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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130화 (130/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30화>

바다 위에서 호텔까지 돌아올 수고를 덜었군.

진유성은 그런 생각을 하며, 타트바가 남겼던 마지막 심상을 떠올렸다.

[어차피 마도사와 당신은 만나게 될 운명입니다.]

[그들을 찾아다닐 필요는 없어요.]

딱히 열심히 찾아다녔던 것도 아니긴 하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다.

어차피 만날 놈들이라면 굳이 찾아다닐 필요가 없으니까.

진유성이 호텔 앞에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저 멀리서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대정고 3학년 1반의 담임인 연기훈이었다.

“진유성!”

연기훈이 헐레벌떡 달려오더니, 목소리를 높였다.

“너 어디 있었어!”

“무슨 일이세요?”

“얘들이 너도 같이 술 먹었다는데, 뭘 아닌 척을 해?!”

진유성은 뒤늦게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호텔을 빠져나왔는지 떠올렸다.

술을 먹을 수 없는 운명에 괴로워하다가 담임 선생을 불렀다.

하지만 이건 절대로 고자질이 아니었다.

‘절대 아니지.’

그저, 그의 친구들이 과한 술에 몸을 가누지 못하는 것이 걱정되어서.

친우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담임을 불렀던 것이었다.

자신은 이토록 그들을 생각했는데, 감히 고자질을 해?

이래서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신의가 바닥에 떨어진 놈들이다.

진유성이 배신감에 부르르 떨다가 표정을 고쳤다.

“술이요? 무슨 술이요?”

“다 알고 왔는데 어디서 연기야?”

연기훈이 확신을 가지고 진유성에게 다가갔다.

연기훈에게는 과자로 길을 만든 게 진유성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물증은 없다.

하지만 100%의 심증이 있다.

이런 엉뚱하고, 상식을 뛰어넘는 짓을 할 사람은 대정고에 진유성밖에 없다.

진유성은 상위 0.1%의 또라이니까.

그렇게 진유성을 연행하기 위해 팔을 붙잡았는데, 연기훈은 깜짝 놀랐다.

진유성의 옷이 흠뻑 젖어 있었다.

호텔 조명이 제대로 닿지 않은 곳이라 몰랐다.

“뭐야? 너 수영했어?”

“아뇨. 조깅을 좀 하고 왔습니다. 공기가 좋아서 생각보다 오래 뛰었네요.”

“이리 와 봐.”

연기훈이 진유성을 조명 아래로 데려왔다.

그러자 보이는 건 머리칼부터 온몸이 흠뻑 젖은 진유성이었다.

몸만 젖은 게 아니라, 옷도 젖어 있었다.

냄새를 맡아 보니 이건 물이 아니라 땀이었다.

연기훈도 운동을 한다.

이 정도 땀으로 몸과 옷을 흠뻑 적시려면 일이십 분 뛰어서는 불가능하다.

최소한 한 시간은 뛰어야지 흘릴 수 있는 땀이다.

“너…… 진짜 조깅했어?”

연기훈의 물음에 진유성이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밤에 조깅을 하면 안 되나요? 방에 친구들이 없길래 심심해서 뛰러 나왔습니다.”

“음…….”

연기훈이 다시 한번 진유성의 옷에다가 코를 대고 킁킁 거렸다.

그러나 이건 부정할 수 없는 땀이었다.

“아니, 음…….”

연기훈의 순도 100%짜리 확신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땀은 운동의 강도와 비례하지 않는다.

전력 질주로 10분을 뛴다고 이 정도로 땀을 흘릴 수 있는 건 아니다.

게다가 얼마 전에 비가 와서 하이난의 밤 날씨는 제법 쌀쌀하다.

바닷가 근처기도 했고.

연기훈이 걸어오는 사이 땀샘을 자극해 미친 듯이 땀을 흘린 진유성은,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얘들이 술을 먹다가 걸렸나요?”

“그래.”

“그럼 저도 벌을 받겠습니다.”

“뭐? 왜?”

“저도…… 얘들이 불러만 줬으면 함께 술을 마셨을 거니까요.”

진유성의 말에 연기훈이 흠칫 놀랐다.

연기훈이 학생들에게 가지고 있는 애정은 거짓은 아니었다.

진유성의 말은 그의 선생으로서의 신념을 자극하는 말이었다.

“너, 얘들이랑 안 친해?”

“같이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긴 하지만……. 막상 중요할 때는 저를 껴 주지 않습니다.”

“왜?”

“제가 좀 이상하다고…….”

진유성의 충격 고백(?)에 연기훈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는 진유성이 이상한 놈이라고만 생각했지만, 그 이상함 때문에 배척을 받을 줄은 몰랐다.

따돌림까지는 아닐 것이었다.

본인이 말한 것처럼 같이 밥을 먹기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니까.

하지만 친구들끼리의 깊은 관계에 낄 수 없다는 건, 그 자체로 따돌림과 다름없다.

“이 자식들이!”

선생으로서의 사명감이 불타오른 연기훈이 분노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곤 진유성에게 방으로 들어가서 쉬라고,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말하고는 호텔로 뛰어 들어갔다.

진유성은 호텔로 들어가는 연기훈을 쳐다보며…….

“후후.”

웃었다.

고자질쟁이들에게 복수를 했다는 마음에 기뻤다.

진유성은 그 뒤로 옷을 말렸다.

내공을 이용해 땀을 기화시키자, 치이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그러자 입고 있던 옷이 새 옷처럼 뽀송뽀송해진다.

진유성은 노화순청과 오기조원의 경지를 이룩했기 때문에, 신체 내부에 노폐물이 거의 없다.

땀을 흘려도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

연기훈이 냄새를 맡을 때는 아차 싶었지만, 다행히 연기훈이 느끼기에는 물과는 다른 냄새였던 것 같다.

그렇게 뽀송뽀송해진 몸과 마음을 가지고 방으로 들어가려던 진유성이 멈칫했다.

한 가지 중요한 의식을 빼먹었다.

스마트폰을 꺼내서 톡톡톡 메시지를 보냈다.

* * *

“와, 진유성 진짜 쪼잔해.”

“그니까. 그거 좀 놀렸다고 선생님한테 고자질을 해?”

“고자질도 아니고, 무슨 과자 길을 만들었다는데?”

“어휴, 또라이.”

함께 술을 마시던 이들이 무릎을 꿇은 채, 진유성 성토 대회를 벌였다

분노한 연기훈이 방부터 치우고 무릎을 꿇고 기다리라고 명령했기 때문이었다.

진유성을 잡아올 때까지.

토하고 기절한 지종수를 제외한 6명이 무릎을 꿇고 있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다.

“진유성 어디로 갔을까?”

“방으로 갔겠지.”

“근데 왜 이렇게 안오지?”

그 순간이었다.

지이잉.

상소윤의 핸드폰이 동시에 진동했다.

이 밤에 뭔가 싶어서 핸드폰을 열어 보니까, 진유성에게 날아온 메시지였다.

“치?”

“뭐라고?”

“아니, 진유성한테 메시지가 ‘치’라고 날아왔는데?”

“치사하다고 보내려다가 담임한테 붙잡힌 거 아니야?”

“그런가?”

“근데 뭐가 치사해? 자기가 먼저 고자질해 놓고선.”

지이잉.

그렇게 말하는 순간, 심도훈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얼? 얼이라고 날아왔는데?”

“무슨 얼?”

“아니, 진유성한테 메시지가 왔다고.”

“너도?”

친구들이 심도훈의 핸드폰으로 시선을 돌리는 사이, 이번엔 정새롬의 핸드폰이 울었다.

마지막 메시지는 ‘스’였다.

“치?”

“얼?”

“스?”

“……치얼스?”

상소윤은 순간 지독한 기시감을 느꼈다.

분명 이와 비슷한 장면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함께 술을 먹다가 걸렸는데.

“그대의 인스타그램에, 치얼스.”

진유성만 쏙 빠져나갔던 경험이.

“……!”

상소윤이 눈을 부릅뜨는 순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야, 이! 나쁜 놈들아!”

연기훈이었다.

* * *

침대 위에서 가부좌를 틀고 명상을 하고 있던 아멜라 메건이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는 침대에서 내려오다가, 어지러운 듯 풀썩 쓰러졌다.

그 모습을 보던 아놀드 벡이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전 세계 각성자들 중 유일하게 아카샤의 의지를 읽을 수 있는 게 아멜라 메건이다.

아멜라 메건을 비난하는 사람들 중에는, 그녀가 최초의 AA급 정신계 각성자였다는 걸 비웃는다.

정신계 각성자들 중 최초로 AA급으로 각성을 했으나, 정치 활동에 빠져서 각성 활동을 등한시했다는 것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그럴 수도 있다.

아멜라 메건은 현재 AAA급 각성자밖에 되지 않으니까.

S급 각성자가 꽤 많아진 지금, 아멜라 메건의 느린 성장은 태업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놀드 벡은 그게 아님을 알고 있었다.

아멜라 메건은 아카샤에 접촉할 때마다 많은 역량을 지불해야 한다.

그녀는 성장을 포기한 대신, 아카샤와 소통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비틀거리던 아멜라 메건이 간신히 똑바로 섰다.

그리곤 말했다.

“현신할 것 같아요.”

“어머니가 현신한다는 말인가?”

“네. 아마도요.”

“…….”

아놀드 벡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다가 간신히 물었다.

“신을 담은 육체는 어떻게 되지?”

“글쎄요.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신이 빠져나가면 고스란히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올지…… 강대한 힘에 자아가 침범당할지…….”

“그도 아니면 죽어 버릴지.”

“맞아요. 알 수 없죠. 하지만 중요한 건 게이트 사태가 끝날 수 있다는 거예요.”

아멜라 메건은 밝게 웃었지만, 아놀드 벡은 입맛이 썼다.

신이 현신한다면 굉장히 높은 확률로 아멜라 메건의 몸에 깃들 것이었다.

그녀는 전 인류 중 유일하게 아카샤의 의지를 읽을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신을 담을 유일한 그릇.

결국 아놀드 벡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입 안이 너무나 써서, 도저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주제를 바꾼 건, 아멜라 메건이었다.

“그는 찾았나요?”

“단서는 좀 잡았어.”

“무슨 단서요?”

“아무래도, 한남동에서 아이언맨 헬멧을 산 적이 있었던 것 같더군.”

“독도 게이트를 클리어할 때 쓰고 나왔던?”

“그래.”

“그럼 그 물건을 판 주인이 얼굴을 알겠군요?”

“그건 아니야. 돈만 놔두고 물건을 가져갔거든. 주인이 가게에 없을 때.”

“흠, 주인이 없는데도 값을 치렀다는 말이군요.”

“그렇긴 한데…….”

아놀드 벡이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아이언맨 진품 헬멨을 가져가면서 1달러만 두고 갔더군.”

* * *

다음 날.

연기훈은 3학년 1반의 문제아들에게 미션 아닌 미션을 주었다.

하이난 관광 코스 중에는 요트 투어가 있다.

흔히 ‘싼야 선셋 요트 투어’라고 불리는데, 요트를 타고 싼야의 명소와 노을을 구경하는 것이었다.

연기훈은 상소윤, 지종수를 비롯한 7명에게 요트를 탈 것을 주문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미션이 아니라, 관광 코스를 추천해준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바로, 진유성과 함께.

7명이 진유성과 함께 요트 투어를 하고, 인증샷을 남겨 올 것을 요구한 것이었다.

친구들 사이에 끼지 못하는 진유성을 위해, 연기훈이 묘수를 낸 것이었다.

즐거운 추억을 함께 하면 그들도 점차 진유성을 받아들일 거라는 생각 하에.

하지만 7명에게는 아니었다.

그들은 진유성에게 고자질과 모함을 당했다.

그런 진유성과 요트를 타고 하하 호호 웃으라고?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요구였다.

하지만 이 요구를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들이 연기훈의 요구를 거절하는 순간, 연기훈은 그들이 진유성을 따돌린다는 모함을 굳게 믿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반 진유성 연합군은 머리를 모았다.

어떻게든 진유성에게 복수를 하고야 말겠다!

“이렇게 하자.”

“뭐?”

반 진유성 연합군이 형성되고 가장 기뻐 보이는 지종수가 의견을 냈다.

“낚시 내기로 요트비를 걸자.”

본래 선생이 이런 미션을 줬으면, 요트 비용을 내주는 게 상식이었다.

그러나 연기훈은 요트를 탈 것만 요구했고, 돈은 내주지 않았다.

니들이 알아서 내라면서.

“진유성도 돈 많잖아. 요트비 낸다고 그게 타격이 오겠어?”

“아니지. 돈이 문제가 아냐. 진유성을 패배자라고 놀릴 수 있잖아.”

“오…….”

“근데 진유성이 낚시를 잘하면? 그 놈은 몸으로 하는 건 다 잘하던데?”

“낚싯대를 이상한 걸로 주면 되지. 릴 나사 몇 개 풀어 놓던가.”

“사기 아니야?”

“비겁한 이에겐 비겁함으로 응징해야지.”

결국 지종수의 의견은 채택되었다.

그렇게 진유성을 패배자로 만들기 위한 작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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