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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114화 (114/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14화>

“먹어라……. 파국이다……!”

진유성의 헛소리를 뒤로 한 채 학생들이 한 명씩 행상총우를 먹기 시작했다.

그리곤 하나같이 두 눈을 크게 떴다.

개중 유쾌한 친구들은 진유성의 컨셉에 맞춰서 ‘미미’를 외쳐 주기도 했다.

그만큼 맛있었기 때문이었다.

졸아든 국물이 대파와 대파 속의 고기에 듬뿍 배어 있는데, 그 맛이 기가 막히다.

“아, 뭐 해!”

“혼자 먹냐?”

몇몇 학생들이 너무 맛있어서 냄비 안의 파와 국물을 듬뿍 떠 가자 면박을 당하기도 했다.

이런 반응들 속에서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요리 클래스의 강사였다.

세상 어디에서도 이런 요리를 먹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엄청나게 맛있다.

“학생, 이 요리 정말 창작 요리에요?”

“그렇습니다.”

강사는 순간 절망감을 느꼈다.

그동안 요리에 일생을 바쳐 왔지만, 자신이 만든 요리 중에 이것을 넘어설 것이 없다.

더욱 그를 절망하게 만든 것은, 이 학생의 요리 스킬이 형편없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이런 형편없는 요리 솜씨로 이토록 맛있는 걸 만들었는지…….

그때였다.

강사의 머릿속에 스승님의 목소리가 스쳐 지나갔다.

“제자야. 요리는 솜씨가 중요하지 않단다. 중요한 건 마음이지.”

요리를 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저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았다.

눈앞의 학생 덕분에.

지금까지 자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저 돈을 많이 준다는 이유로 대정고에서 요리를 홀대하고 있지 않았던가.

“고마워요. 학생.”

“네?”

“정말, 고마워요.”

“뭐가요?”

“학생이 깨달음을 안겨 줬어요.”

진유성이 요리 클래스의 강사의 감사 인사를 받는 사이, 행상총우는 어느새 바닥이 나 있었다.

그렇게 진유성의 첫 번째 요리 수업이 끝이 났다.

* * *

진유성은 그 뒤로 요리에 푹 빠져서 지냈다.

드라마나 영화도 그랬고, 롤도 그랬지만, 진유성이 푹 빠져 지내는 것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중원에서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중원에서 기나긴 삶을 살아온 진유성은 대부분의 것들을 전부 해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계에서만 할 수 있는 것들에 매료되는 것이었다.

“저 오빠가 만든 요리가 그렇게 맛있다던데? 거의 마약이래.”

“대마초 재배해서 끓인대.”

요리 클래스에 들어온 학생들의 입을 통해 진유성에 대한 소문이 퍼져 나갔다.

이것 역시 진유성을 즐겁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러한 즐거움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진유성의 요리를 인정해 주던 강사가 대정고를 훌쩍 떠났기 때문이었다.

강사는 진유성 덕분에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그 깨달음이 뭔지는 진유성도 몰랐지만, 아무튼 얻었다며 떠나 버렸다.

세계 최고의 요리사가 되겠다면서.

진유성이 행복하게 요리를 하던 시간은 기존 강사가 후임자를 기다리던 2주뿐이었다.

후임 강사는 70대의 인자한 할아버지였다.

한식 요리의 대가라고 했는데, 학생들을 손자처럼 귀여워하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좋은 사람인 것 같았다.

문제는 학생들의 안전을 너무 위한다는 것이었다.

푸화하하학!

“하, 학생!”

“네?”

“그런 짓을 하면 위험해요!”

불 맛을 내기 위해 내공으로 불꽃을 키운 순간, 후임 강사가 득달같이 달려와 불을 꺼 버린다.

“왜 이렇게 불이 크지?”

진유성이 불에 화기(火氣)를 투여했다는 걸 모르는 강사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다음 날.

요리 클래스가 진행되는 강의실에 가스레인지가 사라졌다.

전부 인덕션으로 바뀐 것이었다.

과연 대정고의 재력은 대단했다.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단 강사의 말에 하루 만에 모든 가스레인지를 인덕션으로 바꿔 버렸으니까.

“이, 이건 요리가 아니야!”

진유성은 인정할 수 없었다.

비룡은 인덕션을 쓰지 않는다.

즉, 그의 비룡 따라잡기가 불가능해졌다는 소리였다.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진유성은 가스레인지가 사라지자 재료 다듬기로 승부를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직접 최고의 셰프들이 사용하는 브랜드의 중식도를 사왔다.

하지만…….

“이런 칼은 우리 학생 분이 쓰기엔 너무 위험해요.”

그것도 막혀 버렸다.

다음 날부터 무가공 상태의 재료는 사라졌다.

보조 강사들이 다듬어 놓은 재료들만 제공되기 시작했다.

진유성의 요리 혼이 상처를 받았지만,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후임 강사가 학생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행동한다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젠장.”

진유성이 할 수 있는 건, 고작해야 칠십 몇 살밖에 먹지 않은 놈이 도전 정신이 없다고 투덜거리는 것뿐이었다.

* * *

-덤벼라! 암흑 요리사!

수업 시간에 몰래 유튜브를 보던 진유성이 한숨을 내쉬었다.

요리가 하고 싶다.

하지만 할 곳이 없다.

일단 학교에서는 그의 요리가 위험하다면서 모든 길을 막아 버렸다.

진유성에게 남들이 다듬어 준 식재료와 인덕션으로 요리하는 것은 요리가 아니었다.

조리라면 모를까.

그렇다고 집에서 하자니, 그건 더욱 안 될 일이었다.

유혜연의 입덧 때문이었다.

유혜연의 입덧이 너무 오래가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내공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유성은 태아의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서 내공을 주입했는데, 그게 산모에게 어떤 영향을 끼친 것 같았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유혜연의 입덧이 평소에 먹던 음식들을 먹을 때는 잠잠하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들에는 더욱 식욕이 도는 듯했다.

하지만 생전 처음 맡는 요리의 냄새나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식재료에는 민감했다.

슬프게도 진유성이 하고자 하는 요리는 대부분이 그랬고.

자신의 욕심 때문에 유혜연의 입덧을 자극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진유성은 집에서도 요리를 할 수 없었다.

“흐음…….”

요리를 못하는 대신 유튜브로 대리 만족을 하고 있는데, 수업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오늘 메뉴 뭐야?”

“초밥일걸?”

“오예.”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학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삼삼오오 대화를 나눴다.

초밥을 좋아하는 상소윤이 친구들과 식당으로 향하는데, 진유성이 그녀를 붙잡았다.

“가지 마라.”

“뭐?”

“식당 가지 말라고.”

“왜?”

상소윤이 고개를 갸웃했다.

같이 밥 먹으러 가자는 것도 아니고, 식당을 가지 말라는 건 또 뭔가.

“오늘 오이 냉채 나온다.”

“초밥이라는데?”

“초밥에 문제 생겨서 다 폐기했다.”

“진짜? 확실해?”

“확실하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식당 지나가다가 봤다.”

3학년 본관과 식당은 거리가 꽤 멀고 갈 일이 없지만, 상소윤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요즘 진유성이 요리 금단 현상을 겪고 있기 때문에 식당에 방문해서 뻘짓거리를 해도 이상하지 않다.

“장난치는 거 아니지?”

“아니야. 맹세하마.”

“에이, 씨.”

상소윤이 자리에 앉았다.

오이 냉채는 상소윤이 제일 싫어하는 음식이었고, 냄새를 맡는 것도 싫어했다.

물론 진유성이 실제로 식당에 갔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냄새를 맡고, 소리를 들었을 뿐이었다.

냉장 시설이 고장 나서 초밥에 올라갈 횟감이 전부 상한 것 같다는 목소리를.

“새롬아, 너네끼리 가서 먹어. 나 냉채 안 먹어.”

“혹시 초밥이면 카톡 줌.”

“오키.”

정새롬이 그렇게 떠나려다가 진유성을 보며 히죽 웃었다.

진유성은 상소윤의 친구가 왜 웃나 싶었는데, 교실을 나가면서 지들끼리 마구 웃었다.

진유성이 상소윤의 팔을 붙잡고 가지 말라고 할 때 드라마의 한 장면인 줄 알았다고.

의도한 건 아닌데, 생각해 보니까 좀 비슷했던 것 같기도 했다.

못생긴 애들만 나오는 한국 드라마에서 자신 정도면 그래도 괜찮은 편이 아니겠는가.

“매점이나 가자.”

“그럴까.”

진유성이 상소윤을 향해 말하고는 후회했다.

방금은 ‘애기야, 가자’를 써먹었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미처 떠올리지 못했다.

진유성이 후회하고 있는데 지종수와 심도훈이 함께 매점에 가자고 끼어들었다.

그렇게 매점으로 향하던 중 상소윤이 입을 열었다.

“몰아주기 내기 한판 할까?”

“가위바위보?”

“콜.”

가위바위보 내기가 성립되자 진유성이 속으로 슬쩍 웃었다.

그는 가위바위보를 하는 순간 상대방이 무엇을 내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걸 이길 수 있는 패를 상대보다 더 빠르게 낼 수도 있다.

심지어 뒤돌아서 가위바위보를 해도 무조건 이길 수 있다.

기감을 극대화해서 상대방의 근육의 움직임을 읽으면 뭘 내려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진유성이 돈을 내는 경우의 수는 주화입마에 걸려서 모든 내공을 잃어버리는 것밖에 없었다.

“가위바위보!”

“보!”

“와, 씨. 진유성 운도 좋네.”

가볍게 가위바위보를 이긴 진유성이 빠지고, 나머지 가위바위보가 이어졌다.

패자는 심도훈이었다.

가만 보면 상소윤도 내기에 강한 것 같았다.

하긴, 핏줄이 어디 가겠는가.

진유성에게 치욕과 수치를 안겨 주었던 유혜연의 윷놀이가 떠오른다.

그 승부사 기질이 상소윤에게 유전됐나 보다.

“에이, 씨.”

패배한 심도훈이 작게 투덜거렸지만, 돈을 써서 투덜거리는 게 아니었다.

어차피 그들에게 매점에서 쓰는 돈은 푼돈이었다.

그냥 패배한 것 자체로 투덜거리는 것이었다.

잠시 뒤, 그들은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사고는 교정에 앉았다.

“그나저나 도훈이 너 요즘 얼굴이 어둡던데?”

“음, 그냥 무슨 일이 좀 있었어.”

“무슨 일?”

“별거 아니야. 이제 완전히 괜찮아졌어.”

드디어 해커의 망령을 딛고 일어난 심도훈이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처음엔 해커의 정체와 목적에 대해서 고민했다.

해커가 게임을 하는 장소를 추적해 보니 압구정 일대로 나왔을 때는 두려움에 떨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아버지의 회사를 물려받으면 이보다 더한 일들이 많을 텐데 일희일비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심도훈은 정신적으로 단단해졌다.

앞으로는 어떠한 일이 와도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덕분에 한 단계 성장했군.’

심도훈의 변화를 보며 진유성이 흐뭇하게 웃었다.

이렇게 또 좋은 일을 하나 해버렸다.

“심도훈, 너 고민 있었냐?”

옆에서 우걱우걱 샌드위치를 먹던 지종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매일 학교에서 얼굴을 봤었음에도 전혀 몰랐던 이야기였다.

“너 같이 둔한 새끼가 알겠냐?”

“고민이 있으면 말을 해야지. 말을 안 하면 어떻게 아냐?”

“나도 고민이 있다.”

“그래, 도훈아. 종수 말이 맞아.”

“그런가?”

“나도 고민이 있다.”

“근데 무슨 고민이었는데?”

“지난 일이니까 신경 꺼라.”

“나도 고민이 있다!”

진유성을 무시하던 이들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쓸데없는 소리일 게 뻔해서 반응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집요하다.

“그래, 뭔데. 말해봐.”

“요리가 하고 싶다.”

“해.”

“장소가 없다.”

“집에서 해.”

“집에서는 못할 이유가 있다.”

심도훈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학교 앞에 식당 건물 나왔던데, 그거 사서 하던가.”

“호오?”

진유성이 턱을 쓰다듬자 심도훈이 피식 웃었다.

건물을 사라는 이야기는 당연히 농담이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요리를 하기 위해 상가를 사겠는가.

게다가 그들의 돈은 엄밀히 따지면 그들의 것이 아니었다.

부모님의 것이었다.

그 순간, 진유성이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곤 누군가한테 전화를 걸었다.

“어, 난데. 대정고 앞에 식당 건물 하나 나왔대. 그거 사 놔.”

진유성의 장난에 이번엔 세 사람이 피식 웃었다.

이건 좀 웃겼다.

“좋은 조언이었다. 심도훈.”

그사이 전화를 끊은 진유성이 심도훈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 매매 절차 끝나면 초대해서 요리나 해 줘라. 네가 그렇게 요리를 잘한다며?”

“나도.”

“그럼 나도.”

세 사람은 그렇게 농담으로 그 순간을 스쳐 보냈다.

하지만 일주일 뒤.

“가자꾸나.”

“어딜?”

“약속대로 오늘 점심은 내가 대접하마.”

점심시간에 진유성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상가를 보고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진짜…….’

‘샀어?!’

진유성이 정말로 상가 건물을 사 버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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