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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113화 (113/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113화>

음식을 먹어 보라는 강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진유성은 숟가락을 들었다.

그리곤 상소윤의 소고기 뭇국을 향해 다가갔다.

“아, 왜 내 거부터 먹어!”

상소윤이 바락 소리 지르며 냄비 앞을 가렸지만 소용없었다.

진유성은 왼쪽으로 가는 척하더니 오른쪽으로 파고드는 신출귀몰한 움직임으로 상소윤을 제쳐 버렸다.

지종수가 그 움직임을 보고 감탄했다.

‘과연 상대를 제치는 게 생활화되어 있군.’

축구를 할 때 많이 보던 몸놀림이었다.

상소윤이 후다닥 돌아가서 진유성의 팔을 붙잡았다.

“왜 내 거부터 먹냐니까?”

“생각해 봐라. 상소윤.”

“뭘?”

“초콜릿을 먹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어떻게 되지?”

“아이스크림 초콜릿이지.”

“흠, 맛있겠군.”

“뭐?”

“아니, 이게 아냐. 비유가 잘못됐군.”

진유성이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

“초콜릿을 먹고 사과를 먹으면 어떻지?”

“뭐가 어때. 당연히 맛없지.”

“그래. 내 요리가 초콜릿이라면 네 요리는 사과다. 내 것을 먼저 먹으면 맛이 죽어 버리지.”

진유성의 말에 발끈할 법도 하지만, 상소윤은 의외로 침묵했다.

생각해 보면 진유성의 말이 맞았다.

상소윤은 자신이 요리에 재능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만든 음식이 아주 맛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했다.

그냥, 먹을 만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니, 근데 저 파국보다는 내 음식이 더 맛있을 것 같은데…….’

상소윤은 그런 생각을 하며 망설였지만, 결국 옆으로 비켜섰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차라리 먼저 먹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야, 진유성. 진짜 웃지 마라. 웃으면 나 화낼 거다.”

“알겠다. 웃지 않는다고 약속하겠다.”

“뭐 걸어. 웃으면 뭐 해 줄 거야.”

“예전에 너와 내가 내기를 했던 것이 있지 않느냐? 부탁을 들어 주기로.”

“어, 맞아. 그랬었지.”

상소윤은 시험 성적을 두고 내기를 했던 게 뒤늦게 생각났다.

뭐 얼마나 대단한 걸 부탁하려고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었다.

“내가 웃는다면 그 부탁을 없던 걸로 해 주지.”

“오케이. 콜.”

상소윤이 고개를 끄덕이자 진유성이 지종수에게 손짓했다.

주변에서 서성거리던 지종수가 숟가락을 들고 다가왔다.

“먹어 봐라. 기미 상궁.”

“뭐?”

“먹어 보고 독이 없는지 말해 줘.”

“싫어. 네가 먼저 먹어.”

“흠. 너도 상소윤의 음식이 맛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군.”

“뭐? 아니, 그게 아니라…….”

지종수가 상소윤을 쳐다보며 절절매는 사이, 진유성이 냄비 뚜껑을 열었다.

김이 팍 퍼지고 소고기 뭇국의 냄새가 난다.

‘냄새는 괜찮은데?’

상소윤이 그런 생각을 하며 진유성을 쳐다보았다.

진유성은 뭐라도 아는 것처럼 손으로 바람을 일으켜 냄새를 맡아 보더니 조심스럽게 국물을 떠먹었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

건더기는 전혀 먹지 않고 국물을 떠먹은 진유성이 담담한 얼굴로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도저히 표정으로는 감상을 읽을 수가 없었다.

“어떤데?”

“맛있지?”

호기심을 느낀 지종수와 상소윤이 숟가락을 들이미는 순간, 진유성이 손을 들었다.

“지종수.”

“어?”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듣기만 해라.”

“……?”

“독이다. 누군가 요리에 독을 탔다.”

“…….”

“살기가 감지되지 않는 걸로 봐서 굉장한 독공의 대가인 듯하다. 요리에 입을 대는 척만…….”

진유성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야!”

상소윤이 빽 소리 지르며 뒤통수를 때리려고 했기 때문이다.

“거기 학생들, 조용히 해 줄래요?”

강사의 지적에 상소윤이 입을 다물었다.

그사이, 진유성은 손가락을 통해 빈 컵에 상소윤의 뭇국을 배출했다.

물론 누구도 보지 못하게.

진유성이 컵을 달랑달랑 흔들며 상소윤에게 속삭였다.

“그대의 독공에, 치얼스.”

“……!”

진유성은 처음으로 무공의 고수도 꼬집으면 아프다는 걸 깨달았다.

상소윤의 산혼철조가 제법이었다.

그나저나, 상림과 처음 만나 에스프레소를 먹을 때 이와 비슷한 말을 했었던 것 같았다.

그때는 정말 에스프레소가 독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한국 사회에 많이 적응을 했다.

역시 세상 만물에는 쓰임새가 있다.

상소윤의 요리는 똥 같은 맛이지만, 덕분에 추억을 곱씹을 수 있었다.

“아니야. 소윤아 맛있어.”

그사이 상소윤의 요리를 먹은 지종수가 연신 칭찬을 하고 있었다.

“무도 부드럽고, 국물도 담백하니 맛있는데?”

진유성은 처음으로 지종수가 혹시 상소윤을 좋아하는 게 아닌지 의심했다.

그렇지 않다면 저런 칭찬을 할 수가 없으니까.

상소윤의 소고기 뭇국 다음으로 세 사람이 먹은 것은 지종수의 것이었다.

“그냥저냥 먹을 만하군.”

“맛있다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밥을 말아서 주면 강아지들이 꼬리를 흔들 것 같다.”

“…….”

진유성은 지종수의 요리가 평범하다고 생각했다.

맛있는 건 아니지만, 맛이 없다고 할 것까진 아니다.

진유성은 한 때 천신궁에서 강아지를 키운 적이 있었다.

멀더가 게이트에 대해서 생명체로 실험을 해 보겠다고 데려온 강아지였는데, 진유성을 꽤 잘 따랐었다.

그래서 한두 번 밥을 주다 보니 키우게 된 것이었다.

천신궁에 있을 때는 매 끼니가 최고급 만찬이었다.

상다리가 부러진다는 말이 수사적인 표현이 아니었다.

실제로 상다리가 부러진 적도 있었다.

그래서 진유성은 진짜 맛있는 요리는 자신이 먹었고, 그냥저냥 먹을 만한 요리는 강아지한테 줬었다.

그러니 지종수의 요리에 대한 표현은 평가절하가 아니었다.

물론 지종수는 평가절하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렇게 상소윤, 지종수를 거쳐서 드디어 진유성의 차례가 다가왔다.

상소윤과 지종수는 어떻게든 진유성의 음식을 비웃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 다가오던 상소윤이 놀랐다.

“뭐야? 너 불 안 껐는데?”

상소윤의 말처럼 진유성의 냄비는 아직도 끓고 있었다.

하지만 진유성은 고개를 저었다.

“의도한 것이다. 지금까지 졸이는 게 맞다.”

상소윤이 고개를 갸웃했다.

진유성이 간첩의 역량(?)을 뽐내느라 남들보다 요리를 늦게 시작하긴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끓였으면 국물이 다 졸아 버리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내공으로 냄비 안의 내용물을 확인한 진유성이 불을 껐다.

“다 된 거야?”

“그렇다.”

“뭐 해? 뚜껑 열어 봐.”

하지만 진유성은 냄비 뚜껑에 손을 올렸을 뿐, 열지 않았다.

진유성은 강한 충동을 견디고 있었다.

뚜껑을 여는 순간 엄청난 김이 쏟아질 것이다.

진유성은 그 김을 용의 형상으로 만들고 싶었다.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순간, 요리가 속살을 드러내는 짜릿한 장면.

그것을 연출하고 싶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됐다.

그건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니까.

진유성이 상식과 충동 사이에서 저울질을 하고 있자, 상소윤과 지종수가 놀리기 시작했다.

“뭐야? 왜 뚜껑 안 열어?”

“자신 없는 거 아니야?”

“뭐야, 진유성. 잘난 척은 혼자 다 하더니 허접이네.”

결국 진유성이 냄비 뚜껑을 열었다.

진유성은 현실과 절반만 타협했다.

정교하게 용을 만들면 이상하니까 대충 용의 형상만 만든 것이었다.

요리에서 뿜어지는 김이 꿈틀거리며 허공으로 치솟아 오르는 순간.

“어우, 김이 무슨.”

상소윤이 손사래를 치며 용의 허리를 끊어 버렸다.

“……!”

하늘로 올라가다 죽은 용을 슬프게 바라보고 있는데, 강사가 다가왔다.

“학생은 소고기 뭇국을 만든 게 아니네요?”

“네. 다른 요리를 만들었습니다.”

“음…….”

강사가 연기가 걷힌 냄비 안을 슬쩍 보았다.

보이는 거라곤 온통 초록색의 파 조각밖에 없었다.

국물도 거의 졸아든 것 같았다.

“창작 요리인가요?”

“그렇습니다.”

사실 진유성이 만든 요리는 창작 요리가 아니었다.

소고기로 만드는 행상총우(杏霜蔥牛)라는 황실 요리였다.

행상총우는 대명제국의 가장 큰 명절인 중양절(重陽節 : 음력 9월 9일)에 황실에서 해 먹는 요리였다.

민간에서 해 먹는 경우도 있었으나, 소고기는 귀하기 때문에 보통 돼지고기로 만들었다.

그러나 진유성이 이 요리를 창작 요리라고 말하는 것은, 지구에 없는 요리기 때문이었다.

상하이에서 만났던 황실 요리사는 대분의 황실 요리를 알고 있었으나, 몇 가지는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아예 요리의 이름 자체를 처음 들어 본다고 했다.

행상총우도 그런 요리 중 하나였다.

살구 씨, 소금, 파, 돼지고기가 어우러지는 행상총우는 지구에 없었다.

‘살구 씨가 없는 건 좀 아쉽지만, 잘 만든 것 같군.’

진유성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살구 씨 대신 집어넣은 조미료가 꽤 괜찮은 맛을 낼 것 같다.

아직 먹어 보진 않았지만 냄새가 그러했다.

그사이 강사는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그가 진유성이 냄비 뚜껑을 열자마자 다가온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한쪽 구석에서 진유성의 요리를 맛보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진유성이 보여 줬던 칼놀림 때문이었다.

강사는 무를 자르는 진유성의 칼놀림을 보고 분명 요리를 배운 학생일 거라고 생각했다.

쓸데없는 걸 너무 많이 연습한 것 같지만 말이었다.

그래서 호기심에 다가왔는데…….

뭐가 이상하다.

냄비 안에 보이는 거라고는 파밖에 없다.

자세히 보니 국물이 파 밑에 은근히 깔려 있긴 하지만, 다 졸아든 것 같았다.

“자, 맛보거라. 천상의 요리를.”

진유성의 말에 상소윤과 지종수가 작은 그릇을 들고 다가왔다.

“어떻게 먹어?”

“파와 국물을 떠먹어라.”

상소윤, 지종수, 그리고 요리 클래스 강사가 파와 국물을 떠서 냄새를 맡았다.

희한하게도 냄새는 기가 막혔다.

세 사람이 동시에 입에 음식을 넣었다.

그 순간이었다.

“아닛?”

“이건……!”

“먹기 좋게 잘려진 파 안에 소고기가 들어 있어!”

“이건 마치…….”

“일 년간 뙤약볕 아래 땀을 흘린 농부의 애정이 듬뿍 담긴 싱싱한 대파의 풍미.”

“그리고 그보다 앞서 가는 소고기의 식감과 향.”

“그사이에 느껴지는…….”

“그래! 소금이야! 소금을 볶고 갈아서 은은히 뿌려 놓은 거라고!”

“하지만 그것뿐만이 아니야! 뭔가 더 있어!”

상소윤, 지종수, 요리 강사.

세 사람은 어이없는 눈으로 진유성을 쳐다보았다.

유튜브로 이상한 노래를 틀더니, 이상한 멘트를 치고 있었다.

미리 준비해 온 것처럼 청산유수로 요리에 대해서 평가하는데, 아직 세 사람은 요리를 씹지도 않았다.

입에 대기밖에 안 했다.

“재, 재밌는 친구네요. 하하…….”

강사가 억지로 웃음을 흘리고는 진짜로 요리를 먹었다.

그러자.

“미미! 특급 요리사!”

“아, 씨! 좀 먹자! 조용히 좀 해! 대체 어디서 뭘 보고 온 거야?”

상소윤의 고함에 진유성이 입을 비죽 내밀었다.

손짓으로 용을 죽이더니, 이제는 BGM도 못 깔게 한다.

쏘아붙인 상소윤이 요리를 입에 넣었다.

그리곤 눈을 둥그렇게 뜨고 지종수와 강사님을 쳐다보았다.

‘마, 맛있다.’

너무 맛있어서 깜짝 놀랐다.

진유성의 이상한 멘트가 장난인 줄 알았는데, 진짜였다.

먹기 좋게 잘린 대파 하나 하나 안에 소고기가 들어가 있었다.

놀라운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본래 대파 안에 소고기를 넣으면 끓이는 과정에서 다 빠져나가기 마련이다.

물이 끓으면서 이리저리 이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대파는 아니었다.

냄비를 보니 대파의 양쪽 부분이 뭔가로 교차하듯이 박음질이 되어 있었다.

뭔가 싶어서 보니까 쪽파의 꽁무니였다.

쪽파로 대파의 주둥이를 묶어 놓은 것이었다.

‘아니, 이걸 대체 언제 한 거야?’

세 사람이 요리를 먹고 입을 다물지 못하자, 주변의 학생들이 다가왔다.

다들 시끌벅적한 진유성의 테이블을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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