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31화>
* * *
본래 싼야 선셋 요트 투어에는 낚시 코스가 없다.
바다낚시를 하려면 육지에서 멀리 나가야 하는데, 반면 요트 투어는 해변가를 돌며 명소들을 관광하는 코스였다.
하지만 한국이나 하이난이나 똑같았다.
돈이면 안 되는 게 없었다.
투어 요금 2배에도 난색을 표하길래 3배를 불렀더니 오케이가 떨어졌다.
본래 선셋 요트 투어는 1인당 8만 원이지만, 그들은 대형 요트를 이용하게 되었다.
인원도 많고, 낚시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1인당 비용은 12만 원.
여기에 3배를 불렀으니, 1인당 36만 원.
인원은 진유성을 포함해 8명.
288만 원.
돈이 많은 대정고 학생들 입장에서도 사소하게 여길 금액은 아니었다.
처음엔 정새롬과 여학생들이 비용이 너무 많다며 걱정을 했다.
하지만 진유성과 가장 가까운 상소윤이 아무렇지도 않아하자, 다들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도 그럴 게, 상소윤은 진유성의 재력을 잘 알고 있었다.
진유성은 요리를 해야겠다며 압구정 상가를 사는 놈이었다.
‘게다가 어차피 북한 돈이잖아?’
상소윤도 제대로 아는 건 아니었지만.
그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캡틴, 문제 있는 낚싯대 없어요?”
“문제?”
“네. 낚시가 안 되는데 고장 난 건 아닌 낚싯대라고 해야 하나?”
본래 반 진유성 연합군은 낚싯대를 하나 사서 불량품으로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막상 보니까 낚싯대가 너무 튼튼했다.
바닷물고기를 낚도록 만들어져서 그런지, 고장을 내기도 힘들어 보였다.
망치 같은 걸로 부숴 버릴 수야 있겠지만, 그래서는 진유성을 속일 수가 없다.
그래서 중국어를 잘하는 고인수가 캡틴에게 물어본 것이었다.
고인수의 질문에 오늘의 요트 운행을 책임질 바다 사나이가 씩 웃었다.
“낚시 내기 때문에?”
“네.”
“있지. 왜 없겠어?”
“있다고요? 진짜요?”
“바다엔 없는 게 없지.”
“어떤 낚싯대인데요?”
“작은 물고기를 잡을 때는 문제가 없는데, 무게가 나가는 놈이 미끼를 물면 릴이 풀려 버려.”
“어느 정도 무게요?”
“글쎄? 한 3kg 정도?”
“그 정도면 작은 거죠?”
“작지. 우리가 갈 곳은 큰 물고기들이 잡히는 곳이야. 거기선 이 낚싯대 못 써.”
고인수는 좀 놀랐다.
자신이 원하는 그대로의 물건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런 물건이 왜 있는 거예요?”
“낚시에 자존심이 걸려 있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아하.”
고인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대여할게요.”
“이런 용도의 낚싯대는 팔기만 하는데? 대여했다가 우릴 탓하는 경우도 있어서.”
“그럼 살게요. 얼만데요?”
“특수 제작한 거라서 좀 비싸. 300달러.”
“요트 비용에 달아 둬요. 한 번에 계산하게.”
캡틴이 손으로 OK 모양을 만들고는 뒤를 돌았다.
표정 관리를 하기 위해서였다.
‘이놈들 바보야?’
한국인 관광객이 원하는 낚싯대가 실제로 있긴 하다.
물고기가 조금만 무거워도 낚싯줄을 잡아주는 제동 장치가 풀려 버리는 낚싯대가.
하지만 세상에 어떤 미친놈이 그런 제품을 일부러 만들겠는가?
그건 그냥 불량품이었다.
낚싯대를 대량으로 구매하다가 재수 없게 걸린 불량품.
원래는 버려 버리려다가 혹시 환불이 될까 싶어서 가지고 있던 건데…….
그게 무려 300달러로 돌아왔다.
웃음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기분이 좋아진 캡틴은 이들에게 바다낚시의 손맛을 제대로 알려주는 걸로 보답하기로 했다.
낚싯대만 던지면 월척이 줄줄 낚이는 명소가 있다.
그사이, 모든 준비를 끝낸 연합군이 머리를 맞댔다.
“이러면 낚은 물고기 크기로 내기를 하면 되겠지?”
“그치.”
“우리도 큰 놈 한 마리 잡으면 나머지는 자꾸 놓치는 척하자. 안 그러면 진유성이 의심할 수도 있잖아.”
“낚시 잘하는 사람?”
“나. 아빠 따라서 많이 해 봄.”
“나도 몇 번 해 봤어.”
“노하우 좀 공유해 봐.”
그렇게 학생들이 해변에서 음모를 꾸미는 사이.
상소윤은 쉬고 있는 진유성을 데려오기 위해 호텔로 향했다.
6층에 도착해 문을 두드리려는데, 두드리기도 전에 문이 벌컥 열렸다.
“뭐냐, 상소윤.”
“어떻게 알고 문을 열어?”
“마실 걸 사러 나가려던 참이다.”
“너 선생님 연락받았지?”
“받았다.”
진유성도 연기훈에게 요트 투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요트 투어를 함께 가는 것은 이미 정해져 있는 일이었다.
문제는 진유성에게 내기를 거는 것이다.
그리고 상소윤은 진유성의 성향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이럴 때일수록 정공법으로 나서야 한다.
“야. 얘들이 너 패배자로 만들겠다고 벼르고 있는데, 어째? 내기 한 판 하실?”
“내기? 무슨 내기 말이냐?”
“낚시. 가장 작은 물고기 잡는 사람이 비용 전액 부담. 콜?”
“헤밍웨이의 소설을 보았느냐?”
“뭐?”
“바다낚시에 가장 잘 어울리는 직업이 뭐라고 생각하나?”
“당연히 어부지.”
“아니다.”
“그럼?”
“노인이다.”
노인(老人)의 정의가 늙은 인간이라면 진유성은 노인이 아니었다.
그는 늙지 않으니까.
하지만 나이로만 따지자면 진유성도 노인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었다.
즉, 그는 바다낚시를 잘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소리였다.
“대체 뭐라는 거야?”
“낚시는 세월을 낚는 것이다. 세상에 나만큼 긴 세월을 낚아 본 어부는 없지.”
“…….”
상소윤은 가끔씩 진유성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은 유독 심했다.
“그래서 한다고?”
“당연하지. 앞장서라.”
진유성의 동의를 받은 상소윤은 친구, 아니 연합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타깃을 낚았다고.
* * *
대형 요트가 출항했다.
“하얀 천과 바람만 있으면…… 난 어디든지 갈 수 있어.”
진유성이 새하얀 요트의 돛 아래서 주접을 떨었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진유성이 저러는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다들 작전을 생각하느라 평소보다 말수가 적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금방 사라졌다.
요트가 두바이를 본 따 만든 인공섬 봉황도를 돌기 시작하자 학생들의 말수가 많아졌다.
여느 관광객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저거 두바이 타워 따라 한 건가?”
“그런 거 같은데? 너 두바이 타워 가 봤냐?”
“당연하지. 거기 12층에 우리 아빠 회사 있잖아.”
“아, 맞다. 너 원유 쪽이었지.”
대화의 내용은 좀 달랐지만.
그렇게 1시간가량 투어를 즐기던 학생들이 눈을 빛냈다.
해변을 돌던 요트가 속력을 내며 바다로 나아갔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진유성을 패배자로 만들기 위한 작전이 시작되었다.
“자자, 다들 이리로.”
캡틴이 학생들을 불러 모으고 선실 안에 놓아 둔 낚싯대를 하나씩 나눠 주기 시작했다.
고인수가 눈빛을 보내자, 캡틴이 눈을 찡긋했다.
그도 불량 낚싯대를 누구한테 주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캡틴이 건네주는 낚싯대를 받은 진유성이 가볍게 휘둘러 보았다.
역시 이 세계는 기술이 좋다.
무게 중심도 잘 잡혀 있고, 낭창낭창 휘는 게 무기로 써도 좋을 것 같았다.
8명의 학생들에게 낚싯대가 분배되는 사이, 요트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바다에 떠있는 암초를 여(礖)라고 부르는데, 생김새가 죽순을 닮아 죽순여라고 불리는 이곳이 오늘의 낚시 스폿이었다.
사실 제대로 된 낚시꾼들은 죽순여 위에서 낚시를 하지만, 캡틴이 생각하기에 그건 좀 위험한 것 같았다.
초보자들은 자칫 잘못하다가는 물에 빠질 수가 있었다.
캡틴은 죽순여 좌측에 요트를 정박했다.
그리곤 학생들에게 낚싯대를 던지는 법과 물고기를 끌어오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고인수의 중국어가 원어민 수준이기에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었다.
오늘의 미끼는 웜이라는 인조 미끼라서 미끼를 끼는 법은 배우지 않았다.
낚시가 시작되었다.
“어, 어! 잡았다!”
낚시가 시작된 지 5분도 지나지 않아서 물고기가 낚였다.
“오, 뭐야.”
“처음이라며?”
가장 먼저 물고기를 잡은 건 정새롬이었다.
정새롬은 손바닥만 한 물고기를 낚아 자신의 통에다가 집어넣었다.
어차피 낚시가 끝나면 전부 풀어 주겠지만, 내기를 위해서 일단은 통에다가 넣어야 했다.
그 뒤로 하나둘씩 물고기를 낚아 올리기 시작했다.
유일하게 물고기를 낚지 못한 건 진유성뿐이었다.
“어이, 패배자.”
“뭐야? 아직도 못 잡았어?”
기세등등해진 학생들이 진유성을 놀리자, 진유성이 인상을 팍 썼다.
“경거망동하지 마라. 낚시는 세월을 낚는 것이다.”
“세월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꼭 못하는 애들이 좀만 기다려 보라고 하더라.”
지종수의 도발에 울컥한 진유성이 낚싯줄에 내공을 흘려보내려다가 꾹 참았다.
진유성은 마음만 먹으면 미끼를 움직여서 물고기의 입 안에 직접 넣을 수 있었다.
아니, 그보다 더 쉬운 방법도 있다.
바다 속 물고기를 허공섭물의 수법으로 직접 끌어오는 것이었다.
이 경우에는 수공섭물이겠지만.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공정함 때문이었다.
그는 의외로 내기에 있어서 공정함을 추구하는 이였다.
축구를 할 때도 내공이나 의념은 전혀 사용하지 않고, 순수히 육체만 이용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지닌바 체술이야 어찌할 도리가 없지만, 경쟁 조건 자체에서 앞서 나가고 싶진 않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안 잡혀?’
너무 안 잡혔다.
진유성이 투덜거리며 미끼를 당겨 보았다.
혹시 빠졌나 했는데, 제자리에 잘 있다.
물고기들이 다른 이들의 미끼는 덥석덥석 무는데, 자신의 것만 피하는 것 같았다.
진유성은 바다낚시가 처음이었다.
해남에 숨어 지낼 때도 낚시를 하기 보다는 직접 바다에 뛰어들어서 물고기를 잡았다.
낚시 같이 팔자 좋은 일을 할 만한 여유가 없었다.
중원을 일통한 이후에는 자금성을 떠나지 않아서 바다에 갈 일이 없었다.
강가 낚시는 몇 번 해 봤지만, 자주 하진 않았다.
자신이 나타나면 낚시로 삶을 연명하는 이들의 일상생활에 지장이 가기 때문이었다.
한데, 생각해 보면 그때도 물고기를 거의 잡지 못했던 것 같다.
‘설마 나한테 어운(漁運)이 없나?’
낚시꾼들은 물고기 운은 타고나는 거라고 말한다.
또 낚시는 9할이 운이고 실력이 1할이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아무리 미끼를 잘 던지고, 미끼를 문 물고기를 잘 끌어올 수 있어도, 물고기가 물지 않으면 말짱 꽝이니까.
“뭐야, 진유성. 아직도 못 잡았어?”
“에이, 설마 아직도 한 마리도 못 잡았겠어?”
“그치. 바보도 아니고.”
“잡았는데 풀어 줬겠지.”
기회를 잡은 연합군이 진유성에게 무차별 비난 폭격을 쏟아냈다.
특히 처음으로 진유성에게 우위에 선 지종수가 미쳐 날뛰고 있었다.
진유성이 다시 한번 인상을 쓰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호들갑 떨지 마라.”
“걱정돼서 그러지. 지갑 날아갈까 봐.”
“아야, 슬슬 요트비 준비해야 쓰겄다.”
진유성의 트레이드마크까지 따라 한다.
진유성은 또 한 번 내공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참았다.
여기서 내공을 쓰면 정말 패배하는 거다.
내기에 지는 것보다 스스로 정해 놓은 규칙을 어기는 것이 더 처참한 패배였다.
그 순간이었다.
진유성은 요트 반대편에 있던 정새롬과 상소윤의 대화를 들어 버리고야 말았다.
“이러면 낚싯대에 장난을 칠 필요도 없었네?”
“그러게. 그냥 했어도 됐겠다.”
두 사람은 진유성에게 들릴까 소곤거리고 있었지만, 진유성의 귀를 피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역시…… 그랬던 거였군.”
“뭐가?”
“내가 못하는 게 있을 리가 없는데…… 그랬던 거였어.”
진유성의 혼잣말에 지종수와 심도훈이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진유성은 자기 합리화를 시작했다.
이 자식들이 내기에서 이기기 위해서 장난을 쳐 놓은 게 분명했다.
아마 낚싯줄에 물고기가 싫어하는 뭔가를 바른다거나, 미끼에 수작을 부려 둔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으면 물고기가 이토록 미끼를 물지 않을 리가 없다.
생각해 보면 캡틴이 낚싯대를 줄 때도 이상한 점이 있었다.
다른 이들의 낚싯대는 옹기종기 모여 있었는데, 자신의 것만 동떨어져 있었다.
진유성은 정말로 내공을 쓰지 않으려고 했다.
겸허히 패배를 수용하려 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어쩔 수가 없다.
‘공정한 게임의 규칙을 무너트린 것은 저들이다!’
그러나 사실 진유성은 물고기가 미끼를 물지 않는 게 낚싯대 탓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러면 낚싯대에 장난을 칠 필요도 없었네?
이 말에는 물고기가 전혀 물지 않으니까 낚싯대에 장난을 칠 필요도 없다는 의미가 들어 있으니까.
하지만 진유성은 외면했다.
미끼를 물지 않는 건, 전부 낚싯대 탓이다.
내가 못하는 게 있을 리가 없다!
이게 다 낚싯대 탓이다!
완벽한 자기합리화를 끝낸 진유성이 내공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나 내공을 흩뿌려 바다 속 1km를 훑었음에도 모두의 입이 떡 벌어질 만한 크기의 물고기는 감지되지 않았다.
진유성의 내공이 점점 바다 깊은 곳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때, 진유성의 기감에 거대한 무언가가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