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36화>
Quest 25. 흥미로운 천마님
인천 공항에 도착해 집으로 돌아오니 자정이 되기 직전이었다.
진유성과 상소윤이 반가운 집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유혜연이 소리를 듣고 나왔다.
“엄마!”
상소윤이 유혜연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그리곤 수학여행에서 있었던 일을 마구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듣던 유혜연이 진유성에게 손짓한다.
정원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진유성이 이상했던 모양이었다.
“유성아. 거기서 뭐 해?”
“아뇨. 그냥 정원 구경하고 있었어요.”
“갑자기 정원 구경을 왜?”
“그냥요.”
진유성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집에 왔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게 신기해서 잠깐 서 있었다.
진유성이 상림의 집에서 살게 된지 채 1년도 되지 않았다.
그에 반해 천신궁에서는 100년 가까이 살아왔다.
한데, 천신궁을 집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천신궁은 진유성에게 대명제국과 백성들의 안녕을 위해 머물러야 하는 곳이었다.
즉, 의무감이 포함된 공간이라는 말이었다.
그에 반해 이곳은 아무런 의무가 없었다.
어쩌면 그래서 집처럼 여겨지는 것일 수도 있었다.
집이란 모든 의무와 책무에서 벗어나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니까.
“근데 아빠는?”
“아까 11시쯤에 집으로 온다고 했는데, 안 오시네?”
“왜 이렇게 늦게 와?”
“오늘 회사에 중요한 일이 있었다고 하더라고.”
그때, 자동차 소리와 함께 주차 공간의 자동 셔터가 올라가는 소리가 들렸다.
상림이 집에 도착한 것이었다.
“아빠!”
상소윤이 주차장에서 나오는 상림을 보고는 쪼르르 달려갔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유혜연이 진유성에게 물었다.
“유성아, 저녁은 어떻게 했어?”
“기내식 먹었어요.”
“기내식 가지고 배가 차겠어? 저녁 먹고 자. 소윤이도 먹겠지?”
“먹을걸요. 집밥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으니까.”
“그래?”
* * *
상소윤과 유혜연은 저녁을 먹자마자 씻고 잠이 들었다.
상소윤은 수학여행과 비행의 피로 때문이었고, 유혜연은 몸이 무거워서였다.
그러나 진유성과 상림은 잠을 잠시 미뤄 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상림에게 해 줄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타트바에게 들었던 이야기였다.
“그럼 천마신교도들이 교주님을 신이라고 부르는 것도 영 없는 말은 아니었네요?”
“아니지. 신의 힘이라고 해도 그걸 품고 풀어 낸 건 인간이니까.”
“아, 그게 그렇게 되나?”
상림은 진유성의 이야기를 한참 동안 듣다가 의외의 질문을 던졌다.
“그럼 교주님, 상실의 공간에서 잃어버린 것도 되찾을 수 있는 겁니까?”
“무슨 말이야?”
“전능의 존재가 전능의 9할을 놓고 넘어와서 힘을 회복했다고 했잖아요.”
“그치.”
“그럼 잃어버린 것을 되찾은 것 아닙니까?”
“흠.”
진유성은 상림이 왜 이런 질문을 던지는지 알고 있었다.
상림 역시 상실의 공간에서 무언가를 잃어버렸으니까.
“갑자기 그 질문은 왜 해?”
“요즘 무공을 다시 익히면서 드는 생각이, 아무래도 제가 잃어버린 게 무의(武毅)가 아닌가 싶습니다.”
무의란 무공을 익히는데 있어서 다양하게 통용되는 단어이다.
투지라고 불리기도 하고, 결기라고 불리기도 하고, 향상심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좀 더 직관적으로 말하자면 무공의 끝을 보려는 마음이라고 봐도 좋았다.
흔히 고수들이 제자를 찾을 때, 오성이 삼 할이고 무의가 칠 할이라는 말을 한다.
재능보다 의지가 중요하다는 말이었다.
“왜 그런 생각을 해?”
“예전에는 무공을 익힐 때 치열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아니라서요. 적당히 단련을 하고 나면 이 정도면 되겠지 싶어요. 무슨 PT를 하는 것처럼.”
진유성은 상림이 던진 질문의 답을 대충은 알 것 같았다.
상실의 공간에서 만났던 위상의 수호자는 그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그대는 자신을 온전히 보존한 최초의 통과자이다.]
마른 나뭇가지는 꽃이 필 수 있지만, 썩은 나뭇가지에는 꽃이 필 수 없다.
진유성은 무(武)의 1할밖에 남지 않은 마른 나뭇가지였다.
하지만 그는 스탯을 내공으로 바꿔 가며 내공을 키웠다.
마른 나뭇가지에 물을 주었고, 이제는 꽃이 피어올랐다.
그에 반해 상림의 나뭇가지는 썩어 버렸다.
10할을 모두 잃었기 때문이었다.
죽어 버린 나뭇가지에 아무리 물을 준다고 해도 꽃이 피어날 수 없다.
썩은 나무에 꽃이 피는 방법은 딱 한 가지뿐이다.
그것을 거름삼아 새로운 나무가 태어날 때.
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뭐 어때, 한국에서 꼭 무공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렇기는 합니다만, 혹시 모르잖아요. 무슨 일이 벌어지면 가족을 지켜야죠.”
“내가 타트바의 이야기를 꺼낸 게 그것 때문이야.”
진유성은 타트바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해주었다.
“마도사들이 우리 가족을 찾을 수 없게 인과를 뒤틀었다더라.”
“그게 무슨 말이에요?”
“불특정 다수를 향한 공격에 포함될 수는 있겠지만, 의도적으로 인질로 잡거나 위해를 가할 수는 없다는 거야.”
“오…….”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라.”
“그래도 무공 수련은 계속 해야죠.”
상림이 주먹을 불끈 쥐며 의지를 다지는 모습을 보였지만, 진유성은 씁쓸해졌다.
무의라는 건 소리 내서 말한다고 다질 수 있는 게 아니다.
가슴 속에 품고 또 품어서 시퍼렇게 날이 서야 하는 것이다.
상림이 잃어버린 것이 무의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는 가슴 속에 품고 있던 한 자루의 검을 잃어버렸다.
‘근데 생각해 보니까 내가 왜 최초의 통과자라는 거지?’
엄밀히 말하면 전능이가 최초의 통과자가 아닌가?
전능이가 상실의 공간을 넘다가 상실한 전능의 9할을 자신이 입멸공이란 이름으로 품은 것이니까.
한 가지 더 궁금한 것도 있었다.
[한 가지 힌트를 드리자면, 당신이 게이트에서 얻은 걸 너무 무시하지 마세요.]
타트바는 이렇게 말했지만, 진유성이 게이트에서 얻은 건 돈과 내공뿐이었다.
그 외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잘 모르겠군.’
진유성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진유성은 일 푼의 실마리를 가지고 전체를 추리해 내는 오성을 가졌지만, 이 경우에는 실마리가 일 푼도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때 상림이 말했다.
“그나저나 수학여행에 가서 꽤 중요한 일이 있었네요. 해남이라니.”
“아냐. 그보다 중요한 게 있다.”
“네? 뭐요?”
“너 아까 상소윤한테 선물받았지?”
“어, 네.”
“그중 친구가 줬다는 것도 받았고?”
상소윤은 지종수가 부모님 선물이라고 주는 걸 받지 않으려고 했다.
온통 비싼 것투성이라 너무 부담스럽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종수는 진유성을 가리키며, 진유성도 선물을 드리지 않느냐고 따졌다.
물론 지종수와 진유성은 설정이 달랐다.
지종수는 그저 같은 학급의 친구였고, 진유성은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들끼리의 교류가 있던 친구였으니까.
지종수의 논리는 맞지 않았다.
하지만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속담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상소윤은 진유성과 같이 살고 있는 것을 들킬까 싶어서 지종수의 선물을 받았다.
지종수가 받지 않으면 쓰레기통에 버려 버릴 것이라고 협박을 하기도 했지만.
참고로 진유성은 지종수가 쓰레기통에 버리면 제일 먼저 낚아채기 위해서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지종수가 산 선물은 유혜연과 상림에게 전달되었다.
“그 놈팽이 이름이 뭐라고 했죠?”
“지종수.”
“지종수……. 이름부터 마음에 안 들어요.”
상림이 인상을 찌푸렸다.
상림은 아버지니까, 금이야 옥이야 키운 딸에게 들이대는 남학생이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게다가 이 자식이 돈이면 다 되는 줄 안다.
다짜고짜 비싼 선물을 보내는 것도 꼭 돈이 많다고 자랑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선물은 마음에 드느냐?”
“아뇨? 안목이 똥이던데요. 이상한 것들만 사 왔어요. 관심 받는 거 좋아하는 놈들이…….”
“내가 골랐다.”
“……나 그런 말을 하면서 안목을 폄하하겠지만, 속하가 보기엔 대단한 안목이었습니다. 모두 고급지고 세련되더군요.”
“닥쳐.”
“넵.”
“그거 네 선물 아니야. 내 거야.”
“네? 왜요?”
“왜긴 왜야. 내가 입고 쓸 걸 골랐으니까.”
어쩐지 취향이 딱 관심종자다 싶었다.
딱!
상림은 이마만 부여잡을 뿐 이유를 묻지도 않았다.
왜 때리냐고 물으면, 얼굴이 불경했다고 할 거니까.
“아니! 그래도 이건 제 거잖아요! 소윤이 친구가 저한테 준 건데!”
지종수는 어느새 놈팽이에서 소윤이 친구로 격상됐다.
“넌 입지도 않을 것들이잖아. 사이즈도 안 맞아.”
실제로 옷의 사이즈조차 진유성 사이즈였다.
기골이 장대한 상림이 입기엔 좀 작았다.
“그래도 성의가 있죠! 사윗감 후보 중 한 명이 준 건데. 물론 후보가 백만 명쯤은 있지만!”
지종수는 소윤이 친구에서 사윗감 후보로 격상됐다.
그만큼 물건을 뺏기지 않겠다는 굳건한 의지가 보였다.
이쯤에서 상림이 타협안을 제시했다.
“교주님 그럼 옷만 가져가십쇼. 어차피 사이즈도 안 맞으니까. 가방과 벨트는 제가 갖겠습니다.”
상림의 타협안은 일견 합당해 보였다.
진유성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너도 둘 중 하나 골라.”
“무슨 두 개요?”
“고자가 될래, 대머리가 될래?”
“……저 이제 교주님이 탁기 안 걸려 줘도 되는데요?”
이제 상림은 일 갑자의 내공을 가지게 되었다.
이는 진유성이 열심히 걸러 준 덕도 있지만, 상림의 단전이 본래부터 거대했던 이유도 있었다.
힘을 잃어버리긴 했지만, 그도 중원에서는 적수가 별로 없는 고수였다.
덕분에 진유성이 탁기를 걸러 주지 않아도 내공의 정순함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진유성은 고개를 저었다.
“탁기는 계속 걸러 줄 거야.”
“근데 왜 골라요?”
“고자를 고르면 내 주먹이 너의 하반신으로 향할 거고, 대머리를 고르면 내 손이 너의 상반신으로 향할 거니까.”
“…….”
외부의 압력을 행사하겠다는 소리를 참 요란하게도 돌려 말한다.
결국 상림은 둘 중 하나가 아닌, 다른 선택지를 골랐다.
“속하가 죄송합니다. 천성이 물욕이 많게 태어난지라.”
사과였다.
진유성이 고개 숙인 상림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그래, 고개 숙인 남자가 되는 것보다는 직접 고개를 숙이는 게 낫잖아.”
“……그럼요.”
“모근이 소멸하는 것보다는 물욕이 소멸하는 게 낫고.”
“물론입니다.”
“가봐. 물건은 내가 알아서 가져갈 테니까.”
상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인사를 하고는 진유성의 방을 빠져나왔다.
상림은 알고 있다.
진유성의 기감이 인지하는 범위가 미친놈처럼 넓어서 지금 욕을 하면 다시 불려 갈 수도 있다는 것을.
하지만 도저히 욕을 안 하고는 참을 수가 없었다.
“모발!”
상림이 투덜거리며 1층으로 향했다.
* * *
금요일 저녁에 한국으로 돌아온 대정고 학생들은 수학여행의 피로를 풀려 이틀간의 휴일을 즐겼다.
그렇게 주말이 끝나고 돌아온 월요일.
다시 대정고 학생들이 학교로 등교했고, 그중에는 진유성과 상소윤도 있었다.
최근에는 유혜연이 진유성과 상소윤을 데려다 주지 않았다.
임신 6개월 차에 접어들면서 매사에 조심을 하고 있는 탓이었다.
물론 이는 진유성의 무력에 대한 믿음도 있었다.
‘유성이랑 통학하면 안전하겠지. 간첩인데.’
그렇기 때문에 진유성과 상소윤은 택시를 타고 대정고로 등교했다.
두 사람이 대정고 정문에 내려서 걸어 올라가려는 순간.
양복을 입은 한 무리의 남자들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정확히는 그들이 아니라, 진유성에게로.
“진유성 학생 되십니까?”
“맞는데요?”
“김정철 회장님이 꼭 뵙고 싶어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