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15화>
Quest 22. 요리하는 천마님
본래 대정고 앞에 있던 식당은 <마천루>라는 이름의 전문 중식당으로, 지종수와 심도훈, 상소윤도 제법 가 본 곳이었다.
대정고 학생들은 식당 메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가서 사먹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마천루가 폐업했다는 소문을 듣고 아쉬워하는 이들도 있었다.
나름 괜찮은 맛을 내는 식당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마천루는 익히 알고 있던 가게가 아니었다.
본래 마천루는 고급 중식당 특유의 인테리어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상가 건물이 텅 비어 있다시피 했다.
하지만 비어 있다는 것이 급하게 철거해 지저분하고 을씨년스럽다는 말은 아니었다.
오히려 훨씬 고급스러워졌다.
본래 15~6개 정도의 테이블이 있어야할 로비 공간에 단 하나의 넓고 거대한 테이블만 있었으니까.
황금색 용이 그려진 붉은색 식탁보의 테이블은 진유성이 즐겨 보는 만화에서 언뜻언뜻 보이던 장면과 흡사했다.
“아직 현판은 못 달았다. 현판 제작이 생각보다 오래 걸리더군.”
“간판도 달게?”
“간판이 아니라 현판이다. 난 장사를 할 생각이 없다.”
“뭐라고 달게?”
“천마신교다.”
“그게 뭐야…….”
가게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무성의하게 답하던 심도훈이 진유성을 쳐다보았다.
“근데, 진짜로 네가 산 거야? 네 돈으로?”
“그래. 샀다.”
“이걸 왜?”
“왜긴. 네가 해답을 알려주지 않았더냐. 요리를 할 공간에 대해서.”
그래. 물론 말을 해 줬다.
완전 농담으로.
그런데 그 농담을 이렇게 실현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이건 마치…….’
친구가 돈이 없다고 해서 로또를 사라고 했더니, 한 30억치 로또를 사서 들고 온 기분이었다.
아니, 아니다.
비유가 좀 이상한 것 같다.
아무튼 놀라운 일이었다.
심도훈과 지종수는 놀람 가득한 눈빛을 교환하며 작년의 일을 떠올렸다.
‘설마, 홍대의 대부분이 이놈의 것인가?’
그들은 분명 홍대에서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가게마다 사장님들이 진유성을 어려워하고, 모든 걸 공짜로 이용하게 배려해 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중에 진유성과 친해지고 이에 대해 물었을 때, 진유성은 아니라고 했다.
그저 안면이 있는 가게의 주인들일 뿐 자신 소유의 건물이 아니라고.
그때는 자신들이 오해한 건가 싶었는데,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어쩌면 진유성은…….
극심한 빈부 격차를 느끼지 못하게 하려고 그들을 배려한 게 아닐까?
그들의 부모님조차 전화 한 통으로 이런 상가 건물을 구매하진 않는다.
물론 필요한 경우 구매할 수 있겠지만, 이 경우에는 필요한 경우가 아니지 않은가?
그저 취미 활동을 하고 싶었을 뿐이지.
게다가 자산이 많은 것과 현금이 많은 건 다르다.
건물을 사려면 보유 자산을 현금화해서 지불해야 하는데, 일주일 만에 가능한 일이 아니다.
즉, 진유성은 이 건물을 사고도 남을 현금을 이미 보유하고 있었다는 소리다.
지종수와 심도훈이 침을 꿀꺽 삼켰다.
‘어, 엄청난 재력이다.’
‘진유성이 보유한 재단의 정체가 뭐지?’
진유성은 분명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고 했다.
즉, 현재는 유산을 관리해 줄 재단만 남았다는 소리였다.
지종수와 심도훈이 미친 듯이 머리를 굴리며 재단의 정체를 추측하기 시작했다.
‘설마, 명동의 현금 부자?’
사채업으로 부를 축적한 이들 중에는 제2금융권의 저축 은행을 소유한 이들도 있다.
메이저 저축 은행들의 현금 보유랑은 재벌들을 뛰어넘는다.
가능성이 꽤 높은 추측이긴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그가 알기로 재단이 운영하는 은행은 없다.
‘그렇다면 혹시 현금 보유랑이 높은 건설업일까?’
이도 가능성이 높다.
진유성과 어렸을 때부터 절친인 상소윤이 LF건설의 상속녀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역시 이상하다.
현재 건설업은 게이트 시대에 발맞춰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살아남은 건설사들은 다들 걸출한 CEO를 보유한 회사들이다.
진유성 같은 고등학생이 건설업의 주인일 수는 없었다.
“……!”
그 순간, 심도훈이 눈을 부릅떴다.
진유성의 정체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심도훈의 반응을 본 지종수가 귓속말로 뭔가 알아차린 게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심도훈이 지종수에게 다시 귓속말을 건넸다.
이번엔 지종수의 눈이 커졌다.
심도훈의 말이 틀림없다.
이거라면 평소 진유성의 이상한 행동과 말투까지 한 번에 설명이 가능하다.
바로, 종교 단체였다.
종교 단체 중에는 상상도 못할 엄청난 부를 축적한 곳들이 많다.
대한민국이 없어지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섰던 IMF.
당시 모 종교 단체는 나라의 빚을 갚아 줄 테니 자신들의 종교를 국교로 인정해 달라는 제안을 하기도 했었다.
진유성의 묘한 말투와 세상 물정을 모르던 것을 생각해 보면 확실하다.
진유성은 거대 종교 단체의 후계자였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그 부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그래서 현판도 천마신교인 것이다.
‘그랬군.’
‘천마신교주…….’
심도훈과 지종수가 소곤거리는 사이, 진유성은 내심 놀라고 있었다.
그들이 아무리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고 하더라도 진유성은 전부 들을 수 있다.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지종수와 심도훈은 자신이 천마신교주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러나 뭐, 상관없다.
어차피 이 세계에 천마신교도는 상림밖에 없었으니까.
그가 포교 활동을 할 것도 아니고 말이었다.
“자, 그만 구경하고. 여기 앉아라.”
진유성이 넓디넓은 로비에 덩그러니 놓인 테이블을 가리켰다.
충격에 빠진 지종수와 심도훈이 테이블에 앉고, 상소윤이 뒤늦게 앉았다.
상소윤은 지종수, 심도훈처럼 진유성이 가진 돈의 출처에 대해서 궁금해하진 않았다.
북한에서 가져온 돈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소윤이 궁금해하는 것은 다른 부분이었다.
“어, 난데. 대정고 앞에 식당 건물 하나 나왔대. 그거 사 놔.”
아무리 생각해봐도 진유성이 북한에서 부하를 데려온 것 같다.
한국까지 넘어와 충성을 한다?
그렇다는 건, 엄마와 공항에서 했던 추측이 맞다는 것이었다.
진유성은 진유성이 아니다.
김유성이다.
‘어떤 사람들일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영화나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잘생긴 북한 군인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기회가 닿으면 만나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상소윤은 자신이 오늘 아침에도 진유성의 부하를 만났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른 채 테이블에 앉았다.
“흠. 모든 준비가 됐군.”
테이블에 앉은 세 사람을 본 진유성이 흡족한 표정을 짓더니 주방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주방 쪽 테이블에 올려 둔 리모컨을 조작했다.
갑자기 식당 전체의 불이 꺼지더니, 은은한 BGM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지종수와 심도훈은 이게 무슨 노래인가 의아해했지만, 상소윤은 정체를 알고 있었다.
대체 얼마나 재밌길래 이 난리인지 궁금해서 진유성이 보던 만화를 함께 본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 나오는 노래는 요리왕 비룡에서 주인공이 요리를 할 때면 나오는 음악이었다.
“근데 불은 왜 껐어?”
“가만히 있어라.”
진유성이 또다시 리모컨을 조작했다.
그러자 노란색 불빛을 띄는 환한 조명이 주방을 비추기 시작했다.
식당들 중에는 위생 안전을 입증하기 위해 외부에서 요리 과정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곳이 있다.
마천루도 그런 곳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테이블에 앉아 있는 지종수, 심도훈, 상소윤은 조명 아래 요리하는 진유성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진유성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반드시 해 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요리를 할 테이블에 몇 가지 장치를 해 두었다.
그중 첫 번째는 요리 테이블의 높이를 꽤 많이 올렸다는 것이었다.
“야, 너무 높아서 요리하는 게 안 보이는데?”
지종수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진유성이 인상을 썼다.
“그 자리에서 그대로 지켜보아라.”
“안 보인다니까?”
“보인다. 보이니까 자리에서 일어나지 마라. 일어나면 추방이다.”
“…….”
진유성의 서슬 퍼런 기세에 지종수가 깨갱 하며 자리에 앉았다.
과연 종교 지도자다운 카리스마라고 생각하면서.
지종수가 자리에 앉자 진유성이 준비한 바구니와 중식도를 들었다.
바구니를 왼편에 놓고, 오른손으로 중식도를 들은 진유성이 양팔을 쫙 벌렸다.
“흡!”
그리곤 소리를 지르며 당근, 무, 양파를 순차적으로 허공에 집어던졌다.
파파파파팍!
진유성은 왼손으로 당근, 무, 양파를 저글링하면서 오른손으로는 순간적으로 그것들을 썰어 내기 시작했다.
드디어, 드디어 봉인이 풀린 것이었다.
그동안 이것이 얼마나 하고 싶었던가!
물론 요리 재료를 다듬는 것 정도는 집에서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진정한 의미의 행위가 아니었다.
행위라 함은 누군가 지켜봄으로 인해서 완성이 되는 것이었다.
파파파파팍!
재료들을 저글링함과 동시에 썰어진 채소들이 아치형의 곡선을 드리며 날아간다.
다듬어진 재료가 도착한 곳은 물이 채워진 깊은 냄비였다.
퐁당, 퐁당.
그 순간, 아치형의 곡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재료들에서 무지개가 뿜어졌다.
“미친…….”
“대단하다.”
“저 정도 정성이면 인정 아니냐.”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지종수, 심도훈, 상소윤이 진심으로 감탄했다.
이것이 바로 코스프레 정신이 아닐까?
그들은 진유성이 정말로 채소를 저글링하면서 썰고, 썬 것을 냄비로 날려 버리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세 사람이 앉아 있는 테이블은 진유성이 서 있는 단상에 비해 높이가 낮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진유성의 손과 도마 위의 광경을 볼 수 없었다.
그저 진유성의 가슴 부근에서 날아다니는 재료들을 볼 뿐이었다.
그렇기에 세 사람은 테이블과 단상에 어떤 장치가 있다고 확신했다.
“저거 영사기 아니야?”
“맞네. 무지개 쏘고 있네.”
심도훈이 왼쪽을 가리키자 옛날 영화관에서나 볼 수 있는 영사기가 채소들이 그리는 곡선을 비추고 있다.
묘한 빛이 나오는 게, 무지개도 저기서 나오는 것 같다.
진유성이 절대 일어나지 말라고 한 건, 자리에서 일어나면 요리 트릭의 장치들이 보이나 보다.
하지만 알고 봐도 꽤 재밌었다.
푸화하학!
거대한 불꽃이 일어날 때는 몸을 움찔했다.
하지만 그 불꽃이 불사조의 형상으로 승천하더니 냄비에 내리 꽂힐 때는 박수를 안 칠 수가 없었다.
무슨 서커스를 구경하는 것 같다.
이제는 건물 전체를 울리는 요리왕 비룡의 BGM이 흥겹게 느껴졌다.
챙챙챙 하는 꽹과리 비슷한 소리에 또다시 불꽃이 튀고, 연기가 뿜어진다.
세 사람이 흥미로운 눈빛으로 쇼를 지켜보는 사이.
진유성은 희열에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짜릿하다.
학교에서 이 짓을 얼마나 하고 싶었던가.
하면 안 된다는 상식과 하고 싶다는 충동.
그 격렬한 내적 갈등은 진유성을 병들게 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단상을 높여서 제대로 보이지 않게 만들고, 몇 개의 영사기를 돌려서 빛을 쪼는 트릭.
이 트릭 아래에서 진유성은 자유로웠다.
내공을 이용해 연기로 용을 만들어도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돈 많고, 시간 많고, 주접 많은 진유성이 쓸데없는 고퀄리티를 만들어 냈다고만 생각한다.
그야말로 완벽한 자유였다.
진유성은 그 뒤로도 하고 싶은 모든 것들을 쏟아 냈다.
홀로 F급 게이트를 클리어하고도 남을 만큼의 내공을 쏟아부으면서.
잠시 뒤, 진유성의 모든 로망을 담은 요리가 완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