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38화>
Quest 26. 드러낸 천마님
진유성은 김정철 회장이 반가운 것도 아니고, 불편한 것도 아니었다.
그럴 이유가 없었다.
그는 대명제국에서 아주 오랫동안 나라를 통치했고, 수많은 황족, 왕족, 호족, 군벌 세력들의 흥망성쇠를 지켜봐 왔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깨달은 게 있었다.
자리는 사람을 만들지만, 그것은 일시적이라는 것이었다.
감투가 사라지면 모두 똑같은 사람일 뿐이다.
그러니 진유성에게 김정철 회장은 그냥 나이 많이 먹은 남자일 뿐이었다.
자신을 왜 찾아왔는지에 대한 호기심만 충족되면 딱히 나눌 이야기도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김정철 회장은 진유성의 질문에 즉답하지 않았다.
“혹시 오늘은 요리가 안 되나?”
“그것 때문에 왔어요?”
“30% 정도는.”
“안 됩니다.”
“재료가 없어서?”
“명령을 받고 만드는 건 싫어서.”
진유성의 말에 김정철 회장이 눈을 크게 뜨더니 물었다.
“돈을 많이 낸다고 하면?”
“더 싫은데요.”
“그럼 우리가 친구가 되면?”
“나이가 차이가 얼만데 친구는 무슨…….”
물론 김정철 회장이 어리다는 소리였다.
80살 정도 먹은 것 같은데, 진유성은 김정철이 태어나기도 전에 중원을 일통했다.
“그럼 내가 자네 요리를 먹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몰라요?”
“방법이 하나쯤은 있을 게 아닌가. 정말로 자네가 만들어 준 요리를 먹고 싶어서 그러네. 기기묘묘한 퍼포먼스도 놀라웠고.”
“그때는 별로 안 놀랐잖아요?”
“그때는 요리를 못하고 퍼포먼스로 승부하는 줄 알았네. 하지만 천하일미를 만들어 내면서 선보이는 기예라고 생각하니, 신기하네.”
진유성이 잠시 턱을 쓰다듬었다.
퍼포먼스에 대한 칭찬이 진유성의 마음을 움직였다.
본인은 극구 부인하겠지만, 사실 진유성은 살짝 삐진 상태였다.
김정철 회장이 날아다니는 재료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아서였다.
간장 종지만 한 그릇에 담겨 있던 삐짐을 씻어 낸 진유성이 턱을 쓰다듬었다.
아랫사람처럼 요리를 바치는 건 싫고, 돈 받고 파는 것도 싫다.
김정철 회장이 자신의 요리를 먹을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팬이 되면 되겠네.”
“……팬?”
“열렬한 팬심을 보여 주면 됩니다.”
JC 그룹 회장의 먹방을 유튜브에 올리면 조회 수가 좀 나오지 않을까?
‘괜찮을 것 같은데?’
진유성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순간적으로 떠올린 거지만, 꽤 괜찮은 생각인 것 같다.
“다음에 해 줄게요. 몇 가지 조건을 달아서.”
“열렬한 팬심이 첫 번째 조건인가?”
“그런 셈이죠.”
“음, 알겠네.”
김정철 회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진유성이 재차 물었다.
찾아온 이유의 30%인 요리는 결론이 났으니, 이제 남은 건 70%다.
“말해 봐요. 나한테 왜 그랬어요?”
“무슨 소리인가? 내가 뭘 했나?”
“영화 안 봐요?”
“그럴 시간이 없네만.”
“쳇.”
진유성이 투덜거리더니 다시 물었다.
“더 이상 질질 끌지 말고, 왜 찾아왔어요?”
김정철 회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식당을 쭉 둘러보았다.
“혹시 이 안에 카메라가 있나?”
“없어요.”
“목소리가 녹음될 일은?”
“없죠.”
“그렇군.”
고개를 끄덕인 김정철 회장이 핸드폰에 짤막한 몇 글자를 입력했다.
그러자 가게 앞을 지키고 있던 남자들이 멀어졌다.
내공을 익힌 게 아닌 이상, 절대 이야기를 엿들을 수 없는 거리였다.
진유성이 의아한 표정으로 김정철 회장을 쳐다보고 있을 때, 김정철 회장이 입을 열었다.
“자네가 독도 게이트를 클리어한 Unknown Emperor인가?”
* * *
김정철 회장이 처음 압구정에서 만난 요리사를 찾을 때는 그저 건강을 위해서였다.
죽을 날을 놓았다는 건,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 모른다.
몸이 물동이라고 치면, 물이 줄줄 새어 나가는 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게 수명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겁에 질린다.
김정철 역시 두려웠다.
단지 대기업 회장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남몰래 발버둥을 쳤을 뿐.
그런데 어느 날 어떤 음식을 먹는 순간, 물동이의 틈새가 견고해졌다?
거창하게 화타의 고사를 인용했지만, 결국 김정철 회장은 미신을 믿은 것이었다.
이성적으로는 말이 안 되지만, 이름 모를 요리사의 음식을 먹으면 더 건강해질 수 있다는 미신.
그렇게 요리사를 찾기 시작하고, 진유성이란 이름을 얻었는데…….
좀 이상한 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일단 진유성은 가짜 신분을 쓰고 있었다.
성씨는 그대로지만 이름은 개명이고, 출신은 고아원이다.
그래, 여기까진 그럴 수도 있었다.
게이트 사태 이후로 인구 행정에 구멍이 뻥 뚫린 적이 있고, 그 구멍으로 돈을 벌려는 이들이 있었으니까.
한때 한국말도 엉성한 불법 입국자들이 게이트 사태로 죽은 이의 신분을 얻는 것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된 적도 있었다.
징집이 돼서 군대에 갔는데 한국말을 못하는 조선족이라면 지휘관이 얼마나 황당하겠나.
그러니 신분을 산 것 자체는 이해할 수 있다.
이상한 점은 진유성이 대정고에 재학 중이라는 것이었다.
김정철 회장의 아들도 한때 대정고에 다녔던 적이 있었고, 그의 손자는 몇 년 뒤에 대정고에 입학한다.
대정고는 절대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집안이 빵빵하거나, 돈이 많거나, 혹은 둘 다이거나.
셋 중 하나의 조건은 무조건 충족되어야 입학 허가가 나는 곳이었다.
그래, 이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확률이 극히 낮지만, 신분을 산 이가 부잣집과 인연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사생아거나, 양자 같은 식으로.
하지만 정말 이상한 건 마지막이었다.
진유성은 돈이 너무 많았다.
그의 계좌를 역추적할 수는 없었다.
아마 LF 건설의 대표가 행한 일인 것 같은데, 진유성 계좌에 있는 돈은 외국에서 몇 쿠션을 먹고 들어온 돈이었다.
김정철 회장의 영향력이 대단하다고는 하지만, 그건 국내용이었다.
해외에서 돌아다니는 돈은 FBI도 제대로 추적할 수 없다.
하지만 과정은 둘째 치고, 어마어마한 금액이 통장에 들어 있다는 게 중요한 것이었다.
일, 이십억이었으면 이런 말도 안 했다.
몇백억이었으니까 문제지.
아마 LF 건설 대표가 국세청장이나 고위 관료들에게 계좌를 트면서 쓴 돈도 몇 십억은 될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이 많은 돈이 정상 계좌에 잠들어 있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 돈이 많지? 북한 출신인가?’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북한의 지배 일가 중 한 명이 탈북을 했나 싶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엔 이상한 게, 돈이 주기적으로 들어왔다.
탈북하면서 한탕 크게 당길 수야 있겠지만, 이렇게 주기적으로 들어오는 건 탈북자가 아니다.
김정철 회장은 그 뒤로 진유성에 대해서 추적했다.
그러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종합 상사는 마정석과 포션 같은 범용 각성 물품을 다룬다.
SG 공식 각성 마켓의 한국 외주 업체가 JC 그룹이었으니까.
당연히 마정석의 유통 물량과 시세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고, 블랙마켓의 행적도 신경을 쓰고 있었다.
사실 JC 그룹도 블랙마켓을 이용할 때가 있었다.
정치 조달 자금 같은 검은 돈을 만들 때.
김정철 회장이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진유성의 행적과 일본 야쿠자로 이루어진 블랙마켓의 행적이 일치한다는 것이었다.
‘이놈, 각성자다.’
진유성이 각성자일 확률이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처음에는 비인가 각성자 집단의 얼굴마담 같은 건 줄 알았다.
6개월 만에 수백억의 수익을 올리려면, 세상에 3명뿐인 SSS급 각성자 쯤은 되어야 하니까.
게다가 진유성의 통장에 잠든 돈이 블랙마켓에서 들어온 돈임을 생각해야 한다.
블랙마켓은 통상 금액보다 낮은 금액으로 각성 물품을 구매한다.
즉, 정상적으로 번 돈이었다면 수백억이 아니라, 수천억이었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추적하면 할수록 진유성이 혼자서 이 정도 수익을 벌어들이고 있다는 증거들이 나왔다.
김정철 회장은 순간 온몸에 벼락을 맞은 것 같았다.
Unknown Emperor.
한국에 있는 걸로 추측되는 SSS급 각성자를 부르는 SG의 비공식적 명칭.
아무래도, 진유성이 언노운 엠페러인 것 같았다.
김정철 회장은 그동안 아무도 몰랐던 언노운 엠페러의 정체를 자신이 발견한 게 어이없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탐정이 주인공인 추리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탐정들은 단서를 가지고 범인을 추측한다.
키는 얼마일 것이고, 무슨 복장이었을 것이고, 무슨 방법을 썼을 것인지 등등.
그리고 그것에 부합하는 범인을 찾아낸다.
하지만 이건 허구의 이야기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99% 이상의 범죄 수사가 사람에서 출발한다.
일단 특정 구역에서 신원 미상의 범죄가 발생하면 경찰들은 전과자들을 조진다.
그 다음으로 CCTV에 찍혔거나, 범행 동기가 있는 이들을 조진다.
즉 탐정처럼 단서를 가지고 추측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하나하나 불러서 소거법으로 범인을 찾는다는 것이었다.
단서를 추적하는 건 어렵고, 사람을 추적하는 건 쉬우니까.
사람은 살아가면서 무수히 많은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니까.
김정철 회장이 언노운 엠페러를 발견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만약 그에게 언노운 엠페러를 찾으라고 했으면, 그는 찾지 못했을 것이었다.
SG도, FBI도, CIA도 못 찾는 걸 장사치가 어떻게 찾겠는가.
대기업의 회장이라고 해도 그도 결국 장사를 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김정철 회장은 언노운 엠페러를 찾은 게 아니라, 우연히 인연이 닿은 진유성을 파헤쳤다.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그 다음에는 미심쩍은 마음으로, 그 다음에는 경악한 마음으로.
그렇게 알게 된 것이었다.
이 남자의 정체를.
그리고 아무래도 SG 본부의 추측은 틀린 것 같았다.
진유성은 대한민국 정부나 대한민국 SG와 관련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숨기고 있는 힘이 아니었다.
완전히 독립된 별개의 각성자였다.
그것도 혼자서 서울역 2차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독도 게이트를 클리어할 수 있는.
김정철 회장은 일생일대의 도박수를 던져 보기로 했다.
죽을 날을 받아 놓고 제일 아쉬웠던 것이 왜 좀 더 과감히 살지 못했냐는 거였으니까.
그래서 김정철 회장은 긴장되는 마음으로 질문을 던졌다.
“자네가 독도 게이트를 클리어한 Unknown Emperor인가?”
* * *
진유성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가 독도 게이트를 클리어한 것은 맞았다.
하지만 언노운 엠페러가 뭔지 모르겠다.
“언노운 엠페러?”
“아, 모를 수도 있겠군. SG가 독도 게이트를 클리어한 신원 미상의 각성자를 부르는 명칭일세. 비공식적이지만, 꽤 널리 통용되지.”
“흠.”
진유성이 턱을 긁적이다 물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데요?”
진유성은 바보처럼 굴 때가 많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지능이 높았다.
단지 머리를 쓰는 걸 귀찮아하는 경향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머리를 쓸 때였다.
진유성은 김정철 회장이 정황 증거 혹은 물질 증거를 확인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대기업 회장이 눈앞에 나타날 이유가 없다.
“처음에는 약간의 미신이었네.”
“미신?”
“자네 요리를 먹고 건강을 회복한 것에 대한 놀라움이라고 해야 할까? 본래 굿을 하고 효험을 느끼면 굿을 또 하는 법이니까.”
김정철 회장이 자신이 진유성을 조사해 온 것에 대해 담담히 이야기했다.
“아, 그리고 자네를 조사면서 몇 가지 조치를 취해 뒀네.”
“조치?”
“이젠 내가 조사한 방식으로 자네를 추적할 수 없을 걸세. 그 누가 와도. 내가 서류들의 엉성한 부분을 다시 짜 맞췄거든.”
이는 진유성의 환심을 사기 위한 부분도 있지만, 정보를 독점하기 위한 부분도 있었다.
본래 귀한 정보는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효용 가치가 큰 법이었다.
“그래서 원하는 건 뭡니까? 호기심을 풀러 온 건 아닌 것 같고.”
자신이 언노운 엠페러임을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진유성의 말.
김정철 회장은 다시 한번 등줄기에 찌르르 흐르는 번개를 느꼈다.
김정철 회장이 말했다.
“나와 손을 잡고 각성 마켓을 열어 볼 생각은 없나? 블랙마켓 말고, 공식적인 마켓 말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