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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121화 (121/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21화>

명확한 증거는 없었다.

하지만 상황이 그러했다.

아놀드 벡이 영국에서 만났던 각성자는 헬멧을 쓰고 있었으며,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선의를 가진 것 같기도 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독도 S급 게이트의 각성자도 헬멧을 쓰고 있었으며,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선의를 가진 채 게이트를 클리어하기도 했고.

두 가지 인물이 동일인일 수도 있다는 의심은 당연한 것이었다.

아놀드 벡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불쑥 손이 내밀어졌다.

손에는 버킷햇이 들려 있었다.

“아, 땡큐.”

아놀드 벡이 모자를 눌러쓰며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모자를 푹 눌러쓴 채, 거대한 캐리어를 밀고 있는 여자가 있었다.

아멜라 메건이었다.

아멜라 메건은 인지도만 따지면 아놀드 벡 못지않은 각성자였다.

정신계 각성자 세계 순위 9위.

정신계 최초로 더블 에이(AA)급 각성.

UN SG 홍보 대사.

미국의 상원 의원 등등.

그녀를 수식하기 위해서는 많은 타이틀이 필요했고, 이러한 타이틀은 전부 인지도와 관련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한국을 방문은 그녀의 대외적인 타이틀과 무관했다.

아멜라 메건은 세상에 알려져선 안 되는 몇 개의 비밀 직함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 방문은 그 비밀과 관련된 것이었다.

“유, 산, 도? 이렇게 발음하는 게 맞나요?”

“우산도. 이게 맞는 발음이더군.”

“어렵네요.”

아멜라 메건이 혀를 굴려 우산도를 몇 번 발음하더니 물었다.

“이들을 얼마나 믿을 수 있나요?”

“글쎄. 국가를 위해 목숨을 건 영웅들이니 끝까지 믿고 싶지. 하지만, 그럴 순 없겠지.”

“보안 등급은? B? C?”

“C로 가지.”

“야박한데요?”

“어쩔 수 없어. 인류의 생존이 달린 문제니까.”

그들은 입으로 대화를 나누는 게 아니었다.

아멜라 메건의 정신 감응 스킬을 통해 의견을 교환하고 있었다.

저 앞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두 명의 한국 각성자들 때문이었다.

한국의 SS급 각성자, 문수혁과 차정명이었다.

아놀드 벡과 아멜라 메건이 VVIP 출국 게이트를 넘는 순간, 문수혁과 차정명이 다가왔다.

악수를 나누고는 차정명이 입을 열었다.

문수혁은 영어를 잘하는 편이 아니지만, 차정명은 네이티브에 가까웠다.

어린 시절 미국에서 오랫동안 유학 생활을 했기 때문이었다.

“반갑습니다. 황제.”

“각성 심사 때 보고는 처음이죠?”

“예. 전화로만 안부를 여쭈었죠.”

“독도 게이트가 잘 해결되어서 다행입니다.”

“덕분입니다.”

차정명이 공손한 자세로 대화를 이어가는 사이, 아놀드 벡은 내심 놀랐다.

‘강해졌다.’

S급을 넘어 SS급에 도달한 지 얼마 안 된 차정명에게서 아주 강한 힘이 느껴진다.

저 정도면 SS급 각성자들 중에서 최상위권일 것 같았다.

어쩌면 한 손 안에 들 수도 있었고.

하지만 중요한 건, 강해진 게 차정명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영어를 못해서 입을 다물고 있는 것 같은 문수혁도 비슷하게 강해졌다.

아놀드 벡이 알기로 저 두 사람은 서로의 노하우를 공유할 정도로 끈끈한 사이였다.

SS급 이상의 각성자들이 서로에게 모든 노하우를 공유한다?

그런 건 들어 본 적이 없었다.

한국은 SSS급 각성자를 보유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실제로 몇 달 전의 아놀드 벡이라면 두 사람의 합공을 이긴다는 보장이 없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이 강해진만큼, 아놀드 벡도 강해졌다.

“팔 굽혀 펴기 100번. 윗몸 일으키기 100번. 스쿼트 100번. 그리고 러닝 10km. 이걸 매일 해!”

영국에서 만났던 정체불명의 각성자.

그의 가르침 덕분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이상했다.

저런 신체 단련 프로그램은 아놀드 벡의 입장에서는 너무 쉬운 것이었다.

그는 마음만 먹는다면 푸쉬 업을 1,000번은 할 수 있고, 100km도 거뜬히 달릴 수 있으니까.

‘분명 뭔가 비밀이 있을 거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저런 일을 해서 강해질 수 있는 확률은 어느 날 갑자기 대머리가 되는 것과 비슷할 거였다.

그 뒤로 아놀드 벡은 여러 가지 훈련 방법들을 강구했다.

그러다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정체불명의 각성자는 저런 프로그램을 ‘신체’로 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심동을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으면 그걸 유형화한다고 생각해 봐.”

심동을 유형화시킨다.

이게 포인트였다.

아놀드 벡은 그날부터 심동을 유형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강한 의지와 마력이 합쳐지면 유형화된 힘이 발현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그는 유형화된 의지로 신체를 움직여 팔 굽혀 펴기를 했고, 윗몸 일으키기를 했고, 스쿼트를 했다.

100번은 불가능했다.

열 몇 번을 하면 탈진해서 쓰러지기 마련이었으니까.

하지만 이 훈련에는 엄청난 효과가 있었다.

그렇게 그는 강해졌다.

차정명과 문수혁이 강해진 만큼 그도 강해졌기 때문에 그들 사이의 격차는 여전했다.

하지만.

‘놀랍군.’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그렇게 강해진 겁니까?”

“저희 말씀입니까?”

“예. 단기간에 놀라울 정도로 강해졌군요.”

“저희만 그런 게 아닙니다. 독도 게이트에 들어갔던 우산도의 멤버들은 모두 강해졌습니다.”

“어떻게요? S급 게이트 안에 뭔가가 있었습니까?”

아놀드 벡이 읽은 보고서엔 그런 이야기는 없었다.

그러나 차정명은 고개를 저었다.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설마 정체불명의 각성자에게?”

“예.”

“혹시 이런 가르침 아니었습니까?”

아놀드 벡이 자신이 하고 있는 훈련을 이야기하자, 문수혁과 차정명이 고개를 갸웃했다.

‘저거…….’

‘만화 내용 아니야?’

티를 내진 않았다.

아놀드 벡을 바보 취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럼?”

“그가 저희의 문제점을 지적해 주었습니다.”

차정명이 독도 게이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세히 이야기해 주기 시작했다.

역시 들으면 들을수록 영국에서 만났던 다스 베이더와 비슷한 것 같다.

아놀드 벡이 그런 생각을 하다가 이어지는 내용에 놀랐다.

“그자가 저와 친하다고 했다고요?”

“예. 검을 빌리면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럼 왜 말을 안했습니까? 전화 통화로도 충분히 말할 수 있지 않았나요?”

“전화 통화는 기밀이 유지가 안 되니까요.”

“기밀……?”

“저희는 독도를 클리어해 준 각성자에 대한 비밀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어떤 집단이 공유하는 비밀을 지킨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이건 99명의 우산도 각성자들이 엄청난 유대감을 가지고 있음을 뜻했다.

랭킹 1위부터 99위까지가 엄청난 유대감을 가지고 움직이는 나라?

‘그런 건 유토피아에나 존재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놀드 벡은 한국의 각성 국력에 대한 평가를 엄청나게 상향시켰다.

그들은 그 뒤로도 정체불명의 각성자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차정명과 문수혁의 입에서는 끝까지 ‘진유성’이란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아놀드 벡에 대한 호감, 존경과는 별개로 이들이 진유성을 왜 찾는지를 알지 못하니까.

특히 아놀드 벡 뒤에 서있는 아멜라 메건은 완전히 신뢰하기가 힘들었다.

유명한 각성자라고는 하지만 미국의 상원 의원인데다가 SG의 홍보 대사가 아닌가?

그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던 아멜라 메건이 입을 열었다.

“여러분은 저희가 정체불명의 각성자를 찾는 걸 원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그런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정체를 숨긴 것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면 협조는 하지 않겠지만, 방해는 하지 않는다는 말로 받아들여도 될까요?”

“한 가지만 말씀해 주시죠. 왜 그 사람을 찾으려는 겁니까?”

단지 강하다는 이유로 아놀드 벡과 아멜라 메건이 나서는 건 좀 이상했다.

물론 아놀드 벡은 자신의 검을 되찾고 싶을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이상했다.

그 순간, 아멜라 메건이 말했다.

“어머니(Mother)의 의지입니다.”

“어머니?”

“아카샤의 의지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죠.”

문수혁과 차정명은 생전 처음 들어 보는 단어에 서로를 쳐다보았다.

아멜라 메건은 문수혁과 차정명의 반응을 본 다음에 입을 다물었다.

아무래도 이들은 모르는 것 같으니까.

결국 그들의 힘으로 정체불명의 각성자를 찾아야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찾을 방법이 있을 것도 같았다.

* * *

김정철 회장, 마도사들의 첫째, 아놀드 벡과 아멜라 메건.

자신을 찾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뭐가 이렇게 오래 걸려?”

진유성은 투덜거리고 있었다.

출국 심사가 너무 오래 걸린다.

그러자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상소윤이 다가와서 핀잔을 줬다.

“왜 이렇게 성격이 급하냐? 기다린 지 얼마나 됐다고.”

“급한 게 아니다. 효율을 추구하는 것뿐이지.”

“그게 급한 거거든.”

상소윤이 진유성의 캐리어 위에 앉자, 진유성이 기겁을 했다.

“어디다가 박색한 엉덩이를 들이미는 게냐?”

“뭐? 박색한 엉덩이?”

“엉덩이를 당장 치우지 못할까?”

“싫은데? 안 치울 건데?”

상소윤이 노트북이 들어 있는 캐리어 위에서 통통 거리자 진유성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다 상림 때문이다.

유혜연의 유전자만 받았으면 착했을 텐데, 상림의 유전자까지 받아서 문제가 발생해 버렸다.

‘한국으로 돌아오면 상림을 혼내 줘야겠군.’

진유성이 그런 생각을 하며 공항의 풍경을 돌아보았다.

공항에는 진유성과 상소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종수, 고인수, 심도훈 등등.

대정고 3학년의 모든 학생들이 있었다.

오늘이 수학여행의 첫날이자 출국 날이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가장 부유한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답게, 대정고는 수학여행의 스케일도 남달랐다.

5박 6일짜리 해외 여행.

목적지는 동양의 하와이라고 불리는 중국의 하이난.

5성급 호텔만 26개나 되는 유명 관광지였다.

그때 진유성과 상소윤의 투샷을 가만히 지켜볼 수 없었던 지종수가 다가왔다.

어떻게든 말할 거리를 찾기 위해서 공항에 배치된 팸플릿을 뽑아 들고.

“야, 진유성.”

“뭐.”

“하이난 가 본 적 있냐?”

“없다.”

“그래? 여기 좋은데.”

지종수가 진유성에게 팸플릿을 내밀었다.

팜플렛에는 하이난의 관광 지도가 그려져 있었는데, 진유성의 눈길을 잡아끄는 것은 관광 지도가 아니었다.

세계 지도였다.

하이난의 위치가 어디쯤 인지 알려주는 세계 지도를 보니, 아주 익숙했다.

“여기였어?”

“왜? 너 여기 알아?”

“알지. 아주 잘.”

사람들이 ‘하이난’이라고만 말해서 몰랐다.

진유성은 하이난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목숨을 건졌고, 입멸공을 얻었고, 중원을 일통할 준비를 끝냈으니까.

그랬다.

하이난은 중원의 최남단에 위치한 해남(海南)이었다.

‘해남이라…….’

방금 전까지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여행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문득 호기심도 들었다.

입멸공이 숨겨져 있었던 이름 모를 섬.

그곳이 이 세계에도 존재할까?

입멸공의 존재는 신비하다.

무와 공을 다루는 힘이지만, 통상적인 무공과는 궤를 달리한다.

그것을 습득하는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입멸공은 인간이 익힐 수 있는 무공이 아니었다.

운이 좋아서 익히긴 했지만, 입멸공의 전부를 인간이 담는 건 불가능할 것이었다.

“흠.”

해남에 도착하면 입멸공이 있던 곳에 가 보고 싶어졌다.

그때, 앞줄의 학생들이 출국 심사를 끝냈는지 오른쪽으로 빠졌다.

진유성이 재빨리 캐리어를 한껏 기울였다.

“야!”

캐리어 위에 앉아 있던 상소윤이 소리를 지르며 내려오려 했지만, 진유성이 한 발 빨랐다.

양팔로 상소윤이 움직이지 못하게 붙들어 버린 채로 출국 심사장까지 이동한 것이었다.

그리곤 캐리어 벨트 위로 캐리어를 올렸다.

상소윤과 함께.

“진공 포장 부탁드립니다.”

진유성의 말에 승무원이 웃음을 터트리고, 상소윤이 후다닥 캐리어에서 내려왔다.

“야, 이 미친놈아!”

진유성은 다시 한번 상소윤의 산혼철조를 맛봐야 했다.

아무래도 상소윤에게 조공(爪功)의 재능이 있는 것 같았다.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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