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120화 (120/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20화>

* * *

첫째와 진유성을 덮었던 게이트가 사그라진다.

온 세상을 뒤덮을 듯 일렁거리던 게이트가 다시금 본래의 크기로 돌아왔다.

그사이, 첫째와 중원의 진유성은 서로를 말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이해했다.

삶의 중요한 순간들을 엿봤으며,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공유했다.

첫째는 이러한 일이 어떤 연유로 일어났는지를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힘의 근원들이 영향을 받은 거군.’

첫째는 자신의 마력으로 상실의 공간을 복사했다.

중원의 진유성은 상실의 공간의 법칙에 영향을 받아 탄생한 개체이다.

이 두 가지 인과가 맞물리며 이런 신비한 일이 발생한 것이었다.

두 사람이 기세를 가라앉히자 천신궁의 하늘을 덮고 있던 구름이 점차 걷혀 갔다.

파랗고 높은 하늘이 보이며, 구름 사이로 햇살이 부서져 내렸다.

따사로운 햇빛을 맞으며 첫째가 손을 휘둘렀다.

충돌의 영향으로 형편없이 나동그라져 있던 호문클루스가 어디선가 날아왔다.

동시에 진유성의 검에 베였던 상처가 아물기 시작한다.

아무는 건 상처뿐만이 아니었다.

구멍이 뚫렸던 옷도 자연스럽게 원래의 형태로 돌아왔다.

이윽고 첫째의 새까만 영기가 호문클로스의 육체 안으로 스며 들어갔다.

“꼭 옷을 입는 것 같군.”

“옷과 다를 바가 없지.”

“왜 입는 거지? 영체의 상태로 존재하는 게 훨씬 강력할 텐데.”

“글쎄. 인간의 삶에서 온 습관일까 싶군.”

호문클로스와의 동기화를 끝낸 첫째가 주먹을 몇 번 움켜쥐어 보더니, 똑바로 섰다.

그리곤 물었다.

“네가 잃어버린 것은 감정인가?”

첫째 역시 지구로 건너간 진유성이 품은 ‘--’가 궁금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호기심보다는 두려움을 느꼈다.

놀라운 일이다.

지구의 진유성은 본래 힘의 1할밖에 품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셋째, 록펠러를 죽여 버렸다.

록펠러가 마도술만으로 싸웠다면 그럴 수도 있다.

힘들겠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록펠러는 상실의 공간을 복사한 신성의 공간을 만들어 냈다.

물론 신성의 공간은 상실의 공간의 마이너 복사품일 뿐이다.

첫째는 록펠러와 달리 상실의 공간을 그대로 복사할 수 있었다.

다만 상대를 함정으로 들어오게 만들어야 한다는 약점이 있지만, 어쨌든 진유성은 신성의 공간으로 들어갔고, 거기서 록펠러와 싸웠다.

신성의 공간 안의 록펠러는 신과 다름없었다.

아마 첫째가 들어갔다고 하더라도 쉬운 싸움은 아니었을 것이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떠한가?

지구의 진유성은 록펠러를 소멸시켰다.

과정까진 잘 모르겠다.

신성의 공간이 힘을 뿜어내는 순간은 첫째도 록펠러를 엿볼 수가 없었다.

그러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진유성이 상실의 공간에서 잃어버린 것이 무(武)라고 가정하면 더더욱 말이었다.

고작 1할의 힘으로 셋째를 죽인다?

그것이 가능한 일일까?

혹시 ‘--’가 무력과 관련된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 것이었다.

하지만 중원에 남은 진유성의 삶을 엿보면 무력과 관련된 건 아닌 것 같다.

오히려 감정적인 것 같았다.

본래 진유성은 책임감과 선량함을 품고 있는 이였다.

그러나 진짜가 중원으로 떠나고 남은 가짜는 책임감과 선량함이 옅어졌다.

관성에 따라 대명제국을 통치하고 있긴 했지만 말이었다.

이후, 게이트에서 또다시 ‘--’의 9할을 잃고는 사람이 완전히 바뀌었다.

폭거를 일삼고, 징벌군을 만들어서 세계 전체를 정복했다.

그러니 중원의 진유성이 잃어버린 것이 감정이 아닐까란 추측이 들었다.

그러나 진유성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내겐 희로애락과 오욕칠정이 존재한다. 이전과 다를 바 없다.”

“확실한가?”

“본좌에게 두 번 묻지 마라.”

진유성이 인상을 찌푸렸다.

분노조차 감정의 일부이기 때문에 그런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번엔 진유성이 질문을 던졌다.

그 역시 첫째의 기억을 엿보고 궁금한 것들이 있었다.

“록펠러란 존재는 얼마나 강하지?”

“그대와 나를 기준으로 말인가?”

“나를 기준으로.”

첫째가 고민도 없이 답했다.

“록펠러가 셋이 모여도 그대를 이길 순 없다.”

“신성의 공간이라면?”

“셋이라는 것 자체가 신성의 공간을 기준으로 말하는 것이다.”

“그렇군…….”

둘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동등한 격을 가졌음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마침내 첫째가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그대는 왜 이후에도 게이트에 들어갔지?”

그랬다.

중원의 진유성은 한 번만 게이트에 들어간 것이 아니다.

그 뒤로도 여러 번 게이트에 들어갔다.

그리곤 늘 무(武)의 1할을 잃고 ‘--’의 9할을 잃고는 돌아왔다.

이제 중원의 진유성에게 남은 ‘--’는 0.00001%도 되지 않을 것이었다.

한 번 들어갈 때마다 90%씩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소유 값이 10%, 1%, 0.1%, 0.01%로 낮아지는 셈이니 말이었다.

그러나 이는 무에도 적용된다.

그는 게이트에 들어갈 때마다 무(武)의 10%를 잃는다.

처음에는 90%, 두 번째는 81%, 세 번째는 72%…….

무(武)에서 태어난 진유성이 입멸공을 유지할 수 없게 되면 존재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었다.

이것을 인식하고 있었는지, 중원의 진유성은 계속해서 힘을 키웠다.

무공을 증진시켜 힘의 총량을 늘린 다음에 게이트에 들어가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첫째는 이 같은 행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힘을 키우고 힘을 잃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 순간, 진유성이 입을 열었다.

“마도사여. 나는 늘 궁금했다.”

“무엇이 말인가?”

“무(無)에 수렴하는 것은 없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무(無)에 근접한 유(有)인가?”

“…….”

“나는 가짜가 아니다. 복제된 존재도 아니고, 나머지 존재도 아니다.”

첫째의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진유성이란 존재는 정말이지 담대하고, 과감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존재가 사라질 수 있다는 위험조차 감내했다.

첫째는 비로소 중원의 진유성이 게이트에 계속해서 들어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지구로 넘어간 진유성을 구성하는 가장 소중한 것. 나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

이름조차 알 수 없는 ‘--’.

“그것을 내 몸에서 완전히 지워 버리겠다. 그리고…….”

진유성이 선언했다.

“지구의 진유성을 죽여, 존재의 유일성을 완성시키겠다.”

첫째는 깨달았다.

중원의 진유성을 지구로 데려가야 한다는 것.

그것으로 아카샤 침탈의 유일한 방해 요소인 지구의 진유성을 죽일 수 있다는 것.

첫째가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는 당분간 목적이 일치할 것 같군.”

그렇게…….

서역을 지배하던 절대자와 중원의 지배하는 절대자가 손을 잡았다.

* * *

비가 내린다.

강새룡은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의 인생이 바뀐 첫 번째 사건은 각성이었다.

전투형 서포터라는 애매한 역할군이 아쉽긴 했으나, 각성은 그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가난을 떨쳐내고 신분을 상승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신분 상승에 한계가 있긴 했다.

그러나 두 번째 사건이 이러한 한계를 부수었다.

“넌 오늘부터 CSG의 인적안전관리국 5팀 소속이다. 아직 5팀은 없지만, 곧 꾸려 주지.”

서울역 게이트에서 만난 왕후란 정체불명의 각성자.

그를 만남으로 인해서 21세기의 동창이라고 불리는 인적안전관리국의 부팀장이 되었다.

팀의 목표는…….

“5팀의 목표는 서울역 게이트의 십대 왕후를 죽이는 것이다.”

왕후를 죽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강새룡은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왕후는 서울역 게이트에서 그의 목숨을 살려 주었다.

그러니 왕후를 추격할 때마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기분이 들었다.

내심 왕후가 끝까지 CSG의 정보망에 발각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실제로 그럴 것 같기도 했다.

벌써 몇 개월이 지났음에도 5팀은 왕후의 단서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무능함을 증명하는 꼴이었지만 오히려 마음은 편했다.

하지만…….

그들은 기어코 왕후를 찾아냈다.

러시아와 중국 국경의 완충 지대인 몽골에서 왕후로 추정되는 이가 발견되었고, 추적 결과 틀림없었다.

‘사살…… 할 수 있을까?’

강새룡은 왕후의 강함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5팀이 출동한다고 해도 왕후를 죽이지 못할 확률이 더 높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러길 바란 것일 수도 있었고.

하지만 강새룡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함께 간다.”

CSG의 수장이자 지구상에 단 3명뿐인 SSS급 각성자 월성(越星).

그가 몽고로 함께 향한 것이었다.

왕후가 아무리 강하다고 하더라도 월성을 이길 것으로 생각되진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마음으로는 왕후가 살길 바랐으나,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몽골에 도착한 5팀은 왕후와 조우했다.

“네가 왜……!”

왕후는 월성을 보자마자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지만, 월성은 머뭇거리지 않았다.

파파팟!

월성이 달려들며 곧장 싸움이 시작되었다.

두 사람의 싸움은 치열했다.

경천동지(驚天動地).

하늘이 놀라고, 땅이 움직인다.

이 말에 외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비가 쏟아지는 우울한 정오부터, 흐릿한 태양이 등장하는 다음 날 아침까지.

두 사람은 거의 하루 동안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그리고.

푸욱!

싸움의 승자는 월성이었다.

죽어가는 왕후를 보며 월성이 입을 열었다.

“과일을 갈아서 주스를 만들어 본 적이 있나?”

“뭐……?”

“과일을 갈다 보면 믹서기의 날에 찌꺼기가 묻지.”

월성이 검을 들어 왕후의 목을 내리쳤다.

눈을 부릅뜬 채 반듯하게 잘린 왕후의 목이 나동그라졌다.

“그 찌꺼기가 너다.”

월성은 그렇게 검을 수습했다.

그리곤 5팀에게 시신을 수습하라고 말하고는 사라졌다.

멀지 않은 곳에서 싸움을 지켜보던 강새룡이 다가왔다.

그리고는 씁쓸한 표정으로 왕후의 시신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뭔가 이상하다.

눈앞의 시신은 그가 서울역에서 만났던 왕후와 똑같은 얼굴이었다.

나이도 똑같고, 얼굴도 똑같고, 목소리도 똑같다.

그런데 뭔가 다른 사람인 것 같다.

외모는 같으나 인상이 완전히 달랐다.

그런 강새룡의 귀에 인안국 1팀의 목소리가 들렸다.

몽골로 방문한 것은 5팀과 월성뿐만이 아니었다.

1팀의 팀장과 부 팀장도 함께 방문했다.

두 사람이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로서 네 명째인가?”

“그렇습니다.”

“이번 개체는 십대로군.”

두 사람은 그 뒤로 시신 수습에 잔소리를 했다.

강새룡은 묘한 직감이 들었다.

눈앞의 시신은 자신이 서울역에서 만났던 왕후가 아닌 것 같다고.

* * *

새벽 4시의 인천 공항 활주로로 한 대의 비행기가 미끄러지듯 날아왔다.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인천 공항에는 하루에도 몇십 대의 비행기들이 착륙과 이륙을 반복하니까.

하지만 조금 특이한 일이 있다면, 지금 공항으로 들어오는 비행기가 여객기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부자들이 소유하는 전용기였다.

새벽을 틈타 인천 공항에 도착한 이는 한 명의 각성자였다.

지구상에서 가장 존경받는 황제, 아놀드 벡이었다.

본래 아놀드 벡이 등장하면 수많은 기자들이 찾아와야하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그는 이번에 비밀스럽게 한국에 입국했다.

여러 이유들이 있었지만 그중 가장 큰 이유는 하나였다.

독도 S급 게이트를 클리어한 미지의 각성자를 찾기 위해서.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언맨과 다스 베이더라.’

영국에서 만났던 다스 베이더.

독도 게이트를 클리어한 아이언맨.

두 사람이 동일인일 확률이 높다는 생각을 가지고 찾아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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