 맛있는 것을 찾아라!”

“……예?”

아놀드 벡은 그동안 영국에서 다스 베이더와의 대련을 수천 번이나 떠올렸다.

엄청난 움직임.

상상할 수 없었던 고강함.

실전이었다면 그는 다스 베이더에게 열 번, 아니 백 번도 죽었다.

그러나 다스 베이더는 그에게 깨달음을 주고, 강해질 방법을 알려주고는 사라졌다.

존경하는 마음이 없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그의 머릿속에서 다스 베이더의 모습은 조금씩 미화됐었는데…….

뭔가 괴리감이 느껴졌다.

‘왜 이렇게 유치한 것 같지?’

유치한 것뿐만 아니라, 남의 말을 듣지도 않는 것 같았다.

좀 미친놈 같다.

그러나 아놀드 벡이 무슨 생각을 하든 다스 베이더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검을 위협적으로 움직이며 물을 뿐이었다.

“내기에 응하지 않으면 이 검은 부서진다!”

아놀드 벡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장단에 맞춰줘야겠다.

“내기에 응하겠습니다.”

“좋다!”

다스 베이더가 다시 한번 표홀한 몸놀림으로 주방으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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