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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116화 (116/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16화>

진유성이 3개의 작은 냄비를 테이블로 가져왔다.

“자, 맛보도록 하여라.”

진유성의 말에 상소윤, 지종수, 심도훈이 침을 꿀꺽 삼켰다.

점심시간이라 배가 고픈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냄새가 기가 막혔다.

냄비 뚜껑으로 덮여 있는데도 새어 나오는 냄새가 장난이 아니었다.

상소윤이 뚜껑을 열려다 말고 진유성을 쳐다보았다.

“이거 열면 막 용이 파파팍 하고 튀어나오는 거 아니야?”

“아직 한국에는 그만한 기술력이 없다.”

“VR 기술로도 안 되나?”

“VR?”

진유성이 턱을 쓰다듬었다.

가능할 것도 같긴 하다.

물론 실제 VR 기계로 구현한다는 게 아니었다.

물안경 같은 걸 씌워 주고 VR로 우기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본래 인간은 아는 만큼 인식한다.

과정을 제대로 보여 주지만 않으면 적당한 핑계로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자, 일단 맛보기나 하거라.”

“진유성, 너는?”

상소윤의 물음에 진유성이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됐다. 너희가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구나.”

“같이 먹어.”

“아직 한 가지 과정이 남아 있다. 그 다음에 먹으마.”

진유성의 말에 상소윤이 고개를 갸웃하며 냄비 뚜껑을 열었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더니 해산물 향이 확 올라온다.

“훌륭한 재료를 두고 수륙진미라 하지만, 분명 수가 먼저가 아니더냐? 해산물이 가진 바다의 풍미는 육지의 재료가 이기기 힘든 것이지.”

진유성의 쓸데없는 해설 속에서 세 사람이 음식을 입에 넣었다.

맛있다.

정말이지 너무 맛있다.

진유성의 음식을 처음 먹어 보는 심도훈은 깜짝 놀랄 정도였다.

진유성이 요리를 잘한다는 소문은 파다했지만, 어느 정도 선에서 잘할 줄 알았다.

일반인들에겐 잘하는 편이지만 전문 셰프들보다는 못한 정도일 줄 알았다.

하지만 이건 그런 수준이 아니다.

지금껏 먹어 본 음식 중에 손꼽힌다.

세 사람이 허겁지겁 음식을 먹는데, 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음악이 들리던 건물 내부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였다.

-바닷가재살의 풍미. 하지만 그것보다 앞서는 조개에서 우러나오는 조개의 진하고 깊은…….

뭔가 싶어서 들어 보니까 만화에서 나오는 대사였다.

요리에 들어 있는 재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니, 만화에서 나온 음식을 그대로 만든 것 같았다.

남아있는 마지막 과정이 저거였나 보다.

생각해 보면 진유성도 바보 같다.

이 정도 요리를 했으면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된다.

주변 사람들이 알아서 칭찬해 줄 거고, 알아서 감탄해 줄 것이다.

한데 굳이 본인 손으로 저런 짓을 하니까, 할 말이 없게 만든다.

상소윤이 혀를 쯧쯧 차는 순간.

갑자기 한 가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건설사를 운영하는 그녀의 아빠는 돈이 많다.

하지만 그녀는 LF 건설을 물려받아서 제대로 운영해나갈 자신이 없었다.

그러니까 어렸을 때부터 하마를 조기 교육시켜서 LF 건설을 물려받게 하면 되지 않을까?

그 대신 자신은 아빠한테 돈을 받아서 진유성과 함께 식당을 차리는 것이다.

진유성의 엄청난 요리 솜씨에 화려한 퍼포먼스라면 무조건 성공이다.

진유성이 혼자 해도 성공할 수 있는 게 아니냐고 따질 수 있지만, 그녀가 보기엔 아니었다.

진유성에겐 이상한 점이 많으니, 옆에서 적극적으로 케어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

즉, 진유성은 요리를 하고, 자신은 거래처와 직원을 관리하며 홍보와 서비스 향상에 주력하면 될 것 같았다.

겸사겸사 진유성의 요리를 배울 수도 있고 말이었다.

‘괜찮은데?’

해 봐야 알겠지만, 사업이 성공한다면 평생 해도 괜찮을 것 같기도 했다.

일단 재밌을 거 같다.

상소윤은 그렇게 밥을 먹으며 십년지계를 세웠다.

* * *

진유성은 그 뒤로 요리에 매진했다.

점심시간에도 식당에 가는 대신 요리를 해 먹었고, 학교가 끝나면 상가에 가서 요리를 했다.

중간중간 고인수나 같은 반 학급의 여학생들을 불러서 음식을 해 주기도 했다.

그러다 소문이 돌았는지, 진유성에게 요리를 얻어먹고 싶어 하는 이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하지만 진유성은 친분이 있는 이들 외에는 절대 요리를 해 주지 않았다.

친분이 있는 이들에게 요리를 해 주는 것은 우정을 나누는 행위였다.

하지만 친분이 없는 이들에게 요리해 주는 것은 음식을 바치는 아랫사람이 된 기분이 들어서 싫었다.

그사이 대정고에는 진유성의 재력에 대한 소문이 한차례 돌았다.

진유성이 상가 건물에 대해 질문하는 친구들에게 ‘필요해서 샀다.’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소문의 확산을 막은 것은 심도훈과 지종수였다.

두 사람은 꽤 의리가 있었다.

그들은 진유성 재단의 정체가 밝혀지면 여론이 좋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천마신교라는 이름만 봐도 사이비 같다.

사이비 재단을 물려받은 게 진유성의 잘못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곱게 보이는 일도 아니었다.

두 사람은 진유성이 가진 돈의 출처가 밝혀지지 않도록 헛소문을 퍼트리기 시작했다.

“그거 진유성이 장난 친 거야. 원래 진유성 재단 건물인데 임대인들이 나가서 잠깐 쓰는 거일걸?”

“진유성네 재단이 구매했는데 용도 변경하기 전에 진유성이 쓰는 거라던데?”

그러나 사실 이런 헛소문을 퍼트릴 필요도 없었다.

지종수와 심도훈은 홍대에서 진유성의 재력을 목격(?) 했지만, 다른 학생들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사실, 진유성이 워낙 헛소리를 많이 하는 타입이라 다들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오히려 지종수와 심도훈의 이런 행동들은 진유성의 분노를 일으켰다.

그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언젠간 복수해 주마.’

하지만 이내 심도훈에게는 지은 죄가 있기 때문에 한 번 봐주기로 했다.

다만, 지종수에게는 반드시 복수할 것이었다.

그렇게 보름이 지났다.

시간이 지나자 영원히 재밌을 것 같던 요리가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가장 큰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그가 요리왕 비룡을 끝까지 다 봐 버렸다는 것이었다.

더 이상 그에게 영감을 주는 장면이나 요리는 없었다.

진유성은 영화와 드라마를 좋아하지만 한 번 본 콘텐츠를 두 번 보는 법은 없었다.

입멸공을 극한으로 익힌 진유성은 집중한 상태에서는 모든 상황을 기억할 수 있었다.

드라마 속 배우들의 얼굴에 생긴 잔주름의 개수까지 외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런 기억들은 평소에는 무의식이 아래에 잠들어 있지만, 똑같은 콘텐츠를 두 번 보는 순간 깨어난다.

그 이후에는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다음에 어떤 내용과 장면과 대사가 나올지 초 단위로 떠올릴 수가 있으니.

비룡이 끝이 난 게 첫 번째 이유라면 두 번째 이유는 더 간단했다.

더 이상 사람들이 놀라지 않았다.

요리를 하며 무슨 짓을 해도 놀라지 않는다.

과정에는 관심이 없었고 그저 진유성이 만들어 주는 요리를 먹으려고 기다릴 뿐이었다.

물론 실제 요리의 과정을 보여 주면 놀라겠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진유성이 할 수 있는 건 친구들을 테이블에 앉혀 놓고 높은 단상에서 재료를 가지고 노는 것뿐이었다.

이런 이유로 점차 요리하는 것에 시들해진 것이었다.

‘나중에 아놀드 벡에게 정체를 밝히는 날이 오면 요리를 해 줘야겠군.’

진유성은 각성 단체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힐 생각이 전혀 없었다.

지금의 일상이 너무 재밌기 때문이었다.

그의 힘이 밝혀지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아놀드 벡에게는 정체를 밝힐 확률이 높았다.

일단 아놀드 벡은 꽤 괜찮은 놈이었다.

굳이 선천진기를 언급하지 않아도 그렇다.

그는 자신의 무기가 사라질 것을 알면서 우산도에게 빌려줬다.

본인이 얻는 이익은 하나도 없이, 그저 S급 게이트의 폭발 반경이 줄어들기를 기도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진유성은 군대에 갈 때가 되면 아놀드 벡에게 연락하겠다 마음먹었다.

아놀드 벡의 빽으로 군대를 대신해, 세계를 돌아다니며 게이트를 클리어할 계획이었다.

어차피 마도사들의 야욕을 저지할 생각이었으니, 나쁘지 않다.

그때가 되면 아놀드 벡을 깜짝 놀라게 만들 요리를 해줘야겠다.

그러고 보니까 요리를 하면서 또 다른 변화도 있었다.

상소윤이 그에게 추파를 던지기 시작했다.

앞으로 함께 요리를 하면서 살아가잔다.

장사를 하자는 말로 포장했지만, 아무리 봐도 추파를 던지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상소윤이 자신의 매력에 빠져 버린 것 같았다.

진유성은 중원에서 그다지 잘생긴 얼굴이 아니었지만, 인기는 굉장히 많았다.

상림은 그게 전부 고강한 무공 덕분이라고 평가절하를 하다가 몇 대씩 얻어맞았지만, 진유성의 생각은 달랐다.

그가 인기가 많았던 건 무공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타고난 매력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상소윤도 자신의 매력에 눈을 뜬 것 같았다.

‘박색하지만 사람 보는 눈은 있군.’

상림이 제법 딸 교육을 잘했다.

남자 보는 눈도 가졌고 말이었다.

“흠.”

압구정 천마신교 건물에 홀로 남아 있던 진유성이 문득 주변을 돌아보았다.

다음 취미가 생기기 전까지는 한동안 이곳에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바로, 불특정 대상을 상대로 하는 장사였다.

* * *

대한민국 최고의 종합상사를 이끌던 김정철 회장이 불편한 몸을 옮겼다.

바로 어제, 그는 회장직에서 은퇴했다.

올해 77살의 나이였기에 은퇴를 하려면 진작 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의 피와 땀으로 일군 기업을 물려주기에는 아들놈이 못미더웠다.

그래서 하루 이틀 미루다 보니까 어느새 여기까지 왔다.

사실 원래는 죽기 전날까지 회장직에 있으려고 했다.

하지만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난 순간, 갑자기 회한이 들었다.

거울 속의 그는 이렇게 늙었는데. 뭘 위해서 아등바등하고 있는지.

그 길로 승계 준비를 했고, 이제는 물려줬다.

남은 생은 공기 좋은 별장에서 한가로이 보낼 생각이었다.

오늘은 서울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의 어린 시절을 보낸 압구정을 둘러볼 생각이었다.

비서도 없이, 혼자.

“허허. 여기가 이렇게…….”

판자촌에 불과했던 곳이 이토록 발전했다니.

참으로 다이내믹한 나라다.

그리고 그런 변화 속에 치열하게 살아간 것이 그의 인생이었고.

한동안 노구를 이끌고 압구정을 둘러보던 김정철 회장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대정고였다.

정확히는 대정고 앞의 천마신교라는 가게였다.

유려한 글씨체로 ‘마지막 영업, 딱 한 명’이라고 써진 현판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도 오늘로서 마지막 영업을 했으니까.

“주인장 계신가?”

김정철 회장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웬 남자아이가 그를 반겼다.

아이라고 하기엔 나이가 좀 있는 것 같았지만, 그래 봐야 20대 초중반이나 되는 것 같았다.

김정철 회장에게는 손자뻘이었다.

“셰프는 아니 계신가?”

“내가 셰프입니다.”

“그런가?”

생각보다 나이가 있는 청년인 듯했다.

아마 청년 사업가가 장사를 접는 마지막 날에 찾아온 것 같았다.

본래는 최고급 요리가 아니면 입에 대지 않는 그였지만, 오늘은 묘한 감상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마지막 영업의 마지막 한 명이 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식사 되는가?”

“앉으시죠.”

“메뉴는 어떤 게…….”

“고를 필요 없고, 그냥 많이 해 줍니다.”

“그런가?”

한참 어른에게 쓰기엔 가벼운 말투였지만, 김정철 회장은 그러려니 했다.

아마 남은 재료를 전부 써서 한 명에게 요리를 만들어주려는 것 같았다.

장사를 접고 내려가는 이의 마음이 짐작 가지 않는 바가 아니다.

그렇게 김정철 회장이 식당의 하나뿐인 테이블에 앉자, 젊은 청년이 주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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