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29화>
문제는 전지함과 전능함이 전혀 다른 개념이라는 것이었다.
전지(全知)는 온전히 앎을 뜻했다.
전지함을 품은 절반, 아카샤는 자신이 할 일이 무엇인지 알았다.
중요한 건, 두 차원의 위상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카샤는 아카식 레코드로 지구 인류의 무의식을 공유하고, 절대적인 의지로 이종의 기운을 배척했다.
인류가 번영할 수 있는 힘을 지식으로 한정지은 것이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인류의 과학이 진보하기 시작했고, 미래에는 달을 넘어 우주에 닿을 것 같았다.
지구와 중원의 차원 위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러나 중원에 남은 전능(全能)은 달랐다.
전능이란 무엇이든 이룰 수 있음을 뜻했다.
하지만 전능함을 품은 절반은 자신이 무엇을 이뤄야하는지 알지 못했다.
스스로가 신에서 떨어져 나온 존재임은 자각했지만, 신의 의도를 파악하진 못한 것이었다.
그는 서역으로 넘어가 마도술을 번영시키기도 하고, 중원으로 돌아와 무공을 번영시키기도 했다.
국가를 세우기도 하고, 국가를 멸망시키기도 했다.
그는 아더왕이라고 불리기도 했고, 공손헌원이라고 불리기도 했고, 단군왕검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긴 시간이 흐르다가, 전능함은 모순을 느꼈다.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자신이 어찌하여 전지함은 이루지 못하는가.
모든 걸 행할 수다는 건, 모든 걸 알 수도 있다는 것 아닌가.
전지함까지 갖춘다면 온전한 신이 될 수 있는 게 아닌가.
그런 욕망에 사로잡힌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상실의 공간을 뛰어넘기로 결정했다.
전지함을 포식하고 전지전능을 이루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상실의 공간.]
[그대를 구성하는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야만 통과할 수 있다.]
그는 상실의 공간에서 전능(全能)의 9할을 잃어버렸다.
그가 잃어버린 전능의 9할은 중원에 남겨졌다.
그것이 입멸공(入滅功)이었다.
입멸공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잠들어 있었다.
우연히 입멸공을 발견한 이들이 그 힘을 품으려고 노력했지만, 그 누구도 입멸공을 품을 수 없었다.
그것은 인간이 품을 수 없는 거대한 힘이었다.
그러다가…….
입멸공이 마침내 한 사람의 의지 아래로 들어오게 되었다.
고려 출신의 왕자이자, 멸마대와 생존대를 거쳐 중원을 일통한 천마신교의 교주.
천마(天魔), 혹은 천신(天神).
진유성이었다.
* * *
타트바의 환영이 끝나는 순간, 진유성은 입멸공의 힘이 저절로 꿈틀거리는 걸 느꼈다.
생, 사, 입, 멸을 관장하는 힘이 자신을 알아봐 달라는 듯 꿈틀거린다.
세상을 멸망시킬 수도 있고, 소생시킬 수도 있는 힘.
그 힘이 격렬히 요동쳤지만…….
진유성의 의지 아래 다시 잠이 들었다.
[아시겠습니까? 당신이 품은 힘은 신의 것입니다.]
“그렇군.”
[본래는 입멸공을 품는 순간 인간의 육체를 벗어던지고 전능함을 자각했어야 하는데…….]
타트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어찌하여 저토록 고강한 힘이 인간의 의지 아래 통제되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없어서였다.
반면 진유성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신이 만든 무기를 인간이 휘두를 수도 있는 거니까.
오히려 타트바의 이야기를 들으며 몇 가지 의문점을 품었다.
“야, 전능이가 상실의 공간 관리자랑 싸워서 이긴 거지?”
본래 상실의 공간은 소중한 것의 10할을 잃어야 한다.
하지만 9할만 잃었다는 건, 싸워서 이겼고 보존할 것을 선택했다는 소리였다.
[그렇습니다. 그는 위상의 수호자를 이겼습니다.]
“근데 왜 전능의 9할을 놓고 간 거야? 그렇다는 건, 더 소중한 9할의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거잖아?”
[아마 자아일 겁니다.]
“자아?”
[신의 힘을 온전히 품을 수 있는 자아를 잃는다는 건, 그릇 자체를 잃는다는 것과도 같으니까요. 힘은 다시 키울 수 있지만, 그릇은 키울 수 없죠.]
“그럼 그 1할을 가지고 지구로 온 놈은 어떻게 됐는데?”
[그게 제가 당신을 기다렸던 이유입니다.]
타트바가 심상을 이었다.
[전능함의 1할을 품은 존재는 지구에 숨어 힘을 회복하고, 아카샤를 침탈해 전지함을 흡수하려고 했습니다.]
힘을 모두 회복한 것은 아니지만, 아카샤는 본래 행함을 위한 존재가 아니었다.
앎을 위한 존재였다.
그래서 전능의 존재는 이 정도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고 아카샤를 공격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카샤는 그의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
두 존재는 격렬히 싸웠다.
결과적으로 아카샤는 대부분의 힘을 잃어서 더는 세상을 경영할 수 없게 되었다.
아카식 레코드를 유지하는 것만이 아카샤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한편 전능의 존재는 아카샤에 의해 이 세계에서 추방을 당했다.
차원의 미아가 될 위기에 처한 그는 어쩔 수 없이 다시금 상실의 공간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번에는 위상의 수호자를 이기지 못하고,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바로, 자아였다.
[신성을 품을 그릇은 사라지고, 막대한 힘만 남았다는 거죠. 그리고 그 힘은 릴리스란 마녀에 의해 괴물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괴물?”
[당신도 알고 있는 존재입니다.]
“설마, 세쌍둥이 마도사?”
타트바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첫째입니다. 둘째와 셋째는 첫째가 만들어낸 존재에 불과합니다.]
아카샤는 세쌍둥이의 행위를 주시하고 있었다.
마도사들은 그들이 아카샤의 눈을 피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피하는 건 아니었다.
전능의 존재에 의해 대부분의 힘을 소실했기 때문에 그들을 견제할 수단이 없을 뿐이었다.
이대로라면 마도사들이 세상을 좀먹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때.
아카샤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진유성이 지구로 넘어온 것이었다.
진유성은 엄밀히 따지자면 전능의 힘을 품은 존재고, 위험한 존재였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에게는 선의가 있었다.
서울역 게이트 안에서 인간들을 구하고, 학교 폭력의 피해자를 구하고, 2차 서울역 게이트를 좌시하지 않았다.
아카샤는 진유성에게 희망을 걸었다.
그가 마도사들의 야욕을 분쇄하려는 모습을 보였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현재 당신은 너무나 약합니다.]
“내가? 내가 약하다고?”
[그렇습니다.]
“너 나한테 3초 컷이었는데?”
[전 그저 아카샤가 힘을 회복하는 동안 태어난 화신에 불과합니다.]
“아까는 나 때문에 기록이 섞일 뻔했다고 기겁하더니만? 어디 기록 한 번 섞어 줘?”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당신이 품은 신의 힘이 희미하다는 뜻입니다.]
타트바가 말을 이었다.
[당신은 고강합니다. 인간이 어찌 이런 힘을 품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하지만 신화적인 영역에서의 싸움이 벌어지면, 무기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야, 그러니까 네가 걱정하는 게, 내가 마도사들을 이기지 못할까봐 걱정하는 거지?”
[그렇습니다.]
“그럼 신경 꺼. 어디 하수가 고수한테 훈수를 두고 있어?”
[…….]
타트바는 도무지 눈앞의 남자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는 신화적인 영역에서 아주 오랫동안 이어져 온 싸움이었다.
신의 힘을 품고 있긴 하나, 인간의 영역에 있는 이가 낙관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남자는 모든 진실을 들었음에도 긴장하는 기색이 없었다.
[마도사들이 당신이 남긴 힘을 품어도 이길 수 있습니까?]
“뭔 소리야?”
[저도 알지 못했던 사실이나, 당신은 상실의 공간에서 힘의 9할을 놓고 온 것 같군요.]
“어, 맞아.”
[중원에 남은 힘을 마도사들이 품는다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흠…….”
진유성은 잠시 타트바를 쳐다보았다.
그는 그녀의 생각처럼 상황을 낙관하고, 근거 없는 자신감을 뿜는 게 아니었다.
믿는 것이었다.
나보다 더 많은 힘을 품은 존재니까 이길 수 없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정말 이길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이길 수 있다고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진유성은 오만한 타입은 아니었으나, 누군가가 자신을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무림에서도 그러했다.
진유성이 등장하기 이전만 해도, 무인들은 지들끼리 검기를 뽑으면 일류네, 검강을 뽑으면 절정이네 하고 떠들어 댔다.
하지만 진유성은 그런 구분을 모두 바보로 만들어 버렸다.
그는 생존대 시절에 검기를 뽑아내는 일류 무인이었다.
검강은 아예 쓸 줄도 몰랐다.
하지만 결과는 어떠한가?
생존대는 무림맹의 유수한 단체들을 격파하며 남하했다.
도망을 치긴 했으나, 무기력하게 도망만 친 건 아니었다.
추격자들을 죽이고, 천라지망을 파훼하고, 절정으로 분류되는 고수들을 수없이 죽였다.
심동과 행동을 뒤섞는 그의 무리(武理)에 모두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현재의 중원은 심동과 행동의 영역으로 무공 고하를 구분하는데, 이는 진유성으로부터 탄생한 것이었다.
[게다가 당신에게는 엑스칼, 아니 입멸검도 없지 않습니까?]
“아, 더럽게 시끄럽네. 그럼 하나 주던가.”
[입멸검은 전능의 영역을 상징합니다. 이곳은 전지의 영역이기에 입멸검이 없습니다.]
“그럼 넌 아무 것도 못 주냐?”
[전 이미 당신에게 몇 가지 것들을 해 드렸습니다.]
“뭔데?”
[이종의 기운을 쓸 수 있게 만들어 드렸죠.]
진유성이 제약 없이 이종의 기운을 쓸 수 있는 것은 타트바의 덕분이었다.
하지만 타트바는 이제 의문이 들었다.
그가 언어 습득의 마도술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묵인 하에서 벌어진 일이다.
하지만 그가 품고 있는 힘.
몸 안에 내제된 소우주.
그것은 아무래도 이종의 기운이 아닌 것 같다.
그것이 이종의 기운이었다면 허공무위의 공간에서 자신에게 타격을 가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이는 진실로 진유성이 홀로 빚어낸 힘이었다.
[또한 마도사들이 당신들의 가족을 찾을 수 없게 인과를 뒤틀었습니다.]
“엉?”
[상림, 유혜연, 상소윤. 마도사들은 그들을 인식할 수 없습니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공격에 포함될 수는 있겠지만, 의도적으로 인질로 잡거나 위해를 가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
진유성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건 좀 괜찮네.”
마음에 든다.
타트바란 놈은 모든 걸 안다고 말하면서 아무 것도 모르는 것 같았지만, 이건 나쁘지 않다.
결국 타트바는 자신이 아무 걱정 없이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무대를 마련해 준 것이었다.
그거면 족했다.
[그리고…… 몇 가지 안배를 했습니다. 저조차 읽을 수 없는 미래이긴 하지만요.]
“안배? 무슨 안배?”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안배란 의식하는 순간, 제 자리에서 이탈하는 놈이니까요.]
“뭐, 그래라.”
진유성이 어깨를 으쓱하자 타트바가 말했다.
[한 가지 힌트를 드리자면, 당신이 게이트에서 얻은 걸 너무 무시하지 마세요.]
진유성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돈이었다.
그가 게이트에서 얻은 거라고는 스탯을 치환한 내공과 돈밖에 없었으니까.
“또 뭐 해 줄 건 없냐?”
[글쎄요. 당신의 얼굴을 본 서울역 1차 게이트 각성자들의 기억을 지워 드릴까요?]
진유성은 모든 게이트에서 얼굴을 숨겼지만, 지구에 대해서 잘 몰랐던 서울역 1차 게이트 때는 얼굴을 숨기지 않았다.
“그건 좀 그런데. 존엄성을 해치는 일이니까.”
[역시 그렇군요…….]
“아, 혹시 이런 건 안 되냐? 그놈들이 인터넷에서 내 얼굴을 봐도 그저 닮은 사람 정도로 여기는. 기억 조작은 좀 그렇고.”
[가능합니다. 외모란 직접 보는 것과 매체를 통해 보는 게 다른데, 그 괴리감을 키우는 정도니까요.]
“오, 그럼 그거 해 줘.”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만, 왜 그런 부탁을 하는 거죠?]
“유튜브 방송 해 보고 싶었는데, 그놈들이 날 알아볼까 봐 안 했거든.”
[…….]
타트바는 전지의 존재, 아카샤의 화신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미래를 예측할 수도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한 가지 속담이 떠올랐다.
고삐 풀린 망아지.
[당신은 두렵지 않나요?]
“뭐가?”
[당신에게 닥쳐올 운명에는 생로보다 사로가 훨씬 많습니다.]
“몰라, 이 자식아.”
진유성이 휘적휘적 손을 휘둘렀다.
“나가야겠다. 내가 찢고 나갈까? 아니면 네가 열어 줄래?”
[길을 열어 드리겠습니다.]
타트바가 손을 흔들자 하나의 길이 열렸다.
[전 머지않은 시점에 세상에 현신할 겁니다.]
“그래? 세상에 나올 때는 좀 꾸미고 나와라. 보기 박색하다.”
[이 외모로 현신하진 않겠지만, 현재 제 모습은 99.9% 이상의 인간이 아름답다고 여기는 미의 무의식입니다.]
“난 늘 0.1%지.”
[제 현신을 돕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어머니를 찾는 이들을 만나면, 그들이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라는 걸 알아주세요.]
“어머니?”
[아놀드 벡도 그중 한 명입니다.]
진유성이 타트바가 열어 준 문으로 나가려다가 멈칫했다.
생각해 보니까 타트바가 전지의 존재라면 물어볼 게 있었다.
“야, 내가 진로에 대한 고민이 좀 있거든. 앞으로 뭘 하고 살아야 할까?”
[최대한 많은 일을 하세요.]
“왜?”
[당신을 품은 존재가 나타난다면 승산을 높이는 길은 다름밖에 없으니까요.]
“아니, 그런 거 말고. 진로, 이 자식아.”
[앞으로 계속해서 나아가세요. 그대의 무는 한계가 없어…….]
“아, 꺼져. 아니, 내가 꺼진다.”
끝없는 잔소리에 진절머리가 난 진유성이 냉큼 길을 빠져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바다 위가 아니었다.
대정고 학생들이 묵고 있는 호텔 앞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