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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133화 (133/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33화>

* * *

낚시 일정을 끝낸 요트는 본래 예정되어 있던 일정으로 돌아갔다.

본래 하이난 요트 투어는 선셋(Sunset : 해넘이)이 주가 되는 코스였다.

바다 위에서 수평선 위에 걸쳐진 노을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질 수밖에 없었다.

“예쁘다…….”

“진짜 예쁘네.”

학생 몇몇이 스마트폰으로 노을을 찍자, 상소윤이 선실로 후다닥 들어가서 셀카봉을 가져왔다.

“다들 이리 와 봐.”

그리고는 노을을 배경으로 선미에 옹기종기 모여서 사진을 찍었다.

진유성은 좀 귀찮았지만, 패배자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아량을 베풀었다.

군말 없이 카메라 앞에 서 준 것이었다.

그렇게 한참 셀카 삼매경에 빠져 있던 상소윤은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을 건지고 나서야 셀카봉을 내려놓았다.

압도적인 패배와 굴욕적인 농락을 당하며 시무룩해져 있던 연합군도 기분이 꽤 좋아진 듯했다.

“생각해 보니까 아까 진유성이 잡은 물고기 찍을걸.”

“그러니까. 사진 찍을 생각을 못했네.”

“아무도 안 믿겠지?”

“안 믿지. 나 같아도 안 믿을걸? 선상 낚시 와서 3m짜리 참치를 잡았다고 하면 누가 믿냐?”

“근데 그 참치도 웃기다. 그냥 도망가면 되는데 배 위로 펄쩍 뛰어오르네.”

“그니까.”

그들은 참다랑어를 사진에 담지 못한 걸 아쉬워했지만,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았다.

아무도 믿지 못할 일을 그들끼리만 공유한 것이니까.

남들에게 말하면 믿어 주지 않겠지만, 어쨌든 그들은 목격했으니까.

아마 참치를 먹을 때마다 오늘 일이 생각나지 않을까?

많은 이들이 콘서트에 가서, 또 관광지에 가서 사진을 찍는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흘러 그 사진을 들여다보는 일은 드물다.

그러니 사진을 찍을 시간에 눈으로 담아 두는 게 나을 때도 있었다.

다들 이와 비슷한 감상을 공유하고 있었다.

셀카봉을 내려놓은 상소윤이 선미에 우두커니 서 있는 진유성을 쳐다보았다.

친구들은 잘 모르는 것 같았지만, 진유성은 이럴 때보면 정말 특별하다.

다른 이들은 파도에 흔들리는 배 때문에 똑바로 서 있지 못한다.

균형을 잡기 위해 조금씩 움직이거나, 자세를 낮추고 있었다.

하지만 진유성은 미동도 없이 똑바로 서 있었다.

저 완벽한 균형 감각이라니.

역시 간첩이다.

상소윤이 문득 진유성에게 다가가 물었다.

“뭔 생각을 그렇게 하냐?”

“아무 것도 아니다.”

사실 진유성은 중원에서 봤던 해를 떠올리고 있었다.

아마 눈앞의 노을과 중원의 노을은 똑같은 태양으로부터 탄생한 것일 터였다.

그는 타트바를 통해 세계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지구와 중원은 똑같은 우주의 똑같은 행성이다.

다만 차원이 다를 뿐이었다.

본래 차원이 다르면 차원의 위상도 달라야 하는데, 그 위상이 같아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었고.

하지만 복잡한 사실은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 보는 저 노을과 천신궁에서 보던 노을이 같은 태양이라는 게 중요한 것이었지.

“…….”

중원에서의 20여 년은 불행했고, 다음의 30여 년은 행복했고, 다음의 60여 년은 고독했다.

즉 행복했던 시간의 곱절 이상이 불행하고 고독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중원 생각이 종종 나는 건, 그곳이 고향이기 때문이었다.

그의 사전적 고향은 고려이지만, 그가 사랑하고 기억하는 모든 것들은 중원에 있었다.

‘시간이 더 많이 흐르면, 한국이 고향이 되겠지.’

진유성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상소윤이 재차 물었다.

“뭔가 생각하는 모양새인데?”

“수평선 위에 노을이 걸린 모양새가 팔광처럼 생겼다.”

“팔광? 팔광이 뭐야?”

“화투 패 이야기다.”

“아, 그거?”

상소윤이 어깨를 으쓱했다.

누가 봐도 표정은 고향을 떠올리고 있는 것 같았는데, 말을 돌리는 걸 보면 진유성도 제법 귀엽다.

“짜식.”

상소윤이 진유성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 주자, 진유성이 얼굴을 붉혔다.

그 모습에 상소윤이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났다.

“뭐야? 얼굴을 왜 붉혀?”

“모른다. 책에서 보니까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 꼭 얼굴을 붉히던데. 이유가 있으니 쓴 게 아닐까?”

“없어! 그딴 거! 아니, 대체 무슨 소설을 본 거야?!”

“요즘은 무협 소설이 볼만한 게 없어서 판타지로 넘어갔다. 거기서 보면 늘 이러더군.”

“아니, 근데 어떻게 얼굴이 붉어지는 걸 맘대로 조절하지?!”

“숨을 참으면 된다.”

실제로는 숨을 참은 건 아니다.

내공을 이용해 모세 혈관을 자극하면 혈류의 속도를 빠르게 만들 수 있고, 얼굴을 붉힐 수 있다.

“야, 너 배우 해 봐. 연기하면 잘하겠다.”

“하면 잘하겠지만, 할 수 없다.”

“왜?”

“연기는 박색한 이들이 하는 것인데, 난 박색하지 않으니까.”

“미친놈인가?”

엄밀히 따지면 진유성은 중원에서는 그저 그런 얼굴이었고, 한국에서는 미의 기준에 들어맞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진유성은 자신이 중원에서도 괜찮은 얼굴이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욕하지 말고 팔광이나 봐라.”

진유성이 그렇게 말하며 다시 노을로 시선을 돌렸다.

상소윤도 소름이 돋은 팔뚝을 쓸어내리며 노을로 시선을 돌렸고.

그사이…….

‘팔광? 팔광이라고?’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지종수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결국 요트비는 그가 지불하게 되었다.

예상치 못한 거액의 지출이 생겨서 지종수는 면세점에서 사고 싶었던 것들을 살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면세품이 아니다.

그런 건 한국에서도 살 수 있다.

중요한 건 구겨진 자존심이지.

‘팔광……!’

지종수는 진유성을 무너트릴 방법을 드디어 찾은 것만 같았다.

연합군의 2차 작전이 지종수의 머릿속에서 꽃피고 있었다.

* * *

선셋 투어를 끝내고 호텔로 돌아온 3학년 1반 학생들은 연기훈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보고했다.

낚시를 했고, 진유성이 가장 큰 걸 잡았고, 단체 셀카도 찍었다.

단체 셀카까지 보여 주니 연기훈은 자신의 교육이 제대로 먹혀들었다고 생각한 듯 만족한 얼굴이 되었다.

다만 학생들은 진유성이 참다랑어를 잡았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어차피 믿지도 않을 거니까.

그렇게 보고를 끝내고 저녁을 먹은 이들은 다른 학생들과 함께 한곳에 모여 밖으로 나섰다.

본래 저녁 식사 이후의 시간은 자유 시간이지만, 오늘은 유일하게 따로 스케줄이 있기 때문이었다.

바로, 송성가무 쇼의 단체 관람이었다.

송성가무 쇼.

태국의 알카자 쇼, 프랑스의 리도 쇼와 함께 세계 3대 쇼라고 불리는 하이난의 명물.

1시간짜리 공연 치곤 티켓 값이 굉장히 비싸지만, 보고 나면 그 누구도 돈 아깝다는 소리를 안 하는 공연이었다.

공중과 좌우 객석까지 모두 활용하는 화려한 무대 장치와 기예는 그야말로 하이라이트의 연속이니까.

그래서 대정고 학생 대부분은 쇼를 관람하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공연 시간도 적절하고, 중국어를 몰라도 스토리를 완벽히 이해할 정도로 연출이 좋았다.

정말 재밌는 공연이었다.

모두가 이런 감상을 공유하고 있었다.

3학년 1반의 몇몇만 제외하곤.

“음…….”

“재밌긴 한데…….”

“뭔가 좀…….”

상소윤과 지종수를 비롯한 학생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재밌었다.

하지만 어디선가 이것보다 더 상위 호환인 공연을 본 것만 같았다.

그때 진유성이 툭 내뱉었다.

“돈이 아깝군.”

“그 정도였나?”

“물론이다. 차라리 내 요리 쇼를 무대에 올리는 게 낫겠다.”

진유성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진유성은 시각 정보보다 기감 정보를 훨씬 많이 이용하는 사람이었다.

화려하게 번쩍이고, 붕붕 날아다닌다고 하더라도 현혹되는 법이 없었다.

이런 거에 현혹될 수준이라면 중원에서 환검(換劍)을 쓰던 이들에게 죽어도 백 번은 더 죽었을 것이었다.

모든 영화와 드라마를 좋아하는 진유성이 블록버스터는 잘 보지 않는 이유도 이것 때문이었고.

이런 상황이다 보니까, 진유성에게 송성가무 쇼는 재미가 하나도 없는 극이었다.

그 순간, 진유성을 제외한 친구들이 경악했다.

그들이 왜 송성가무 쇼가 재미없었는지를 깨달은 것이었다.

‘진유성에게…….’

‘중독됐다.’

매일매일 진유성의 쌩 쇼를 보고 사는 그들이다.

축구를 할 때는 축구왕 슛돌이를, 요리를 할 땐 요리왕 비룡을 방불케 했고.

또 며칠 전에는 소멸 마술과 공중 부양 마술을 구경하지 않았나.

원래 자극에는 역치가 있는 법.

3학년 1반의 아이들은 진유성이 하는 또라이 짓을 하도 많이 보다 보니까, 어지간한 자극에는 심드렁해지게 되었다.

즉, 진유성의 또라이 짓이 없으면 살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뭔가 잘못됐다.’

지종수가 분노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것은 굴욕이었다.

진유성은 그들을 농락하고 패배를 안겨 줬건만, 막상 그들은 진유성에게 의존하고 있다니.

역시 방법은 하나뿐이다.

진유성을 이겨야 한다.

* * *

어둠 속에 일곱 명이 모여들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여섯 사람은 지종수의 부름을 받고 모여든 것이었다.

“일단, 요트비는 내가 냈어.”

지종수의 말에 나머지 여섯 명이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 모인 모든 이들은 모두 한 번씩 변절을 했다.

다들 진유성에게 사과를 하고, 월척을 낚았다.

사과를 하지 않은 사람은 고인수뿐이었지만, 고인수 역시 암묵적으로는 진유성의 도움을 받았다.

고인수가 정말로 의지를 세웠다면 진유성 덕분에 잡았던 물고기를 기록으로 인정하지 않았을 거니까.

그렇기 때문에 연합군은 자연스럽게 해체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모두가 악마 같은 진유성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난 것이었다.

하지만 지종수가 다시 그들을 불러 모았다.

“섯다를 치자.”

팔광이라는 진유성의 말을 듣고 떠올렸다.

일곱 명이서 팀을 먹고 섯다를 친다면 절대 패배할 수가 없다.

룰은 정하기 나름이겠지만, 섯다의 최대 인원은 다섯 명 정도다.

나머지 세 명은 망을 보거나, 진유성의 패를 훔쳐보면 된다.

그러나 상소윤이 손을 들어 반대했다.

“그건 너무 사기 아니야? 돈을 걸고 사기를 치는 거잖아.”

모두 비슷한 생각이었다.

엄밀히 따지면 낚시 내기와 다를 바가 뭐가 있냐 싶지만, 그래도 섯다는 도박이다.

사기 도박의 느낌이 들어서 거부감이 상당하다.

그러나 지종수가 고개를 저었다.

“승리만 거두고, 돈은 돌려주자.”

“아, 진유성을 패배시킨 다음에 돈은 다 돌려주자?”

“그게 더 완벽한 패배가 아니겠어?”

꽤 그럴듯했다.

게다가 몰랐는데, 지종수의 그릇이 상당하다.

모두 변절해서 혼자 피해를 봤는데, 다시 모두를 포용하다니.

그릇이 간장 종지보다 작은 진유성과 비교할 수 없다.

“근데 어떤 식으로 이기게?”

“수신호를 만들면 되지 않을까?”

총 20개의 패로 진행되는 섯다는 플레이어들이 두 장의 패를 받는다.

패에는 1부터 10까지의 숫자가 적혀 있는데, 플레이어는 패 두 장을 합해 나온 숫자의 일의 자리를 가지고 승부한다.

예를 들면 1과 8의 패를 가졌다면 합쳐서 9끗.

3와 7의 패를 가졌다면 합은 10이니까, 일의 자리는 0끗.

끗에서는 0끗이 제일 약하고, 9끗이 가장 강한 것이었다.

하지만 예외적인 규칙으로 같은 숫자 두 개를 가지면 땡이 된다.

1이 두 개가 있으면 1땡.

10이 두 개가 있으면 10땡(장땡).

땡은 무조건 끗을 이긴다.

1땡이 9끗보다 강하다.

즉, 패의 강함은 0끗부터 9끗까지, 다시 1땡부터 10땡까지이다.

섯다를 다룬 도박 영화에서는 땡이 계속 나오지만, 사실 땡은 잘 나오는 패가 아니다.

보통 끗으로 승부한다.

“끗은 7, 8, 9 정도만 수신호를 만들고, 땡은 나왔는지 안 나왔는지 정도만 수신호를 만들면 되지 않을까?”

“우리끼리의 싸움은 지는 쪽이 피하고, 진유성은 짓밟고?”

“그렇지. 한두 판은 질 수도 있겠지만, 결국 계속 가면 이길 거야.”

“진유성을 빈털터리로 만들고.”

“패배감을 느낄 때 굴욕적으로 돈을 돌려주자.”

“완벽해.”

7명이 동의했다.

그렇게 연합군의 2차 작전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도 진유성을 낚아오는 건 상소윤의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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